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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018.01.31 11:55

[2018. 1. 28] 에로스와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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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이영미



에로스와 영성

(아가 8:6-7, 요한복음서 15:9~14)

2018128

주일예배

이영미 교수(한신대학교 구약학)

 

 

[도장 새기듯, 임의 마음에 나를 새기세요. 도장 새기듯, 임의 팔에 나를 새기세요. 사랑1)은 죽음처럼 강한 것, (사랑의) 시샘은 저승처럼 잔혹한 것,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 바닷물도 그 사랑의 불길 끄지 못하고, 강물도 그 불길 잡지 못합니다. 남자가 자기 집 재산을 다 바친다고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히려 웃음거리만 되고 말겠지요.]

- 아가 8:67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 요한복음서 15:914 -

 

1. 들어가는 말

 

나에게 키스해주세요, 숨 막힐 듯한 입술로,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달콤합니다,” (1:2)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우리가 마음껏 사랑하기까지는, 제발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아 다오." (2:7; 3:5; 8:4)

임이여 가요.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 나무 숲 속에서 함께 밤을 보내요.” (7:11)

왼팔로 나의 머리를 고이시고, 오른팔로는 나를 안아주세요.” (8:3)

 

거룩한 주일, 대예배 설교의 말머리로는 다소 적절하지 않은 선정적 외침들입니다. 이 모두는 저의 말이 아닌 아가서의 단순한 인용입니다. 그래서 설교제목을 ‘19() 아가서와 에로스 영성이라고 할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아가서는 전도서와 함께 히브리 경전(TNK)에 경전으로 포함시킬까 말까를 놓고 유대랍비들 사이에 논쟁이 되기도 했던 책입니다. 그리고 히브리 전통에서 지혜문학인 잠언 76~27절은 아가서의 여주인공과 비슷한 성적 자율성을 지닌 여자를 부도덕한 여인으로 남자들이 조심해야할 대상으로 훈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19금의 불편한 책이 그리스어 번역 성경인 셉투아진트(LXX)에서는 노래 중의 노래,’ 즉 최고의 노래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사랑에 대한 그리스 문화의 다른 이해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서의 최종 편집은 그리스 문화의 깊은 영향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해석학이 발전되어 온 서구문화 역시 그리스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플라톤의 향연』2)은 현자들의 사랑에 대한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현자들은 사랑의 신인 에로스를 찬양하면서 사랑을 논합니다. 그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만은 사랑의 신 에로스를 찬양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3)


태초에 혼돈이 있었나니,

그 다음에 변함없이 넓은 가슴의 대지와

그리고 그 영원한 만물의 터전 위에

에로스가 생겼나니라.

 

파르메니데스 역시 모든 신 중에 제일 먼저 에로스가 태어났느니라고 찬미하였습니다.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를 찬미하는 연설에서 에로스가 사랑하는 자들에게 불어넣어주는 선물은 용기그것도 죽음도 마다하지 않게 할 만큼의 용기라고 칭송합니다.4) 또 다른 현자 에리크시마코스는 에로스는 비단 인간의 내부에 깃들어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대상에 대한 사랑으로서 다른 모든 사물의 내부에도 깃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동물의 체내에, 식물의 내부에까지, 아니 존재하는 모든 사물 속에 깃들어 있다고 말합니다.5)

 

성공회 여사제이면서 보스톤의 성공회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를 가르쳤던 레즈비언 신학자 카터 헤이워드(Carter Heyward)Touching our Strength: The Erotic As Power and the Love of God6)이란 에로스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긍휼과 정의를 향한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에로스와 영성

 

그리스 문화전통에서 에로스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성애적 사랑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이 에로틱한 감정이 남녀 사이의 성애적 사랑에 국한되어야한다는 편견은 사회교육의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교육의 효과는 무척이나 커서, 에로틱한 감정이 우리 속에서 일어날 때, 그 감정 자체보다는 그 대상이 더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 대상이 우리가 교육받아왔고, 존재의 근거라고 믿고 있는 가치관과 충돌할 때, 방어기제가 즉각적으로 작동하고, 감장이 표면으로 떠오르기 전에 차단시켜버리므로 잘 인지하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으슥한 길을 걷으면서 키스하고 싶은 욕망에 입이 바짝 타들어가고, 키스할 때 머리가 하얗게 아득해지고, 입 속에는 신 레몬을 깨문 듯 달콤한 침이 고이고, 전기 볼트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전된 듯 짜릿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그 성애의 황홀감을 경험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격하게 끓어오르는 열정의 그 순간과 그 감정에 그냥 그대로 머무르면서 그 감정 자체의 짜릿함과 간절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감정이 나오기도 전에 많은 이유들로 이를 억누른 결과입니다. Understand(이해하다)란 영어도 그 아래 서있다는 뜻인데 저는 이를 그 안에 머문다는 말로 바꿔봅니다.

