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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강신숙

 

 

“세상 속의 관상가”
(요한복음서 17:18)


 
2019년 11월 17일
주일예배
강신숙 수녀(성가소비녀회)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요한복음서 17:18 -




사회적 감수성과 연민


오늘은 요한복음서의 말씀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요17:18)를 바탕으로 "운동가와 기도"라는 주제의 핵심을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가 아버지에게 바친 이 기도는 자신과 제자들의 운명을 직감하고, 아니 이제 체포의 때가 온 것을 알고 바친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는 참으로 절박한 상황에서 바쳐진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의 중심은 ‘세상’입니다. 아버지도, 아들 예수도, 그 예수의 제자들도 모두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들의 중심에 세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바치는 아버지와 예수, 그리고 이들을 따르는 오늘의 우리들이 어떻게 아버지와 예수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는 한 인간 존재와 그가 처해있는 상황, 시대적 맥락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습니다. 이 기도의 최종 도착지는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11월은 대한민국 수능 시즌인데 고3 수험생을 둔 엄마는 모두 자신의 아이가 시험을 잘 치르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은 누구 엄마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아마도 결과적으로 보면 자사고, 특목고, 강남8학군, 순으로 들어주시는 건 아닐까요? 하느님은 혹시 아이큐 130 이상을 가진 이들의 하느님이신 건 아닐까요? 가족들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들은 시험 자체에 쏠려있어서 현행 "교육제도"의 문제 따위는 간과합니다. 정치와 제도가 실제로 우리 가족과 살림살이와 행복과 미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을 놓칩니다. 그렇다고 모두 나서서 전문 정치꾼도, 제도를 고치는 일에 전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현안 문제가 다 그렇습니다. 부동산 문제도 그렇고 세월호 참사, 청년 비정규직, 노동, 기후변화, 생태, 핵문제 등등 너무 많은 산적된 문제들이 실제 나와 내 가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데도 대부분은 너무 ‘사적’인 공간에 갇혀 있어서 전체적인 맥락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적 영역"의 외연을 넓히고 법과 제도의 개혁을 이루는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기도나 관상에 대한 스킬이나 방법, 혹은 활동가들을 위한 특별한 기도 처방이 아닙니다. 관상에 도달하는 길을 안내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관상이 무엇인지를 함께 공유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관상과 활동입니다. 오늘은 예수를 철저히 따르기 위한 운동 중 3~4세기에 나타난 수도회 운동과 특히 20세기 가장 탁월한 관상가요 활동가였던 ‘토마스 머튼’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른 삶의 형태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공적이든 사적이든 ‘기도’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란 면에서 흥미 있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하느님과 예수의 관상과 활동


관상은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이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기도를 잘하기 위한 테크닉이 지향하는 바도 관상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관상이 잘 되는 사람들은 달리 어떤 기술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관상(contemplation)은 희랍어 "바라보다"의 네 가지 동사 중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인 "깊이 숙고하여 바라보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희랍어로 쓰여진 성경에서 하느님이 백성을 바라볼 때, 혹은 예수가 군중을 바라볼 때 이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예수의 시선 중심에 연민(Compassion)이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연민은 관상의 심장입니다. 심장이 뛰지 않는 관상은 죽은 관상입니다. 관상을 쉼과 고요함에 한정 짓는 데서 수많은 관상가들이 길을 잃었습니다. 예수의 시선에서 연민을 뗄 수 없었던 것처럼 모든 기도는 예수가 가졌던 연민의 중심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돌아오지 않는 기도는 관념적 기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연민에 빠져서 깊이 사유하고 바라보는 행위를 분리시켜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애써 단련해야 할 것은 ‘사유와 감수성의 훈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습니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중략)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니 제자들이 ‘저희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것들을 가지고 이리로 오너라’"(마14:14-20).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요6:5) 이 두 성경 구절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에서 나오는 예수의 관상적 모습입니다. 이 외에도 빵의 기적 후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에서 취한 제자들과 예수의 태도다. 풍랑에 시달리는 배를 보고 물 위를 걸어온 예수와 예수를 유령으로 알아본 제자들의 차이가 그렇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하느님의 ‘바라봄’과 강생도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예수는 모두 세상을 바라보고, 강생하셨다고 나옵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출3:7-9)
 
