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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018.05.24 14:41

[2018. 5. 20] 일하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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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차옥숭

 

일하시는 하느님

(마가복음서 14:22-24)


2018520

주일예배

차옥숭 자매(새길교회 신학위원)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을 마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 마가복음서 14:22-24 -


동학에서 해월(최시형, 1827-1898)의 위치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1863814일 수운으로부터 도통(道統)을 이어받은 해월은 1864310(양력 414) 수운이 순도(殉道)한 이후 험난한 시대에 지하 포덕을 통해서 교회 조직을 확대하고 교회 의식을 제정하는 등 교단의 명맥을 이어갑니다. 무엇보다도 해월에게 돋보이는 것은 그의 생애와 높은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태도입니다.

 

수운의 侍天主 사상은 동학과 천도교의 종지(宗旨)입니다. 동양전통에서 무한한 궁극적 실재를, 무한한 절대를 유한한 개별자의 마음에서 찾고, 발견하고, 만나고, 하나가 되는 것이라면 수운의 시천주는 내 안에서 신령한 한울의 생명과 신성을 발견함과 동시에 내가 전체 우주의 뭇 생명들과 깊이 연결되어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생명의 존엄성과 연대성에 대한 자각입니다(內有神靈, 外有氣化).

 

개체의 자각에서 우주의 궁극적 본질이 내부에 있다는 것(內有神靈)이 알려지고, 이 본질이 자기실현의 힘을 가지고 밖으로 작용하여 타인을 주체로서 공경하면서 변화시켜 나간다(外有氣化)고 수운과 해월은 보았습니다. 그리고 해월에서 동학의 윤리는 바로 성인적 인격의 심층적 지혜인 자기성명(自己性命)’의 자각과 실현에서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이 실현되는 공경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마음을 떠나 천주를 생각할 수 없고 사람을 떠나 한울을 생각할 수 없나니 그러므로 사람 공경함을 멀리하고 한울을 공경하는 것은 꽃을 따버리고 과실이 생기기를 바람과 같으니라.”

 

해월은 사람을 한울처럼 대하라는 사인여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만물에 이르기까지 한울처럼 대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시천주자(侍天主者) 아닌 것이 없으니 동물에서 식물에 이르기까지 무고히 해하지 말고 한울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공경하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해월은 사람만이 아니라 천지만물이 다 한울님을 자기 안에 모신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해월은 물물천사사천(物物天事事天), 이천식천(以天食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내 항상 말할 때에 물건마다 한울이요 일마다 한울이라 하였나니, 만약 이 이치를 옳다고 인정한다면 모든 물건이 다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것 아님이 없을지니,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이치에 서로 맞지 않는 것 같으나, 그것은 편견이고 만일 한울 전체로 본다면 한울이 한울 전체를 키우기 위하여 같은 바탕이 된 자는 서로 도와줌으로써 서로 기운이 화함을 이루게 하고, 다른 바탕이 된 자는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것으로써 서로 기운이 화함을 통하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한울은 한쪽 편에서 동질화는 종 내부의 상호부조를 이루게 하고 이질화는 종끼리 기화를 소통시켜 서로 연결된 성장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니, 합하여 말하면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것은 곧 한울의 기화작용으로 볼 수 있는데, 대신사께서 모실 시자의 뜻을 풀어 밝히실 때에 안에 신령이 있다함은 한울을 이름이요, 밖에 기화가 있다함은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것을 말씀한 것이니 지극히 묘한 천지의 묘법이 도무지 기운이 화하는데 있느니라.