 

에로틱한 감정이 사회의 경계를 넘어선다고 판단되는 즉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 판단하고, 정죄하고, 혹은 탐욕으로 소유하려고 합니다. 에로틱한 감정은 상대를 소유하고자, 혹은 내 욕망을 실현하려는 탐욕으로 잘못된 결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정된 밋밋한 사랑 속에 살아갈 수 있지만, 에로틱한 사랑이 나를 추동해서 내 속에 긍휼심과 의를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이 열정이 생명사랑과 살림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헌신하게 할 영적 힘, 즉 영성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알아차릴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퀴어성서주석(QBC)를 접하기 전까지 아가서를 읽으면서 사회적 기준, 행동양식, 도덕 같은 이유에 꺾이지 않고, 욕망의 열기 앞에 솔직하고,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동등하게여자라고 빼지 않고사랑을 주장하는 여주인공의 당당함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자와 남자 사이의 사랑에 대한 통제와 왜곡을 비판하는 자율적인 사랑, 욕망, 성생활을 축하하는 별난 책이 성서에 있음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QBC는 이성애적 가부장사회에 길들여진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두 가지에 눈뜨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아름다움만이 사랑, 욕망, 결합의 충분한 동기이다는 점입니다.7) 아가서에는 연인이 상대를 왜 그토록 원하고 갈망하는지 이유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대신에 이 연인들은 상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사랑을 통해 상대를 마음껏 느낄 수 있기 위해 돌아다니고 들과 어머니의 침실에 사랑을 나누기를 요청하고 원합니다. 에로스는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닌 나를 매혹시킨 아름다움으로 인해 터져 나오는 감정입니다. 에로스는 어떤 목표점을 향한 감정 만들기가 아닙니다. 게이샤란 일본소설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에서 여주인공은 자기는 다른 게이샤처럼 매력적이지도, 예쁘지도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 여인의 초록색 눈에 반한 한 남자가 키다리 아저씨처럼 이 여자를 게이샤로 성장하도록 뒤에서 도움을 줍니다.

 

조건이 아니라 아름다움만이 사랑, 욕망의 충분한 동기가 된다는 점은 열정의 대상이 되는 경계가 성의 구분을 넘어서고, 인간을 넘어서 동물과 자연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러한 에로스를 생명과 생명의 교감의 순간에 포착되는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 강도가 순간의 느낌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그 힘이 너무 강하여 내 존재 속에 머물며 나의 삶, 행동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힘으로 진화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성을 넘어서, 인간을 넘어서 존재의 교감을 통해 성애를 느낀 경험이 있어 그리스 현자나 헤이워드의 말에 공감합니다. 중학교 입학해서 한 친구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 순간의 사랑이 지금까지도 그 친구가 혹 이혼하거나, 죽으면 아이를 내가 키우고 돌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릴 적에 개에게 물린 경험으로 동물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저의 베프가 커네티컷에서 뉴욕까지 손바닥만한 강아지를 애지중지 데려와서 생일선물로 주었을 때, 그 강아지를 조심스레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올 때 제 속으로 파고드는 그 꼬물 꼬물거리는 느낌은 저와 티크바를 이어주는 생명의 교감이 어머니의 긍휼심으로 승화되어 강아지를 딸로 키우게 되었습니다. 입양을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체험은 한 존재의 아름다움이, 경이로움이 내 존재 속에 침범하여 나를 변화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열정이고 이를 에로스라고 부릅니다. 사람의 영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열정, 힘을 지니기에 에로스는 영성적 힘을 지닙니다.

 

오늘 읽은 본문들은 에로스가 사랑의 영성으로 승화되어 죽음보다 강한 힘임을 보여줍니다. 여러 가지 사랑 중에서 에로스 사랑을 맘껏 노래한 아가서는 86절에서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고 합니다. 책 전체를 생가해볼 때, 아가서 86절이 말하는 죽음처럼 강한 사랑은 흔히 알려진 그리스어의 세 가지 사랑, 아가페, 필로스, 에로스 중 어느 단어일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가서 86-7절에 쓰인 사랑은 히브리어로는 아하바,’ 그리스어로는 아가페입니다. 86절을 제외한 다른 본문에서 나의 사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는 도디아델피도스 모우(ἀδελφιδς μου)’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가서 전체가 묘사하는 사랑은 성애적 열정, 우리가 생각하는 에로스이지만 이것이 죽음까지 감수하는 열정과 영성적 힘일 때는 아가페로 승화됩니다.