성경에서 보듯이 하느님과 예수의 관상적 행위의 특징은 군중에 대한 연민과 해방, 치유, 기적으로 이어집니다. 창세기에서 ‘보시니 좋았다’는 관상적 행위는 항상 생명과 창조행위를 동반합니다. 이렇듯 관상은 곧 창조와 구원, 해방의 행위로 연결됩니다. 한 마디로 관상은 ‘연민의 활동’이고 즉각적 행위입니다. 위급한 상황에 빠진 자녀를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는 지체치 않고 즉시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아이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을 ‘본’ 사람은 즉각적으로 아이에게 달려갑니다. 구원 행위가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이 어머니처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합니다. ‘설령 어미가 아이를 잊는다 해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는 말씀이 그러합니다.


2. 영의 시대: 수도회 설립자들, 위기 때마다 출현하는 영의 사람들


수도생활의 오랜 역사 안에서 ‘기도’는 항상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사막의 은수자 시대를 지나는 과도기에는 기도를 잘하기 위해 별별 방법을 다 고안해 냈습니다. 정말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밤샘 기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어떤 이들은 높은 기둥 위에서 평생을 수행하며 살아갔고 또 어떤 이들은 평생 기괴한 자세로 살아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고행과 극기, 단식, 침묵, 희생으로 자신을 단련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사막의 은수자에서 봉쇄 수도자들에 이르기까지 침묵과 은둔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고대인들이 추구했던 기본적인 고행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이런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대부터 기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철저히 따르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말씀 그대로 지키기 위해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나쁜 악령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내면에서 올라오는 숱한 욕망을 제어하기 위해 "고행과 극기"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도시의 삶을 피해 사막으로, 혹은 광야로, 도시의 경계에서 홀로 살아갔습니다. 이런 소문이 점차 퍼져서 도시의 욕망에 휩쓸려 살던 그리스도인, 이교도들, 이방인들이 이들의 명성과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생겨났고, 당시 로마제국에 흡수되어 자칫 ‘복음’ 자체가 위기에 처해있던 교회에 ‘수도자 운동’이라는 새로운 복음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수도자운동은 처음엔 성령의 바람에 이끌려 자유롭게 불고 싶은 대로 부는 "카리스마 운동"이었다가 점차 제도교회 속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수도회 운동의 공통점은 세상과 교회의 위기 때마다 영의 사람들이 출현해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고 이것이 변화의 물꼬로 이어진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설립자들은 전형적으로 위기 때마다 출몰했던 예언적 계열에 속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이번 ‘기도설교’의 핵심이기도 하고,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지적한 ‘교회는 야전병원’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4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 5세기 베네딕토, 10~11세기 시토회, 트라피스트회, 13세기 아씨시의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15~16세기의 예수회, 가르멜회, 안젤라 메리치, 루이즈 드 마리악과 빈첸시오 드 뽈이 대표적이다. 수도자들은 기도의 스승이나 영성가들로 불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활동가들이었습니다. 5세기의 베네딕토회와 13세기 탁발수도회로 불리운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는 앞으로 살펴볼 18세기 이후의 수도회들은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유럽 전체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수도회가 하는 일 자체가 정치, 예술, 문화, 사회, 전 방위적으로 쇄신과 변혁을 일으키는 구심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4세기 로마 멸망은 내부적 부패와 타락도 있었지만 외부적으로 북방 야만인들의 침공으로 인한 약탈과 파괴, 민족 대이동 같은 변수들이 작용했습니다. 이들을 교육하고, 세례를 베풀며 소위 문명화, 혹은 그리스도교화 시킨 사람들이 수도자들이었습니다. 유럽 전체가 그리스도교화 되었다는 사실은 유럽이 수도자들 손에 놓여있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합니다. 이 시대는 교황들 대부분이 수도자 출신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수도회들은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사업을 운영해 문맹을 퇴치하고, 병원을 설립해서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고 간호했으며, 온갖 사회복지사업을 통해서 다양한 빈곤을 돕는데 헌신했습니다.


