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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만자


 

 

받침대를 흔드는 위험한 개혁: 한국 여성 종교개혁자들

(갈라디아서 3:28, 창세기 1:26~27)

2017108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 종교개혁 사상가들의 삶과 뜻을 배우는 예배

최만자 자매(새길교회 신학위원)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갈라디아서 3:28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 창세기 1:26~27 -

 

 

1. 들어가면서

 

추석명절 잘 지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명절이 여자에겐 중노동, 남자에겐 쉬는 날이 된다고 한 말은 진부한 것일까요? 한국여성민우회가 1999년과 2017년의 <성차별 인식조사>를 했는데 결론적으로 열여덟 해 동안 여성들이 느끼는 성차별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1999년에는 아들 하나 열 딸 안 부럽다는 남아선호 사상이 지배했으나 요즘은 딸 바보 아빠들이 넘치는 세상이라고 여성 상위 운운하지만, 근우회의 취지문처럼 그런 현상은 부분적일 뿐, 청산되지 못한 구시대적 성차별 인식은 겹겹이 쌓였고 산성처럼 견고한 것이 현실입니다. 여자 운전자에게 집에서 애나 보지, 여자가 웬 운전을 하냐’, 회사에서 미스 김, 커피 한 잔’, ‘여자가 공부는 뭐 하러 해, 시집만 잘 가면 되지등의 성차별 언어가 1999년에 난무했다면, 2017년엔 가정에서는 오빠 밥 좀 챙겨줘라’, 일터에서는 결혼은 언제쯤 할 건가, 우리는 오래 일할 사람 구하는데’, ‘명절에 시댁 방문 후 친정 가는 것이 왜 시어머니의 특별한 배려로 생각해야 되는가? 왜 눈치 보며 가야하는가?’ 등으로 1999년이 막연히 남녀차별을 말했다면, 지금은 구체적 상황과 일상적 생활 속에서 그리고 본질적 의식에서 성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 내용 중에 충격적이었던 것은 교수가 남녀 학생들에게 미래에 결혼 안할 사람을 물었는데, 손을 들었던 여학생에게는 저 출산 사회에서 애를 가지지 않으려는 파렴치한이라고 했고 남학생에게는 자신의 꿈을 꾸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 살지 못하고 여자는 이래야 돼라는 가부장 사회의 굴레에 속박되어 사는 성차별은 아직도 우리 삶 속에 뿌리가 깊습니다. 여성을 인간존재가 아니라 가사노동, 육아, 출산도구, 성적대상, 예속적 존재로 보는 성차별의 뿌리는 이처럼 우리 삶 속에 아직도 깊고도 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차별’, ‘성평등’, ‘성폭력’, ‘여성혐오등과 같은 문제들을 이야기 할 때, 무언지 모르게 불편함을 느낍니다. 남성은 물론 여성들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성차별이 가부장 사회에서 당연한 질서로 깊게 일상화 되었고,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질서가 여성을 부당하게 차별, 억압, 지배, 통제하고 있음에도 그 모순을 깨닫지 못합니다. ‘일상이란 불편함도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마약 같은 것입니다. 그 일상을 깨고 세상의 단면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사건이 없으면 일상에 가려진 본질을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앞의 교독에 나온 올랭프 드 구즈는 1791여성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선포했는데 그의 이 날카로운 운동은 결국 그를 단두대의 이슬이 되게 하였습니다. 정당화된 일상의 진리를 깨는 일은 이토록 위험합니다. 그럼에도 현실을 흔들어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어야만 세상에 정의가 세워지고 억울한 이들이 한을 풀고 자유와 해방을 누려 온전한 인간, 함께 잘사는 세상이 될 수 있기에 불편하고 위협적이라도 소리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근우회의 선배들이 앞길이 험악할지라도 일천만 자매의 힘으로 우리의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자는 결의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벨 훅스는 페미니즘은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는 투쟁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메리 데일리의 교회와 제2의 성에서 차용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여성들을 상징적으로 이상화하여 복종적이고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부드럽고 온순하고 모성적인 존재라 하면서 그것이 본성적인것이라는 영원한 여성 신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그런 본성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질서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데일리는 이것이 가부장적 흉상을 떠받치는 튼튼한 받침대라고 합니다. 철학, 심리학, 시문학 등 모든 영역에서 이 논리를 만드는 자들을 가부장적 질서라는 흉상을 떠받치는 받침대를 파는 상인들이라며 비판합니다. 이런 상징적 여성 본성은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자아성취를 막고, 또한 여성이 한 성인으로서 합당한 사회참여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위선을 저지른다고 설파합니다. 보봐르는 이 억압이 속임수이고 종교는 속임수의 도구라고 했습니다. 하버마스의 생활체계 이론에서 보듯이 여성 상징은 신념체계를 통해 지속되고 강화됩니다.

