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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진관


 

 

서남동, 당신의 뒷모습만 봅니다

(출애굽기 33:17~23)

2017101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 종교개혁 사상가들의 삶과 뜻을 배우는 예배

권진관 형제(새길교회 신학위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마.” 그 때에 모세가 "저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의 모든 영광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의 거룩한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 나는 주다.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너는 나의 옆에 있는 한 곳, 그 바위 위에 서 있어라.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틈에 집어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려 주겠다.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출애굽기 33:17~23 -

 

 

추석의 긴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교인 분들이 이미 여행을 떠났고, 앞으로 여행을 떠나실 분들도 있겠습니다. 연휴의 휴가 기간이 여러분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고 서남동 교수님의 신학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서남동 선생님은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제가 학생운동으로 감옥에 가고, 대학교에서 쫓겨나 방황하고 있다가, 그러는 중에 공장에도 가서 노동을 했습니다. 그때 안병무 선생이 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에서 원장으로 계셨는데, 안 선생님의 노력으로 우리들 같이 감옥에 갔던 학생들을 모아서 신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장로회 총회에서 우리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는 위촉생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공부하게 되면서 저는 신학을 전공하는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학생이었고, 1974년 유신정권하에서 민청학련사건으로 잡혀 들어갔고, 그때만 하더라도 제가 신학자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신학과 교회를 좋아했지마는 그것은 교인으로 좋아했던 것이지, 이것을 전문적으로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신학교수로 은퇴할 정도로 지난 30~40년을 신학에 종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오묘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존이 의식을 결정하고, 시대가 우리의 계획을 바꿔놓았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년 후에 한국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세상에 저밖에 없을 것입니다. 신학을 위해서 미국에 유학가게 된 것도 거의 계획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저를 신학하는 사람으로 쓰고자 계획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남동 선생은 안병무 선생 후임으로 선교교육원 원장이 되셨습니다. 제가 선교교육원에서 공부를 시작하던 때가 1977년 가을이었습니다. 저는 1976년경부터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영등포 산선의 지도를 받으며, 문래동 주물공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다른 공장으로 넘어가고, 그러는 중에 선교교육원에서 친구들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친구들 보러 갔다가, 친구들의 권유로 선교교육원에 위촉생으로 입학한 것입니다. 오늘은 제 얘기를 많이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은 누구신가고 하나님에게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서 애굽의 바로 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누구신가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답하시기를 나는 곧 나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야훼, 혹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주시지 않고 나는 나다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그리고 곧 야훼 혹은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야훼라는 이름의 원래의 의미는 나는 존재하게 하는 존재, “나는 나다라는 의미와 유사하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고 하니까, 모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저에게 주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하고 간청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시고는 모세를 바위틈에 집어넣고 그 앞을 지나가시면서, 손바닥으로 바위를 가렸습니다. 그 뒤에 손바닥을 거두어들이며, 하나님의 뒷모습만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그의 뒷모습, 그의 신비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서남동 선생의 삶은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모습을 보려고 했습니다. 즉 세상의 진리를 알려고 했던 것입니다. 특히 민중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볼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것의 뒷면만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신학적 진리와 지혜를 찾기 위해서 과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 그 진리를 위해서 그가 가졌던 이전의 사고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새로운 이해를 위해서 투신하셨습니다. 그리고는 66세에 장렬하게 돌아가신 것입니다. 내년이 서남동 탄신 100년이 됩니다. 그래서 선교교육원 동문들을 중심으로 그의 기념 사업회를 만들어서 내년에 큰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유럽 2개월간 체류하면서 민중신학 강의도 하고, 여행도 했습니다. 여행은 자전거와 기차로 다녔습니다. 자전거로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가서 반 고호 박물관을 갔습니다. 2년 전에 갔었는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좀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호는 원래 미술가가 아니라, 신학을 한 전도사였습니다. 그런데 목회가 잘 안 되었지요. 그래서 동생 테오처럼 처음에는 미술작품 딜러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화가로서는 좀 늦은 시기인 27살부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가 37살에 죽었으니 꼭 10년간 그림을 그리고 간 것입니다. 그가 그림 그릴 것을 결정하기 3년 전 그러니까 그의 나이 24살 때 그는 암스텔담과 브르셀에서 신학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탄광촌에서 무급으로 전도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회에 재미를 못 보고 그림그리는 것으로 먹고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때가 27살입니다. 그가 18907월에 생을 마감하는 데 그때가 37살이니까 꼭 10년간 그림을 그리고 세상을 뜬 것입니다.

