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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018.02.22 14:28

[2018. 2. 18] 신앙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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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진관

 

 

신앙과 돈

(누가복음서 12:15-21)

2018218

주일예배

권진관 형제(새길교회 신학위원)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그리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두었으니, 너는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 누가복음서 12:15-21 -

 

 

오늘은 말하기 좀 어려운 돈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서민들이 교회에 나가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헌금도 걱정이 되고, 교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좀 번듯해야 하는데 옷값 등등이 사람들을 교회에 나가기 어렵게 만듭니다. 적자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교회에 나갑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성서의 가난한 과부처럼 두 렙돈 정도 헌금하고 교회에서 소외당하는데, 부자들은 넉넉해서 많이 내고 교회의 주인노릇을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십일조를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가보면, 내 이름으로 된 헌금봉투가 있습니다. 헌금도 연말정산에 포함되기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이 자기 전용 헌금 봉투를 원합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내 전용봉투에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안 낸 주일은 기억에 남아있게 합니다. 나중에 보충해 넣어야 합니다.


교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헌금을 걷고 있습니다. 검색을 해 보니까, 85 종류나 있다고 합니다. 1.출생헌금 2.순산헌금 3.돌헌금 4.백일헌금 5.헌아식헌금 6.새 차 구입헌금 7.취업헌금 8.좋은 일자리헌금 9.아르바이트헌금 10.개업보호헌금 11.범사헌금 12.좋은여행헌금 13.즐거운 여행헌금 14.안전한여행헌금 15.출장중보호헌금 16.여행중보호헌금 17.사업축복헌금 18.축복헌금 19.채우시는축복헌금 20.가족방문헌금 21.이주헌금 22.한국방문헌금 23.면허취득헌금 24.사고중보호헌금 25.새집마련헌금 26.이사헌금 27.새로운 보금자리헌금 28.화목한가정헌금 29.집매매헌금 30.집수리헌금 31.생일헌금 32.환갑헌금 33.결혼헌금 34.결혼기념헌금 35.주님품에 보냄헌금 36.장례헌금 37.추모예배헌금 38.건강헌금 39.가족건강헌금 40.수술헌금 41.치유헌금 42.치료헌금 43.좋은검사결과헌금 44.기도응답헌금 45.주님영접헌금 46.등록헌금 47.침례헌금 48.교회인도헌금 49.주님동행헌금 50.주님인도헌금 51.주님사랑헌금 52.주님은혜헌금 53.성령 충만헌금 54.깨달음헌금 55.유학헌금 56.학업헌금 57.시험잘치름헌금 58.합격헌금 59.입학헌금 60.졸업헌금 61.하나님의도우심헌금 62.환난중감사헌금 63.평안헌금 64.말씀헌금 65.목사차량헌금 66.교회차량헌금 67.교회건축헌금 68.교회부지구매헌금 69.간증인간증감사헌금 70.맥추절헌금 71.추수감사절헌금 72.강단꽃헌금 73.이삭줍기헌금 74.쪽방헌금 75.밑천나누기헌금 76.십일조 77.새성전터부지헌금 78.외국선교헌금 79.일천번제헌금 80.유산헌금 81.비젼헌금 82. 1% 나눔헌금 83.150일간 기도하며하는 헌금 84.교회뜰 나무에 기도제목 붙이고 하는 헌금 85.주일학교 선교헌금 또는 교회학교헌금

 

