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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진관



“교회를 나가는 이유”
(미가서 6:6-8)



2020년 1월 26일
주일예배
권진관 형제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미가서 6:6-8 -




교회를 나가는 이유


저는 지난 1월 12일부터 17일까지 약 5일간 인도 캘커타 (요즘은 콜카타) 인근에 있는 세람포 대학교에서 머물면서 아시아신학운동을 위한 포럼(Asia Forum of Theological Movements)에 이어서 신학박사를 위한 연구주제와 방법론를 위한 세미나에 참가했습니다. Asia Forum of Theological Movements는 이번에 창립되었는데 제가 재무담당 임원이 되었습니다마는, 그 이유는 한국이 잘 사나는 나라고, 교회들도 크니까 그렇게 시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아시아 포럼은 저의 인생 후반기에서 가장 중요한 모임이 될 것 같습니다. 아시아 신학을 발전시키고 각 나라의 콘텍스추얼 신학(Contextual theology)을 형성해 나가기 위해 상호 대화하고 함께 공동으로 연구발표회를 갖고 토론하는 모임이 되겠습니다. 이런 시도가 잘 되도록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두 개의 모임을 했는데, 두 모임 모두 캘커타 인근에 있는 세람포대학에 소재한 사트리(Sathri, South Asia Theological Research Institute) 라고 하는 기관에서 열렸습니다.
 
토론을 하는 과정 내내 오늘 말씀증거의 말씀을 무엇으로 드려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3일 동안 세 번의 짧은 학술발표를 하면서 하나의 주제로 계속 발표했는데 그 성서적 주제는 바로 오늘 읽어 드린 본문의 말씀 미가서 6장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고 미가 선지자가 묻습니다? 그것은 공의를 실천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한국에 돌아왔고, 서울을 걸으면서 “아, 다른 세상을 다녀왔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캘커타라는 도시는 그야말로 가난의 도시입니다. 수천 년의 가난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변함없이 가난하고, 혼잡하고, 정리 안 되어 있고, 위생상태가 안 좋고, 특히 매연이 심한 그런 도시였습니다. 매연이 심한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 고생하겠지만, 부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도는 왜 이렇게 변화하기가 어려운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차별과 억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별이 매일매일 일상화되었고, 그것을 아예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외적 물질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정신을 갖고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 가치의 문제,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한 사회가 얼마나 건강할 수 있느냐는 결국 그 사회인들이 어떤 정신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인도의 정신적인 문제 중에서 중심은 역시 카스트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카스트제도가 인도의 불평등의 구조를 심화시키고 영구화시켰습니다. 이것이 국민적인 정신적인 각성을 방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카스트 제도는 인도 종교, 힌두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힌두교가 가지고 있는 혼란스러운 신화나 그에 기반해서 나중에 만들어진 이 카스트제도가 인도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각성, 혁명적인 각성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한국의 종교는 어떤 상태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왜 교회에 나가는 것인가에 대해서 오늘 새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전하는 이야기가 한국을 혁신시킬 수 있는가,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한국 교회는 요즘 그 기로에 놓여 있다고 하겠습니다. 태극기 부대의 보수적이고 폭력적 행태를 보거나, 전광훈 목사의 행태를 보면 정말 한국 교회에 깊은 위기가 몰아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크리스천들은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가 인도의 힌두교와 같은 역할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정의와 자비는 행하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면,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의 걸림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실재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재현해서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실재의 이야기적 구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영어로 하면, Narrative Structure of Reality입니다. 하나의 실재 현실을 놓고 진보와 보수가 달리 봅니다. 이번 설에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정치얘기만 나오면 곧바로 논쟁이 벌어집니다. 서로가 다른 인식을 가지고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하나의 현실을 놓고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힌두교의 카스트 이야기는 인도사회를 그렇게 구조화 시켰습니다. 우리는 어떤 narrative를 찾아야 할까요? 당연히 우리는 성서로부터 오는 narrative를 중시하고 그것을 행동화하고 실천함으로써 성서의 내러티브를 사회 속으로 확산시켜서 우리 사회가 그렇게 구조화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국과 인도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매연이 매우 나쁜 단계에 자주 가고 있는데, 그런데 매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매연에 3배 이상인 매연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어떨 때는 열배 이상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매일 그런 매연을 들이마시면서 산다면, 그건 생지옥이 아니겠습니까? 한국이 “헬 조선”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우리는 사실 인도에 비해서 너무 좋은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서울과 콜카타, 모두 같은 지구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세상입니다. 그러나 차이가 너무나 커서 아주 다른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지구에는 많은 세상이 있습니다. 너무도 서로 다른 세상들이라서 하나의 지구 속에 세상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난에 찌들어 있는 세상이 있는 반면에, 풍족이 넘쳐나는 세상이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오죽했으면 한국에 들어와서 일하려고 하겠는가 이해가 갑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잘 해 줘야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난 20여 년 동안 인도에 자주 다녔는데, 이번에는 좀 오랜 만에 갔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인도 사회가 20 여 년 전과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생각입니다. 이게 특이한 일입니다. 보통 10년이면 세상이 변하는데 여기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좋아져야 하는데, 강산이 변하면서, 더 나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나빠진 부분은 오염된 물과 오염된 공기입니다. 아주 심했습니다. 이것은 공장이 많이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캘커타 내부와 주변에 많은 공장들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뿜어 나오는 오염물질은 공기와 강을 오염시키고 자연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 모두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이런 세상에서 이들은 묵묵히 살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생활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공항과 같은 공공건물은 예전보다 좋아졌습니다. 정부와 국가는 부유해졌는데 일반 국민들의 삶은 오히려 안 좋아졌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타고 시내를 통과하는데 아주 작은 평수의 오두막들이 늘어져 있고, 길은 먼지로 뒤덮여 있고, 분리선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스팔트는 깨진 부분이 많아서 자동차는 터덜거리며 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중에 자동차들은 왜 그리 많은지요. 자동차 경적 소리 소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금 캘커타의 인도사람들은 가난뿐만 아니라, 더러운 공기와 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이 무표정입니다. 반감의 얼굴이나 고통스런 얼굴이 없습니다. 그저 무표정입니다. 지금의 현실을 어쩔 수 없는 현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지금의 세상을 정상적인 세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듭니다. 극심한 고난에 의해 생긴 체념입니다.  
    
