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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경일


“<1987>, 교회의 주소

(잠언 21:3, 마태복음서 23:37~39)

2018121

주일예배

정경일 형제(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주께서는 정의와 공평을 지키며 사는 것을 제사를 드리는 일보다 더 반기신다.]

- 잠언 21:3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보아라, 너희의 집은 버림을 받아서, 황폐하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하고 말할 그 때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못 볼 것이다.]

- 마태복음서 23:3739 -

 

 

미안함

 

영화 1987보신 분들 많으시죠? 저도 새해 첫날 보았습니다. 그날이 휴일이긴 했어도 1987을 상영하는 집 근처 극장에서 표가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개봉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600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게다가 청소년·청년층부터 중장년·노년층까지, 여러 세대의 고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어 가히 국민영화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는 1987이 특정 세대의 자폐적 후일담 영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는 모든 세대의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임을 말해줍니다. “책상을 치니 하고 죽었다.”는 궤변을 공식발표로 내놓을 만큼 무지막지한 독재의 억압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에, 민주주의의 여린 싹을 틔워낸 이들도 소수 비범한 혁명가들이 아니라 영화 속 대학생 연희처럼, 두려워하고 회의하면서도 역사의 광장에 뛰어든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고마워해야 할 1987의 진정한 주인공은 무수한 연희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1987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1987년의 젊은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였습니다. 그 시대의 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으로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 후 지금껏 저는 그리 잘 산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만약 1987년 이후에도 제가, 그리고 우리가, 그 시절 가졌던 믿음과 희망을 그대로 갖고 살았다면 오늘의 세상은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세월호 사고는 있었을지 몰라도 세월호 참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가난은 계속 존재했겠지만 이토록 불평등하고 이토록 갑질이 판치는 세상은 아니었을 겁니다. 청년들은 세대적 특성인 불안을 느꼈겠지만 ‘n포세대’, ‘흙수저’, ‘실신세대’, ‘지옥고’, ‘헬조선같은 참담한 처지로까지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회적 아픔은 계속 있었겠지만 그 고통을 함께 나눌 공동체가 있어 이렇게 외롭고 괴롭진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젊은 나에게, 그 시대의 젊은 우리에게, 그리고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부끄러움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한 시민으로서 느낀 것이 미안함이라면, 한 종교인으로서 느낀 것은 부끄러움입니다. 영화 1987은 오늘의 교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너무 명시적이어서 의도와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을 만큼, 영화는 불교 사찰, 천주교 성당, 개신교 교회를 큰 비중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당시의 종교가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중요하게 기여했음을 나타냅니다. 특히 개신교 교회의 역할이 컸습니다. 실제로 5공 독재정권이 받아쓰기보도지침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야만적이고 노골적인 경찰 폭력으로 민주세력을 억압하던 시대에, 가난하고 약하고 억울한 이들이 교회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고 얻었습니다. 영화 1987에 나오는 명동 향린교회는 6.10 민주화운동의 물꼬를 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발기인 대회가 열린 곳이고,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종로5가 기독교회관은 1970년대부터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양심수 가족이 찾아와 불의를 폭로하고 정의를 부르짖던 곳이었습니다.

 

1987115, 박종철 열사의 죽음 소식이 최초 보도되었을 때도 그리스도인들은 즉각적으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학생들은 바로 다음날인 116, 박종철 형제의 죽음을 애도하며 살인정권의 회개를 촉구하는 철야 기도회를 개최했고, 122일에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와 함께 기독교회관에서 추모예배를 드리고 가두시위에 나서다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있었기에,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또 하나의 의문사로 남지 않고, 민주주의의 불씨로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그 시대의 교회는, 오늘 함께 부른 찬양의 노랫말처럼, “우는 자, 눌린 자의 피난처요 의지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의 기억은, 지금의 제가 젊은 시절의 저에게, 오늘의 우리가 어제의 우리에게 미안함을 느끼듯이, 교회에 대한 자랑스러움보다는 부끄러움을 더 느끼게 합니다. 1987년 이후의 교회가 1987년의 교회만큼 사회적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책임 있게 참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억울하게 고통 받는 이들은 더 이상 교회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사정은 가톨릭의 명동성당도 불교의 조계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의 종교, 오늘의 교회는 고통 받는 이들의 피난처와 의지처가 되어주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과 성소수자처럼, 이 시대의 고통 받는 이들이 오히려 교회에서 상처 받고 교회를 떠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고통 받는 이웃을 위로하고 환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위협하고 적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신 고통 받는 이들이 찾아가는 곳은 크레인, 굴뚝, 송전탑 같은 고공이나 광화문 광장 같은 거리입니다. 안전하고 안락한 교회 안에서 홀로 누릴 복을 간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교회 밖 위태로운 고공이나 차디찬 거리에서 제발 함께 살자!”고 외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와 희생자들의 절박한 호소 중, 하나님은 어느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실까요?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웅장한 교회건물을 지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는 그리스도인들과,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고통 받는 이웃과 연대하기 위해, 실정법을 어겨야만 하는 이들 중에, 하나님은 누구를 더 반기실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잠언 기자는 분명히 답해 줍니다. “주께서는 정의와 공평을 지키며 사는 것을 제사를 드리는 일보다 더 반기신다.” 하나님은 제사나 예배나 기도 같은 종교적 행위보다 정의와 공평을 위한 사회적 행동을 더 반기시고 더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바람은 들어도 되고 듣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게 아닙니다. 예언자 아모스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폭풍처럼 격렬한 명령입니다.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아모스 5:2124)