데일리는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으로 여성 본성을 규정하는 것(결혼과 가정과 공적 생활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계급은 신이 성별한 것, 아놀드 신부)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까닭은 첫째, 비판적인 이해가 수반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 뜻에 존중과 경외로 응답하게 되는 감정적 반응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다양한 도전에 대해 개방적인 토론을 막아버린다는 것입니다. 곧 신학도 진화하고 문서 해석이나 문제에 접근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고 또 새로운 통찰이 필요하며 동시에 여성에 관한 견해도 당연히 변화합니다. 그런데 이 다양성을 하나님 뜻이란 획일적인 가면 뒤에 감추어 불변의 이념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셋째, 무조건 믿는다는 믿음의 순진한 단순성을 갖게 하여 실체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사고의 다른 속임수에 관한 통찰을 부족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심의 모범은 마리아이고 그 믿음이 사람들의 현실적 이해와 정상적 일상생활, 그리고 대인관계 등을 단절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데일리는 이것을 정신분열증적 상황이라 칭합니다. 다원성을 고려하지 않고 양극성만 보고 개별성은 못 보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데일리는 가톨릭교회의 교리들을 중심으로 그 받침대들을 분석했지만, 온 세상에 이러한 받침대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일깨워 줍니다. 저는 성차별이 너무 만연한 기독교 안에 이 받침대 흔들기가 강하게 일어나야 하고 신학적 성찰이 더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종교개혁 500주년의 실상과 의미를 찾는데 종교개혁에서 여성은 어떠할까요?

 

 

2. 종교개혁과 여성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도 중세사회 일상에 정당화 되었던 가톨릭교회의 억압적 권력을 뒤흔들어 종교의 본질을 회복하고 자유롭고 해방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려 투쟁한 날카로운 받침대를 흔든 사건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단순히 신앙의 영역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갈망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농민들, 단순 기능공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과 여성들은 억압이 극복되는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면서 개혁의 대열에 열광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막강한 제후들의 보호를 받았던 루터는 농민들을 철저히 배반했고 개혁과정에 헌신적으로 참여하였던 여성들에게는 해방의 실현을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종교개혁은 성평등의 길을 열지 못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루터나 칼뱅 모두 남녀는 평등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터는 여성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면서 여성의 종속을 강조했고 그것이 죄의 결과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성들은 가정을 돌보고 아이 낳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남성들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창조주를 기쁘게 해드린다고 말합니다. 칼뱅은 여성은 남성의 조력자이고 남성의 뒤에, 남성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창세기의 창조 순서에 따라) 남성에게 복종하도록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동등하지만 창조 질서에 의해 여자는 복종해야 한다면서 남녀 관계에 대한 가부장적 받침대를 그대로 지지합니다. 특히 여성관점에서 종교개혁을 자세히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종교개혁이 여성의 삶에 미친 큰 영향은 결혼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한 것입니다. 중세교회가 성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결혼을 평가절하 하였고, 사제와 수녀의 제도 위에서 육체적 순결을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여성의 성, 곧 육체를 비하하여 성 억압적이고 여성 삶을 위축시켰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결혼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성 억압을 벗어나 여성의 존재를 인정받게 되는 긍정적인 면을 갖게 합니다. 그럼에도 한편 결혼에 대한 고양이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했고 여성을 남편에게 예속적 존재, 의존적 존재로 인식하게 해서 여자는 결혼을 해야만 존재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는 더 철저한 가부장적 질서 안에 여성을 가두었습니다. 개신교는 현모양처를 강조함으로 오히려 중세의 수녀원 여성들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며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더욱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부장적 관념의 변화 없이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만으로 종교개혁 안에서 성평등은 불가능했습니다.

