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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문영미

  

“담을 허무는 사람, 문익환”
(에베소서 2:14-16)
 


2018년 7월 29일
 주일예배
문영미 자매(이한열기념관 학예연구실장)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 에베소서 2:14-16 -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꼭 와 보고 싶었던 새길교회에서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평신도가 이렇게 강단에 선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잘 아시지요? 많은 고민 끝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라기보다는 제가 문익환 목사님의 삶을 바라보면서 느껴온 것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문익환 목사의 삶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 것이었습니다. 그는 신학자이자 목회자, 시인이자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쓴 설교와 저서, 편지글을 너무나 방대해 다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아직 잘 연구되어 지지 않았습니다. 방북을 포함한 그의 사회참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문익환 목사님을 주제로 설교를 한다는 것은 정말 부담스럽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저에게 떠오른 이미지는 하얀 한복을 입은 문익환 목사님이 철조망을 훌쩍 뛰어넘은 임옥상 작가의 그림이었습니다. 그 이미지와 함께 그의 유명한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의 한 부분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방북하던 해 1989년 벽두에 썼던 시이지요.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바로 이 대목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오늘의 본문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와도 참 맞아떨어지는 대목입니다.


문익환은 우리 근현대사 질곡의 역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담을 쌓고 미워하며 서로를 물어뜯어 온 역사였습니다. 그 역사 속에서 문익환은 평생 담을 허물고 화해하는 삶을 살려고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증오와 폭력으로 쌓아올렸던 높은 담들을 허물고 화해를 온몸으로 실천하셨던 예수의 삶을 따라 살려고 발버둥 쳤던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문익환 목사의 마지막 몇 년의 모습은 호탕하고 소탈하며 남녀노소 그 누구와도 함께 춤추며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제가 옆에서 지켜보고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그의 성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문익환 목사의 살아온 행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외부에 있는 담만을 허물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여러 가지 담을 하나씩 하나씩 허물어 가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에는 열려있다가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만의 벽을 만들고 익숙한 것에만 머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익환 목사님은 나이를 드시면서 오히려 더 만남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더 용감해지고 자유로워졌습니다.


문익환 목사는 1918년 명동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올해는 그가 태어난지 꼭 백년이 되는 해입니다. 올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수유리에서 살던 통일의 집을 복원하여 박물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그가 9개월이 되던 때 용정에서는 3.10 만세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아버지 문재린은 그 여파로 일본 영사관에 구금되었습니다. 1931년 윤동주, 송몽규와 함께 다니던 명동소학교에서 졸업을 하였습니다. 바로 그해 4월 문익환의 선조들이 세운 기독교민족교육의 중심지 명동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넘어갔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비통한 경험이었습니다. 이후 가족들은 명동을 떠나 용정으로 이사했습니다. 거기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학생들과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학생들 사이에 팽팽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문재린은 해방 전 일제에 의해, 그리고 해방 후 북간도 공산당과, 소련공산당에 체포되어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가족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고향을 등지고 1946년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4년 동안 그는 유엔군 군속으로 민주주의의 승리를 빌면서 복무하다가 휴전이라는 또 하나의 좌절을 겪습니다.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한빛교회 목사로, 한신대 구약학 교수로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충실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교수로 재직할 당시 그의 별명은 “문이꽝”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수업이 끝나면 문을 신경질적으로 꽝 닫고 가는 다소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으로 학생들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과제를 제출하는 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받아주지 않는 원칙적이고 깐깐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모범생 스타일로, 착한 맏아들 성격으로 한번도 정도를 어긋나 반항하고 어긋나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말년에는 법을 밥 먹듯이 어겼지요. 심성도 심약하여 미국 프린스턴에서 혼자 공부할 때와 한신대 학내 갈등으로 퇴직한 후 신경쇠약을 앓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던 그가 처음으로 벽을 허무는 경험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신구교 공동성경번역작업을 하면서 부터였습니다. 1968년부터 76년까지 8년 동안 구약번역 책임위원으로 이 일에 신명을 다 바쳤습니다. 그는 이 일을 자신의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문동환 목사님에 따르면 문익환은 20대 초반 일본에서 유학을 할 때부터 성서 번역의 필요성을 느꼈으며, 자신이 어학에 재능이 있기에 이 일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학을 전공으로 정했을 수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는 카톨릭의 선종완 신부님과 구약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세 개의 벽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첫 번째 벽은 구교와 신교의 벽이었습니다.


둘째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구교에서 사용하는 “천주”라는 호칭과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많은 고민 끝에 천주와 하나님을 둘 다 버리고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는 “하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구교와 신교에서 익숙한 용어가 다를 때 어느 한 가지를 고집할 수 없었기에 그 둘을 미련 없이 버리고 교회 바깥에서 쓰는 말을 찾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기존 성서에 있는 낯설고 어색한 표현들을 민초들이 사용하는 가장 쉽고 친숙한 언어로 바꾸면서 세상과 교회의 벽을 허물어지는 경험을 하셨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 민족과 우리 민족 사이의 벽을 허무는 경험이었습니다. 영어, 중국어 등 다른 언어로 번역된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히브리어에서 직접 한글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문화를 우리의 문화로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하느님이 자연스런 한국말을 하시도록 하는 것이었지요. 선종완 신부님은 신명기 번역 후 독회를 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하느님도 한국말을 제대로 하시게 되었군. 하느님이 우리말을 하시는데 200년이나 걸렸어요.”