 

위의 글에서 해월은 물물천사사천, 이천식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천주자로서 모든 만물은 한울입니다. 따라서 만물의 활동과 일은 한울의 활동이고 일입니다. 풀 한 포기의 몸짓에서도 새의 울음소리에서도 한울의 활동과 한울의 소리를 들었던 해월이 경천, 경인, 경물을 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모든 만물을 유기체적 생명공동체로 인식한 해월은 일상의 식사행위를 한울이 한울을 먹는 이천식천으로 설명합니다. 이천식천은 한울의 기화작용으로 한울전체를 성장 진화케 하는 원리라고 말합니다. 즉 모든 만물이 서로를 먹이는 관계를 통해서 서로의 성장과 우주적 성장 진화를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성신학자 셀리 멕페이그가 생각이 납니다. 멕페이그는 다른 몸들의 필요성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놓음으로써 하느님을 만나는 일, 이것이 철저한 내재로서의 초월을 비추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타자들을 위해 내려놓음으로써 타자의 몸 안에서 그리고 그 몸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고 말합니다. 멕페이그는 자기 비움’(케노시스), 자기를 제한하여 다른 이들이 성장하고 번창할 수 있도록 공간과 장소를 내어주는 것은 하느님이 세계를 향해 일하는 방식이고, 또한 우리가 서로를 향해, 그리고 삼라만상을 향해 일하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이 자기 비움은 역설적으로 참된 충만함의 길이기도 합니다. 지구의 건강을 위한 윤리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자아와 물질적 필요를 스스로 제한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멕페이그는 현재 살아서 활동하는 사람이고 해월은 120여 년 전 활동하던 사람입니다.

 

해월의 사고 속에는 자연은 죽어 있는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적 생명 공동체로서 이해되고 있습니다. 해월이 사용하고 있는 물()의 상징은 생성의 근원적인, 생명의 근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밥 한 그릇에 한울의 조화와 노동을 통한 한울의 창조 행위와, 생명의 근원인 한울 자체가 담겨져 있으니 소중하고 감사하게 먹으라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해월은 땅을 소중히 하기를 어머님의 살갗같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침을 함부로 뱉지 말고 걸음걸이 하나도 경솔하게 걷지 말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월의 세계관은 오늘날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로 인류를 위기로 몰고 가는 상황 속에서 많은 것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또한 해월은 위의 글, 물물천사사천(物物天事事天)에서 인간의 노동을 거룩한 한울님의 창조 행위로 끌어올려 놓습니다. 해월은 평상시에도 낮잠을 자거나 또는 손을 놀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짚신을 짜던지 노끈을 꼬든지 했습니다. 노끈을 꼬다가 일감이 없으면 꼬았던 노끈을 다시 풀어 꼬는 일은 있어도 노는 일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그 이유를 물은 즉 대답하기를 사람이 거저 놀고 있으면 한울님이 싫어하시니라했습니다. 한 달 혹은 석 달이 멀다하고 이주를 자주하여 최보따리라는 별명이 붙은 해월이 새로 든 집에 들게 되면 반드시 나무를 심고 겨울이면 멍석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가인(家人)과 제자들이 내일이라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터인데 그것은 하여 무엇 하겠습니까?”하고 물으면 대답하기를 이 집에 오는 사람이 과일을 먹고 이 물건을 쓴들 무슨 안 될 일이 있겠느냐?”하였습니다.

 

이렇게 근면했던 해월이 하루는 청주를 지나다가 서택순의 집에 들렀다가 그 집 며느리가 베를 짜는 모습을 보고서 서군에게 묻되 군의 자부가 직포 하느냐 천주 직포 하느냐 함에 서군이 나의 말을 분간치 못했으니 어찌 서군뿐이리오라고 합니다. 앞에 소개한 일화들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그 당시 노동을 천시하던 사회 속에서 해월은 노동의 소중함과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 인간의 노동을 통한 인간의 창조 행위가 곧 한울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양천주(養天主) 사상

 

해월은 시천주자로서 내면의 성실성과 도덕성을 확보하여 시천주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천주를 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울을 양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한울을 모실 줄 아느니라. 한울이 내 마음 속에 있음이 마치 종자의 생명이 종자 속에 있음과 같으니 종자를 땅에 심어 그 생명을 기르는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은 도에 의하여 한울을 양하게 되는 것이라.”