 

하나님의 이 말씀을 오늘의 교회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예수의 주소

 

영화의 끄트머리, 198779일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문익환 목사님이 스물여섯 명 열사들과 5.18 광주 영령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전율시키고 감동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장례식 바로 전날 78일에 석방되셨습니다. 그리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이 일흔 살 먹은 노인인 당신이 이제 살 만큼 인생을 다 산 몸으로풀려나와 스물한 살 젊은이의 장례식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며, 감옥에서 나온 것이 너무 부끄럽다면서, 그렇게 전태일 열사로부터 이한열 열사까지 스물여섯 명 열사들의 이름만 목이 터지게 부르셨던 겁니다.

 

아무런 종교적 수사가 없는 문익환 목사님의 절규가 제게는 그 어떤 기도보다도, 그 어떤 설교보다도 더 종교적으로 들렸습니다. 정의를 위해 하나 뿐인 목숨을 잃거나 바친 열사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1970년대부터 고통 받는 이들 곁에서 늘 함께 아파하셨던 문익환 목사님이셨기에 가능한 공감의 사건이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1976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처음 투옥되신 이후 돌아가실 때까지 여섯 번, 113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셨습니다. 목사님은 옥중에서 어머니 김신묵 권사님에게 보내신 한 편지에서,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인 예수의 주소는 부유하고 힘 있는 이들이 사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사는 갈릴리라고 쓰셨습니다. ‘교회의 주소는 예수의 주소인 갈릴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의 주소는 어디일까요? 예루살렘일까요 갈릴리일까요? 이 물음이 영화 1987을 보면서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제가 느낀 부끄러움의 이유였습니다.

 

1987년의 한국교회는 민주주의를 길러낸 요람이었지만, 1987년 이후의 한국교회는 민주주의를 지켜낸 요새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고통 받는 이들의 땅인 갈릴리가 아니라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의 소굴인 예루살렘을 영구주소지로 삼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예수의 주소가 아닙니다. ‘갈릴리 사람예수는 예루살렘의 파산을 선고하며 저주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보아라, 너희의 집은 버림을 받아서, 황폐하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하고 말할 그 때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못 볼 것이다.
(마태복음서 23:3739)

 

예수는 예루살렘에서는 다시는 당신을 못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에 남겠다고 고집하는 교회의 주소가 어떻게 예수의 주소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예수의 교회일 수 있을까요?

 

1987년의 예언자적 교회들은 정의와 공평의 길이 되어 주었습니다. 새길도 그런 길 중 하나로 시작했습니다. 권력의 땅 예루살렘을 떠나 고통의 땅 갈릴리로 가는 길 위에서 새길이 탄생한 것입니다. 새길교회의 출생지요 본적지는 예수의 주소인 갈릴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더 깊은 부끄러움 속에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다시 갈릴리로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 사이, 우리는 1987년 여름의 열기를 다시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어제의 연희들이 다시 광장으로 나왔고, 그들과 함께 오늘과 내일의 연희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이 시대의 시민은 민주주의의 원래 주소지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교회도 교회의 본래 주소지, 예수의 주소지, 갈릴리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1987년엔 교회가 사회의 길이 되어 주었다면, 오늘날은 사회가 교회의 길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이 시대를 향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참회하고, 시민이 촛불로 내고 밝혀준 길을 따라 다시 예수의 주소, 교회의 주소인 갈릴리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새길교회와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의 소명도 겸손히, 용기 있게, 갈릴리로 가는, 갈릴리로 돌아가는 작은 길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갈릴리에서,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예수를 만나는 기쁨을, 우리 모두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그 때에 예수께서 그 여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나의 자매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
(마태복음서 28:10)

 

주님, 우리를 당신이 계신 갈릴리로 이끄소서.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게 하소서.

갈릴리 사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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