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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김상봉



수운과 만해와 전태일의 하나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누가복음서 6:20)



2019 5 12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억예배

김상봉 교수(전남대)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 누가복음서 6:20 -



1. 어떤 물음

 

자유로운 정신에게 새로운 믿음은 저편에서 나에게 선포되는 말씀(Kerygma)이 아니라 내 편에서 던지는 절박한 물음에서 잉태된다. 묻지 않는 게으른 정신에게 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도래하는 말씀은 오직 우리들 자신이 던지는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믿음은 그 말씀에 대한 내 편의 응답이지만 그 믿음의 깊이와 새로움은 물음의 절박함과 새로움에 달려 있다. 이를테면 1860년 수운이 물었던 물음이 그러하다.

 

至於庚申 傳聞西洋之人 以爲天主之意 不取富貴 攻取天下 立其堂 行其道 故 吾亦有其然豈其然之疑(경신년에 와서 전해 듣건대 서양 사람들은 천주의 뜻이라 하여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 하면서 천하를 쳐서 빼앗아 그 교당을 세우고 그 도를 행한다고 하므로 내 또한 그것이 그럴까 어찌 그것이 그럴까 하는 의심이 있었더니)”

 

여기서 수운이 일종의 당혹 가운데서 묻는 것은 이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라 하여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 이는 나무랄 데 없는 고상함이다. 그런데 금고에 쌓을 수 있는 부귀를 취하지 않는다는 그들은 천하를 쳐서 아예 통째로 빼앗아버린다. 그리고 빼앗은 땅에 교회당을 세운다. 이것이 그들이 걷는 길이라면, 도대체 이것은 어떤 종류의 올바름일까? 단순히 두려워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증오하지도 않고, 다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었던 영혼이 우리들 가운데 있었던 것에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물음에서 하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믿음의 역사가!

 

5.18 1980년 광주에서 시작되고 끝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은 5.18을 가리켜 역사적 사건이라 말하겠지만, 역사적 사건이란 무엇인가? 오직 그 사건이 역사를 우리에게 열어 보이는 한에서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라 불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역사에 뿌리박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그것이 자기 속에서 역사를 열어 보일 수 있겠는가? 1811년 홍경래의 난 이후, 아니 내려 잡는다 하더라도 1894년 동학농민전쟁 이후 이 나라의 근 현대사는 민중항쟁의 역사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크고 작은 민중항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어떤 시대, 그 어떤 민족도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토록 끈질기게 세상의 불의에 저항해 싸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5.18은 그 역사의 능선이 밀어올린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능선 없는 봉우리도, 골짜기 없는 봉우리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항쟁의 산맥을 조감할 때 비로소 우리는 피어린 골짜기의 절망을, 그 절망을 뚫고 치솟아 오른 봉우리의 높음을, 그 비길 데 없는 숭고를 알게 된다.

 

하지만 짧게 잡아도 한 세기 반 이상 이어져 온 그 항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항쟁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미개한 후진국의 묵을 대로 묵은 골병이 밖으로 곪아터져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거기 무슨 묻고 말고 할 대단한 의미가 또 있겠는가? 하지만 그 골병이 미개한 후진국의 백성이 혼자 앓는 병이 아니라면 어떻겠는가? 그것이 실은 인류 전체가 앓는 병이라면, 이를테면 함석헌이 말했듯이, 그것이 도리어 문명의 질병이라면, 정말로 그렇다면 어떠하겠는가?

 

전신이 다 건강한 것 같아도 냄새나는 발가락 하나를 잘 위하지 못하면 그 건강이 통 틀어지는 것 같이 전 세계 문제를 다 해결하고라도 한 구석에 학대받은 소민족이 있으면, 그 문명은 병든 문명입니다.”

 

