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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경일




모두가 인도자인 공동체

(요한복음서 12:24)


 

2018 10 28

주일예배

정경일 형제(새길교회 신학위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 요한복음서 12:24 -

 

 

지난주일 예배 후 말씀증거자와의 대화 시간에, 그날 양희송 선생님의 말씀증거 제목과 관련된 해프닝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 양희송 선생님이 내신 책 세속성자의 부제가 성문 밖으로 나아간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제가 실수로 부제를 잘못 읽어, 웹포스터에 말씀증거 제목을 성문 밖으로 나간그리스도인으로 표기했습니다. ‘나간나아간은 어감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의미는 다릅니다. ‘나가는것은 뭔가로부터 떠나는 것이고 나아가는것은 뭔가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의미 차이가 더 분명해집니다. ‘나가다‘go out, get out, leave’로 번역할 수 있고, ‘나아가다‘go forward, move forward’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를 교회와 관련지어 풀어보면, ‘성문 밖으로 나간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실망해 교회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고, ‘성문 밖으로 나아간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따르기 위해 제도교회의 울타리 넘어 세상으로 나아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종교개혁도 나감이 아닌 나아감의 사건이었습니다. 성직주의, 의례주의, 형식주의, 물질주의에 물든 제도교회를 나간사건이라기보다는,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 제도교회 밖으로 나아간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나간''나아간'의 작은 해프닝을 경험하면서 두 가지 물음이 생겼습니다. 첫째, 우리는 단지 제도교회를 나온 사람들인가요, 아니면 새로운 대안교회가 되기 위해 제도교회 밖으로 나아온 사람들인가요?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평신도교회인 새길교회를 만들었으니, 제도교회를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대안교회인 평신도교회로 나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둘째, 오늘의 새길은 어떤 교회가 되어가고 있나요? 우리는 나아온 사람들의 대안교회답게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살고 있나요? 이 물음은 신학, 영성, 윤리, 조직, 관계 등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그중 관계방식에 집중하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공동체성의 형태와 정도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판단의 척도로, 공동체 형성의 단계에 대한 스캇 펙의 통찰을 활용해 보겠습니다.

 

스캇 펙은 하나의 집단이 공동체가 되는 네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사이비 공동체단계입니다. 이 단계의 특징은 위장입니다. 그것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실상이나 감정을 감추는것입니다. 스캇 펙은 이 사이비 공동체의 본질적인 문제는 갈등의 회피라고 합니다. 다양한 생각과 태도의 사람들이 모이면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사이비 공동체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갈등의 소지가 있는 차이를 무시하거나 부인합니다. 이런 사이비 공동체에는 갈등을 피하기 위한 예법이 있습니다.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언행은 삼간다. 누군가가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거나 짜증스러운 언행을 하더라도 아무 일 없는 듯,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의견 다툼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가능한 한 빨리 부드럽게 화제를 바꾼다.” 스캇 펙은 이런 예법을 갖고 있는 집단은 원활하게 돌아가지만, 대신 진정한 공동체의 표지인 개성과 친밀감과 정직성을 무너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권태감이 생긴다고 합니다. 스캇 펙이 말한 권태감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외로움일 겁니다. 사이비 공동체 사람들은 겉으로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지만 속으로는 뿔뿔이 흩어져 외롭게 살아가니까요. 갈등을 회피하며 표면적 평화를 누리는 대신 권태와 외로움에 빠지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혼란입니다. 스캇 펙은 누군가를 치유하거나 변화시키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는 언제나 혼란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서로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없애려고 합니다. 그래서 혼란 단계의 사람들은 무질서하고 소란스럽게 서로 싸웁니다. 이런 혼란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혼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권위 있는 개인이나 소수 리더 집단에 의존해 혼란을 없애고 싶어합니다. 심지어 독재자 같은 인도자를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캇 펙은 독재자가 이끄는 집단은 공동체가 아니며 결코 공동체가 될 수 없다. 공동체와 전체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혼란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권위적 개인이나 특별한 소수로 구성된 조직으로 회피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스캇 펙이 혼란을 공동체 형성의 첫째 단계가 아니라 둘째 단계로 제시한다는 사실입니다. , 혼란은 차이를 무시하고 회피하는 사이비 공동체보다는 더 발달된 단계라는 것입니다. 스캇 펙은 싸우는 것이 분열되지 않은 척 가장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합니다. 사이비 공동체 단계에서는 문제를 무시하거나 피하지만, 혼란 단계에서는 최소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갈등을 즐거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계속 갈등만 하다 보면 공동체는 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셋째 단계는 마음 비우기입니다.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는 마음 비우기가 가장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비우는 것일까요? 스캇 펙은 여러 가지를 제시합니다. 기대와 선입견, 편견, 이념, 종교적 신념, 해결책, 치유하거나, 변화시키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 통제하려는 욕구 등입니다. 스캇 펙이 말하는 이 모두는 한 가지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관점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할 때 남의 생각을 부정하고, 남을 바꾸려고 하고, 그러다 서로 충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 비우기는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적 관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를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되면, 남의 생각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관점에 익숙한 이들에게 마음 비우기는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래서 스캇 펙은 마음 비우기를 구성원 개개인의 고통스러운 산고또는 작은 죽음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인류의 구원에 대한 비유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을 예수 한 분만의 구원 사역을 설명하는 것으로만 해석하기에는 예수의 어조가 너무 강합니다. 여기서 예수의 어조는 설명적이기보다는 설득적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하며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 이기심과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며 관계중심적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25절도 그런 해석을 뒷받침해줍니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이는, 예수 당신만의 구원사역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살아야 할 바에 대한 설득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본문은 낡은 자기중심적 자아를 죽이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라고 설득하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밀알이 죽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산고작은 죽음과 같은 마음 비우기의 고통은 집단이 공동체로 변화하고 성숙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자아가 죽고 관계중심적인 자아로 태어난 이들만이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캇 펙은 마음 비우기 외에 공동체로 가는 다른 길은 없다고 합니다. 마음 비우기는 공동체로 가는, 공동체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마침내, 넷째 단계에서 집단은 공동체가 됩니다. 이 단계의 특징은 부드러운 고요가 찾아드는 평화입니다.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진솔하고 안전하게 털어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열중하며 경청합니다.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을 불안해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입니다. 서로를 치유하거나 변화시키려고 의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치유와 변화가 일어납니다. 스캇 펙은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깊은 슬픔과 비애가 드러나고, 많은 웃음과 기쁨도 터져 나온다. 눈물도 흘러넘친다. 때로는 슬픔의 눈물이, 때로는 기쁨의 눈물이, 혹은 기쁨과 슬픔이 섞인 눈물이. 그러면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엄청난 치유와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누구도 상대방을 치유하거나 변화시키려 애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공동체는 탄생된다.”