신구교 공동성서 번역은 문익환의 삶에 있어서 내면의 벽을 허무는 중요하고도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성경번역에 몰두하며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던 그는 1975년 장준하의 죽음을 겪은 후 이듬해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첫 번째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물론 그 훨씬 이전부터 역사에 동참할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었지요. 4.19와 전태일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는 심정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옥살이는 그가 그동안 살고 있었던 지식인의 안락한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민중들과의 담을 허무는 수련이자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을 자신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민족사의 상층부에서 활동하다가 민족사의 밑바닥으로 내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야 말로 이 민족의 모든 부조리가 모이고 쌓이고 비벼대며 아우성치는 곳 아닙니까? 가장 썩어있는 곳이라고도 하구요. 그러나 새살은 바로 이 밑바닥에서 솟아나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하느님은 또 다시 저를 처넣으셨습니다. 저는 좀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또 얼마를 여기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픔의 현장, 문제의 현장에 와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는 민중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옥살이를 하면서 문익환의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고 그의 어머니 김신묵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예민하고 까칠하던 성격에서 훨씬 둥글둥글하고 원만해 졌다는 것입니다. 그가 첫 옥살이를 한 나이는 59세 였습니다. 그는 신체적으로는 갇혔지만 마음만큼은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그의 설교 제목에 있듯이 “꿈은 가둘 수 없다”고, 물리적인 벽으로 둘러싼 감옥은 그의 정신을 가둘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옥살이는 총 6회  11년 3개월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마지막 옥살이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1989년 방북 사건”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 민족을 옭아매고 있는 거대한 분단의 장벽을 온몸으로 허물기 위해 철조망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돌출적이고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이 행동으로 그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후 2001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문익환 목사가 방북하여 김일성과 대화의 물꼬를 텄기 때문이라고 평가되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4.27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며 많은 분들은 29년 전 선지자처럼 평양에 가셨던 문익환 목사를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김일성과 포옹을 하며 마음의 담을 허물었던 문익환 목사. 그의 살아온 행적을 볼 때 이 행동은 결코 쉽게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명동촌을 빼앗겼으며, 그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두 번이나 투옥이 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도망치듯이 고향을 등져야 했습니다. 만주에서 이루어놓았던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 재산을 버리고, 이재민으로, 요즘 말하는 난민으로 남한에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해야했습니다. 그는 남쪽으로 내려온 다른 기독교인들처럼 반공주의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내면을 성찰하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먼저 용서하고 화해했습니다. 역사의 한복판을 살면서 증오와 폭력으로 쌓아올렸던 현실의 높은 담들을 허물었습니다. 그리하여 탐욕과 편견으로 가르고 나누던 온갖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심으시던 예수의 삶을 점점 닮아갔습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더 높고 견고한 담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난민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공포라는 벽, 여성에 대한 혐오의 벽, 동성애자들을 단죄하는 벽이 그것입니다. 통일의 경제적인 이익을 말하며 탈북자들을 차별하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벽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주간을 보내며 문익환 목사님의 발자취를 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심으로 우리 마음속의 만들어놓은 장벽을 하나씩 허물고 화해를 이루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문익환 목사의 “땅의 평화”라는 시를 읽는 것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땅의 평화”


땅은 평화입니다
땅의 마음은 평화입니다
하늘보다 큰 마음
바다보다 푸른 마음
태양보다 뜨거운 마음
땅의 마음은 평화입니다

땅과 입을 맞추면서
발바닥은 부끄럽습니다
냄새나고 더러운 것 무엇 하나 마다 않고
받아 마시며 피워 내는 풀꽃들
발바닥은 부럽습니다

활이 아닙니다
칼도 창도 아닙니다
기관총도 대포도 탱크도 아닙니다
핵무기 전자무기가 문제입니다
그 가공할 살인 무기를 만드는 손들
그 단추를 누르는 것이 자랑스러운 손가락들
발바닥은 분노합니다

위대한 인류의 위대한 문명의 그늘 아래서
배고파 우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발바닥은 아프고 쓰립니다

활이 아닙니다
칼도 창도 아닙니다
기관총도 대포도 탱크도 아닙니다
핵무기도 전자무기도 아닙니다
평화가 문제입니다
하나도 평화 둘도 평화 셋도 평화입니다

은하 성운 밖으로 밀려나는 평화를 보며
슬퍼하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평화를 애타 바라는
하느님의 뜨거운 마음입니다

간절한 땅을 딛고 서서
발바닥은 불이 됩니다
몸은 선 채로 타는 제물이 됩니다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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