함석헌이 이 말을 했던 1927년은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민족이 전체로서 거지와 과부와 고아로 속절없이 전락해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거지와 과부와 고아에게도 입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먹는 입만 있을 뿐 말하는 입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는 예수가 만난 거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말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18;41)라는 간청의 말에서 멈춘다. 그러나 그것을 참된 의미의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이 생각의 표현이라면 그것은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의 병자들은 간청할 뿐 질문하지는 못한다. 질문은 다른 사람의 몫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날 때부터 눈먼 거지를 보고 그가 눈멀어 태어난 것이 본인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 물었을 때도, 예수가 그것도 저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때도, 날 때부터 눈 먼 거지는 침묵한다. 구걸하는 자는 적선하는 자의 비위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눈멀어 태어난 것이 자기의 죄라고 하든, 부모의 죄라고 하든,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하든, 침묵하는 것이 거지의 미덕인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수운의 질문이 얼마나 급진적인 것이었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수운의 질문은 함석헌의 말에 비하면 공손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함석헌은 병든 발가락의 자리에서 육체 전체를 병들었다 심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날 때부터 눈먼 거지가 예수를 향해 그렇게 부르짖은 것과 같다. 나의 병은 너의 병이고 나의 죄는 너의 죄라고! 이것은 쉽게 보기 힘든 호연지기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했을 때도 유대 민족이 나라를 빼앗기고 로마의 지배 아래 있을 때였다. 그들 자신이 지중해의 한 구석에 병든 발가락처럼 학대받는 작은 민족이었던 것이다. 병든 발가락은 신음할 뿐 말하지 못한다. 말할 자격도 없거니와 설령 말을 한다 하더라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나사렛에서 무슨 대단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병든 발가락들 가운데 하나가 입을 열어 말했던 것이다. 단지 발가락만이 아니라 온 몸이 병들었음을, 단지 유대 땅이 아니라 온 세계가 죄의 어둠에 빠져 있음을. 그리하여 나라를 빼앗긴 그 빈터에 하나의 전혀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어떤 나라였던가? 빌라도가 물었을 때 예수는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만 대답했다.(요한복음, 18;36) 그 한 마디로 예수는 땅위의 모든 나라를 심판하였으나, 단지 낡은 나라를 부정한다 해서 자동적으로 새로운 나라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땅위의 나라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단순한 무관심이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그렇게 그는 지상의 나라와 하늘나라를 나누고 외부 세계의 법칙과 내면의 윤리를 구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랑이 법칙의 완성이라고 가르쳤다. 그것이 옳았더라면, 법칙이 사랑의 원리에 의해 규정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문제 삼았던 법칙은 대개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좋으냐 아니냐 하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그 장면에 감동을 느끼지만, 그런 비판이 황제의 불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리하여 사랑의 예수와 율법의 수호자들이 적대적으로 충돌할 때, 황제의 대리인 빌라도는 그 대립이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대야에 손을 씻을 수 있었던 것이다.(마태, 27;24)

 

2. 그 중에 첫째는 믿음이라

 

그러나 이런 구별은 옳은 것이었을까? 수운이 물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서양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라 하여 부귀를 취하지 않는다면서 아예 나라를 통째로 빼앗아버린다. 그리고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과부와 고아와 거지로 만든 다음 가난한 사람들에게 허락된 하늘나라를 위해 고맙게도 예배당을 지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그럴 수 있을까?”(豈其然)

 

그런데 이 의심은 혼잣말이 아니라, 하늘을 향한 물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비가 오고 이슬이 내려 땅이 젖는 것을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라 하지만,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운행이 모두 하나님이 그리 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물음도 하늘에 물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뜻을 따른다는 사람들이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그가 그렇게 항변했을 때, 하나님이 대답했다. “勞而無功이로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吾心卽汝心也) 네가 가라! 그리하여 모세를 보내고,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이, 이번에는 수운에게 새로운 말씀으로 사람을 가르치기를 명했던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내면의 나라와 현실의 나라가 분열되지 않고, 영혼의 구원이 나라의 구원과 다르지 않은 그런 가르침이 수운이 새로 받은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정녕 복이 있다면, 가난한 민족에게도 복이 있어야 할 것이므로!

 

하지만 그는 왜 하늘을 향해서 물었던 것일까? 스스로 그것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왜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했을까? 이 물음은 단순히 수운 개인에 대한 물음만은 아니다. 동학의 제2대 교주였던 해월은 우리의 도는 다만 ·· 세 자에 있다고 말한 뒤에, 다시 그 가운데서도 믿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人之修行 先信後誠, 若無實信則 未免虛誠也, 心信 誠敬 自在其中也.(사람의 닦고 행할 것은 먼저 믿고 그다음에 정성을 드리는 것이니, 만약 실지의 믿음이 없으면 헛된 정성을 면치 못하는 것이니라. 마음으로 믿으면 정성과 공경은 자연히 그 가운데 있느니라)”

 