 

함께 읽은 요한복음 159-14절에 나오는 모든 사랑또한 아가페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예수님께서 심판을 받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처럼 던지신 말씀인데,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사랑, 친구(필로스)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 모두 아가페인 것입니다. 연인을 향한 성애적 사랑도, 친구를 위한 우정 어린 사랑도, 신을 향한 신실한 사랑도, 인간을 향한 신의 숭고한 사랑도 죽음을 각오한 열정, 즉 모두 아가페의 영성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에로스가 욕정으로서 부도덕한 탐욕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에로스는 아가페로 이르는 영성의 힘이 될 수 있음을 아가서는 보여줍니다.

 

두 번째 QBC를 통해 새로이 배운 것은 근본적인 같음을 찾고, 인간은 태초의 한 몸을 이루려는 안드로진적 이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에로스의 본질로 이해하는 퀴어적 관점이었습니다. 아가서에서 연인은 서로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미의 찬사가 여러 곳에 나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느낌입니다. 여성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스러움과 멀고, 남성 역시 그렇습니다. 전체적인 몽타주는 균형과 조화와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남녀 연인의 모습에 같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성애를 격하게 반대하고 논의구조조차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국 상황에서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로 커밍아웃 하는 것이 선천적인 성정체성에 근거한 것 때문이라는 논리를 폅니다. 이럴 때 양성애자들은 지조 없는 부류의 인간으로 동성애자들에게도, 이성애자들에게도 외면당합니다. 그러나 에로스가 같음을 향한 추구가 그 본질이고, 한 몸이 되기 위한 열망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퀴어젠더를 생물학적 선천성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러있는 선택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인식하게 해줍니다. 그렇지만 에로스가 사랑의 영성(아가페)으로 승화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에로스가 모두를 대상으로 열려있는 경험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에로틱한 자율성을 통제합니다.


3. 에로스와 사회통제

 

아가서에는 에로틱한 자율성을 통제하는 사회제어기제가 세 등장인물로 대변되고 있습니다. 야경꾼, 오빠들, 그리고 어머니가 그들입니다.

 

슬람미 여자는 정신없이 애인을 찾아 거리를 배회하다가 야경꾼들을 만납니다(3:1-3). 그런데 두 번째로 언급된 야경꾼들과의 만남(5:7)에서 그녀는 순찰하던 야경꾼들에 의해 발가벗겨지고 강간당합니다. 야경꾼이 복수로 나오는 것은 윤간의 가능성도 암시해줍니다. 여성시민을 보호해야하는 남자, 그것도 공무원들이 오히려 그녀를 야만스럽게 공격합니다. 공권력의 폭력과 남성들의 성폭력에 대해 사회와 법은 종종 여성을 성적 무법자로 치부하고 남성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할 길을 찾습니다. 강간죄를 다룰 때 여성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얼마나 강하게 저항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 역시 성적 약자를 지켜야할 사회와 법이 오히려 이들에게 폭력을 행하는 주체로 돌변함을 너무 쉽게 봅니다.

 

아름다움으로 인해, 존재의 경이와 교감으로 연결된 성애적 관계 중에서 특별히 젠더퀴어들은 퀴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중에게 당하는 비방과 분노, 조롱, 위협, 구타, 언어폭력, 혐오, 살인 등은 야경꾼으로 상징되는 사회통제 기제 속에 고통 받으며 살아갑니다. 시민으로서 보호받아야할 당연한 권리를 헌법에서부터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두 번째 통제기제는 오빠들입니다. 사회 혹은 국가를 이성애적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기초로 하는 결혼제국으로 비유하는데, 여기서 여성이 이등시민이라며, 미혼여성은 아직 시민권을 받지 못한 영주권자, 퀴어젠더는 불법자, 법권리 침해자로 취급받습니다. 오빠들이란 결혼제국을 보존해가고 지키는 기득권자들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오빠들은 근본적으로 난잡하지 않은 성적인 자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유로운 성은 난잡한 성과 동일시됩니다. 89절에서 오빠들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누이가 성벽이라면

우리가 은으로 망대를 세워 줄 것이다.

누이가 성문이라면

우리가 송백 널빤지로 막을 것이다.

