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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2002.10.04 13:48

[2002.09.29]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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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재순 목사

"늘 고맙습니다."

(시편 100:1∼5; 데살로니가전서 5:15∼22)

 

2002.09.29

박재순 목사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 시편 100: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 데살로니가전서 5:15∼22



추석 한가위는 한국의 추수감사절이다. 옹색한 살림도 펴지고 마음도 넉넉하고 고마운 마음이 넘치는 절기다. 추석 한가위에는 밝은 달이 떠오른다. 옹글게 가득 찬 둥근 달이 하늘과 땅을 두루 비추고, 오곡이 무르익어 풍성한 들녘에 서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밝고 크고 둥근 달이 어둔 하늘과 땅을 밝히듯이, 우리의 삶과 마음을 밝게 비춘다. 봄, 여름 땀흘려 가꾼 곡식이 들에 가득하고 나무마다 달고 맛난 열매가 열리니 더 바랄게 없고 고마운 마음이 절로 난다.

고맙다는 말은 "당신은 신입니다"는 뜻을 지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왜 그런지는 듣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은 '곰(검)-앞이다'에서 왔고 곰이나 검은 신(神)을 뜻하는 우리말이니까 '곰앞다'는 '신 앞입니다', '나는 신 앞에 있습니다'를 뜻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임금'이란 말도 '님검', '신을 머리에 인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우리 민족이 본래 종교적이고 영적인 민족으로 느껴진다. '고맙다'는 말의 어원적 의미가 '신 앞에 있다'는 게 아니라고 해도 고맙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나님 앞에 서면 더 나아갈 데 없는 지극한 자리에 선 것이다. 더 올라갈 데도 없고 앞으로 나갈 데도 없다. 하나님 앞에 서면 원한도 아쉬움도 사라지고,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만 들것이 아닌가? 더 욕심부릴 것도 없고, 다툴 일도 없다. 유영모 선생은 '고맙다'는 말을 '고-맙', '이제 고만 맙시다'로 풀이한다. 밥을 대접할 때 "고맙습니다. 이제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자리가 고맙다는 말을 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충분히 대접받았으니 이제 그만 되었다는 말이다. 누가 내게 무엇인가 해주기를 바라고 무엇인가 더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가득 차고 넘치는 상태가 고맙다는 마음의 상태이다.

시편 100편에서는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기쁨과 고마움이 넘치는 것을 잘 말해준다. 기쁨과 고마움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고 한다. 처음에 하나님 앞에 서면 두렵고 떨린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잘못과 허물을 뼈아프게 뉘우친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인이구나, 나는 아무 것도 아닌 빈 껍데기, 텅빈 깡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절망과 체념으로 끝나는 법은 없다. 고통스럽고 캄캄한 참회의 시간이 지나면 용서와 사랑의 은총으로 가득 채워져서 기쁨과 고마움의 눈물 흘리며 웃음과 환호성으로 끝난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늘 은총을 느끼고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고마움을 잃은 시대, 은총을 잃은 시대, 하나님을 잃은 시대임을 절감한다. 돈이 지배하고, 순간적인 감정과 쾌락에 집착하는 시대, 끝없는 경쟁의 시대, 한없이 욕심을 부추기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는 은혜를 느낄 수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신경질이 늘고 화 잘 내고 쉽게 헤어진다. 이혼율이 급증하는 것은 삶의 고마움을 못 느껴서다. 고마움은 삶의 깊이에서 온다.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때 고맙다. 내가 죄인이고 텅빈 존재인데 나 밖에서 하나님이 느껴지고 내 몸과 맘이 하나님의 힘과 은혜로 채워질 때 고맙다고 느낀다. 제 욕심과 주장으로 꽉 차면 고마움 모르고 은혜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른다.

고맙다는 말은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이다. 사람을 만나든 자연생명세계를 보든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참 의미에서는 하나님 앞에서만 고맙다는 말을 쓸 수 있다. 내 욕심과 주장이 끊어지는 자리에서만 고마움을 알고 느낄 수 있다. 참 의미에서는 하나님 앞에서만 '나'말고 '네'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나'를 '나'로 보고 '너'를 '너'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만 내 욕심과 주장과 생각이 끊어지고 타인을 타인으로 보고 대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든 자연만물이든 일이나 물건이든 제 소유나 이해관계로 보거나 제 생각의 틀 속에서만 본다. 제 것으로 제 일부로만 본다. '너'를 '너'로 볼 수 없다. 적으로 보거나 제 존재의 일부로만 보니까 고마움을 느낄 수 없다. 내 밖에서 나를 사랑하고 내게 힘을 주는 존재를 느낄 때 비로소 고맙다.

내 힘으로 내 재주로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힘을 입어 산다. 자연생명세계의 힘으로 산다. 이웃의 힘, 사회의 도움으로 산다. 문화생활과 사회생활은 말할 것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애씀과 공력에 힙입은 것이다. 먹고 입고 자는 것도 모두 남의 힘을 입어 사는 것이다. 밥 한 그릇도 햇빛과 물과 바람과 흙의 조화와 공력으로 된 것이고 농부의 땀이 밴 것이고 밥 짓는 이의 수고가 들어간 것이다. 밥 한 그릇 먹을 때마다 고맙고 고마운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그러나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잘하려면 머리도 쓰고 몸으로 애를 써야 한다. 살림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생명, 목숨이다. 생명의 기본이 숨이다. 숨 끊어지면 죽는다. 숨쉬는 것만은 남의 도움 없이 나 홀로 하는 것 같은데 숨쉬는 일이야말로 공기 없으면 못하는 일이다. 숨이야말로 은혜로 쉬는 것이다. 숨을 깊고 편하게 쉬려고 애써 본 사람은 안다.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숨을 잘 쉬려고 힘쓴다. 억지로 숨을 잘 쉬려고 애쓸수록 숨을 잘 쉴 수 없다. 숨은 은혜로 쉰다. 몸과 마음을 열고 내맡기고 편안해져야 숨을 깊고 편하게 쉴 수 있다. 고마움을 느낄 때 숨이 잘 쉬어지고 숨을 쉴 때마다 고마움을 느낀다. 숨을 잘 쉬어야 몸과 마음에 힘이 난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한다. 숨을 잘 쉬면 숨 속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기운을 얻을 수 있다.