하지만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조롱받기 시작한 시대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학농민전쟁기에 동학을 이끌었던 해월이 이처럼 믿음을 모든 가치 위에 세운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서준식의 옥중서한의 한 구절이 우리의 물음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그 견결한 혁명가는 감옥 생활 중에 예수를 만났는데, (기독교인이 된 것은 아니다.) 1980년의 모든 저항은 무위로 돌아가고 다시 들어선 전두환 독재가 서슬이 시퍼렇게 위세를 떨치고 있던 82년 여름에 철학을 공부하는 사촌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역사에 발전이라는 것이 있음을 믿지 않는, 따라서 인간성의 역사적 가변성을 믿지 않는, 그래서 그 결과 유토피아를 간직하려고 하지 않는 사회과학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어떤 정열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언뜻 보면 특별한 말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그가 역사의 발전과 궁극의 유토피아를 과학적 법칙에 따른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과제로서 말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만약 역사의 진보가 마르크스가 말했던 것처럼 법칙의 일이라면, 서준식이 그것을 굳이 믿음의 문제로 생각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인식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것만이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 앞에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므로.(히브리서, 11;1) 그런즉 믿음이 없다는 것은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니,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바라는 것의 실체가 왜 하필 믿음을 통해서만 증거되는 것인가? 왜 그것은 과학을 통해 실증될 수 없는가? 아마 두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소망의 주체가 서준식처럼 현실에서 철저히 패배하고 묶인 약자이기 때문일 것이요, 다른 하나는 소망의 대상이 현존하는 세계의 부정과 새로운 세계의 개방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점에서 수운이 꿈꾼 나라도 아직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나라는 죽음 저편에 있는 나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라도 아니었고, 게다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입증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개벽해야 할 세계, 창조해야 할 나라이다. 그 당위는 바로 지금 썩어 들어가고 있는 이 작은 발가락에 있다. 고치지 않는다면 결국 다리가 썩고 손이 썩고 얼굴이 썩을 것이다. 하지만 발가락의 고통을 손은 모른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병든 발가락들이 싸울 때, 우아하게 손을 씻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라의 실체는 어디에 있으며, 그 나라의 가능성의 증거가 어디에 있어, 우리가 맹목에 빠지지 않고 자기의 존재를 걸고 그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겠는가? 현실에서는 없으니 믿음 속에 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그 나라의 실체와 증거가 오직 믿음 속에 있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렇게 끝없이 패배하고, 쫓기고, 찢기면서도, 죽어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 그리도 집요하게 이 세상의 불의와 싸울 수 있었겠는가? 끝내 선이 악을 이기리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없었더라면! 그래서 니체가 신앙도 미신도 없다고 뻐기는 현대의 교양인들을 경멸하며 말하지 않았던가. 너희들은 생식의 능력이 없으니, 신앙할 자격도 없는 거라고. 창조해야 했던 자들은 언제나 신앙을 신앙했노라고! 한 가지만 교정하면 그의 말은 완벽하다. 창조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필요는 고통에서 온다는 것. 그리하여 모든 새로운 세계의 창조는 하나님의 병든 발가락의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3. 혁명과 종교의 합일

 

