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217.33.177) 조회 수 36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설교자 김홍일

  

청년, 우리 시대의 이웃

(요한복음 6:4-13)


2018722

주일예배

김홍일 형제(청년주택 '터무늬있는집')

 

 

[마침 유대 사람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예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빌립이 예수께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예수께 말하였다. “여기에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앉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그 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이 앉았는데, 남자의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은 부스러기를 다 모으고, 조금도 버리지 말아라.” 그래서 보리빵 다섯 덩이에서,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 요한복음 6:4-13 -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은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빠른 경제성장과 풍요로운 시대를 일구어 온 기성세대들 가운데 청년들이, 아니 자신의 자녀 세대들이 우리 시대 중요한 이웃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사회 청년들의 실업문제가 가히 국가재난 수준이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1인 청년가구 가운데 37%는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을 줄여 일명 일컫는 지옥고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대다수의 청년들은 부담스러운 임대료와 학자금 융자상환을 하는 일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야말로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대다수 청년들은 그날의 생존을 넘어서 저축을 한다거나 미래를 계획하는 일은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 하여 집을 장만하는 일은 물론이고,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여야 하는 ‘3의 삶을 지나 ‘N의 삶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학로에서 청년사역을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 한 목사님을 만났을 때, 이제 교회의 청년선교에서 직업과 일자리, 주거문제를 외면한 채 청년선교를 논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의 문제는 양식의 문제인 동시에 영의 문제인 것처럼. 이 시대 청년들에게 주거와 일자리의 문제는 단지 잠자리와 직업의 문제를 넘어 영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의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는 너무 익숙한 본문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요한이 다른 복음서들에서 증언하고 있는 최후의 만찬 이야기를 이 사건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민수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양식이 없다고 불평하며 원망하는 소리를 들은 모세는 어디에서 이 백성이 다 먹을 만큼 고기를 얻어주란 말씀입니까? (민수 11:13)라고 하느님께 묻습니다. 오늘 광야에서 배고픈 백성들이 자신을 향하여 몰려오는 것을 보시며 필립보를 향하여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올 수 있겠느냐?‘ (요한 6:5)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모세가 불평하는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며 하느님께 하였던 질문을 연상케 합니다.

 

저는 오늘 절망적인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이 같은 세상을 물려준 기성세대와 국가를 향하여 원망하고 있는 모습들을 연상하며, 오늘의 복음을 함께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작은 공동체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군중들의 필요에 압도당한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필립보는 그 많은 군중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빵을 나누어 주려면 200 데나리온 어치의 빵으로도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며 예수님께 간접적으로 포기를 권유합니다.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제자들이 군중들을 흩어서 제 각기 사먹고 오게 하자고 권합니다. 제자들은 현실적으로 빠르게 상황을 평가하고, 자신들이 지닌 자원을 계산해 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습니다. 이 시대 청년문제에 대해서 우리들이 보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반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우리 같은 서민들이 어떻게 막대한 재원과 정책수단이 필요한 청년실업이나 주거문제에 접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마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지금 가지고 있는 빵이 몇 개나 되는지 가서 알아보아라.’(마가 6:38)라고 하셨고, 누가와 마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 누가 9:13) 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는 제자들의 시선과 예수님의 시선이 다르고, 그것을 계산하는 샘 법도 다릅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 가운데 한 사람인 마커스 보그는 그의 책 기독교의 심장에서 세계를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에 대해서 언급하며, 신앙은 인생의 궁극적인 무대를 은총이 넘치는 것으로 본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제자들 스스로에게서 발견하기 원하셨던 빵은 무엇이었을까?

 