 

2) 그럼에도 종교개혁으로 인해 여성들이 근대여성운동을 일으키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수녀원의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사회일원으로 살아가는 확장된 삶을 살게 되어 성평등의 발판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이끌어 나간 남성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모임에 참여한 부인들, 연고를 가진 여성들이 개혁활동에 열렬히 참여했고 여성들의 교육의 기회도 만들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디아코니아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특정 여성만 교육받던 중세적 현상을 넘어 보편적 다수가 교육받고 활동하여 여성들의 삶이 확장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결혼이 성사에서 배제되어 이혼의 가능성도 열렸다는 것입니다.


3) 그런데 루터의 오직 성서라는 주장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등의 바울서신을 근거로 여성들의 교회에서의 리더십을 제한, 억제하여 성차별을 만들고 성평등의 길을 막았습니다. 루터의 오직 성서의 정신은 물론 중세 성서를 독점한 사제 권력을 무너뜨리고 오직 성서에 권위를 두자는 것이었지만 이는 성서문자주의를 강화하는 근거가 되어 종교개혁 당시는 물론 오늘의 개신교회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권위로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성서문자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기독교 안에서 성평등의 길은 없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이 평등은 하되 질서가 있어야 하며 여성이 남성의 지배를 받는 것이 창조질서라는 정의를 내렸던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성서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

 

4) ‘오직 성서도 그러했지만 오직 은총의 종교개혁 신학도 다시 해석되어야 합니다. ‘은총이 자기부정이라고 하는 전통이해에 대해 여성경험에서 보자면 여성들은 늘 자신을 부정하는 경험일 뿐이므로 오히려 자기긍정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5) 종교개혁이 진행되던 당시 성평등이 실제로 실현된 것은 재세례파의 종교개혁운동이었습니다. 재세례파는 진정한 세례는 자기의 신앙고백에 바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 혁명적 경향을 가졌습니다. 여성들에게 복음의 선포권을 주고 여성들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교회인도와 공헌을 하였기에, 남자들보다 두 배로 많은 여성들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이 집단은 반()성직자주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교회로 돌봄과 부엌일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상호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질서와 제도로 변질되고 자율적 여성들의 위치는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종교개혁의 성평등의 길을 찾으려면 이 재세례파의 여성 활동을 추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6) 만인사제론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중심주의와 사제중보주의를 비판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오직 사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누구나(교황, 사제, 군주, 농부, ) 하나님 말씀을 동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고 또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지식을 알아 가는데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웅변합니다. ‘만인사제야말로 종교개혁의 평등적 정신을 웅변하는 신학입니다. 그러나 개혁교회 안에서 설교의 기능을 강조하였고 영적 지도력을 가진 그룹이 특수한 위치를 점하게 되면서 일반 신도들은 무식한자, 육신에 속한 자, 낮은 위치의 사람들로 구별됨에 따라 성직자와 평신도의 위계체계가 확립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개신교 역사는 남성만의 만인사제의 길을 만들어 온 반()종교개혁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이루어졌던 평등한 질서, 갈라디아 328절의 모든 차별철폐의 혁명적 신앙고백은 기원 2세기부터 가부장화 되었고 중세에는 그 정신이 아예 사라졌으며 종교개혁에서도 그 정신은 회복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성직 수여를 거부한 그 자리에서 개신교 성평등의 길을 찾는 여성들의 투쟁의 역사가 싹트고 발전되었습니다. 그 현장을 한국교회 여성역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3. 여성안수 투쟁운동의 현장: 한국 교회여성들

 