그렇게 혁명은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적에 대한 단순한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 원수도 없고 전쟁도 없는 세계를 향한 간절한 동경에서 시작된 것이 이 땅의 민중항쟁이었다. 그런 까닭에 동학농민전쟁이후 이 땅의 민중항쟁은 혁명적 대의와 종교적 영성의 합일이라고 부를 만한 특별한 고유성을 띠게 된다. 그것은 단지 동학농민군들이 동학을 신봉했다거나 전투 전후에 동학의 주문을 외우고 종교의식을 행했다거나, 3.1운동이 여러 종교단체의 조직적 참여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히틀러의 군대에도 군목과 군종신부가 있었듯이, 그것은 모든 군대에서 다 볼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이런 것이다.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 지도부는 제2차 봉기에 즈음하여 발표한 농민군의 봉기의 명분과 강령을 담은 4대 명의(名義)를 선포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가 사람을 죽이지 말고 동물을 죽이지 말라”(不殺人 不殺物)는 것이었다. 이로써 동학농민군은 폭력항쟁에도 엄연한 윤리가 있음을 분명히 했는데, 그 이후 이 윤리성은 한국의 민중항쟁사에서 하나의 확고한 전통으로 계승된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그 윤리성이란 것을 단순히 세속적 의미의 도덕관념으로 환원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기를 들고 항쟁의 전장으로 나아가면서 전우들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은 단순한 이성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4대명의의 마지막 조항이 군대를 거느리고 서울로 진격하여 권력자들을 멸한다는 것이었음을 생각할 때,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이다. 그러나 그 불합리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한 신의 명령과는 다른 의미의 불합리이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명령은 이성에 반한다는 의미에서 불합리한 일이며, 그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이란 이성을 포기한 맹목이다. 그러나 무기를 들고 전쟁터로 나아가면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처럼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필연성에 우리가 가슴으로 동의하는 불가능성이다. 세상에는 불가능하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실현 불가능한 까닭은 우리가 죄에 물든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때로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 순간에 조차도 우리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누구도 누구를 죽이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성은 이 불일치를 견디지 못한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에서 레닌을 거쳐 스탈린으로 이어지는 냉혹한 폭력의 길을 걷거나, 아니면 톨스토이에서 간디로 이어지는 속없는 평화주의 사이에서 기진맥진 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전지구적인 폭력과 대항폭력의 악순환은 그 모순 사이에서 기진맥진한 정신의 자포자기적 광기이다. 오직 죄악이 지배하는 세계와 싸우면서 그 싸움을,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자기가 간절히 바라고 굳건하게 믿는, 보다 높은 세계의 척도에 따라 엄정하게 규제할 줄 아는 정신만이 투쟁 속에서 진리를 드러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결단하는 용기에 존립한다. 그리고 동학농민전쟁에서부터 5.18까지 우리가 반복해서 확인하는 이 땅의 민중항쟁의 비길 데 없이 고상한 윤리성은 바로 그 믿음의 열매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순한 맹목이므로 이성적 인간이 모방하고 반복할 수 없고, 또 반복할 수 없으므로 자라지도 않는 믿음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자라듯이 살아 있는 믿음도 자라야 한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시작된 이 땅의 민중 항쟁도 그 믿음 속에서 자라고 성숙하기 시작했으니, 마치 어린 아이가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걷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뒤에 끝내 걷게 되듯이, 이 땅의 민중도 반복되는 항쟁 속에서 끊임없이 불가능한 것을 향해 자기를 던짐으로써 성숙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안중근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동학농민전쟁 당시 사비를 털어 동학군에 대항하는 병사를 모집하고 그들과 맞서 싸웠던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의병항쟁 가운데 무기를 들고 싸우더라도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명의를 실천했다는 점에서는 동학군과 다르지 않았다. 그가 만주에서 의병투쟁 과정에서 일본군 하나를 포로로 잡았을 때의 일이다. 그들 자신도 일본군에게 쫓기고 상황에서 정규군도 아닌 의병이 그 포로를 건사하기 어려웠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부하들은 그 포로를 죽이고 가기 원했으나, 안중근은 만국공법을 말하며 포로의 생명을 지키다가 더는 어찌할 수가 없게 되자 결국 그를 풀어주었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놀라운 일인데 포로가 총 없이 부대로 돌아가면 문책 받을 것이니 총을 주기를 간청하자, 안중근은 총알만 빼고 총까지 주어 그 포로를 돌려보냈다 한다. 그러자 더불어 풍찬노숙하던 부하들이 급기야 분노하여 항의할 때, 이 비길 데 없이 고상한 영혼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결코 그렇지 않다. 적병이 이처럼 폭행을 일삼는 것은 하늘과 사람이 다 함께 노여워할 일인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저들과 같이 야만스러운 행동을 자행하자는 것인가. 우리가 일본의 사천만 인구를 모두 다 죽인 뒤에 국권을 도로 찾자는 계획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상대를 알고 나를 안다면 백 번 싸워 백 번을 이기는 법이요. 지금 우리는 약하고 적은 강하니, 악하게 싸울 것이 아니라 충성된 행동과 의로운 거사로써만 이등 박문의 포악한 정략을 성토하여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고 세계열강의 여론을 얻은 다음에야 한을 풀고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오. 이것은 이른바 약하면서도 능히 강한 것을 물리치고, 어진 것으로써 악한 것을 대적한다는 그것이니, 그대들은 다시 여러 말을 하지 마시오.”


모르고 듣는다면, 누가 이 말이 여러 해 뒤 하얼빈 역에서 이토오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될 사나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토록 약한 자가 그토록 강한 적과 마주 싸우면서, 오직 어진 것으로써 악한 것을 대적하리라 결단할 수 있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설령 내가 그로인해 패배하고 고통 받는다 하더라도 눈앞의 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와 적이 모두 속해 있는 세계의 불의를 이기고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 먼저라는 믿음이 없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결단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나와 전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믿음이 없다면 역시 불가능한 믿음일 것이다. 관조하는 이성의 눈에 전체는 언제나 나의 외부에 나와 대립해 마주 선 대상이다. 오직 이성을 뛰어넘는 믿음만이 나와 세계가 하나임을 깨닫게 해 준다. 그렇게 전체와 하나 된 영혼이 세상의 불의와 싸울 때, 그 싸움의 목표가 전체의 한 부분인 내가 다른 부분인 적을 이기는 것이 아니고, 투쟁 속에서 전체에 통하는 진리를 증거하고 이를 통해 너와 나를 함께 구원하는 데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이 안중근이 보여주는 항쟁의 영성이다.

