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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김경호

 

하나님의 권세와 세상의 권세

(사무엘하 8:1-6)

2018513

5.18 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 기억예배

김경호 목사(예수살기)

 

 

[그 뒤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그들을 굴복시키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았다. 다윗은 또 모압을 쳤다. 그는 모압 포로들을 줄을 지어 세운 다음에, 그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고, 매 석 줄 중에 두 줄은 죽이고, 한 줄은 살려주었다. 모압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되어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자기 세력을 되찾으려고 출정하였을 때에, 다윗이 그를 치고, 그에게서 기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다윗은 또 병거를 끄는 말 가운데서도 백 필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모조리 다리의 힘줄을 끊어 버렸다. 다마스쿠스의 시리아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려고 군대를 보내자, 다윗은 시리아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쳐죽이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주둔군을 두니, 시리아도 다윗의 종이 되어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다윗이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

- 사무엘하 8:1-6 -


요즈음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매일 김정은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그렇게 밉상이던 트럼프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오래된 비행기가 문제없이 싱가포르를 다녀 갈 수 있도록, 트럼프가 노벨상을 탈 수 있도록, 그리고 재선까지 해서 북과의 약속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발전시키도록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니...... 이제 제대로 된 목사가 되는 것 같다.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한반도에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남과 북의 오래된 얼음장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그동안 많은 분들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 시작은 이인모 선생을 북으로 송환한다는 발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1993년에 한완상 부총리께서 여신 통 큰 화해의 문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바로 북은 NPT 탈퇴를 선언하고 북의 핵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새로운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들어가는 문턱에 서있다. 요즈음 우리에게 다가올 변화들을 생각하면 공연히 혼자서 울컥 울컥해지기도 하고 아무 일 없이 혼자 흐느끼기도 하니 참 멋쩍은 일이다.

 

그런데 남북의 평화시대가 다가오는 것을 굉장한 충격으로 여기며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온 세계가 이 변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일본이나 한국의 극우 정치세력들과 언론은 이를 극렬하게 거부하고 딴지를 건다. 그들은 평창올림픽이 잘되는 것도 반대고, 남북이 대화하는 것도 반대고, 자기들이 약속한 헌법 개정도 반대고, 나라가 잘되는 것도 반대고, 모든 게 반대다. 이 세력이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한반도에 평화분위기가 조성되면 종북놀이와 색깔논쟁을 더 이상 써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 역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갈려져서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고 결국 서로가 불러들인 외세에 의해 나라가 망했다. 외세의 속국이 되어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 성서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이야기이다.


성서의 역사서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로 서술했다. 이는 두 왕국이 망한 뒤에, 자신들의 분열의 역사를 후회하며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민족의 역사가 없어져 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성서의 역사서는 남왕국 유다 왕의 역사를 서술하다가 그 때는 이스라엘 왕 어느 때다하면서 북왕국의 역사로 넘어간다. 이렇게 남북의 역사를 넘나들며 기록한다.

 

각각의 역사는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 ‘유다 왕 역대 지략이라는 책들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책들은 성서를 통해 이름만 접할 뿐 현재에는 남아 있지 않다. 이들은 한 나라가 돼본 적이 없지만 성서는 두 나라가 마치 하나의 나라인 것처럼 공통의 역사로 서술했다. 실제로는 서로 증오하고 죽어라 싸우다 멸망해 버린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성서는 적대적인 감정은 뒤로 숨기고 남북 왕국 모두를 야훼를 섬기는 하나의 신앙공동체로 서술한다. 이는 나라를 잃은 뒤에 뒤늦게 일어난 반성이며 하나의 공동체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각각 다른 역사를 살아온 열 두 지파의 연합으로 형성되었다. 그런데 창세기는 야곱의 열 두 아들이 열 두 지파의 시조라고 한다. 사실 이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이야기이다. 열두 명이나 되는 아들들이 누구도 함께 살지 않고 모두 골고루 적당한 간격으로 흩어져 서로 다른 집단의 시조가 되었다니, 이런 일은 실제 역사에서 일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거기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는 하나라는 정신이다.

 

창세기가 실제 쓰여진 것은 포로기이다. 창세기 1장은 바벨론 포로기 배경의 창조이야기이다. 제일 앞에 나오는 책이지만 실제는 나라가 다 망한 뒤에 그 역사를 반성하며 쓴 기록이다. 야곱이 왜 존경받는 인물인지 그의 삶을 통해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가는 곳마다 속이고 도망친다. 하지만, 야곱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민족이 되게 한 조상이기에 위대하다. 열 두 지파는 모두 한 아버지의 후손이라는 민족 통합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야곱은 독보적이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하 8장은 다윗이 주변국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판도를 넓힌 이야기이다. 다윗은 주변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이었다. 과도한 학살을 일삼았다. 모압에 가서는 모압 포로들을 줄 지어 세운 후, 그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고, 세 줄 길이에서 두 줄은 죽이고, 한 줄은 살려주었다.

