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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14:48

짧은 수필 하나.

조회 수 3193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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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본 수필중에서 제 마음속에 여운을 준 글입니다.
 짧지만 나누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제11회 한미수필 장려상]꿩의 바람꽃-
 
오규성 안산중앙병원 신경외과
 

 

제가 일하는 병원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자락 아래 위치하고 있는, 약간은 오래된 건물입니다. 병원 입구에서 바라보면 우측 끝에 응급실이 있고, 그 뒤쪽으로 나 있는 문으로 들어서서 계단을 올라가면, 2층 계단 바로 옆에 제 외래 방이 붙어있어 항상 그 길을 통해서 출근을 하곤 했습니다. 그 올라가는 건물 문 바로 옆에는 작은 화단이 하나 있는데 제법 큰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어서 그 아래로는 작은 꽃들도 많이 피어있지 않는 그런 화단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전에는 지나가면서 보지 못했던 작고 예쁜 흰 꽃 한 송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평소에도 보기 힘들다는 꿩의바람꽃이,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서인지 햇빛을 받지 못해 꽃잎을 접고 있었습니다. 꿩의바람꽃은 햇빛을 받지 못하면 활짝 피지 못한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점심시간에 나와서 활짝 핀 꽃을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오하입니다.”

 

“선생님, 응급실 당직입니다. 39세 남자 환자로….”

 

“응급실 바로 앞입니다. 바로 가서 볼게요.”

 

그 날은 평소와 다름없이 초봄의 한가운데 서 있는, 찬바람이 스러져가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3월이 끝나가는 날인데도 왜 이렇게 추워’하고 생각하면서 외투를 여미고 병원 건물 응급실로 들어가는데 우연히 쳐다본 봄하늘이 정말로 눈이 시리게 맑았습니다.

처음으로 사서 이사 가기로 한 집 인테리어를 돕다가 사다리에서 머리부터 떨어지면서 의식을 잃고 119구급차를 타고 내원한 분이었습니다. 응급실 내원 당시 의식은 반혼수 상태에 혈압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보호자는요?”

 

“지금 연락중입니다.”

 

“휴대전화 저장 번호 순서대로 다 눌러봐요.”

 

부인과 연락은 10분 정도 후에 됐습니다. 아이 학교 수업 참관 때문에 중간에 전화 받기가 애매해 교실에서 나와 받느라고 늦었다고 하더군요. 운전하기가 무서워서 다른 학부모가 태워다 주어 뛰어서 응급실로 들어왔습니다.

응급실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의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는 좋지 않은 상태를, 아니 사실은 살아나기조차 버거운 환자의 상태를 보호자에게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일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놓쳐, 상황을 잘못 알아듣고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생길 것 같은 마음으로 기대를 갖고 저만을 쳐다볼 때, 그 눈을 바라보면서 좋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특히나 머리를 다쳐서 혈압조차 잡히지 않는 반혼수 상태의 환자라면 말입니다.

 

“환자 상태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머리 CT사진을 찍어보았는데 뇌출혈이 너무 심합니다. 머리뼈도 많이 부서졌습니다.”

 

부인의 두 눈이 천천히 감기더군요.

 

“혈압도 잡히지 않는 상태라서 가망이 없을 것 같습니다.”

“…….”

 

부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서 울기만 했습니다. 오히려 크게 운다거나, “당신, 의사 맞아?” 하면서 소리를 친다거나 하지 않고 가만히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같이 온 다른 학부모 분들이 여기 저기 전화하면서 수선을 피웠을 뿐이지요. 그 뒤로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긴 다음 다른 보호자들도 왔다 가고, 여러 가지 약물치료를 했지만 내원 30시간 정도 만인 다음날 낮에 Arrest가 왔습니다.

심폐소생술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부인이 제 손을 잡으면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큰 소리로 그러더군요.

“이 나쁜 놈아! 네가 행복하게 해 준다고 약속 했잖아.”

남편 팔을 붙잡고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면서 울었습니다. 그 전까지 면회 시간에도 항상 가족들 뒤에 서서 다른 분들이 물어보는 것을 열심히 듣기만 하고 아무런 말없이 제 눈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응급실에서 처음 보았을 때 입었던 봄하늘색 긴 스웨터를 입고서 말입니다. 그렇게 항상 두 손 모아서 입에 대고는 아무런 말없이 응시하면서 듣고만 있던 분이 그렇게 소리치면서 우시더군요.