 

3.1운동이 제시한 비폭력 저항이라는 새로운 저항의 길 역시 그런 믿음이 아니면 결코 걸을 수 없는 길이다. 만약 동학농민전쟁과 항일 의병전쟁의 과정에서 무기를 들고 싸웠던 역사가 없었더라면, 3.1운동의 비폭력 저항은 민족의 나약함이나 비겁함의 표현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이후 다시 적극적으로 전개되는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를 생각할 때, 3.1운동 이전과 이후의 무장항쟁 사이에 일종의 예외로서 분출한 이 평화적 저항의 에너지는 상식적 이성의 눈으로는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그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3.1운동은 무기를 들고 폭력적으로 저항할 줄 아는 겨레가 무기를 내려놓고 맨주먹으로 무장한 적과 맞섰다는 점에서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보다 도리어 더 큰 용기의 표현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용기를 애써서 설명하자면, 그것은 설령 내가 상처받을지라도 내 양심이 적의 양심을 일깨울 수 있다면, 상처받으리라는 도덕적 용기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우리는 그런 도덕적 용기를 단순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양심과 나의 수난이 나를 침략하는 적의 양심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은 단순한 이성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와 세계 나와 하나님의 하나임을 굳게 믿는 어리석은 믿음으로만 가능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열여덟의 고등학생으로 3.1운동에 달려 나가 인생의 길이 송두리째 바뀌었던 함석헌은 훗날 그 때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한층 더 깊이 들어가 생각하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 협화를 믿고, 민족과 민족 사이에 동정을 믿는 것은 그 밑에 그보다 먼저 미리 생각하는 무엇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성의 공통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지, 그들도 양심 가진 사람이겠지, 믿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 사이에서도 도움을 믿는다. 모순인 듯하지만, 우리가 맨주먹으로 만세를 부를 때는, 국제연맹에 호소하기 전, 누구보다도 더, 우리 대적이라는 일본 사람에게 그것을 믿는 것이다.”

 

여기서 함석헌은 한국인들이 맨주먹으로 만세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국제연맹이 도와주리라는 안이한 기대 때문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적에게도 그런 인간성이 있고 양심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과 대항폭력의 악순환이 얼마나 많이 종교에 의해 촉발되고 증폭되는지를 생각하면 함석헌이 회상하는 이런 믿음이 얼마나 독보적이고 또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는 구구한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다. 예수가 가르친 원수에 대한 사랑은 사도 요한에게 오면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순치된다. 그렇게 순치된 형제애는 원수에 대한 증오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증오는 종교를 통해 도리어 증폭된다. 그리하여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폭력과 대항폭력의 악순환은 누가 먼저인지를 따질 것도 없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자들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패배는 거기서 싸우는 당사자들의 일로 끝나지 않고 모든 인류의 장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4. 암흑시대

 

생각하면 우리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3.1운동의 평화적 저항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물밀 듯이 밀려온 사회주의 운동으로 독립투쟁의 주도권이 넘어간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동학에서 시작되어 의병전쟁으로 이어졌던 무장투쟁이 무위로 돌아간 뒤에, 3.1운동의 평화적 저항으로 이행했던 것처럼, 다시 그것이 실패로 끝난 뒤에 새로운 무장 투쟁이 출현했다 해서 이상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새롭게 무장투쟁을 시작했으면, 다시 이전의 무장 항쟁을 모든 면에서 뛰어 넘는 새로운 항쟁의 윤리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중국공산당이나 베트남공산당이 그랬던 것처럼 이 땅의 공산주의 운동도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는 구심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시작된 공산주의 운동은 전반적으로 보자면 조선의 혁명적 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유럽의 공산주의 운동이 보여준 종교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그대로 답습했다. 그런 상황에서 기독교가 3.1운동 이후 전반적으로 스스로 믿음을 잃어버려, 내적으로는 변절하고 외적으로는 일제에 대해 타협의 길을 걸은 것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1927년 천도교와 기독교와 불교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이른바 좌우합작을 위해 창립된 신간회가 민족주의자들과의 단절을 결의한 1928년 코민테른 제6차 대회의 방침에 의해 결국 1931년 해체된 뒤에, 이 땅에서 혁명과 종교는 오랫동안 적대적 반목의 길을 걸었다.