우리나라에 전래된 기독교는 조선후기의 사회변동에 혁명적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창세기 126~27절에 근거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고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해방경험을 갖게 한 기독교의 힘이었습니다. 이 사상이 당시의 인간관과 사회관에 끼친 영향은 봉건 신분사회 해체의 동력과 새로운 공동체 창출의 윤리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반상, 적서의 구별, 남녀의 구별이 없음을 핵심 메시지로 선포하였습니다. 남녀칠세부동석, 절열관, 삼종지도, 남존여비 등의 여성억압적 유교윤리관에 억눌렸던 당시 여성들은 여자도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선포하는 기독교에 매료되어 예수교로 몰려들었고 여성들은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갖는 공간으로서의 기독교에 몰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집에서 늘 부엌에서 밥을 먹던 여성이 자신의 상을 차려 들고 방으로 들어오면서 예배당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 하였으니 나도 이제는 방에서 모든 식구와 같은 상에서 밥을 먹겠다고 하였다는 일화입니다. 만인평등 사상의 힘을 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기독교를 통해 많은 여성지도력이 출현하게 되었고 수많은 전도부인들이 초기 한국 교회의 여성지도자로서 맹활약하여 한국 교회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1907년 독립노회가 성립되기 이전 기독교 전래 초기 20여 년 동안은 성직제도가 없었고 교회 일을 평신도들이 협력하여 이루어 나갔습니다. 장로가 있었지만 교회운영에 있어서는 성 차별이 없었습니다. 여성들이 노방전도도 하였는데 구경하러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립노회 조직 이후 목사가 배출되면서 성직제도가 확립되고 성차별이 극대화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성차별은 여성안수제도 불허에서 나타났고 동시에 이 자리는 여성안수 실현을 위한 투쟁으로 한국 기독교 개혁운동의 발화지점이 되었습니다. 여성해방에 영향을 미친 기독교가 여성억압적 종교로 변하게 된 요인은 첫째, 유교의 가부장적 질서의 바탕과 둘째, 서구 근본주의 신앙의 이식이 결합된 한국교회 현실에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초기에는 선교사들의 주도 아래 웨스트민스터 신경과 소요리문답을 그대로 채용했습니다. 초기의 선교사들은 복음주의 경건주의자들로 근본주의적 신학의 배경을 가졌습니다(성서무오, 하나님의 절대성, 삼위일체론, 하나님의 창조, 인간창조와 타락, 그리스도의 속죄, 성령의 말씀, 예정론, 성례, 신자의 본분, 부활과 심판 등의 교리 강요). 근본주의는 진리의 획일성, 절대성, 가부장적 가족상 고착, 통제적 구조와 가치 수호 등의 특성을 갖습니다. 이 신앙에서는 성평등의 신앙적, 신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1907년 조직된 노회는 성직자, 곧 목사와 장로의 자격을 성찬에 참예하는 남자로 한정하였고 그로부터 교회는 여성 안수 절대 불허, 여전도인에 대한 임금차별과 착취, 비인간적 대우의 성차별적이고 여성억압적인 행태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부터 여성들은 교회 내 성차별을 인식하고 여전도인의 임금인상과 인격적 대우, 여성들의 치리권을 요구합니다. 1930년부터 여성안수에 대한 여성들의 투쟁이 시작되고 이 주제의 논쟁이 벌어집니다. 1932년에 여성 장로선출과 기도권을 문제 삼았고 1933년 제22회 총회에서 함남노회 여신도 103인의 연서로 여성안수 청원서를 제출하지만 물론 총회는 이를 묵살했습니다. 1934년 역시 함남노회 여신도들 639명이 연서하여 23회 총회에서도 또 청원서를 제출합니다. 그리고 이때 성진교회 담임하던 김춘배 목사가 기독공보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은 이천여 년 전의 한 지방교회의 풍습일 뿐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라는 글을 썼고 총회는 박형룡 목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연구위원회를 열어 1년 후에 성서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국교회에 근본주의 신학과 프리스턴 신학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의 논쟁이 1920년대부터 전개 되었고 여성안수는 그 신학적 논쟁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성안수 실현운동은 1994년까지 이어졌고(1954년 예장과 기장 분리 후 기장은 1970년대 여성안수 실현), 1996년에 이르러서야 여성목사들이 배출되었습니다(예장통합).

근본주의 성서해석은 성서의 권위로 여성억압을 정당화하므로 여성해방의 공간은 없습니다. 성서의 가부장적 메시지로 여성의 평등, 자유, 능력이 억압당해 왔습니다. 1930년대 최영혜 회장을 비롯한 함남노회 여전도회 회원들, 그리고 김춘배 목사, 그 뒤를 이어 거의 매해 총회를 향해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여성안수를 위해 투쟁했던 수많은 여성전도사들과 여성평신도들이야말로 모두 견고히 쌓아올린 가부장적 질서의 받침대를 뒤흔든 종교개혁가입니다.