 

해월은 무궁한 한울의 생명을 키워 나가는 것이 시천주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해월은 물욕을 갖는 것도, 남을 미워하는 것도, 거짓말을 하는 것도, 남과 시비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즉 비도덕적인 모든 행위는 한울을 양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울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해월은 인간의 선천적인 차별성은 있을 수 없으며 얼마나 시천주하고 양천주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는 양천주를 한울을 닮아가는 것, 즉 한울의 품성을 키우고 닮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이기적인 때가 낀 마음이 아닌 본래의 순수한(바로 한울의 씨앗) 마음으로 돌아와 그것이 가득 커져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즉 한울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른다고 이해했습니다.

 

해월의 사상 속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아울러 모든 만물에 이르기까지 무궁한 우주의 대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는, 천지 만물 모두가 유기체적인 생명 공동체라는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해월의 자연에 대한 이해는 가난한 농민이자 화전민으로 흙과 살아온 삶의 체험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모든 것들 속에 그것이 있음이 비롯되게 한 한울의 씨앗이, 한울 자체가 깃들어 있다고 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해월은 초월적인 인격신적인 요소와 원리적인 내재성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범재신론적(汎在神論的)인 실재관을 바탕으로 한 수운의 시천주 사상을 이어받았으면서도 해월 자신의 신비 체험과 삶의 경험 속에서 윤리적이고 범천론적인 시천주 사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사는 제사다.

 

수운은 용담유사 교훈가에서 매일 먹는 음식을 거룩하게 그리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울님께 바치듯이 먹으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해월은 수운의 생각을 계승 확대하여 일상적인 먹거리로서의 밥을, 일상의 식사행위를 거룩한 제사로 승화시킵니다. 해월은 내수도문(內修道文)에서 세끼 식사를 부모님 제사와 같이 받들라고 당부합니다.

 

제사가 바로 식사가 되고 식사가 바로 제사가 되는 것은 을 통해서입니다. 밥은 우주 생명의 창조적 활동을 뜻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 생명의 결실을 생명 자신이, 즉 생명 활동의 주체인 생명 자신이 먹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식사는 똑같은 의미에서 대지와 인간 속에서 활동하는 생명 즉 노동력이 그 생명의 적극적인 창조 활동인 노동을 통해서 창조한 생명을 다시 수렴해서 먹고 그래서 다시 생명력을 확장함으로써 적극적인 생명 활동·노동 활동을 하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생명의 순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식사는 바로 제사요 제사는 바로 식사입니다.

 

해월은 189745향아설위(向設位我)’를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여기에서 식사가 제사가 되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부모는 첫 조상으로부터 몇 만대에 이르도록 혈기를 계승하여 나에게 이른 것이요, 또 부모의 심령은 한울님으로부터 몇 만대를 이어 나에게 이른 것이니 부모가 죽은 뒤에도 혈기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요, 심령과 정신도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제사를 받들고 위를 베푸는 것은 그 자손을 위하는 것이 본위이니, 평상시에 식사를 하듯이 위를 베푼 뒤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심고하고 부모가 살아계실 때의 교훈과 남기신 사업의 뜻을 생각하면서 맹세하는 것이 옳으니라.

 

이처럼 향아설위에서는 나를 통해서 한울님 부모님 스승님 모두 먹고 마시고 활동하며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니 식사가 제사이며 제사 곧 식사이니 정성을 다해 행하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천도교에서는 해월 선생의 내수도문에 따라 삼시 세끼를 부모님 제사와 같이 받들면서 매 식사 때마다 새 밥을 정성껏 지어서 올립니다. 밥은 내 안에 모신 한울님과 조상님을 봉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해 감사와 함께 감응의 식고(食告)를 드립니다. 식사는 곡식을 주신 천지 부모님께 다시 봉양하는 것입니다. 한울님의 은덕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식고하고 식고 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습니다. 따라서 식사 전에 감응 하소서라는 감응식고를, 식사 후에 감사식고를 합니다.

 

해월은 법설 향아설위편에서 만 가지를 차리어 벌려 놓는 것이 정성이 되는 것이 아니고 청수 한 그릇이라도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만 가지를 차리어 벌려 놓는 것이 정성이 되는 것이 아니요, 다만 청수 한 그릇이라도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옳으니라. 제물을 차릴 때에 값이 비싸고 싼 것을 말하지 말고, 물품이 많고 적은 것을 말하지 말라. 제사지낼 시기에 이르러 흉한 빛을 보지 말고, 음란한 소리를 듣지 말고, 나쁜 말을 하지 말고, 서로 다투고 물건 빼앗기를 하지 말라. 만일 그렇게 하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옳으니라. 굴건과 제복이 필요치 않고 평상시에 입던 옷을 입더라도 지극한 정성이 옳으니라.