15세기 안젤라 메리치의 숭고한 정신을 잇는 여성 수도자들의 운동이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 타올랐습니다. 산업혁명과 함께 새로운 빈곤계층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이 당시를 잘 보여주는 소설책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입니다. 비참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에 충격을 받은 이들이 여기저기서 수도회 설립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들 중 ‘루이즈 드 마리악’이라는 여성은 빈첸시오 드 뽈과 함께 ‘애덕의 딸’이라는 수도회를 설립하고 빈민들을 위해 뛰어들었습니다. 이때는 여성수도회가 "봉쇄수녀회"밖에 없었고, 교회법으로도 활동수도회가 금지되었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거리마다 매춘여성들이나 빈민여성, 여자아이들, 병자들, 노동자, 부랑자들로 넘쳐났습니다. 좁은 골목마다 병든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이들을 위해 헌신할 사람들이 너무 적었습니다. 이때 이들을 위해 헌신할 수녀회가 세워졌습니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애덕의 딸 수도자들은 스물 네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격무에 시달리게 되자 이 수녀들이 루이즈에게 간청하였습니다. 자신들도 기존 봉쇄수도회처럼 기도하는 시간, 침묵 속에 거닐 수 있는 회랑, 오랜 시간 성체 앞에 머무르면서 조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졸랐습니다. 이때 루이즈가 한 말은 "딸 들이여, 이 더럽고 냄새나는 골목과 거리가 당신들이 기도하며 거니는 회랑입니다. 죽어가는 병자들의 마음 안에 계신 예수에게 조배하십시오."였습니다. 기도와 활동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며, 활동가, 봉사자는 그 소명 자체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라는 말입니다. 활동 자체가 내게 영적인 힘을 불러일으켜야 하고, 그 활동에서 쉼과 위안을 얻으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기도’ 때문에 길을 잃기도 했던 것입니다. 어떤 기도든 세상과의 연계성을 잃은 기도는 죽은 기도입니다.
 