어떤 교회는 헌금 명에 코드를 붙여서 온라인으로 입금하게도 합니다. 교회가 은행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은행 창구 같은 데서 순서 표를 들고 줄서서 헌금을 내는 모습들을 여의도의 한 대형교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의 어떤 대형교회는 장로나 권사를 임명할 때 감사헌금을 강요했다는 보도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장로는 3천만원, 권사는 3백만원을 요구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헌금 강요는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불문율로 되어서 임직된 교인들은 임직 때에 별도로 많은 헌금을 내야할 뿐 아니라, 계속해서 고액의 헌금을 내야 하는 압박 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이 대형교회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교회의 불문율로 되어 있습니다. 신앙이 깊을수록 돈을 많이 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신앙의 정도가 헌금의 액수를 결정하며, 거꾸로,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은 신앙이 깊은 것으로 인정받습니다. 이러한 개신교의 모습은 점차로 다른 종교로 파급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앙을 돈으로 환산한 것은 칼빈주의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해 지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증거라고 생각하는 전통이 개신교 안에 생겼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예정된 선택에 대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은총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예정된 구원입니다. 어떤 이는 영원히 선택받은 채로 태어났고, 어떤 이는 영원한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영어로 표현하면, eternal election, eternal damn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루터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칼뱅에 의해서 급격히 발전되었고, 이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이가 유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였습니다.

 

돈에 대해서 예수께서 깊은 통찰을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돈을 불의한 맘몬으로 보았습니다. 돈이 결코 성스러울 수 없고 깨끗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들여다 본 것입니다. 그리고 돈이 많다고 거룩하거나 믿음이 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헌금으로 신앙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불의한 맘몬이라는 말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 불의한 맘몬,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입니다.


무소유를 설파했던 법정스님이 말년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친구여!! ,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친구여!!

그렇지만 그것은 겉치레 이야기.

정말로 돈은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 하오.

 

옛 친구를 만나거든 술 한 잔 사주고

불쌍한 사람 보면 베풀어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 푼 줄 돈 있어야

늘그막에 내 몸 돌봐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라오.

 

법정스님의 글에서 우리는 불의한 맘몬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돈은 항상 불의한 것이 될 수 있으므로 그것을 자꾸 돌려야 합니다. 그 방식 중에 하나가 헌금내기일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서 헌금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이웃을 위해서 돈을 쓰지를 않고 자기만을 위해서 돈을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가면 돈이 듭니다. 작은 돈이지만 우리가 열심히 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내라는 말은 전연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헌금을 많이 내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헌금을 많이 내면 가난해 집니다. 그런 면에서 가난은 거룩한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많이 봉사하고 많이 내면 그만큼 가난해 집니다. 이것이 불의한 맘몬의 방식입니다. 가난이 훌륭한 것이 되는 것은 이 불의한 맘몬을 씀으로 가난해 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든 교회가 작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나눔을 위해서 자기의 교회를 확장하지 않고 필요한 곳, 사회적 정의를 위한 곳으로 투자하는 교회이어야 하기 때문에 교회는 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교회라고 해서 교인이 적은 것은 아닙니다. 규모가 작은 교회가 성장을 위한 욕망이 클 수 있습니다. 작은 개척교회가 더 헌금을 강요할 수 있고, 교회성장 드라이브 외에 생존드라이브까지 겹쳐져서 맘몬교회로 될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개척을 한다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반면에, 교회가 커도 사회정의를 위해 많이 내 주는 교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교회는 성도가 많아도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교회는 자기 전체 헌금의 30% 이상을 어려운 이웃과 사회정의를 위해 쓸 수 있어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3억의 예산이라면 1억 정도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내놓는 것이 건강하다는 말씀이고, 그래야 교인들도 건강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헌금을 전부 교회를 위해서 쓰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인건비, 건물, 교회 내부 행사 등을 위해 소모합니다. 한국 교회의 개교회주의가 문제입니다. 모든 돈을 자기 교회만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맘몬을 좋은 곳에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 건물 우선으로, 그리고 교회를 위한 사치를 위해서 우선 쓴다면, 그것은 그대로 불의한 맘몬이 됩니다. 교회 밖의 넓은 범위의 이웃을 위한 헌금을 일정하게 모아서 교단 단위, 그리고 교회연합단위로 모아 체계적으로 사회 정의와 가난과 기후변화 등을 위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교단이 그러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교단을 쥐고 있는 대형교회들의 목사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윤리신학자 이숙진 교수의 말에 의하면, 돈을 많이 쓰고, 많이 헌금하면 부자가 된다고 주장하는 담론들이 있습니다. 삼박자 구원, 청부론, 성부론 등이 그런 담론입니다. 70-80년대 삼박자 구원론이 한참 번창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90년대 IMF사태 이후 청부론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소망교회 교인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청부(淸富)론이 부각되었습니다. 깨끗한 부자라는 말입니다. 김동호 목사, 김진홍 목사가 앞장섰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은 더 나아가서 거룩한 부자 즉 성부(聖富)론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차차 좀 더 얘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러한 신앙과 돈에 관한 담론, 특히 신앙의 금전화, 맘몬화 담론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많은 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사영리(四靈理)입니다. The Four Spiritual Laws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사영리의 첫째 원칙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의 삶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라는 것입니다사영리의 둘째 원칙은 인류는 죄로 부패되어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라는 것입니다셋째 원칙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방책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넷째 원칙은 우리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합니다.”

