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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경일


“재난의 시대를 위한 4.19의 지혜 : 사회적 공감”
(야교보서 3:18)


 
2020년 4월 19일
4.19혁명 60주년 기념예배
정경일 형제(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 야고보서 3:18 -



재난 시대의 시대를 위한 4.19의 지혜: 사회적 공감


오늘은 419, 4.19 혁명 6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하지만 사상초유의 코로나 19가 블랙홀처럼 모든 사회적 이슈를 삼켜버려, 4.19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탈-맥락적인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코로나 19 재난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4.19 혁명의 의미가 새롭게 더 깊어집니다. 그것은 두 사건이 공통적으로 시민의 주체성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 이후의 세계는 권위주의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고 민주주의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시민의 의식과 행동입니다. 그렇기에 한국 시민 사회와 민주주의의 원초적 사건이었던 4.19의 의미가 코로나 19 시대에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4.19의 기적


4.19 관련 역사 자료들을 읽으면 기적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4.19가 당시의 한국사회 조건에서 일어나기 어려웠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승만 정권의 억압과 부패가 극심했고 경제난, 실업난 등 사회불안도 컸지만, 그래도 혁명이 일어날 정도의 사회적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4.19가 있었던 1960년은 한국전쟁이 정전된 후 7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때입니다. 세계 최초의 국제 이념전쟁이었던 한국전쟁은 반공을 남한 사회의 국시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전쟁 직전 약 65천 명이었던 한국군은 전쟁을 거치면서 655천명으로 열 배 늘었습니다. 군인 숫자만 놓고 보면 당시 세계 4위의 군대였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반공 이념과 군사력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대한 도전과 저항은 용공으로 몰려 탄압받던 시대였습니다

 

반면 집권 여당을 견제할 야당은 힘이 없었습니다. 부패와 무능에서는 자유당과 오십보백보였고, 신익희, 조병옥 등 시민의 기대를 받던 야당 지도자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자유당과 맞설 기회마저 놓쳤습니다. 진보당이 있긴 했지만, 진보당을 용공으로 몰아 배제하고 제거하려는 데서는 여야가 따로 없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운동 중 신익희가 사망했을 때 민주당은 진보당의 조봉암에게 투표하느니 차라리 이승만에게 투표하라고 성명을 낼 정도였습니다. 결국 자신을 얻은 이승만 정권은 1959년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사형에 처하는 사법살인을 저지릅니다

 

이처럼 야당도 진보세력도 혁명을 주도할만한 힘과 조직을 갖고 있지 못한 반공시대에 전국적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특이한 일입니다. ‘68운동’, ‘68세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968년은 기존의 권위체제에 맞서는 저항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났던 해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8년이나 일찍 아시아의 작고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시민 민주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한 지구적 저항의 격랑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기존 정치체제를 무너뜨린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한국인은 전위조직도 연합전선도 없이 자발적 시민 저항으로 독재정권을 붕괴시킨 것입니다. 그러니 4.19 혁명을 보며 기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시민의 탄생 : 사회적 공감

 

물론 4.19 혁명을 신비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전쟁 후 해외 원조에 의존하던 경제가 1958년 미국의 원조 중단과 함께 위기를 맞았고, 자유당 정권의 극심한 부패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국적 시민 저항으로 정권을 무너뜨릴 정도의 상황과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기적처럼 세상을 바꾸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가지 정치학적, 사회학적 설명과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시민의 사회적 공감이 혁명의 가장 근원적인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월 혁명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청소년의 정치 참여입니다. 19603.15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의 부정선거 책동이 노골화되자, 228일 대구에서 고등학생들이 집단 시위를 벌입니다. 그리고 3월 이후 선거 전까지 부산, 마산, 수원,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학생 시위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오산고 학생들도 시위에 나섰습니다. 오늘날 청소년의 삶을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입니다. 반면 418일 고대생의 시위가 있기 전까지 대학생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시위에서 선배들은 각성하라”, “선배들은 썩었다라는 성난 구호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당시 청소년들이 시위를 주도할 수 있었던 원인을 흥미롭게도 이승만 정권의 관제시위에 동원된 경험에서 찾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초기부터 관제시위를 정권 안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청소년은 동원이 가장 용이한 세대요 집단이었습니다. 다양한 관제시위에 동원되면서 청소년들은 행진, 구호, 노래, 현수막과 피겟팅 등, 구체적 시위 방법에 익숙해졌습니다. 게다가 연합 관제시위 과정에서 각 학교 학도호국단 학생들은 연결 구조를 갖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승만 정권에 동원당하면서 시위 방법을 배운 청소년들이 이승만 정권에 저항해 시위를 벌인 것입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을 학교 밖 거리로 나서게 한 보다 근원적인 힘은 사회적 공감입니다. 315, 마산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민과 고등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이때 경찰의 발포로 7명이 죽고 870명이 부상당합니다. 4.19 혁명의 결정적 도화선이 된 이 3.15 마산의거는 세상을 바꾸는 사회적 공감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아프면서도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영남의 마산상고에 입학하기 위해 호남 땅 남원에서 온 청소년 김주열은 315일 형과 함께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됩니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 권찬주 씨는 마산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애타게 아들을 찾습니다. 거의 한 달을 찾아다녔으니 마산 시민은 김주열과 어머니 이야기를 다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실종 28일 만인 411, 억울한 죽음을 스스로 고발하고 항의하는 유령처럼 참혹한 모습의 김주열이 마산 바다 위로 떠오릅니다.