 

그 후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조선인들이 일제에 대규모로 저항다운 저항을 하지 못했던 것은 외부적 억압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언하거니와 우리들 자신의 내적 분열 때문이다. 왜냐하면 억압이 극단에 이르렀을 때 봉기한 것이 3.1운동과 4.19와 부마항쟁 그리고 최근의 촛불항쟁이 반복해서 보여준 이 땅의 민중항쟁의 문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이 스스로 분열된 상황에서는 윤동주가 고백했듯이 괴로웠으나 행복한 사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허락되었던 십자가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더 큰 불행은 혁명적 열정을 포기한 종교와 종교를 적대시하는 혁명의 대립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데 있다. 남북의 분단은 외세의 개입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우리들 자신의 반목과 대립이 최종적으로 확정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대립은 제주4.3에서 시작해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다. 우리는 제주에서 학살극의 주역 가운데 하나였던 서북청년단의 모태가 영락교회 청년회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북한에서 공산주의의 폭력적 박해를 피해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다시 제주에서 학살자가 되었던 것이다. 오직 폭력이 지배하는 곳이 지옥이라면, 한국 전쟁은 사랑과 믿음 대신 증오와 폭력에 자기를 내맡긴 영혼이 스스로 만들어 낸 지옥이었다.

 

5. 4.19, 새로운 시작

 

이승만은 모든 적을 폭력으로 제거했다. 그 마지막이 조봉암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적을 외부로 추방하여 내부가 동질화되면, 독재자는 비로소 자기 홀로 민중에게 적대적인 타자가 되고, 민중의 입장에서는 타도해야 할 적이 단순해지고 단일해진다. 이승만은 그렇게 스스로 모든 민중의 적이 되었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승만에서 박근혜까지 모든 독재자들이 비슷하게 걷는 자기소외의 길이다. 그러면 민중은 오랜 자기 분열과 반목에서 벗어나 단순해진 악의 세력에 맞서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이 단순명료해진다 해서 자동적으로 항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일제말기에 대규모 항쟁이 없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항쟁을 위해서는 민중이 스스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로 만드는 것은 힘이 아니라 뜻이다. 3.1운동 때처럼 4.19 때도 이 땅의 민중이 총을 든 경찰 앞에 다시 빈손으로 맞섰다는 것은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 뜻으로 맞섰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오래 잠들어 있던 혁명적 영성의 깨어남이었는데, 이는 봉기의 주체에서부터 확인된다. 잘 알려진 대로 4.19에서부터 이 땅의 민중항쟁은 학생들에 의해 주도되기 시작한다. 정확하게는 고등학생들에게서 시작된 저항이 대학생들의 시위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대학교수들의 시위로까지 이어졌다. 시위대 가운데는 수송국민학교처럼 초등학생의 시위대도 있었고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사람 가운데는 여중생도 있었는데, 그 이후의 제도권 내의 학교에서부터 야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교육현장이 항쟁이 잉태되는 모태였다. 육체는 배움 없이도 자랄 수 있으나 정신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자란다. 한국의 민중 항쟁이 아랍의 봄처럼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그것이 언제나 교육과 매개되어 있었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 그 교육이 함석헌의 말처럼 전체에 통하고 있는 한에서 단순한 이성의 훈련이 아니라 영성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내가 전체와 하나라는 자각이 없다면 한 나라 안에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의 존재를 걸고 폭력에 맞서 싸울 수는 없다. 그러나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자각은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언제나 믿음의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영성의 발로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4.19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은 아니고 이미 구한말 이른바 교육운동 시절부터 잉태된 것으로서 3.1운동이나 광주학생운동에서도 나타났던 것인데, 오랫동안 좌우의 대립으로 학교 자체가 분열되어 있었던 까닭에 학교가 저항의 거점이 아니라 자기 분열과 반목의 장소였다가, 그 분열이 6.25를 통해 극단에 이른 뒤에 자기반성의 과정을 거쳐 4.19를 통해 새롭게 부활한 전통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4.19는 한국의 민중항쟁이 안팎의 적에 대한 증오에서 깨어나 3.1운동이 그랬듯이 다시 보편적 선의 원리와 사랑의 원리에 의해 인도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4.19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통일에 대한 열망이 분출하기 시작한 것 역시 그런 열망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6. 전태일, 완전한 사랑의 계시

 

그러나 시작이 완성은 아니다. 내가 전체와 하나라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에서도 진실이다. 선이 전체에 있듯이, 악도 전체에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겪어야 하는 모든 악의 뿌리도 전체 세계인 것이다. 나의 악이 세계의 악이지만, 또한 세계가 악하므로 나도 악한 것이다. 악한 세계는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 그리고 폭력으로 지배하는 세계이다. 그 지배의 위계에서 낮은 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폭력은 가중되고 고통은 증폭된다. 그것이 가장 깊은 고통으로부터 가장 큰 빛이 터져 나오는 까닭이다.