 

 

4. 여성들에 의한 한국교회 개혁운동

 

여성안수실현 투쟁에 이어 여성들에 의한 한국교회 개혁운동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여성신학 운동입니다. 그것은 한국 기독교 성차별적 종교를 흔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됩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여성신학은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을 범주로 한 신학을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서구 여성신학을 수용하게 된 한국교회 여성들은 교회 내 여성억압의 현실을 신학적으로 객관화하고 비판할 수 있는 인식론과 방법론과 언어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신학은 지금까지의 남성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신학, 성서해석, 전통, 상징, 교리, 언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여성신학이야말로 기독교내 성차별의 받침대를 완전히 뒤흔들어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서남동 목사는 뒤늦게 여성신학을 접하고 이것은 기독교 근본을 흔드는 중요한 신학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성신학의 기독교 개혁적 핵심주제는 첫째, 여성의 시각으로 성서를 새로 해석하기, 둘째, 기독교 상징의 재상징화, 셋째, 제도 개혁과 교리의 새로운 해석 등이라고 하겠습니다.

 

1) 여성시각의 성서해석

여성신학은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성서가 오래 전 구전으로부터 시작하여 기원 후 100년대의 기록들이 모인 책임을 밝히고 기록된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 문화의 배경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가부장적 기록임을 선포합니다. 고로, 성서에는 가부장제 사회가 가진 여성 억압적 배경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성서무오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성서 안에 있는 인간해방 사상을 또한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두 전통 곧 가부장적 전통과 해방적 전통을 찾아내어 여성의 경험에서 해석합니다. 그리고 성서가 구전되고 기록되고 편집되고 번역된 과정에서 가부장적 권력이 여성을 종속적 존재로 규정하고 지도력을 강등시키고 이름을 은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왜곡과 수정과 변형을 만들어 왔는가를 밝혀냅니다. 그래서 선포의 해석학, 의심의 해석학, 상상력의 해석학, 회상의 해석학 등 여성시각에 의한 해석학적 방법론들을 발전시켰고, 성서를 새롭게 읽은 해석들이 수없이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성 성서신학자들의 수많은 작업들 곧 여성을 억압하는 성서본문들의 분석과 재해석, 그리고 해방적 본문들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에 이경숙, 김경희, 최영실, 김호경, 박경미 등 1.5세대 여성신학자들의 작업이 활발합니다. 여성들은 성서가 여성의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살릴 때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가진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우리 상황으로부터 출발하여 전거로서의 성서를 보는 해석학적 순환을 주장하면서 곧 우리가 텍스트라고 말합니다.

 

2) 기독교의 재()상징화

여성신학은 매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한의 정의에 근거해 기독교의 아버지 하나님, 아들 예수 등 남성중심의 상징이 여성들의 영성을 남성 종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신의 상징을 재()상징화 할 것을 주장합니다. 나아가 여성신학은 모든 은유는 부분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무엇을 상징할 때, 그것은 인간 경험 한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따라서 상징은 부분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상징은 시대적, 상황적 영향 안에 있으므로 시대 부적합한 상징은 재()상징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절대 권력적, 제왕적, 지배, 통제적 신의 상징을 재()상징화해야 할 시대라고 합니다. 남성 신의 상징은 남성을 신의 대리자로 인정하게 하며(이는 여성안수 불허의 이유이기도 함) 신에 대한 복종이 여성에게는 남성에 대한 복종의 신앙심을 만들고 여성들로 하여금 복종의 영성을 내면화시키고 남성에 예속되는 영성을 스스로 인정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3) 여성안수

제도개혁은 주로 여성안수 문제에 집중됩니다. 안수의 실현운동은 앞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이유가 예수가 남자이고 제자들도 남자이며 성서가 여성은 잠잠하라고 했다는 등의 논리에 대해 반박합니다. 기독교의 중요성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본질이지, 예수의 성별이 본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에 대해서도 참 제자직 수행이 무엇인가가 중요하지, 그들의 성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성서 기록에는 오히려 참 제자직 수행은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새로운 성서해석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여성해방의 성서적 근거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남녀평등한 공동체 운영의 경험에 있다는 새로운 해석으로 도전합니다.