 

오빠들은 그녀가 선택하는 사랑의 자유를 제한하고 행복한 삶이라는 조건의 명분 속에 가두려고 합니다. 킹은 이 오빠들이 사회적 안정, 경제적 안정, 가계의 지속 같은 이해관계에 인간의 에로스를 종속시키려는 모든 사회 문화적 세력을 대표한다.’고 해석합니다. 오빠들은 우리 집안에 동성애자는 용납될 수 없다며 사랑하는 가족보다 사회적 체면과 지위가 우선인 많은 이들을 대변합니다.

 

끝으로 아가서 여인의 자율적 성을 통제하는 중심에 어머니가 있습니다. 69절은 그 딸은 어머니에게 사랑스런 딸 // 흠 없는 딸이라고 묘사합니다. 어머니에게 딸은 사랑스럽고 소중하지만, 동시에 가정적이고, 정숙하고, 순결해야합니다. 조건을 잘 갖춘 애인이라면 모르지만 조건에 맞지 않는 애인으로 대중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할 때 딸은 어머니만은, 이라는 기대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 어머니는 사랑하지만 딸과 애인을 거절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지만 받아줄 수도 있는 긍휼심을 가진 사회구성원의 연대가능한 자들을 대표합니다.

 

딸은 애인을 어머니 집으로 데려가고 싶지만 어머니로부터 환영받을 것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녀는 애인을 어머니의 집으로 데려가 환영하는 것을 꿈으로만 꿉니다(8:1-2). 그럼에도 이 여인에게 어머니는 태에 생명을 품듯 존재를 품고, 화해시키는 산파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기대고 싶은 벽으로 남아있습니다. 벽도 밀면 문이 된다는 책 제목처럼 이 딸은 어머니가 벽이 아닌 문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QBC 저자는 퀴어인이 자신의 부모님, 그리고 교회 속에서 이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4. 혐오를 조장하는 데 앞장서는 한국교회

 

사회의 기준을 파기한 연인의 에로틱한 자율성을 대하는 세 인물 중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 교회는 누구인가 잠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셋 중에 나는 누구인가는 이성애적 가부장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중에 이 기준을 가장 파격적으로 깬 동성애자들의 에로틱한 자율성을 나는 어떻게 대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기독교총연합회로 대표되는 한국교회는 야경꾼이기를 자처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독교총연합회의 반동성애 운동이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한국 교회가 성수자들을 향해 성정체성 자체를 로 규정하고, 차별금지법에 성적지향 조항을 넣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을 위한 교회 목회자들을 향한 마녀사냥을 이단의 이름으로 거침없이 무례하게 저지릅니다. 작년 몇몇 교단은 총회 때 성소수자는 물론 이들을 옹호하는 자는 신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교직원에서 해임될 수 있으며, 교회 임직에 임명되지 못하거나 파면될 수 있다는 교회법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지난 11525명의 충남도의원들(자유한국당 24, 국민의당 1)이 충남인권조례폐지 조례안을 발의하고 충남지역 기독교총연합회가 앞장서서 이 발의안을 지지하는 시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에로스 사랑은 어느 존재의 대상에게 열려있는 인간의 소중한 감정이고, 그 대상이 사회가 타부시하는 동성과의 교감으로 왔을 때 이를 순간의 느낌으로 희석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존재를 걸고 지켜야하는, 그래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커밍아웃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해 교회가 관심할 것은 그 사람이 에로스 사랑을 누구를 대상으로 느끼고 발전시키고 있는가를 통제하고 관리할 것이 아니라, 에로스, 필로스, 아가페의 다양한 사랑의 동기가 파괴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긍휼과 의를 향한 열정으로 확장하며 이를 위해 죽음보다 더 강한 힘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즉 에로스를, 필로스를, 영성적 힘으로 인지하고 이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품고 함께 해주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새길교회가 야경꾼이나 오빠가 아니라, 내 기준에 다를지라도 이들을 품고 그들의 선택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영성으로 발전하도록 지켜보고 함께 걸어가 주는 어머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침묵으로 묵상하십시다새길로고.JPG



*각주

1) 사랑은 그리스어 아가페에 대한 번역이다.

2)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향연왕학수 옮김 (서울: 신원문화사, 2006)

3) 위의 책, 121.

4) 위의 책, 123.

5) 위의 책, 136.

6) Carter Heyward, Touching Our Strength: The Erotic As Power and the Love of God (Harper San Francisco, 1989)

7) Christopher King, “Song of Songs,” in ed. Deryn Guest et al. The Queer Bible Commentary (London: PCM Press, 2006), 356-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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