 

폭력을 이기는 힘은 하나로 만드는 뜻에서 나온다. 하나의 뜻은 한갓 공리적 방법론의 합의가 아니라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자각에 존립한다. 그러나 악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는 차라리 쉬워도 선한 의지가 전체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어렵다. 악은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적 힘으로 나타나지만 악한 세계에서 억압된 선은 오직 보이지 않는 의지로만 마음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전체와 하나라는 것이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전태일이었다. 전태일은 이름 자체가 자기의 본질인 예외적 존재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그분은 나는 나다 또는 나는 있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전체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전체와 하나 됨을 지향할 때는 절대자의 이름이 달라진다. 그 때는 단순한 자기동일성이 아니라 전체인 하나”(Ἓν καὶ̀ Πν)가 신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태일의 이름이었다. 전체가() 큰 하나(泰壹)라는 것이 그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기 위해 물어야 한다. 그는 어떻게 전체와 하나 될 수 있었던가? 그것은 전체의 고통이 그의 고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마지막 유서에서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라고 말 건넬 수 있도록, 그를 세상의 모든 들과 하나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누가 또는 무엇이 그를 그렇게 큰 사랑으로 이끌었을까? 우리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다. 그가 이승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곳은 삼각산 임마누엘 기도원이었고, 그의 묘비에는 기독청년 전태일이라고 새겨져 있다.

 

진실로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전태일은 재림한 예수, 인간의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에 감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감동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전태일은 하나님의 가장 아프고 병든 발가락으로 세상에 태어나, 자기의 병이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지 않도록 썩고 병든 자신의 육신을 불태웠다. 그 불꽃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있음을, 그분이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랑임을, 그리고 그 사랑에 나의 존재가 빚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7. 5.18, 하늘나라의 계시

 

한 개인의 영혼 속에서 표현되고 실현되는 사랑이 문제라면, 사랑은 전태일에게서 완성되었다. 그러나 사랑이 다스리는 나라가 문제라면 전태일은 그 나라를 향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나라는 너와 나의 만남 속에서 일어나는데, 그 만남은 부름과 응답에서 시작된다. 전태일은 다시 시작해야 할 선한 싸움으로 우리를 불러내는 외침이었다. 그리고 그 후 이 땅의 항쟁의 역사는 그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다. 인천의 동일방직 노동조합이, 부산의 양서조합이 그리고 광주의 들불야학이 모두 그 응답의 열매였다.

 

그리고 5.18이 있었다. 5.18은 동학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한 항쟁의 능선들이 하나로 만나 솟아오른 봉우리와도 같다. 언제나 항쟁의 시작은 국가 폭력이다. 그 폭력에 민중은 처음에는 평화적으로 저항한다. 동학교도들이 처음에는 교조신원운동을 통해 탄원했듯이. 5.18도 마찬가지이다. 최초의 능선은 3.1운동의 비폭력 저항에서 시작된 능선이다. 그러나 계엄군이 곤봉과 총검 앞에 맨 손으로 맞서는 것은 비상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자기에게 닥친 고통이라면 도망치면 된다. 도망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타인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자기의 목숨을 걸고 응답하는 것, 그것이 광주시민들이 그 해 5월에 보여준 용기의 본질이다. 그 응답의 용기는 너의 고통이 또한 나의 고통이라는 자각에 뿌리박고 있다. 그 자각은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그 믿음, 그 응답이 한 사람의 저항을 만 사람의 저항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계엄군의 폭력을 증폭시킨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은 비겁하게도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향해 총을 쏘고, 그러면 폭력 없는 저항은 무장 항쟁으로 전환된다. 그리하여 동학농민전쟁에서 시작된 무장 항쟁의 능선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단지 폭력으로 폭력을 이기기 위함이 아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악한 세계의 질서이다. 오직 선이 드러나는 곳에 새로운 하늘 나라가 열리게 된다. 그러므로 무기를 들고 저항할 때조차 그 속에서 윤리와 도덕이 우리를 엄정하게 규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5.18 당시 그 많은 총기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인 사건사고가 없었고, 계엄군과의 교전에서 야만적인 폭력행사가 없었던 것은 전 지구적인 테러의 시대에 폭력에도 윤리가 있음을 증거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열흘의 마지막 밤에 더러는 총을 들고 더러는 빈 손으로 전남 도청을 지켰던 사람들이 그 곳에 남았던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이 명백한 패배와 임박한 죽음의 순간에 그곳을 지켰던 것은 그 하루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도 악을 이길 수 없고, 폭력을 통해서도 현실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남은 길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태일의 길이었다. 그러니까 그 마지막 날 전남 도청을 지킨 사람들은 모두 부활한 전태일이었던 것이다.