밥의 의미와 천도교 여성회와 한살림의 실천적 음식문화운동

 

해월은 밥은 한울이라고 했습니다. 천지의 젖인 밥은 나누는 것이고 함께 먹는 것이고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월은 만사지 식일완(萬事知 食一碗) 즉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알면 세상만사를 다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밥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 함께 협동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벌레··공기·바람··서리·천둥·햇빛과 볍씨와 사람의 정신 및 육체적인 모든 일이 다 같이 협동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쌀이요 밥입니다. 밥은 육체의 밥이요, 물질의 밥이며, 동시에 정신의 밥이요, 영의 밥입니다. 그래서 밥을 우리는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밥은 공동체적으로 생산하고 수렴해서 나누는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밥은 밥상에서 나누어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밥상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밥이란 본래 공동체적으로 함께 놀고 다시금 공동체적으로 밥을 만듭니다. 밥이란 생산 활동과 또한 그 결과를 수렴하는 활동 전체에서 거대한 힘의 원천입니다. 자기가 일해서 얻은 것을 남에게 흔쾌히 내어주는 것, 내어주기 위해서 피땀 흘려서 일을 하는 것, 근원적인 의미에서 서로 나누기 위해서 일하고 또 일해서 나누는 것, 이것이 일하는 한울님의 입니다.

 

노동에 의해서 생산된 밥은 생명활동의 결과입니다. 밥을 생산하기 위해 사람은 일을 하고 일의 결과로 생산 된 밥은 다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 활력이 되고, 다시 노동을 통해 밖으로 나옵니다.

 

이러한 생명운동의 결과인 밥이, 생명인 음식물이 쓰레기로 버려집니다. 버려진 음식물이 연간 15조원이고 처리비용이 수천억 원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도교 여성회와 한살림의 실천운동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천도교 여성회의 활동

 

2000<천도교 여성회에서는 여성회본부 조직부에 한울타리라는 이름으로 환경단체를 만들어 비닐봉투 사용 안 하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2001년부터는 환경보호실천 한울타리를 결성하여 폐형광등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친환경 가정 식단 개발에 참여하고, 농산물 직거래 사업도 진행 했습니다.

 

20023월에는 여성화 창립 78주년을 맞이하여 건강한 먹거리로 우리와 한울님을 서로 살리자는 선언을 하고 해월의 이천식천을 성찰하며 궁극적으로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새문화가 주류문화가 되는 세상을 구축해 나가기로 다짐을 하고 건강한 먹거리 소비운동을 전개했습니다.

 

2003년에는 생활환경 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매월 첫째 수요일 음식물 쓰레기 없는 날캠페인에 적극적인 참여로 천도교 내에서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천도교 수련과 영성에 바탕한 생명평화 실천을 목적으로 시천주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시작으로 결성된 한울연대가 음식과 관련해서 전개한 운동이 2011년부터 시작된 시천주 빈 그릇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물 한 방울, 밥 한 숟갈도 천지부모 젖인 양 고맙게 받아 공손하게 씹어 감사히 삼키겠습니다. 내 안의 한울님 모시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시천주 빈 그릇]운동에 참여합니다.”라는 다짐을 하고 아래의 7가지 규칙을 지킵니다.

 

1) 먹을 만큼만 담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2) 음식 앞에서 식고를 하고 꼭꼭 오래 씹어 먹는다.

3) 음식점에서는 안 먹을 반찬은 반납하고 밥이 많으면 미리 덜어낸다.

4) 남은 반찬이 있는 이상 빈 반찬그릇을 추가 시키지 않는다.

5) 육식보다는 채식을, 천천히 먹고 소식을 한다.

6) 튀기거나 굽기보다 자연식과 전체식을 즐긴다.