 

교리와 관습에서 보면 죄인성도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기독교인의 죄인으로서의 자기인식은 구원과 긴밀히 관련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고백은 모든 인간의 평등성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실존적 자기인식을 철저히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죄인 정체성이 원죄와 관련되면서 여성의 죄에 더 강한 책임을 씌웁니다(여자가 먼저 죄를 지었고 유혹했다). 여성을 유혹자, 도덕적 타락자로 지적하며 죄의 본성을 여성에게 가중시킵니다. 이숙진은 죄인이라는 자의식에 가부장적 시선이 작동되어 여성을 소극적이고 부정적 존재로 자의식을 가지게 하여 여성들의 순종적 주체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를 성도라 부릅니다. ‘성도라는 정체성은 타자와 구별되는 거룩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는 순수한 자와 순수하지 않은 자라는 오염의 이분화를 만듭니다. 그래서 성도, 순수/이방인, 이교도, 오염이라는 도식을 성립시킵니다. 성도가 아닌 자들은 오염된 존재, 혼합된 존재, 위험한 존재, 이질적 존재 등 거짓과 불순이 연계됩니다. 이는 개신교의 타종교 인식으로 확장되어 기독교/타종교, 진리/미신으로 위계를 만들고 실제로 전통종교를 타파의 대상으로 멸시하고 억압했습니다. 이숙진은 이러한 타종교, 곧 미신의 자리에 전근대성과 여성성을 연결시켰다고 봅니다. 여성은 전근대적, 미숙함, 미신과의 친연한 존재로 해석하여 젠더를 매개로 위계구조를 만들었고 이 젠더로 위계를 신성한 법칙으로 내면화 시켰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보면 이 오염의 자리에 성소수자를 놓고 그들을 십자가에 못 박듯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을 근본주의 신앙이 생산하고 주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본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과 신비주의 신앙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여 이단 범주에 넣습니다. 나아가 여성을 교권, 설교권 등에서 배제하고 여성의 순종적 정체성 강화를 작동시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이 배제의 자리가 바로 남녀평등 담론을 생산해 내는 결정적인 저항의 거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성신학은 이러한 신학적 전개로 가부장 구조의 받침대를 흔듭니다. 많은 여성신학자들이 협력하여 여성신학을 발전시키는데 여기서는 다만 초기의 몇 분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4) 한국교회 개혁운동을 한/하는 한국의 여성신학자

한국의 여성신학 초기의 특성은 한국사회 여러 현장의 소리와 연대하여 여성신학을 전개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성안수, 호주제 폐지, 성폭력, 정신대 등의 제국주의 폭력, 가난한 여성, 여성 노동자의 문제, 분단의 현실에서 통일과 여성, 한국종교와 문화속의 성차별 등 다양한 한국여성 현실을 중심으로 성서를 읽고 여성신학을 전개하였습니다. 곧 초기 한국여성신학은 거의 대부분 우리 사회의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성서를 조명하는 우리가 텍스트'라는 해석학적 순환의 방법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에 초기 여성신학을 현장의 연결 속에 전개한 선배 신학자들은 박순경, 조화순, 이우정 선생입니다.