 

사영리는 12세기 캔터베리의 안셀름의 만족설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만족설은 서양 기독교의 잘못된 교리적 근간이 되었습니다. 만족설을 간단히 설명해 보면,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인데, 이 정의는 잘못을 징벌한다는 면에서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가 너무 커서 그 인간의 죄를 징벌하기 위해서는 신인인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을 받아야 하나님이 만족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고 부활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표적인 대속론으로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수가 당시의 로마의 권력자들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죽은 것이 됩니다. 이것은 사도신경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와도 배치됩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이 아니라, 그의 외아들인 그리스도를 대신 심판한 것이라는 이해가 되기 어려운 논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게 하는 잔인한 아버지가 됩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사랑의 하나님과 위배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엉뚱한 교리가 기독교의 중심교리가 되었고, 이 교리로부터 사영리 담론이 발전되어 나왔고, 이것이 한국의 근본주의적 보수 신학의 근간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교리에 의하면, 다른 종교는 유일한 구원의 길인 예수를 믿지 않으므로 모두 미신에 불과하게 됩니다. 이 교리에서 역사적 예수는 없습니다. 성서의 증언에도 위배됩니다. 성서는 세상 권력이 예수를 죽인 것으로 나오지만, 이 교리에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에게 드린 제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해됩니다.

 

불의를 향해 투쟁했던 역사적 예수는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희생양으로 무기력하고 양순한 희생제물이 되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의 계획을 알려주는 도구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희생양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과 성자 그리스도 사이의 분명한 차이와 다름을 흐려놓습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실제로 역사하고 있는 성령은 이 구도에서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교리는 신학적 한계이며,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역사와 과학과도 위배되며, 우리의 신앙 경험에도 맞지 않는, 결격이 많은 교리 신학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예수의 비유, 예수의 실제적인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런 4영리는 겉보기에 논리적인 것 같지만, 한계가 많고 사태를 가리는 부족한 매체입니다. 폭넓은 신앙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에서 이러한 교리보다는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과, 역사도 이야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리는 이야기와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고, 특히 4영리는 전체 성서의 이야기를 축소시키고 왜곡시킵니다. 이런 근본주의적 교리를 기반으로 해서 나온 것이 청부론과 성부론이라고 하는 담론들이며, 이것은 근본주의 교리를 더 강화시킨 것이며, 하나님을 아예 모독하는 담론이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돈과 신앙에 대한 얘기입니다마는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왕의 재정이라는 곳에서 발생된 성부론, 거룩한 부자론 이라는 담론이 그것입니다. 이 성부론은 어떤 면에서 청부론(깨끗한 부자)과 유사하지만, 청부론이 소망교회와 같이 강남의 대형교회의 부자들을 위한 담론이라고 한다면, 성부론(거룩한 부자론)은 가난한 자들, 중하위의 경제적 핍박을 받는 사람들, 젊은이들이 주된 청중이라고 하겠습니다. 깨끗한 부자에게는 돈을 버는 과정이 깨끗한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조건 많이 소유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리고 나서 잘 쓰는 것이 좋다는 주의입니다. 그러니 적당히 법망을 피해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잘 벌고 보자는 것이 청부론입니다.