3. 토마스 머튼의 ‘세상’에 대한 깨달음


가톨릭교회 안에서 위대한 관상가요 활동가며 신학자요 저술가이자 수도승이었던 토마스 머튼의 회개(깨달음)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토마스 머튼(1915~1968)은 가장 엄격한 수도회로 유명한 ’트라피스트회‘ 수도승입니다. 그는 콜롬비아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수행하다가 수도회에 입회(1941, 26세)했습니다. 이후 수도생활 17년 되던 해(43세) 그는 어느 날 ’불현 듯‘, "세상"에 대한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 세상에 대해 경멸적이고 부정적이었던 그의 태도는 세상에 대한 경이와 사랑, 연민의 태도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수도승으로서 강렬한 자아상을 지녔다가 다시 세상 한복판으로 들어온 수도승이 되기까지의 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그의 후기 수도승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사건은 1958년 3월 18일, 수도원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도시 루이빌 4번가, 월넛 스트리트 한 모퉁이에서 무심히 군중을 바라보다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상가 중심에서 나는 감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거리를 오가는 이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들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들의 것이었다. 비록 서로 낯선 사람들이지만 서로 이질적인 사람일 수 없음을 나는 깨달았다. 이로써 나는 격리된 꿈에서, 모든 것을 단념하는 세계이자 거룩한 곳이라 여겨지는 특별한 세계에 관한 거짓된 자기 고립의 꿈에서 깨어났다.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사는 거룩한 존재라는 망상은 모두 꿈이다. 이는 내 소명을 의심하거나 내 수도원 삶의 진정성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내가 회의한 것은 우리가 수도원에 대해 너무나 쉽게 착각하는, ‘수도원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는 관념이다. 나는 우리가 수도원을 생각할 때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이 순진한 망상을 17년 동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인류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영예로운 운명이다. 나는 내가 인간인 것에 대해, 하느님께서 몸소 강생하신 인류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수도자들 역시 "폭탄과 인종차별의 세상, 기술문명과 매스 미디어의 세상, 거대 기업과 혁명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깨달은 그는 드디어 세상 사람들이 근원에서부터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렇게 인류와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세상을 덮고 있는 악과 폭력 앞에서 ‘죄 없는 방관자’로 살아갈 수 없음을 자각한 것입니다. 방관은 자체가 공범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 역시 이런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기도와 고독은 ‘예언적 사명’의 책임을 지니게 됩니다. 머튼은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 "수도승은 본질적으로 현실 세계와 그 구성체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머튼은 환상의 가면을 벗기는 일이 관상적 삶의 본질에 속한다는 사실을 이해했으며, 여러 해 동안 자기 자신의 환상과 대면했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한나 아렌트가 쓴 <인간의 조건, 1958>을 통해 결정적으로 공적 영역에 대한 ‘회개’에 이르렀습니다. 이 책에서 아렌트는 "오늘날 사회에서 시민사회(polis)의 공적 영역에 관한 관심과 헌신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가 ‘활동(행동, praxis)’보다 ‘관상(사색, theoria)’ 쪽에 압도적 중요성을 부여한 탓이 크다. 이것은 세상을 하느님께서 보시듯 이면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관상의 눈’이 아이히만식의 ‘생각 없음’ 혹은 타자의 입장과 고통에 대한 공감의 부재(공감의 무능력)로 이어진다."고 통찰했습니다. ‘정교분리’라는 말은 불의와 폭력으로 지탱되고 있는 기득권층의 질서를 편들고 고착시키는 선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조국 사태를 맞이해서 검찰과 언론이 보여준 행태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과 원칙’이라는 기계적 말만 반복하는 그들 입을 지켜보는 것과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무한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언론은 나치 아이히만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4. 알제리 ‘아틀라스의 성모’ 수도원 형제들과 크리스티앙 원장수사


알제리 아틀라스의 성모 수도원 크리스티앙 원장수사가 이슬람 세계 한가운데서 무슬림들을 타자로 보지 않고 형제요 이웃으로 삼아 자신을 헌신한 것은, "스스로가 차별받는 가난한 약자요 경계인의 자리, 디아스포라의 자리"에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가난하고 낮은 곳에서만, 가난하고 낮은 곳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알아 뵙는 눈"이 열립니다. 알제리의 수도자들이 죽임을 당하기 전, ‘무장이슬람집단’이 보낸 <통지문>은 ‘정교분리’의 환상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수도승은 세상으로부터 떠나 수도자의 은신처에 은거하여 잠심하는 사람이다. 나지르인들 사이에서 이들은 은수자라고 불린다. 아부 바크르 알 시딕은(제 2대 칼리프) 이런 이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수도승이 자기 은수처를 떠나 사람들과 섞이게 되면 그를 죽이는 일은 적법합니다. 우리가 포로로 잡고 있는 이 수도승들이 그런 경우로서,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며 복음화를 꾀했습니다." 수도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정치 같은 영역에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은 힘을 쥔 자들의 논리입니다.

1996년 5월 21일 알제리, ‘티브히린’이란 작은 마을의 ‘아틀라스의 성모 수도원’ 소속 7명의 엄률시토회 수도자가 ‘무장이슬람집단(GIA)’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이 집단이 처음으로 수도원에 찾아왔던 1993년 12월 24일 성탄절 직후에 그 수도원의 원장이었던 크리스티앙 드 셰르졔가 작성한 유언장입니다. 이 글을 나누며 말씀증거를 마치고자 합니다. 


