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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민수


  

하느님 나라를 구하라

(마태복음 6:25-33)

 


2019421

부활주일 예배

박민수 목사(은혜공동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 마태복음 6:25-33 -



정경일님을 통해서 은혜공동체의 신학을 소개해달라는 설교부탁을 받았습니다. 공동체 관련해서 나누고 싶은 바가 많기에 무엇을 나눌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우리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 그 중에서도 산상수훈을 통해 공동체를 발견하고 공동체를 세워온 과정을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태복음 5-7장은 잘 구성된 한편의 설교이며 산상보훈, 산상수훈이라고 불리워집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산상설교의 일부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고 하셨습니다. 그 근거로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 못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요약하면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특별한 조치나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넉넉하게 생존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생태계는 그 자체로 완벽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지구 생태계의 일부로 살아가는 우리도 생존을 걱정하거나, 생존에 필요한 것들에 집착해서 살아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산상설교가 그리는 지구()의 분위기는 구약성서의 창세기 3장의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덮힌 땅의 분위기와 사뭇 다릅니다. 산상설교의 관점에서 실낙원이 아니라 낙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맞는 말씀일까요?

 

예수님이 언급하신 공중의 새와, 들꽃은 지구 생태계 안에서 생존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들은 사람들이 특별히 가꾸거나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종족이 끊기지 않고 넉넉하게 생존해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지구생태환경은 생존에 있어 천국입니다.

 

좀 시야를 넓혀서 생각해봅니다. 태양계에서 지구는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행성입니다. 지구는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생명에게 필요한 물이 지구표면의 70퍼센트를 덮고 있고, 산소와 탄소는 지구에, 대기에 가득 차있습니다. 거기에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를 생존에너지로 보존하는 광합성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구가 폭발 수준으로 증가한 지금 지구상 인류가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 식량부족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 굶어죽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죠.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전세계 식량자급도는 100퍼센트를 상회합니다. 지구를 국경으로 막아 놓지 않거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거나, 잉여 농산물을 잘 나누고 살아간다면 사람이 굶어죽을 일이 없습니다.

 

태양계라고 하는 작은 우주공간에서 본다면 지구는 그 자체로 에덴동산입니다. 인간이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한 지구의 생명시스템은 풍요롭게 그리고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완벽을 넘어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논점을 따른다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구하며 사는 것은 지구, 지구환경에 대한 모독이 됩니다. 또한 이렇게 풍성하고 아름다운 지구환경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됩니다.

 

예수님은 한 번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이렇게 재차 강조해서 말씀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절박함,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세 가지를 언급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가 공동체를 일구어온 과정이기도 합니다.

 

첫째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입니다.

 

본문 앞과 뒤에 본문과 연관된 내용들이 있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해서 기도하지말라고 하시며 기도해야할 내용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기도의 핵심은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주기도문(67-15)의 반복 또는 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바로 뒤인 77-8절에 또 본문과 연관이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본문 바로 뒤에 연결되는 내용이기에 맥락상 무엇을 구해야하고 무엇을 찾아야하고 무엇을 두드려야할지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의 결론부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구하고 하느님 나라를 찾고 하느님 나라를 두드리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이며, 살아가는 이유이며, 의식이 살아있는 동안 찾고 찾아야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길 그러면 그 하느님 나라를 반드시 받을 것이고, 얻을 것이고, 열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쯤 되면 산상수훈의 전체 주제가 하느님 나라를 구하는 삶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럼 예수님이 구하라고 하는 하느님 나라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치신 기도내용을 근거로 예수님의 구하라고 하는 하느님 나라는 내세가 아닌 이 땅에 이루어지는 나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하라 찾으라 다음에 이어지는 실천에 대한 강조의 맥락에서 해석했을 때 예수님이 그리는 하느님 나라는 예수의 가치관이 실현되는 관계 또는 공동체라고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강력한 설득과 요청에 깊이 동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풍부하고 아름다운 지구에서 아름다운 지구에 걸맞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꾸려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의 전부라고 말입니다.