 

성부론과 청부론이 다른 점은, 성부론은 돈을 우선 많이 내야 돈을 번다는 이론입니다. 이에 비해서, 청부론은 우선 돈을 벌고 축적하고 나서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돈을 버는 게 청부론이라면, 성부론은 먼저 돈을 내는 것입니다.

 

MB정부 인사들이 다니던 강남의 대형교회의 중심세력이 이 청부론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부론에서는 돈을 버는 과정이 깨끗하고, 많이 벌었으면 잘 쓰고 잘 내야 청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자기의 생활비용 이상으로 돈을 버는 과정은 주로 다른 사람들의 돈을 합법적, 비합법적으로 빼앗는 과정일 것이며, 이것은 최근 박근혜, 최순실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고, MB와 그의 측근들에 대한 수사에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청부론자들의 거짓이 오늘날 재판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청부담론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부론은 더욱 황당합니다. 헌금을 많이 낼수록 하나님이 돈을 많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헌금을 많이 하면 성부가 아니라, 성빈이 되는 것이 바른 이치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돈을 많이 내면, 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땅에 씨를 뿌리면, 3060100배의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데, 이것을 이자율로 말하면 최소 3%를 하나님이 주신다고 해석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3분의 2가 돈에 대한 말씀이고 비유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부자이시고,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천지가 다 나의 것이라고 하는 시편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천지가 다 나의 것이니, 하나님은 부동산만으로도 엄청난 자산가라는 것이고, 교회에 헌금하면, 부자인 하나님이 그것에 대한 이자로 최소 3%를 준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반경 5km 안에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돈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돈을 이렇게 쓰면 적어도 3000%를 돌려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계산법이 매우 희한합니다. 예를 들면, 월수입 3백만원을 받는 사람이 10만원을 헌금했다고 하면, 3백만원으로 돌려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계산이 도돌이표입니다. 이미 3백만원 받았는데, 거기서 10만원 냈던 것인데, 3% 30배인 3백만원을 그 대가로 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3백만원을 다 내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3백 곱하기 30해서 9천만원을 이미 받았을까요? 그렇게 돼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자기 월급을 다 낸 사람은 그날부터 굶는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이걸 주장하는 사람은 분명히 30배를 준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30배를 안 주는 이유는 신앙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주장하던 김모씨가 자기는 30배 이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말하기를, 잘 나가던 사업이 망해서 100억 빚을 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5년 동안 왕의 재정 방식대로 하니까 빚을 다 갚고도 50억을 더 벌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랬을지 몰라도 돈을 다 내면, 결국 남는 것은 없게 될 것이고 굶주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잘 된다고 하는데 그 해법은 매우 마술적이고 미신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어떻게 듣습니까? 그게 하나님의 말씀인지 내 말씀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옛 사람들이 직접계시는 예수 시대 이후에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런 돈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서의 말씀을 모두 돈으로 환산한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돈으로 환산합니다. 헌금 액수가 신앙의 깊이의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자라고 하고, 하나님이 우주 전체의 주인이고 모든 소출의 주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부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동산 부자로 만들고 맘몬으로 만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액의 이자를 줄 수 있는 은행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맘몬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서를 돈의 관점에서 재구성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가를 성서 본문을 해석하여 알려줍니다. 이러한 강의가 매우 인기가 있어서 연인원 조회수가 수백만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돈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있는 무기요, 힘이라고 말합니다. 돈이 있고 그것을 쓰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고 합니다. 실은 해외 선교를 말하며, 교회를 키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목사와 선교사들을 돕는 일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도우면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인지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청지기도 있고, 세습하는 목회자도 있고, 돈을 위해 직업적으로 선교사역을 하는 이도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복음으로, 신앙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로 둔갑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개신교회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형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들 교회가 한국의 개신교회를 대표하고 있으니, 돈복음, 돈신앙, 맘몬주의가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돈은 그것이 일개 종잇조각이요, 계좌에 있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숫자로 모든 것을 교환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구할 수 있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은 무한대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돈은 일정한 힘만 가지고 있을 뿐이며 그것도 아주 제한된 능력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삼성의 이재용부회장이 뇌물죄로 잡혀 들어가서 심한 곤욕을 치렀습니다. 2심에서 풀려나왔습니다마는 353일 만에 간신히 풀려난 것입니다. 편파적인 봐준 판결로 풀려났다고 하지만, 그러나 1년 가까이 감옥에 있었다는 것은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역시 돈은 신도 아니고, 약간의 편리만을 제공해 주는 아주 한계 있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 것입니다.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된 후 첫 주일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묵상하며, 특히 그의 고난의 행진을 묵상하는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가장 강하게 싸웠던 존재는 맘몬이었습니다. 맘몬, 즉 재물은 우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합니다. 신자유주의의 시장 경제 체제에서 우리 기독교는 점점 더 금전화, 재물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든 신앙이 맘몬화되고 있고 금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속에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재물로 환산하고 신앙을 재물화하는 것을 중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재물은 우리를 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오늘 죽을지도 모르면서 재물을 쌓아둘 창고를 짓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은 하나님을 향해서 부요한 삶을 말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에 하나님을 향해서의 부요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시키는 오늘날의 경향성과 추세를 되돌리는 일입니다. 돈이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만물을 경험하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풍요함을 즐기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으로 모든 것이 환원되어 가고 돈이 목적이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이 추세를 되돌려서, 돈이 만물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돈에 의해서 가치가 결정되고 있는 이 흐름을 되돌려서, 우리의 삶 속에서 만물의 원래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을 향해서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맘몬으로 환산되지 않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의한 맘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게, 아니 가장 중요하게 포함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돈이 형성하는 영역을 넘어선 새로운 영역, 잊혀진 영역이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 시켜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속에서 평화롭게 그리고 그 다양성과 깊이 속에서 오는 풍요로움을 경험하고 즐기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해서 부요하게 사는 길일 것입니다.