"현재 알제리아의 테러단체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전부를 겨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 어느 날이 바로 오늘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 제가 테러리즘에 희생이 되고 만다면 우리 수도공동체와 성교회와 가족들은 제 삶이 하느님께 그리고 이 나라에 온전히 바쳐진 삶이었음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 아울러, 저처럼 혹독한 폭력 아래 죽어간 수많은 이들, 끝내 무관심 속에 버려지고만 이름 없는 이들의 죽음과 저의 죽음을 함께 연결시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한 목숨이 다른 한 목숨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습니다. 어떻든 이제 어린이처럼 순진무구하지는 않은 인생입니다. 불행히도 오늘날 세상에서 판치는 악의 세력, 분간도 모르고 덤벼대는 악의 손아귀에 맞아 죽을 운명일지언정 저 또한 그와 같은 악의 공범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는 나이를 먹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오면 잠깐이나마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 그리고 온 인류가족 형제들에게 죄의 사함을 청하는 동시에, 제 목을 내려치게 될 그 사람까지도 마음을 다하여 용서할 수 있게 되기를 간구하려 합니다.


오늘날 알제리 백성 전부를 하나로 싸잡아 멸시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사실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원리주의와 한 통속이라고 생각해 버리고서 제 마음만 편해지려 한다면 이는 얼마든지 너무 손쉬운 일입니다. (…) 제 죽음은 저를 순진한 이상주의자로 성급히 분류해버린 사람들에게 그들이 옳았다는 증거로 비칠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당신이 생각하던 바는 어찌 되었소?”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아셔야 합니다, 이제야말로 뜨겁게 타오르던 제 호기심이 풀리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말로 제 좁은 눈길은 가없는 아버지 하느님의 눈길 속으로 흠뻑 잠겨들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함께 당신의 자녀 이슬람의 아이들을 아버지께서 보시듯 그렇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민족, 서로 다른 종교일지언정 그 가운데서 같은 점, 유사한 점을 되찾아 친교를 이루어주시는 성령, 이는 정녕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서로 나누는 이들만이 아는 기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듯 끝난 생명, 온전히 저의 것이요 온전히 그들의 것인 이 생명에 대해 이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령 안에 나눔으로써 얻는 바로 그 기쁨을 위하여 세상 일이 어찌 되었든,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제 생명을 온전히 원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감사(MERCI)”라는 말 안에 제 삶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 지금, 이제 이 한 마디 안에 어제와 오늘의 친구들을 담으렵니다. 이 땅의 친구들, 모두를 한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담으렵니다.
그리고 또, 마지막 순간의 친구여, 스스로 무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그대도 함께 담으렵니다. 그렇습니다. 정녕 그대를 향해서도 이렇게 “감사하다”고, 또한 “주님 곁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A-DIEU) 안녕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둘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 둘 다 복된 ‘도둑’으로 낙원에서 다시 만나게 해 주시기를... 아멘! 인샬라!"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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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 2019 [2019. 06. 30] “침묵하는 하나님, 아파하는 마음” file 2019.07.12 김희국
1094 2019 [2019. 06. 16] “창틀에 걸터앉은 청년” file 2019.06.19 남기평
1093 2019 [2019. 06. 09] “소통하도록 이끌며 희망과, 능력 주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file 2019.06.13 최만자
1092 2019 [2019. 06. 02] “녹색은총” file 2019.06.13 이경옥
1091 2019 [2019. 05. 26] “칼과 귀, 치유와 평화 : 평화신학과 신앙을 위하여” file 2019.05.31 한완상
1090 2019 [2019. 05. 12] “수운과 만해와 전태일의 하나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file 2019.05.15 김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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