7) 냅킨을 함부로 쓰지 않고 주머니 손수건을 꺼내 쓴다.

 

한울연대에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소박한 밥상이야말로 나를 공경하고 생명을 공경하고 한울을 공경하는 첫걸음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한살림 운동

 

한울연대운동이 천도교 내에서 전개된 것인 반면에 한살림 운동은 천도교 밖에서 일어난 운동입니다.

 

천지는 부모와 마찬가지로 곡식을 키워서 우리가 먹을 수 있게 하므로 그 은덕에 감사하고 부모처럼 공경해야 하며, 밥이 나에게 오기까지 수고한 모든 사람들의 노고를 알고 감사해야 하며, 생명의 순환이치를 알고 그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萬事知食一碗이라는 해월선생의 말씀은 무릇 사람의 도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아이들은 정성껏 차려진 밥을 매일같이 먹으면서 한 그릇의 밥 속에 담겨있는 이치를, 굳이 그것을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몸이 익히고 마음이 알아가는 것임을, 그 밥 속의 기운이 무너진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위의 글은 한살림 운동을 하는 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고백입니다. 한살림 운동은 밥상 살림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을 통해 몸과 마음을 살리고, 농민과 땅을 살리고, 밥을 생산하는 가운데 협동적 생산 공동체를 되살리고, 밥을 짓고 차리는 가운데 밥상 공동체를 되살리고자 했으며, 밥 한 그릇을 모시는 태도에서부터 이웃과 자연, 온 생명에 대한 모심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밥 한 그릇을 바꾸어 몸과 마음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어 생산양식과 노동양식의 변화, 나아가 세상을 바꾸고자 한 밥 운동이다.”

 

또한 2008년에 정리한 <한살림 생활문화운동> 가운데 식사와 관련된 아래 내용에는 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가 구체적인 표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

밥을 먹기 전에 잠시 동안 모시는 마음으로 묵상합니다.

한 그릇 밥에 담긴 천지만물의 크신 은혜를 생각합니다.

이 밥이 나에게 오기까지 애쓴 수많은 이의 정성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밥을 정성껏 받아 모시면서 꼭꼭 씹어 먹습니다.

밥에 담긴 생명과 배고픈 이를 생각하며 남기지 않고 먹습니다.

생명의 밥을 받아먹음으로써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쓸 것을 다짐합니다.

 

건강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과 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한살림 운동의 밑바탕에 늘 존재해 왔습니다.

 

한편 밥상의 안전은 농촌과 지역사회, 자연생태계 전체가 건강할 때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한살림은 소비자 조합원의 밥상의 안전을 책임지는 노력은 물론 사회 전체의 먹을거리 안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한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그 예로 1990년 후반에 한살림은 <유전자조작식품반대생명운동연대> 결성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집 밥상을 순식간에 점령해 버릴 수도 있는 유전자조작식품의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 자료와 홍보물을 제작하여 매장에서 조합원 및 그 이웃들과 공유해왔습니다. 2008년에는 미국산 광우병 소 수입 반대활동,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밥상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방사능에 의한 먹을거리 오염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음식문화 가치가 사라져가고 상품화된 음식문화가 범람하는 오늘날 동학 천도교음식문화에 담긴 사상과 천도교 여성회 운동과 한살림의 실천운동은 많은 반성과 성찰을 하게 합니다. 동학 천도교의 음식문화는 환경과의 대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통해 환경을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미래의식과도 연관됩니다. 현재의 파괴적인 포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전체 생명을 긍정하는 관점에서 보존하여 문화의 역사적 연속성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후천 개벽이라는 것은 바로 생태계에 대한 이러한 역사적 관점을 과학기술 문명을 수용하면서도 기본적 인생관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안에는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우주생명을 공경하여 거기에 일치하는 것이 자기실현입니다. 자기 안에 우주 생명이 살아 있다면 이웃 안에도 살아 있음을 인정할 수 있고 이웃을 공경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동식물과 무기물 안에도 우주생명이 살아 있음을 인정하고 공경함으로써 생태계의 균형을 새롭게 회복할 수 있으며, 참된 이기의 길은 이렇게 새롭고 독특하고 참된 이타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예배의식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성만찬입니다. 성만찬은 나눔의 이야기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떡과 포도주를 나누던 그날의 기억을 오늘 여기에 내 삶속에 현재화 하는 것이 성만찬이지요. 마태, 마가, 누가, 고린도 전서에서 최후만찬 사화가 나옵니다.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나누어주시고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하신 다음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내 계약의 피다”(마가 14, 22-25, 마태 26, 26-30, 누가 22, 14-20, 고린도 전서, 11, 23-25)