삶은 힘입어 사는 것, 은혜로 사는 것이다. 고마움을 알고 고마움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삶이 아름답고 힘있고 빛나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화를 품고 산다. 한국에만 화병이라는 게 있다니 한국사람에게 특별히 화가 많은 것 같다. 고난을 많이 겪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서 한(恨)이 사무쳤으니 화도 깊고 많을 것이다. 한국사람만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화를 품고 산다. 화를 가득 품고 사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 사는 죄인의 특징이다. 가인은 하나님이 자기 제물을 안 받고 아벨의 제물만 받았다고 화가 나서 동생 아벨을 죽였다. 가인의 후손 라멕은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 일곱 갑절이다."(창4:23-24)라고 선언한다. 인류역사는 가인과 라멕의 인생관을 따라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역사다. '나'를 건드리면 몽둥이질을 하고 내게 상처를 주면 죽이면, 보복이 더 깊어지고 커진다. 그래서 세상은 더 어두워지고 혼란에 빠진다.

신약성서는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서로 돕고 살리는 나라를 여는 길을 보여준다. 십자가가 바로 보복의 악순환이 끊어지고 서로 돕고 살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열리는 자리이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지만 욕심이 많고 화가 가득 나 있는 나라이다. 누가 건드리면 몽둥이를 들고 나온다. 보복과 응징으로는 평화의 세계가 오지 않는다.

가정생활도 그렇다. 서로 서운한 감정과 행동을 키워 가면 가정은 깨지고 만다. 아내나 남편이 내게 서운하게 했다고 나도 서운한 감정과 생각을 키우면 함께 살 수 없게 된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5절은 "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서로에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평화에 이르는 길,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죽어도 사는 길이다. 나는 죽어본 경험도 없고 죽음을 다 알았다고 할만한 깨달음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힘쓰면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살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문익환 목사와 문동환 박사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님이 일제 때 만주에서 목회를 했다. 나이든 장로 한 분이 문목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목사님, 이제 더 이상 아내와 살 수 없습니다. 얼굴만 보아도 밉고 하는 일마다 미련해 보여서 한 순간도 같이 있기 싫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문목사가 "원수도 사랑하랬는데..." 하니까 "저도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며 살아왔는데요 아내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갔는데 후에 밝은 얼굴로 다시 왔다. 그 동안 이 장로는 아내 사랑을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애를 썼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 장로가 아내에게 수고했다고 격려도 하고 칭찬도 하면서 부엌일도 같이 하면서 다정하게 대하니까 아내 얼굴도 밝아지고 아내도 다정하게 남편을 대하게 되어서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로 나쁜 생각, 나쁜 감정, 나쁜 행동을 키워 가면 가정은 파탄이 난다. 좋은 생각, 좋은 감정, 좋은 행동을 키워 가면 사랑이 깊어지고 관계가 아름다워진다. 이렇게 살려면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 기쁨, 기도, 고마움은 생명의 본질이다. 생명은 상처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본래 기쁜 것이다. 새싹이 나면 기쁘고 꽃 피고 열매 맺으면 기쁘다. 어린 생명을 보면 삶에 기쁨이 묻어난다. 생명의 근원인 예수에게 가까이 가면 기쁘다.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보면 기쁘다. 내 속에서 내가 자라고 커지면 기쁘다. 내가 내 생명을 느낄 수만 있다면 기쁘다. 내 몸과 맘의 생명을 못 느끼니까 사는 게 화가 나고 지겹다. 내 목숨이 살기 위해 숨쉬듯이, 내 영혼이 살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는 영혼의 숨이다. 영혼이 살려면 하나님, 예수님, 성령과 생명의 숨을 쉬어야 한다. 내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도이다. 늘 기쁘고 힘있게 영의 숨을 쉬면 늘 고맙다. 모든 일에 고마워하라고 성서는 말한다. 어떤 때는 고맙고 어떤 때는 고맙지 않은 게 아니라 모든 일에 모든 경우에 고마워하라는 것이다. 예수 안에 사는 사람은 고마워 할 의무가 있다. 늘 고마워하는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뜻이다.

늘 고맙다는 사람은 승리자이다. 패배를 모르는 사람이다. 인생의 보람을 얻은 이다. 죽어도 사는 이다. 남이 보기에 인생에 실패하고 죽어가면서 "하나님 고맙습니다. 내 가까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누가 이길 수 있나? 이런 사람은 악마도 이길 수 없고 지옥의 권세도 아무 힘을 쓸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이미 천국에 사는 이요, 죽음을 넘어 영원히 사는 이다. 고마운 마음을 지닌 사람은 인생살이에서 이긴 사람, 보람을 찾은 사람, 넉넉한 사람이다. 고마운 마음이 함께 사는 삶의 바탕이다.

모든 일에 고마운 마음을 품고 살려면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한다.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게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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