 

[기도]

 

사순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이제 다시 예수의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새로운 삶의 비전을 우리가 살기를 원합니다. 맘몬을 향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삶이 진정 부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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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7 2018 [2018. 3. 18] 예수의 생명을 품은 바보, 이용도 file 2018.03.28 박지은
1046 2018 [2018. 3. 11] 국가 ‧ 전쟁 ‧ 여성 file 2018.03.21 박경미
1045 2018 [2018. 3. 4]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file 2018.03.08 최만자
1044 2018 [2018. 2. 25] 맨손혁명으로 만들어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2018.02.28 한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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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 2018 [2018. 1. 21] <1987>, 교회의 주소 file 2018.01.26 정경일
1039 2018 [2018. 1. 14] 우리 인생에서 만난 새길공동체, 그리고 그 도전과제 file 2018.01.26 이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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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6 2017 [2017. 11. 19] 공동체의 존재방식: 서로 file 2017.11.30 정경일
1035 2017 [2017.11.5] 신·인(神·人)장벽, 생·사(生·死)장벽 허물기: 복음의 진수 file 2017.11.10 한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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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 2017 [2017.10.22] 주기도문으로 본 '一雅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 - 책임적 실존, 세계 개방성, 그리고 종교 해방에 이르기까지 file 2017.10.25 이정배
1032 2017 [2017.10.15] 감사, 나눔, 쉼 file 2017.10.17 차옥숭
1031 2017 [2017.10.08] 받침대를 흔드는 위험한(?) 개혁: 한국 여성 종교개혁자들 file 2017.10.12 최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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