먼저 박순경 선생은 민족통일 여성신학을 전개했습니다. 그는 1945년 해방, 1950년 민족분단 등 민족문제와 함께 고난의 세월을 살아왔기에 분단된 우리나라 현실 타개를 위해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만남의 과제를 지니고 살았다고 합니다. 1972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통일운동에 본격적으로 합류합니다. 여성신학이 통일문제를 주제로 해야 하는 까닭에 대해 그는 여성신학이 평등의 문제로부터 참된 인간성 도출을 우선해야 하듯 민족평등의 문제가 한국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므로 여성신학은 통일신학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 분단의 역사는 하나님의 약자에 대한 특수한 사랑이 보편적 구원과 연결되는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여성신학은 한국교회와 교회여성, 한국 역사, 사회의 문제 상황, 한국민족 자체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90세가 넘은 지금도 책을 쓰고 계시는 영원한 학자요, 분단 극복을 위한 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화순 목사는 그야말로 몸의 신학', ‘노동신학', ‘삶의 신학'의 차원에서 여성신학을 살았습니다. 그는 산업선교에 몸을 바치게 되면서 한국적, 민중적, 여성적 신학을 고스란히 살아낸 신학을 실천하였습니다. 1960년대 달월교회 농촌교회 목회를 잘 하고 있는 즈음 노동하는' 산업선교 참여를 제의받고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신앙이다'라는 신념에서 노동하는 선교에 뛰어들어 1966년 동일방직에서 노동을 시작했고 산업선교를 시작합니다. 산업선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노동하면서 점차 노동자들의 최악의 열악한 상황을 실제 알게 되었고 가장 밑바닥의 삶에서 성육신 하신 예수를 다시 깨닫고 자신도 노동현실에 다시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남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 산업사회 노동현장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여성노동자를 위해 헌신한 몸으로 신학을 한 신학자입니다. 지금 강화도에서 노년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이우정 선생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셔서 그의 신학을 더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한국적 여성신학을 전개하기 위해 우리의 전통문화에 담긴 여성부정적 전통들을 찾아내어 비판함과 동시에 민중여성신학 정립에 관심을 크게 가졌습니다. 특히 속담(‘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여성차별, 비하의 대표적 속담)에 담긴 여성비하 문화가 얼마나 깊게 성차별에 작용했는가를 밝혀내고자 했습니다. 그의 글 중에 에밀레종 이야기를 민중여성의 한으로 연결하여 발전시킨 것, 그리고 향유를 부은 여인이야기를 여성적 그리스도로 재해석한 것 등 한국적 여성신학의 단초를 마련하였음을 기억합니다.

 


5. 개혁의 새로운 물결: 영페미 혹은 갓페미 운동

 

놀랍게도 지금 교회와 사회에는 페미니즘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들이 사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에서의 성차별에 분노하며 적극적으로 논쟁하는 넷페미’, ‘갓페미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많은 젊은이들이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기독교의 미래를 이끌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의 수많은 교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교권의 은폐작전과 교인들의 목사 보호활동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청년 사역자인데도 남자에게는 목회 안정을 위해 결혼을 적극 권장하면서 여자들에겐 결혼을 최대로 미루든가, 아니면 일을 그만두라는 식의 차별에도 분노합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권력과 결정구조에서 여성들을 배제하고 심방, 아이들 교육, 교회 뒷설거지 등 가사노동의 연장인 성격의 일들만 여성들에게 맡깁니다. 이에 젊은 여성들은 목사들의 말도 안 되는 성차별적 설교들을 이젠 멈추라고 소리 높입니다. 페미니즘이 기독교 진리와 반대되는 위험한 이단적인 것이라는 속임수를 이제 환히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 특이한 것은 이들 영페미, 갓페미라 칭하는 운동이 그동안 페미니즘과 결코 어울릴 수 없었던 보수교회들에서 불같이 타오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관심하며 이것이 사명이라고 소리칩니다.


이와 같은 젊은이들의 열정이 꺼지지 않도록 함께하는 연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왜 예수를 믿을까요? 한번 왔다가 가는 세상, 제대로 살기 위해 앞서 간 예수의 뒤를 따르기로 작정한 것 아닌가요? 예수는 창녀, 죄인, 세리, 어린아이, 여성 등 사회 변두리 인생들이 한 자율적 인간으로서 인권을 가지고 살아가게 힘을 주는 일에 자신을 다 바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예수의 뒤를 따라 모든 차별금지의 선언을 그리스도인으로 세례 받는 신앙고백으로 삼고 예수의 뒤를 따랐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차별-성차별, 소수자 차별, 장애인 차별 등-을 극복하는 것은 부패한 한국교회 개혁운동이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교회의 기본적 책임은 교리와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란 데일리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모두가 모든 차원에서 남성, 여성관계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나 자신이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겸손함으로 모든 인간을 동등한 존재로 서로 연결하여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차별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로 규정됩니다. 차별주의는 그리스도 밖에 있고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일상 속의 차별의 받침대를 흔들어 무너뜨리는 삶으로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를 바랍니다. 매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로 다짐한다는 새길의 신앙고백이 헛된 것이 아니기를 기원합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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