가진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 먹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많이 팔리는 것 중에 현대 자동차가 있습니다. 수년전만 해도 한국차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매우 많아졌습니다. 한국이 인도에서 많은 것을 빼내 갈수록 인도인들은 더욱 가난해 지고, 더욱 공기는 더러워지고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적 이득과 성장이 인도 사람들이나 다른 가난한 나라의 민중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식해야 합니다.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국과 인도에서 어느 쪽이 더 큰가를 생각할 때, 물론 한국이 더 가능성이나 기회에서 크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교육이 부족하고 문맹률이 월등이 높은 인도에서 가난을 탈피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낮을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국가 간의 불평등 구조로부터 오는 혜택을 받기 때문에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형편이 나은 것입니다.


2019년 현재 인도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약 2천 달러라고 합니다. 이 수치와 그대로 맞먹는 숫자는 아니지만 한국은 1977년에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1천 달러를 넘겼습니다. 1977년 국민들의 생활로 보면, 그 당시와 오늘의 인도의 상황이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생각해 보면 1977년도는 우리에게 1977년도는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독재에 대해서 저항했던 때였습니다. 한국이 인도보다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한국은 국민들 안에 불평등이 지금의 인도처럼 그리 심각하지 않았던 것이고, 이에 반해서 인도는 지금도 민중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을 막는 힌두교의 카스트제도가 뿌리 깊습니다. 한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어냈지만, 인도는 민주주의는 일찍부터 있었지만,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시민들 사이의 인권의식 평등의식이 성장했고, 누구나 노력하면 자기 발전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한국을 발전시키는 동인이 되었습니다. 


1977년도는 특별한 해였습니다. 그해 가을에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선교교육원이라고 합니다마는, 우리는 이 신학교를 서대문민중신학교로 이름붙이기로 했습니다. Westgate Minjung Theological School of Westgate (W-MTS)입니다.
 
그 당시 우리는 외국의 원조와 지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서대문민중신학교도 원조를 받았습니다. 쫓겨난 교수들과 제적당한 학생들의 신학교였으므로 재정이 필요했는데 그때 독일 교회가 기장 선교교육원을 지원했기 때문에 서대문민중신학교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 재정적인 지원 덕분에 50여 명의 교수님들이 가르쳤고, 124명의 학생들이 거쳐갔고 이중 약 50명이 여기를 졸업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때 이 신학교에서 민중신학이 발전해 나왔습니다. 거기 원장으로 민중신학을 탄생시킨 안병무 서남동 교수님이 수고했습니다. 이제 세월이 지나서 교수님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학생들만 남아서 늙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유래 없는, 가장 아이디얼한 신학교였는데 그런 민중신학교는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우리 졸업생들이 다시 모여서 책도 내고, 어떻게 하면 이 민중신학교 전통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난이 있는 곳에 신학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위기가 있는 곳에, 그리고 가난이 있는 곳에 신학이 생깁니다. 그 당시 서대문 민중신학교가 발전했던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신학이 퇴조하고, 교회가 약화되는 것에는 다 경제적인 부유함이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달릿신학, 콘텍스추얼신학, 해방신학이 일어나고 있고, 계속 잘 되고 있습니다. 인도는 기독교가 살아있고, 신학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인도의 기독교와 인도의 교회와 인도의 신학이 힌두교에 기반을 둔 카스트제도를 싸우고 있고, 모든 차별을 반대하고 극복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도 신학자들은 한국의 민중신학이나 진보적인 신학사상으로부터 서로 배우고 싶어 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한국이 선진국가이고, 신학도 발전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정신을 차려서 신학과 신앙을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정신을 미가 선지자가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6-8)”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기를 위한 예식이나 제물을 바치는 것을 벗어나서 오직 사회적인 행동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단어입니다. 바로 “겸손히”라는 말입니다.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대부분 번역되어 있는데, 영어 성경에서 걷는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교회를 나가십니까?”라는 질문을 고쳐서 “교회를 왜 나가십니까?”라는 질문을 묻습니다. 제 대답은 이것입니다. “교회를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성립됩니다. “교회를 나가야 한다면, 무엇이 나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가요?” 다시 제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열망하고 하나님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다시, 대답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 모릅니다. 다만 조금 알 뿐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다음을 요구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동행하라.’”


이런 분이 우리가 갈망하고, 찾고, 사랑하고, 늘 함께 하는 그 분, 그 하나님입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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