 

삶의 목표, 교회의 목표를 오롯이 공동체를 세우는 데에 맞추었습니다. 생활공동체를 일구는 목표를 세우고 단계적 준비작업들을 했습니다. 찾고 찾으라는 말씀대로 성경을 읽어도 공동체적 관점에서 읽고 책을 읽어도 공동체적 관점에서 읽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공동체가 있으면 찾아가 배웠습니다. 공동체에 집중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소개된 복음서는 위대한 공동체 지침서였습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이든, 책이 가르쳐주는 것이든, 다른 공동체가 가르쳐주는 것이든 공동체를 일구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은 실험적으로 적용을 했습니다. 어느 공동체가 연합가족을 일구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연합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을 실험해보기도 하고, 어느 공동체가 공동체 식사와 공동육아를 하는 것을 보고 공동체식사와 공동육아, 방과후학교를 도입해보기도 하고, 정치권에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이슈가 제기되자 공동체에서 무상교육과 무상교육 시스템을 마련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공동체를 구하고 찾고 두드렸던 시간이 십 년쯤 지나자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다고 하는 기적 같은 공동체가 일구어졌습니다.

 

두 번째,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입니다.

 

69-13절의 주기도문에서도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가르치십니다. 721절에서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리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 또는 아버지의 뜻이 하느님 나라와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개념을 합치면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들을 실천하는 만큼 세워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산상설교의 전반부 팔복, 6반제에 담긴 인간존중의 정신에서 비판하지말라에 이르기까지 인간관계에서 적용되는 모든 내용들이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뜻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에서 소개되는 섬김과 무소유 등과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또한 이에 해당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가르침의 근본정신을 산상수훈 결론부에서 정리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우리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대화를 하거나, 기부를 하거나, 베이비시터를 하거나, 파티 섬김이를 하거나 모든 영역에서 삶의 지표가 되어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삶에 실천해보려 노력했고, 실천한 만큼 사람이 살만한 공동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셋째,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입니다.

 

공동체로 살아가기 전에는 이 말씀이 실제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것과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공급되는 것과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공동체가 세워진다고 과연 생존에 필요한 것들까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질까? 공동체가 세워지면 삶의 구석 구석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부족함 없이 채워지는 것인가? 과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굳이 필요 없는 말을 덧붙여 하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공동체를 일구고 살아보니 이 말씀이 실제가 되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덤으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전재로 말씀하신 지구적 풍요는 비로소 공동체를 일구었을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였습니다.

 

내 냉장고, 너 냉장고 구분 없이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고, 돈이 있는 사람이나 돈이 없는 사람이나 모두 함께 해외여행도 가고, 돈이 있거나 없거나 모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 있는데 앞으로 공동체에서는 어느 누구든 돈이 없다고 극단의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을 것 같다는 무한 안정감이 자리잡았습니다. 생존에 대한 걱정이 지워지고, 노후걱정이 사라졌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날마다 지구적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숟가락 하나만 들고 있으면 항상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될 것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습니다. 오랫동안 평생을 함께 해온 동지, 친구들과 지금도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과 같이 늙어갈 것에 대해 기대감이 있습니다.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주고 함께 해줄 사람이 늘 곁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가 항상 곁에 있어서 좋고, 엄마들은 아이들이 친구랑 같이 놀고 있어서 좋습니다. 퇴근하고 오면 같이 운동을 하고, 취미활동을 하고, 독서모임을 하고, 게임을 하고, 노래하고, 대화를 나눌 사람이 주변에 가득입니다. 대학생활을 할 때도 누려보지 못했던 낭만을 직장을 다니는 중에 경험하다니 꿈에도 그려본 적 없는 호강입니다.

 

공동체살이란 삶이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각자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삶의 영역이 점점 더 확장되어져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는 예수님의 확신에 찬 말씀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겨레신문 조현기자가 우리공동체 취재기사 말미에 인용했던 시편 133편의 시구가 오늘 본문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 타고 흐르는,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향긋한 기름같구나.

헤르몬 산에서 시온 산 줄기를 타고

굽이 굽이 내리는 이슬같구나.

그 곳은 야훼께서 복을 내린 곳.

그 복은 영생이로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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