 

민중항쟁의 역사에서 5.18의 위상은 그 열흘이 그렇게 항쟁의 역사가 밀어올린 세 능선이 하나로 만나는 봉우리라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봉우리에서 하나의 神市가 열렸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5.18의 특별한 가치는 단순히 항쟁의 치열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폭동과 항쟁의 차이는 폭동이 기존의 공동체를 파괴할 뿐인데 비해 항쟁은 언제나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데 있다. 어떤 경우에도 낡은 세계의 타도 그 자체가 항쟁의 궁극 목적은 아니다. 그것이 낡은 세계를 타도하려는 까닭은 오직 새로운 세계를 개방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모든 항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과 함께 일어나며,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그 전망은 이념의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화된다. 동학혁명기의 집강소 통치와 3.1운동 직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런 항쟁 공동체의 사례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 공동체의 이상도 자라고 성숙한다. 이를테면 동학이 꿈꾸었던 새로운 나라의 모습이 아직 전통적인 왕도정치의 이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에 비해 3.1운동 이후 수립된 임시정부가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삼고 왕국이 아니라 공화국의 이상을 분명히 천명한 것은 항쟁이 지향하는 새로운 나라의 이상 역시 항쟁의 역사 속에서 어떤 내적 연속성 속에서 성숙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그 성숙이 동아시아의 전근대적인 왕조국가 또는 독재국가가 서양의 근대적 국가이념을 구현해가는 과정이라고 해석하려 한다면, 우리는 한국의 민중항쟁사에서 잉태된 새로운 나라의 이상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운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물으면서 폐하려 했던 세계는 단순히 낡은 조선이 아니라 서양적 종교와 세계관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 전체의 질서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존의 세계 전체의 질서를 근본에서 부정하지 않는다면 조선의 운명은 결코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그가 꿰뜷어 보았음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그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서학을 대치할 동학을 창시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해방이 다시 분단으로 이어진 지금 우리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의 근대를 추종하는 것만으로는 우리는 우리가 처한 질곡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때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하위주체로서 세계의 내적 분열과 반목을 남북 분단을 통해 자기 자신 속에서 재생산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민중항쟁의 역사 속에서 성숙해온 새로운 나라와 세계에 대한 이상은 한편에서는 서양적 근대국가의 이념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넘어가야만 하는 이중적 계기를 자기 속에 본질적으로 함의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또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5.18은 그 열흘 동안의 항쟁 공동체를 통해 그 새로운 나라의 이상을 계시해 보였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갖는다. 서양적 국가의 이념은 자유이다. 자유는 주체의 방해받지 않는 자기형성에 존립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나를 제외한 모든 타자는 자유롭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라도 나의 자유가 타자의 자유에 의해 제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의 이념은 홀로주체성을 지향한다. 하지만 절대적 자유와 홀로주체성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유를 지향하는 주체는 자기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타자적 주체와 연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서양적 국가의 이념이다. 그리하여 자유를 궁극 목적으로 삼은 서양적 국가는 반드시 연대과 배제 또는 동맹과 침략이라는 두 얼굴을 같이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미국은 유럽 및 일본과 연대하고 중국 및 러시아와는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반도가 있다.

 

하지만 자유의 모순 때문에 노예상태를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폭군의 자유도 노예의 예속도 아닌 어떤 길이 있는가? 그것이 한국의 민중항쟁이 잉태한 물음이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다. 5.18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이것이다. 자유와 노예적 예속 사이의 제3의 길은 만남이다. 만약 자유가 자기의 권리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자유란 자기동일성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동일성이란 내가 벗어날 수 없는 필연의 다른 이름이다. 참된 자유는 내가 나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에 존립한다. 하지만 언제 나는 나의 비좁은 자기동일성의 감옥문을 부수고 외부로 탈출하는가? 그것은 내가 너의 고통에 응답할 때이다. 나의 이익과 권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너와 담합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고통에 응답하여 나의 비좁은 골방을 박차고 달려 나갈 때, 그 자기초월 속에서 만남은 일어나고, 그 만남 속에서 비로소 자기동일성이라는 필연의 사슬로부터 해방된 주체의 참된 자유도 실현되는 것이다. 5.18 열흘의 항쟁공동체는 그런 자유로운 만남의 공동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오래 꿈꾸어 왔던 하늘나라가 계시되었던 것이다새길로고.jpg

 

*원본 20190512_김상봉_수운과 만해와 전태일의 하나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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