 

여기에서 빵을 나누시면서 내 몸이다.”에서 몸은 내 삶을 이야기하고 내 삶을 통하여 노동을 통하여 땀 흘려 만든 빵과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라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또 잔을 들어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내 계약의 피다.”라는 성서 내용도 피 흘려 세운 언약,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가난하고 힘없고 병들고 가장 작은 자에게 행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행하는 것이라는 언약을 실천하라는 것이 성만찬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밥은 하늘이다. 하늘을 모든 사람이 나누듯이 밥도 모든 사람이 나누어야한다.”는 해월은 예수님의, 하느님의 마음으로 살면서 나눔을 실천한 하느님의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서로 다른 개체들의 평등한 연대를 인정하고 타자에게 공감하고 그 존재를 긍정하는 것은 추상적인 법칙에 따르는 데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타자의 심층과 교류하는 사랑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일임을 일깨워주는 해월을 보면서 꼭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자기를 비우고 고통 받는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예수의 마음을, 하느님의 마음을 겸손히 배워야 할 것입니다.

 

[기도]

 

우리 안에 있는 한울을 보게 됩니다. 한울을 먹고 사는 우리의 삶입니다. 사랑의 순간순간이 모여 하늘에 이르게 됨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하늘을 알려주시고, 우리에게 하늘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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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분류 제목 날짜 설교자
1061 2018 [2018. 8. 5] 고통과 선(善) file 2018.08.16 김용덕
1060 2018 [2018. 7. 29] 담을 허무는 사람, 문익환 file 2018.08.07 문영미
1059 2018 [2018. 7. 22] 청년, 우리 시대의 이웃 file 2018.07.26 김홍일
1058 2018 [2018. 7. 15]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신앙고백 file 2018.07.20 권진관
1057 2018 [2018. 6. 10] 여성들은 그 때 어디에 있었나요? file 2018.06.14 정영훈
1056 2018 [2018. 6. 3] 자연의 신음과 고통은 하느님의 가쁜 숨입니다! file 2018.06.12 김대식
1055 2018 [2018. 5. 27] 이 세상의 하나님 file 2018.06.01 추응식
» 2018 [2018. 5. 20] 일하시는 하느님 file 2018.05.24 차옥숭
1053 2018 [2018. 5. 13] 하나님의 권세와 세상의 권세 file 2018.05.16 김경호
1052 2018 [2018. 4. 29] 경건에 이르는 길 file 2018.05.09 이은경
1051 2018 [2018. 4. 22] 가톨릭 아나키스트, 도로시 데이 file 2018.04.26 한상봉
1050 2018 [2018. 4. 8] 일상의 신성 file 2018.04.24 안인숙, 박현욱
1049 2018 [2018. 4. 1] 부활, 종말, 영생 file 2018.04.10 길희성
1048 2018 [2018. 3. 25] 나드 향유 병을 깨뜨리다 file 2018.04.04 정경일
1047 2018 [2018. 3. 18] 예수의 생명을 품은 바보, 이용도 file 2018.03.28 박지은
1046 2018 [2018. 3. 11] 국가 ‧ 전쟁 ‧ 여성 file 2018.03.21 박경미
1045 2018 [2018. 3. 4]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file 2018.03.08 최만자
1044 2018 [2018. 2. 25] 맨손혁명으로 만들어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2018.02.28 한인섭
1043 2018 [2018. 2. 18] 신앙과 돈 2018.02.22 권진관
1042 2018 [2018. 2. 11] 동행 2018.02.21 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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