제자들은 한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두고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요한 6:9) 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는 필요를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못해 무용지물 같은 결핍의 세상입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경쟁하고, 축적하고, 소유하여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곳이며, 모여든 군중들은 가진 것이 없고, 누군가에게서 빵을 얻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제자들도, 군중들도 배고프지 않을 생명의 빵을 지닌 사람들이며, 세상은 풍요롭고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오래 전 프랑스의 처음으로 마이크로 크래딧 운동을 시작한 마리아 노박 재단을 방문하여 사무총장을 인터뷰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분은 우리로 하면 복지부에 해당되는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일을 하였던 분입니다. 자신이 복지부 공무원 일을 그만 두고 마이크로 크래딧 운동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말해 주었는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이 복지부에서 하였던 일은 늘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빈곤계층의 수요를 파악하고, 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정책과 수단을 마련하고, 정책집행에 필요한 재원을 추산하여 집행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빈곤현장을 방문하였을 때, 빈곤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과 주민들을 만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 속에는 빈곤한 주민들이 지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잠재성과 그들과 더불어 삶을 나누며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이웃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부조직의 업무로는 빈곤을 극복하는데 정말 중요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랑과 진실, 그리고 만남과 관계가 만들어 내는 잠재성을 도저히 담을 수 없다는 깨달음 때문에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건물이 없는 개척교회로 주일 평균 신자 20여명 안팎의 적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작은 공동체입니다. 처음 시작은 주중에 모임을 할 만한 공간의 필요성과 지역선교를 모색하기 위해 전셋집을 얻어 남자 청년 3명과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친구를 보기 위해, 혹은 모임을 위해 자연스레 청년들이 숨과 쉼을 찾아오고, 그 가운데 주거가 불안정한 청년들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6개월 정도 머물면서 모임 공간인 거실까지 침실로 사용하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찾아오는 청년들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시대에 청년들의 가난을 정보가 아니라 만남으로 알게 되었고, 청년들을 위한 생활공동체를 시작하였습니다. 전세금을 위해 4-5명의 신자들이 2년 동안 출자를 해 주었고, 저의 전세금과 은행대출 그리고 서울시가 운영하는 사회주택 대출을 받아서 2채의 집을 얻어 남성, 여성 청년들을 위한 주거 공동체 숨과 쉼을 시작하였습니다. 저렴한 주거비와 생활비로 청년들은 숨 쉴 수 있는 삶의 여백을 만들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고, 아침과 밤에 있는 성무일과로 잃었던 신앙을 회복하기도 하고, 매 주일 밤에 있는 성찰모임에서는 한 주간의 삶을 성찰하고 나누고 경청하는 시간을 통해 치유를 받기도 하고, 공동체를 배우고 있습니다.

 

하루는 한 언론사에서 4억이 넘는 큰 부채를 어떻게 상환할 계획이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작은 우리 교회 신자들이 참여하였던 출자운동을 확장하여 그리스도인들과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순환출자 운동으로 부채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터뷰를 본 한 독자가 자신도 출자를 하고 싶다는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은 생협, 시민단체 등 뜻있는 분들과 함께 터무늬 있는 집시민출자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출자운동을 통해 모여진 출자금으로 지난 5월 강북지역에 집을 한 채 얻어 6명의 청년들이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올 해 부천과 홍제동 지역에 출자운동으로 두 채의 집을 더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평범한 시민들, 가난한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빵을 감사하며, 그것을 하느님의 손에 맡겨 드리어 성령께서 청년들과 우리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여 드릴 수 있다면 하느님은 지금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일하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새길로고.jpg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설교자
1066 2018 [2018. 10. 7] 우리들의 감사 newfile 2018.10.19 안인숙, 주선경, 조혜자
1065 2018 [2018. 9. 30] 들어라, 이스라엘아: 함께 찾는 유대인 예수의 믿음 newfile 2018.10.19 강철웅
1064 2018 [2018. 9. 23] 지금 여기서 사는 영생 newfile 2018.10.19 김기협
1063 2018 [2018. 9. 16] 언제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교회'를 묻다: 공공적/수행적 교회 updatefile 2018.09.20 김성수
1062 2018 [2018. 8. 26] 어느 일요일 아침의 기도 file 2018.09.06 정경일
1061 2018 [2018. 8. 5] 고통과 선(善) file 2018.08.16 김용덕
1060 2018 [2018. 7. 29] 담을 허무는 사람, 문익환 file 2018.08.07 문영미
» 2018 [2018. 7. 22] 청년, 우리 시대의 이웃 file 2018.07.26 김홍일
1058 2018 [2018. 7. 15]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신앙고백 file 2018.07.20 권진관
1057 2018 [2018. 6. 10] 여성들은 그 때 어디에 있었나요? file 2018.06.14 정영훈
1056 2018 [2018. 6. 3] 자연의 신음과 고통은 하느님의 가쁜 숨입니다! file 2018.06.12 김대식
1055 2018 [2018. 5. 27] 이 세상의 하나님 file 2018.06.01 추응식
1054 2018 [2018. 5. 20] 일하시는 하느님 file 2018.05.24 차옥숭
1053 2018 [2018. 5. 13] 하나님의 권세와 세상의 권세 file 2018.05.16 김경호
1052 2018 [2018. 4. 29] 경건에 이르는 길 file 2018.05.09 이은경
1051 2018 [2018. 4. 22] 가톨릭 아나키스트, 도로시 데이 file 2018.04.26 한상봉
1050 2018 [2018. 4. 8] 일상의 신성 file 2018.04.24 안인숙, 박현욱
1049 2018 [2018. 4. 1] 부활, 종말, 영생 file 2018.04.10 길희성
1048 2018 [2018. 3. 25] 나드 향유 병을 깨뜨리다 file 2018.04.04 정경일
1047 2018 [2018. 3. 18] 예수의 생명을 품은 바보, 이용도 file 2018.03.28 박지은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4 Next
/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