 

“네가 행복하게 해 준다고 약속 했잖아. 이 나쁜 놈아.”

 

나중에 부인이 진단서를 떼기 위해 외래로 오셨을 때 잠시 말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만나 결혼하고는 아이 둘을 힘들게 키우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중소기업이긴 하지만 정규직이었고, 자기는 임시직이었다고 하더군요. 결혼한 지 10년 넘어 처음으로 집을 장만해서 남편과 너무나도 좋아했는데, 전 주인이 집을 좀 험하게 써서 벽지와 마루만이라도 깨끗하게 하고 들어가자고 정했답니다. 인부들 돈 주는 것 아낀다고 주말에 열심히 했는데 2일만으로는 다 못해서 남편이 직장에 월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정리를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주말에는 같이 일을 하던 아내도 그날따라 학교 학부모참관수업에 가야 했는데 그 날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네.”

 

“남편이 그 날 무척 아팠을까요? 머리를 그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마지막까지 많이 아팠을까요?”

 

“아니요. 남편분은 전혀 못 느꼈을 겁니다. 그냥 편하게 가셨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부인의 질문에 즉시 전혀 아프지 않았을 거라고 단언했습니다. 저도 사실 알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부인은 그 말에 안도하면서 슬픈 눈으로 제게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깊은 인사하고 외래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많은 환자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직업이지만, 그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습니다. 환자는 아픔을 느꼈을까요? 아니 환자의 아픔을 보호자는 느꼈을까요? 똑같이 환자 얼굴을 보면서도, 면회 시간이 지나서 보지 못하고 있을 때도 부인은 아픔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제는 죽음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된 담당 주치의만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하루 종일 우울했습니다. 언젠가 첫 번째 환자가 사망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리고 며칠간이나 힘들었었을까하는 생각이 그제야 겨우 떠오르게 된 제 자신이 더 슬펐습니다. 하나의 죽음을 이제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아니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 저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우연이었겠지만 그 날도 부인은 봄하늘색 긴 스웨터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제게는 가을하늘색은 맑고 진한 청량한 하늘색이지만, 봄하늘색은 쓸쓸하고 비가 올 것만 같은 하늘색이 됐습니다.

 

저는 가끔씩 부부간의 사랑이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을, 혼자 살아계신 한쪽 부모님을 보면서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만은 영원할거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 역시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준다고 말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늘 다짐하면서 살지만, 갑자기 끝날 수도 있는 사랑 앞에 선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가끔씩은 저도 제 아내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앞으로도 별 일 없이 행복하게 해 줄게” 하고 꼭 말하려고 합니다. 꿩의바람꽃은 꽃말이 ‘사랑의 괴로움’이라고 하던데 우연히 그 꽃을 볼 때마다 그 날의 일이 생각납니다.

가을에도 봄하늘색으로 물든 하늘이 보이면 그 날 들었던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네가 행복하게 해 준다고 약속 했잖아, 이 나쁜 놈아.”

  • ?
    길벗 2012.03.29 20:30

    김호성회장님!

    잘 읽고 갑니다.

    '꿩의 바람꽃'이라!! ....

  • ?
    나무그늘 2012.03.30 17:14

    수필 읽고 왈콱 했어요.. ㅠ.ㅠ

    두 아이의 어머님이라 하셨는데..

    부디 주님의 평화를 담대함으로 이루시길 바래봅니다..

     

    참 멋진 의사선생님이세요..

    위로를 전하는 선생님의 깊은 마음에도 감동이 되었죠..

     

    부부 간의 사랑은 죽음이 갈라놓는 언젠가 끝난다고는 하지만..

    저는 믿죠.. 사랑은 하나가 될 때 그 온전함이 이루어진다고..

    온전하게 이루어진 사랑은 하느님의 영원에 속하기 때문에..

    머물지도 끝나지도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아요..

     

    온전한 한 사랑.. 곧 하느님의 사랑.. 우리가 꿈꾸며 기도하는 소망이니까요..

     

    그래서 마지막 여운이 눈물겹도록 가슴을 울렸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

     

    (이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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