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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020.03.12 10:30

[2020. 3. 8] “안전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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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민정


“안전한 공간”
(요한복음서 9:1-7, 마가복음서 8:21-26)




2020년 3월 8일
창립 33주년 감사주일 예배(새길여성회주관)
전민정 자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
                                                                                              - 요한복음서 9:1-7[공동번역] -


[예수께서는 “그래도 아직 모르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일행이 베싸이다에 이르렀을 때에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대어 고쳐 주시기를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라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는 눈을 뜨면서 “나무 같은 것이 보이는데 걸어 다니는걸 보니 아마 사람들인가 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그의 눈에 손을 대시자 눈이 밝아지고 완전히 성해져서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저 마을로는 돌아가지 말아라” 하시며 그를 집으로 보내셨다.]
                                                                                          - 마가복음서 8:21-26[공동번역] -



안전한 공간


저는 33년의 긴 새길의 역사에서 이제 막 2년을 함께 하고 있는 새길인입니다.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의 감독은 수상 소감 중에 이런 말을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제게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들려드리고자 하는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 어쩌면 ‘우리’가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공동체의 이야기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새길에 오기까지의 경험이 단 한 사람도 같지 않은 것처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모두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때로 어떤 경험들은 이 ‘상이함’의 속성을 깨뜨리고 특정 사람들에게서 유사하게 나타나고, 또 반복되어 경험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에 저는 개인의 경험이 더 이상 개인에만 머무를 수 없는, 사회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기생충이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그것이 한 가족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빈부의 문제, 계급과 계층에 대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겪었던 몇몇 경험들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범한 여성으로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느끼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여성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냈을 ‘경험’들이 제 과거에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다녔던 여학교 화장실에서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구멍과 틈새들이 휴지 뭉치들로 단단히 막혀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구멍을 막아놓았을까 하는 물음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구멍들은 학생들이 몰래카메라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몰래카메라가 설치될 수 있는 틈새와 구멍들을 찾아 자발적으로 막아 놓은 구멍들입니다. 거의 발버둥에 가까워 보이는 그 구멍들을 보고 있으면 그것을 막고 있었을 학생이 느꼈을 두려움이 저에게도 그대로 전달되기도 하고, 그와 똑같은 두려움을 느끼며 화장실을 오가야 했던 경험이 제게는 있습니다.
 
또, 스무 살 초반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에 앞선 여성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범죄를 저지르고 있던 범죄자를 목격했던 경험. 여성에게 알려야 할까 소리를 질러야 할까, 요동치는 심장으로 뒤쫓던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범죄자의 시선, 그 시선에 손발이 굳고 덜덜 떨면서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겠다는 의사를 온 몸으로 표현해내며 집으로 향해야 했던 경험.
 
이런 경험은 모두 제가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저는 화장실에 구멍을 막아볼 새도 없이 누군가가 이미 모든 구멍이 막아 놓았던 것을 보면, 이런 경험이 단순히 저 한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인 경험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의 고민이 필요한 경험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이어야 하는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의 문제로 확장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와 같은 경험을 가진 개인들은 꼭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지 않더라도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공간 안에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나 행동, 시선으로 인해 또 한 번 위협을 느끼고 좌절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몰래카메라범죄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몰래카메라범죄를 웃음코드로 사용하는, 혹은 가해자의 시선에 가까운 표현이나 비유가 어떠한 맥락에서도 농담이 될 수 없지만, 그런 ‘농담’을 일상에서 적잖게 직면해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속한 공간에 이러한 ‘농담’이 쉽게 넘나들 수 있고, 그 뒤로 많은 ‘웃음들’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조금 더 큰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위협적인 공간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주체적인 생각으로 자리를 벗어나지만, 사실은 그 위협에서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홀로 배제되는 수동적인 경험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처럼 나와는 다른 삶, 더 많은 위협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에 대한 고민과 공감이 ‘우리’ 속에 잘 형성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의 위협’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있는 이 공간은 안전한가’에 대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존재하는 어떤 공간의 안전함은 단순히 물리적인 안전장치의 유무로만 치환될 수 없고, 나와는 다른 삶에 던져졌을 수 있는 이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려는 마음이 있는가, 그에 맞춰 나의 언행과 행동을 꺼내어 놓으려고 하는가, 행여 그것이 불발되었더라도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전히 열려있는 귀, 듣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내 입술은 잠시 닫아 두겠다고 말하는 듯 포개어진 입술,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정의되고 확인되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고민을 저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시작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공간 속에서 ‘위협하는’ 존재와 ‘위협받는’ 존재는 굉장히 다양하고, 또 위협받는 이도 어느 순간에는 위협하는 존재로 뒤바뀔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타인 배려하는 조심스러운 언어, 그리고 이러한 것이 모여 만들어내는 안전한 공간에 대한 문제는 사실 우리 모두를 향해 있는 문제임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해결은 언젠가, 어디에선가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서로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가 귀 기울이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보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모든 고민 끝에 제가 새길에서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면, 저는 ‘새길의 공간’이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새길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그리는 시선이 더 강한 위치에서의 시선이 아니라, 쉽게 가려지고 쉽게 잊혀지는 시선에 더 가까웠으면 좋겠습니다.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언어의 즐거움이 어느 몇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곳이 아니라 여기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미소로,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 정말 내 죄 때문일까를 늘 고민해야 했던 사람에게 예수님은 그저 조용히 다가 그의 눈을 어루만졌던 것처럼, 그리고 그런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언어로 우리에게 더 선명히 전해지는지를 생각해보면서, 새길공동체의 앞으로의 30년은 그런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으로 그 시간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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