마산 시민은 마치 자기 가족의 일처럼 슬퍼하며 분노합니다. 11일 당일에 3만 명이 시위를 벌입니다. 특히 여성들의 사회적 공감이 아프고 뜨거웠습니다. 김주열의 시신이 안치된 도립병원에 오전부터 수많은 여성들이 몰려와 주열이를 살려내라!” “내 아들도 이렇게 안 될 거라고 누가 보장하느냐라고 울부짖으면서 2차 마산 시위가 시작된 것입니다. 동아일보에서 펴낸 어느 책은 그날 아침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날 데모에는 특히 부녀자들이 많았다. ‘죽은 내 자식을 내놓아라,’ ‘나도 죽여달라면서 그동안 보복이 두려워 눌려왔던 설움을 격렬한 어조로 터트렸다.”


여학생들도 시위에 나섰습니다. 마산여고, 마산제일여고 등 그 지역 여학생들이 414일 김주열의 영전에 바치겠다며 꽃을 들고 시가행진을 벌였습니다. 김주열의 죽음을 청소년들은 자기 자매형제의 죽음처럼, 여성들은 자기 아들, 손자의 죽음처럼 아파하며 공감했습니다. 사회적 공감에서는 노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424일에는 마산 지역 애국노인회 할아버지 80여 명이 지팡이를 짚고 시위에 나섰고, 그 다음날인 25일에는 같은 지역 할머니 300여명이 시위에 나섰습니다. 오늘 새길교회 주보 표지 사진은 그 할머니들이 죽은 학생 책임지고 리 대통령 물러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입니다. 이 모두는 김주열의 죽음을 타인의 고통으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사회적 공감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사회적 공감의 불길은 마산에서 전국으로 번집니다. 마침내 대학생들도 시위에 동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혁명 또는 학생의거라는 표현과 달리 4월 혁명의 주체는 모든 시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418일 고대생 시위 후 대학생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청소년을 비롯, 여성, 노인, 도시빈민, 심지어 초등학생 등 모든 시민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혁명 과정의 희생자 숫자만 보더라도 절반 이상이 노동자와 무직자였습니다. 물론 누가 혁명의 주인공인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봄날의 시민 저항이 사회적 공감의 기적 같은 사건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공감은 혁명 후에도 위로와 치유의 생명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 병원에 입원한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하려는 시민이 몰려들었고, 꽃과 선물과 편지가 답지합니다. 조선일보 1960422일자에 실린 꽃은 져도 꽃은 또 피네요라는 시적 제목의 기사에는 모두 내 대신 죽은 사람, 내 대신 다친 사람”, “저마다 내 피를! 내 피를!’”, “‘이름 없는사람 앞에 이름 없는온정들”, “각 병원마다 초만원의 동포애와 같은 사회적 공감의 문구들이 가득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이때의 언론은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비판 정신과 공감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4월의 거리에서 사회적 공감을 목격하며 감동한 문익환 목사는 4월 혁명의 느낌 몇 토막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씁니다.

 

426, 나는 몇몇 벗들과 함께 흥분의 도가니로 화해 버린 서울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창경원 앞에서였다.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나기에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소리는 허줄한 옷을 입은 한 노동자의 소리였다. 그는 혼자서 연방 다들 이렇게 친절해야지!”를 읊조리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벅차오는 감격은 그에게 새 세계를 열어 보여준 것이리라. 그 피비린내 나는 생존경쟁 마당에서 모든 사람의 착취와 압박의 대상으로 천애고아처럼 자신을 외롭게 느꼈을 것이다. 이제 그는 갑자기 모든 사람이 원수가 아니라 친절한 벗이요 형제인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자기를 위해서 피를 흘려 준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나를 위해서, 서로서로를 위해서 피를 흘리다니!’ 이 감격을 그는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그는 새 땅에 서서 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리라.