 

필자가 설교학 세미나를 할 때, 이 본문으로 설교를 작성해 보라는 과제를 내었다. 많은 목회자들은 다윗이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셨다”(6)는 데에 주목한다.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끈 하나님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메시지는 정당한가? 이 본문에서는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학살을 정당화하고 다른 본문에서는 잃은 양 한 마리의 생명조차 가볍게 여기지 않고 상한 갈대조차 꺾지 않는 사랑을 말한다면 그런 설교자를 청중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다윗의 정복전쟁은 비참한 학살을 동반했다. 모압 뿐 아니라 소바, 암몬(시리아), 하맛, 에돔을 정복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다윗이 남쪽 에돔 지방을 점령했을 때, 그는 18천 명의 에돔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육했다. 전쟁에 승리한 후, 다윗은 요압 장군을 에돔에 보내 반 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남자란 남자의 씨는 전부 다 말살시켜 버렸다.

 

다윗은 왜 이렇게 하였을까? 공포정치는 독재자들이 다수의 시민과 민중을 통치하는 쉽고 빠른 방법이다. 저비용으로 효율적인 통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정복지 주민의 2/3를 학살하더라도 나머지 1/3이 고분고분 할 수 있다면 정복자로서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다윗 시대에 그가 정복했던 나라들은 힘이 약한 나라였다. 그들은 다윗 때는 눌려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이후에 다윗에게 당한 원한을 그의 후손들에게 철저하게 되갚는다.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주변 나라들과 철천지원수가 된다. 제가 그 뒤에 다윗이 폭력을 행사한 나라들과 이스라엘이나 유다가 어떤 관계를 맺는가 보았다. 다윗과 솔로몬 이후로 주변국들은 집요하게 그들을 괴롭히는 원수국가가 되었다.

 

솔로몬 때부터 에돔과 소바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이스라엘과 대적했다.(열왕기상 11:14-25) 유다가 망했을 때 에돔은 매우 기뻐했다. 유대인은 박수치며 좋아하는 에돔을 자기들을 잡아가는 바벨론보다 더 미워했다. 그래서 에돔에 관해 저주하며 쓴 것이 바로 오바댜서다. 에돔의 조상은 야곱의 형 에서다. 창세기에는 야곱과 에서가 다시 만나는 장면의 감동을 그린다.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20년 이상 집을 떠나 있는 동안 항상 형을 속이고 떠나왔다는 큰 짐을 가지고 있었다. 야곱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형을 만났다. 혹시 형이 자신과 가족을 죽일까봐 근심하며 기도했다. 그러나 그의 염려와는 달리 에서는 야곱을 보자 달려와서, 그를 끌어안았다. 에서는 두 팔을 벌려,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둘은 함께 울었다. 이들이 만나 서로 얼싸안고 흘린 눈물은 그동안 야곱의 삶에 맺혔던 큰 짐덩어리를 한꺼번에 씻어 내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야곱은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합니다고 한다(33:10). 사람의 만남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가능케 한다.

 

창세기의 야곱과 에서의 감동적인 만남은 그들이 그렇게 서로 적대하며 지냈던 유다와 에돔의 관계에 대한 반성이다. 서로 그렇게 미워했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형제의 나라였다는 메시지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서부터 다윗에 관해 배운다. 다윗은 최고의 영웅이다. 이스라엘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전성기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평가해야한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역사는 영토를 크게 확장한 왕, 부를 많이 소유한 왕이 꼭 영웅인가? 큰 것이 좋다는 단순한 가치관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정복 전쟁 과정에서 이름도 없이 피 흘리며 죽어간 수많은 민중에게도 과연 영웅일까. 피정복지에서 억울하게 학살된 이들에게 영웅은 무슨 의미일까. 부와 힘을 기준으로 위인을 평가한다면 그런 기준으로 교육을 받은 학생들, 또 그런 설교를 들은 신자들이 장차 어떤 인물이 될까 두렵다. 그들이 어떤 선교를 하고 어떤 교회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게 될까 참으로 걱정이 앞선다.

 

오늘은 광주 항쟁기념주일이다. 다윗이 행한 폭력과 똑같은 폭력이 광주에서 행해졌다. 처음에 전남대 학생들이 일으킨 시위의 진압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 다분히 의도적인 시위진압이었다. 대부분 시위진압은 시위대를 흩어버리려는 목표이다. 그러나 끝까지 추적해서 학생들을 체포했다. 그 과정에서 잔인한 폭력이 의도적으로 행해졌다. 그것은 국가가 행한 폭력이었고 국민을 주눅 들게 하는 본보기 식의 폭력이었다.