 

집단이 공동체로 성숙하는 단계가 이와 같다면, 우리 새길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을까요? 아마도 두 번째 혼란과 세 번째 마음 비우기 단계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내부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차이가 드러났고, 그로 인한, 보이는, 보이지 않는 혼란도 있어왔습니다. 그런 차이를 인식하고 혼란을 겪으면서도 우리가 깨어져 흩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 안에 공동체가 되려는 열망과 열정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이 과정은 산고작은 죽음을 요구하기에 아프고 힘들 수도 있습니다. 혼란의 감수와 마음 비우기가 너무 아프고 힘들면, 언제라도 우리는 차이를 회피하는 사이비 공동체 단계로 퇴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예의는 있지만 온기는 없는 권태와 외로움일 것입니다. 조화는 있지만 변화는 없는 정체일 것입니다. 어쩌면, 혼란으로 인한 갈등도, 마음 비우기의 산고도 없는 사이비 공동체가 더 편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죽음을 거부하고 각자 딱딱한 껍질의 밀알로 남아 작은 됫박 같은 교회에서 따로 또 같이 갈등 없이 지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특정한 개인이나 특별한 소수에게 의존해 목자를 따르는 순한 양처럼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거면, 그토록 고민하고 번민하고 갈등하며 제도교회로부터 나아온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걸음이 너무 무의미해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제도교회를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대안교회로 나아온 사람들이라면,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에게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비우고 진정한 교회, 진정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눈앞의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고, 실현해야 할 과제도 많은데, 마음을 비우고 공동체가 되자고 하는 것이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리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공동체가 되는 것이 실은 더 현실적이고 더 효율적인 길입니다. 스캇 펙은 문제 해결이 목표인 집단은 언제나 공동체 형성 먼저, 그 다음이 문제 해결이라는 규칙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공동체가 되면,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를 가장 바르고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스캇 펙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통찰입니다. 1983년 스캇 펙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고, 혼자서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 다른 이들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를 돕기 위해 스물여덟 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은 사흘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흘의 시간 중 80퍼센트를 공동체를 만드는 데, 즉 마음을 비우는데 사용했고, 결정할 문제에 집중한 것은 마지막 몇 시간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를 이룬 그들은, 스캇 펙의 표현으로는, “번개처럼 빨리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스캇 펙은 이를 지도력의 흐름으로 설명합니다. 한 집단이 공동체가 되면, 특정한 개인이나 소수가 아니라, 저마다 각자의 능력으로 해결책을 찾고 만들어가는 지도력이 공동체 안에서 흘러다닌다는 것입니다. 스캇 펙은 이런 지도력의 흐름이 있는 공동체를 구성원 모두가 인도자인 집단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신자는 사제라는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제도교회로부터 나아온 새길이 되려는 것이 바로 이 구성원 모두가 인도자인평신도공동체가 아닐까요?

 

우리는 길 위에 있습니다. 공동체로 가는 길이 아직도 멀고 험한 것 같아 계속 갈 수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제도교회로부터 나아온 우리는 참 멀리 걸어왔습니다. 서로의 덕분입니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 힘들겠지만, 서로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갈등하더라도 혼란스럽지 않게, 스캇 펙이 말한 대로, “은혜롭게 싸우고”, 마음을 비워 서로 소통하고, “작은 죽음을 거쳐 모두가 인도자가 되는 지도력의 흐름을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 진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스캇 펙의 다른 책 제목들을 빌려 말한다면, 어렵고 힘들지만, “아직도 가야할 [] 을 우리가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훗날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도교회의 안전한 담장 밖으로 나아와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새길의 처음마음을 기억하며, 밀알 하나하나의 작은 죽음을 통해, 마음 비우기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가 되는 길을, 우리 모두 인도자가 되어 함께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차이를 피하지 않고 차이를 없애지 않고

차이를 품는 일치의 공동체가 되게하소서.

서로가 서로를 인도하는 공동체를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새길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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