 

정치학적으로 보면 4월 혁명은 미완의 혁명일 것입니다. 낡은 체제를 무너뜨렸지만 새로운 체제를 만들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보면, 문익환 목사가 새 하늘 새 땅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4월 혁명은 사회적 공감의 시원이 된 혁명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개인과 가족의 이기적 울타리 안에 갇혀 서로 경쟁하던 사적 존재들이 사회적 공감의 사건을 통해 서로에게 친절하고 서로 사랑하는 공적 존재로 변화한 것입니다. 한 사람 김주열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받아들인 그때 그 사람들은 이후 한국 역사에서 전태일의 죽음, 광주 시민의 죽음, 박종철의 죽음,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공적 존재, 공감적 인간으로서의 시민의 원형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일구 씨의 인생

 

꽃이 아름다운 것은 피기 때문이 아니라 지기 때문일까요? 4월 혁명은 그토록 아름다웠지만, 문득 피었다 금세 지는 꽃처럼, 불과 1년 뒤 5.16 군부 쿠데타에 짓밟힙니다. 박정희 정권은 혁명의 이름을 강제로 바꿉니다. ‘4.19 혁명‘4.19 학생의거로 바뀌었고, 김영삼 정권 때에야 다시 혁명이라는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물론 4.19 혁명이 어떤혁명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합니다. ‘아시아 최초의 시민혁명이라고도 하고 좌절된 혁명이라고도 하고 미완의 혁명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미완의 혁명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4월 혁명을 결말이나 완성이 아닌 연속적 성장의 시작으로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장은 생명 현상입니다. 오늘의 성서본문 야고보서 318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정의는 단번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씨를 뿌리고, 평화를 싹틔우고, 평화가 자라도록 돌보며 기르는 지난한 수고를 통해 맺히는 열매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4.19 혁명을 성장하는 존재, 생명과 인격을 지닌 존재인 사일구 씨로 상상하면 가슴이 미어지며 벅차오릅니다

 

1960년 봄날, 동학혁명과 3.1혁명의 역사가 있는 땅에서, 전쟁과 가난의 상처투성이 땅에서, 예쁜 여자 아기 사일구가 기적처럼 태어납니다. 하지만 갓 돌이 지나자마자 사일구는 사납고 잔인한 5.16에게 붙잡히고, 그 후 십 몇 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랍니다. 그러다 1979년 그녀를 잉태한 부산과 마산의 시민이 그녀를 기억하고 다시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불러냅니다. 1980년엔 광주에서 딸 같고 동생 같은 5.18이 일어나고, 국가폭력에 무참히 죽임당합니다. 젊은 사일구 씨는 다시 겨울공화국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4.195.18을 잊지 않은 시민은 마침내 1987년 전국적 6.10 민주 항쟁을 일으킵니다.


그 후에도 사일구 씨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삼십 대 후반에 그녀는 IMF 련을 호되게 겪었고, 오십대 중반엔 세월호 참사에서 아들과 딸을 잃고 가슴이 무너집니다. 모두가 고통을 겪지만 사일구 씨의 삶에는 모든 고통이 있는 것만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시인 박두진이 내릴 수 없는 깃발이라고 부른 사일구 씨는 그녀의 죽은 아이들, 살아있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사회적 공감의 광장에 나섭니다. 그리고 그녀를 닮은 손녀 촛불혁명의 탄생을 지켜봅니다. 수십 년 전 권좌에 오른 박정희 장군의 위협을 받았던 사일구 씨는 갓 태어난 아기 촛불이 장군의 딸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을 경이롭게 바라봅니다.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사일구 씨가 오늘 60살 생일을 맞았습니다. 그녀의 생일을 앞두고 코로나 19’ 재난이 발생했지만, 그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멈추지 않고 살아온 모든 혁명의 어머니사일구 씨는 사회적 공감의 시민 공동체가 재난 속에서 더 성장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믿음대로 한국 시민은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에게 친절하며 코로나 19를 이겨내고 있고, 재난의 와중에 선거까지 탈 없이 치러 냈습니다. 세계 사회는 한국 정부를 칭찬하고 있지만, 저는 칭찬받아야 할 존재는 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한국의 진정한 힘은 정부가 시민을 통제하는 권위주의에 있지 않고 시민이 정부를 통제하는 민주주의에 있기 때문입니다.


4.3, 4.16, 4.19... 한국의 4월은 너무 아프지만, 동시에 이 아픈 4월에 한국 시민은 사회적 공감의 아름다움과 힘을 배웁니다. 지난 60년 동안 이념 적대 바이러스, 경제 탐욕 바이러스와 싸워온 사일구 씨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곳은, 사회적 공감이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이길 백신이라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대로 살아가며 행동한다면, 재난 이후 우리의 삶은 더 나은, 더 따뜻한, 더 안전한 삶이 될 것입니다.

 

기적 같은 아기 사일구 혁명의 삶을 축복하듯 응원하듯 김수영 시인이 쓴 시 기도를 읽으며 말씀나눔을 마치겠습니다.

 

기도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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