 

저는 그 때 공군장교로 강원도 횡성비행장에서 근무했다. 야간에는 비행단장을 대리하는 당직 사령과 위관급의 당직 사관이 근무를 하는데 전산실에서 급한 전문이 왔다고 연락이 왔다. 급하게 전산실에서 전문을 받아보니 한 장짜리 1급 비밀 전문이었다. 간단한 전문인데 내용이 충격이다.

 

인근 도시에 시민들이 소요를 일으키면 군을 출동시켜 시민들의 대퇴부를 사격할 것

 

그것을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왔는데 시민을 대상으로 총을 쏘라니..... 뿐만 아니라 원주에는 시민은 물론 장병들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자기 가족을 향해 총을 쏘라는 명령이다. 원래 1급 비밀은 비행단장만 볼 수 있는 것인데 야간에 긴급하게 전산실을 통해 왔기에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당시 신군부는 단지 광주가 아니라 전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살육전을 벌일 계획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내용은 제가 여러 번 설교도 했고 작년에는 SBS 김용민 브리핑에서 방송도 했다. 제보한 내용은 추가 증인들이 나서야 입증 가능한 사안이다. 제 기억이 유일한 입증자료이고 당시 제 계급이 소위이기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jtbc 뉴스팀에도 제보했으나 유사한 제보가 존재한다는 내용만 확인하고 보도는 되지 않았다. 공군은 기지방어가 주임무인데 인근 도시까지 병력을 전개하라는 명령이 왔다면 당시 육군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전국으로 내려진 명령일 텐데 보다 고위직에서 증언이 나와야 입증 가능할 것이다.

 

36년 전 긴박했던 광주도청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밖에선 폭도들은 몇 시까지 투항하라는 방송이 요란하다. 헬기소리, 탱크소리.... 최후결전이 가깝다. 사람의 계산으로는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안다.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결국 고등학생, 야학생, 노동자 등..... 민초들만 남아 최후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도 분명 두려웠고, 남아서 사랑해야할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도 분명 생명을 낭비하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살아남아서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님 들은 먼 역사의 승리를 선택했다.

 

분명 죽음인 줄 알면서도, 아니 죽음 보다 더 큰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쫒는다고 했는데 그들이 가진 인간에 대한 사랑, 정의에 대한 사랑은 당장 눈앞의 두려움을 내어 쫒았다. 님 들은 죽음을 담보로 굴종을 요구하는 최후의 적인 죽음의 세력 앞에 무릎 꿇지 않았다.

 

만약 그날 전부 투항했더라면........

 

아마 광주의 역사는 굴복의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힘을 쓰는 자들은 두려움을 모르고 승승장구했을 것이다. 망월동 묘역에 서면 거기 늘어선 비석의 주인공들이 일제히 부르는 웅장한 합창을 듣는 것 같다. 벅차오는 감격에 속에서 뜨거운 것이 끊임없이 솟는다. 가냘픈 꽃잎처럼 처참하게 짓뭉개진 죽음이었지만 그 무엇보다 강한 힘을 보여준 장렬한 서거였다.

 

광주의 정신은 오래전 우리민족 안에 살아 움직이는 정의의 혼이다. 삼일혁명이 일어났다.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이 사격을 하는데 그 앞에서 맨손으로 만세를 부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에 의해 살해된 중국인의 숫자는 한국인에 비해 훨씬 많은 숫자이지만 늘 일본 군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만든 것은 한국인이었다. 선조들은 맹목적으로 굴욕하지 않았다. 목숨을 내걸고 폭탄을 투척하고 당시 일본의 최고 지도자들을 총격했다. 안중근은 일본의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까지 육혈포로 처단했다. 이것이 광주의 혼이고 우리민족이 가진 정신이다.

 

작년에 광화문에서 촛불을 드는 동안, 그 평화로운 촛불에 대해 군대를 동원하는 일을 검토하고 논의했다. 군대는 최루탄을 쏘지 않는다. 광화문에서 80년 광주와 같은 일이 벌어질 뻔 한 것이다.

 

성서의 역사는 남북왕조가 한 번도 합하지 못하고 서로 망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유태인들이 범한 어리석음을 넘어서는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새 역사, 새로운 민족의 설계는 앞으로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의 운명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새 역사의 주체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의 권세는 힘을 자랑하고 자기들의 안위만을 생각한다. 그들은 생명을 빼앗는 폭력도 기꺼이 행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는 언제나 생명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신다. 하나님의 권세는 사랑과 평화, 모든 인류의 인권을 세우는 일에 부름 받는다.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권세를 세워갈 때이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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