 

반 고호의 이런 삶을 얘기하다 보면, 또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는 서남동 선생님입니다. 서남동 선생은 1918년에 태어나서 19847월에 만 66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민중신학을 시작한 해가 1974-5년이니까 그분도 꼭 10년 동안만 민중신학을 위해 일하시고 글 쓰시다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사실 예술이나 학문 세계에서 10년은 정말 짧은 시간입니다. 뭘 좀 하려하면 10년이 지나갑니다. 서남동 선생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10년간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 민중신학을 정립하려 하였고 결국 민중신학의 큰 틀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10년을 치열하게 사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남동 선생이 더 오래 사셨더라면, 민중신학을 그만두고 좀 더 젊었을 때 연구했던 자연 생태신학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민중신학의 정립에 온 힘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에게 다른 것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민중신학은 창조적인 면이 많았던 것이고, 한국 고유의 사상이고,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이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서남동 교수님의 중요한 논설은 다음의 글에 있습니다. 그것을 제 나름대로 조합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가 아니라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들 주장하지만 사실은 태초에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계시, 태초의 사건은 신학적 논술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 ‘이야기로 담겨지고 전해지는 것이다. 역사적 논술은 객관적이고 과거의 것이 되어 버리는데 이야기야말로, 그 원계시의 재생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민중신학의 과제는 두 이야기의 합류이다. 기독교의 민중전통과 한국의 민중전통이 현재 한국 교회의 신의 선교활동에서 합류되고 있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 분의 말씀 중에 눈에 특히 띄는 것은, “부자와 누르는 자에게는 주기도를 드릴 자격을 주지 아니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정언적으로 단언(민중신학 탐구, 33)한 일이나, 그의 제3의 교회론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가톨릭 교회, 개신교 교회 다음의 제3의 교회 형태를 현장교회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도시산업선교회, 크리스천 아카데미, 농촌선교 프로그램, 기독교사회선교협의회, NCC인권위원회, 금요기도회, 목요기도회, 갈릴리교회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서남동 선생의 기본 방법은 기독론적 방법이 아니라, 성령론적 방법입니다. 기독론적인 접근은 타력적인 구원론인데에 비해서, 성령론적 접근법은 자력적이라고 말합니다(165). 성령 활동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과거의 것은 하나의 전거, 참고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독론적으로 접근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남동의 신학은 사회경제사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성령론적으로 세워지고 있습니다.(166) 여기가 서남동이 안병무와 방법론을 달리하는 지점입니다. 안병무는 텍스트, 즉 성서로부터 출발했지만, 서남동은 상황, 콘텍스트로부터 출발합니다. 텍스트는 기본이 아니라, 참고자료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텍스트는 성서요, 복음서를 말합니다.

 

서남동은 믿음이나 신앙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 말 것을 제안했습니다. 믿음이라는 말 대신에 역사적 지식을 쓰자고 제시했습니다(170). 역사적 지식은 우리의 인격적인 참여가 포함되는 실천적인 지혜입니다. 추상적이고 구름잡는 것같은 신앙이나 믿음 대신에 이러한 새로운 지식과 종합적인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민중에게 죄를 묻기 보다는 민중의 한을 고찰해야 한다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민중은 죄에 의해서 당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구조악에 의해서 손상당하는 사람들이 민중이라는 말씀이고, 이들에게는 한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서남동 선생은 우리 문화 속의 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표현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불투명합니다. 다만, 민중신학이란 두 이야기의 합류라고 하면서, 이 두 이야기의 합류를 두 전통의 합류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감옥 생활을 2년 이상 하면서, 감옥에서 한국 역사와 사회를 공부하면서 내놓은 결론이었습니다. , 기독교의 전통과 한국의 민중 전통이 만나서, 두 강이 합류하는 것처럼 이 합류를 증언하는 것이 한국적 민중신학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민담이나 이야기들을 이야기에 포함했는데, 이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도 이야기 속에 포함시켰습니다. 이야기를 넘어서는 것들을 다 포함하여 전통이라고 했고, 그래서 두 이야기의 합류라고도 하고, 두 전통의 합류라고도 했습니다.

 

오늘 저는 특별히 서남동 선생님의 이야기 이론에 대해서 주목하고자 합니다. 예로 그가 남기신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민담인데요. 김안국이라고 하는 조선시대의 양반 청년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됩니다. 판서에다 대제학을 겸한 김숙이라는 사람에게 아들 안국이 있었는데 이 아들은 키도 훤칠하고 피부도 희고 아주 잘 생긴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공부를 하기를 싫어했습니다. 몇 년을 가르쳐도 이 청년은 하늘천 땅지 천자문조차 해독하지 못했습니다. 대제학은 이 아들만 보면 골치가 아팠는데, 마침 사촌동생 청이 안동 통판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안국을 데리고 가서 그곳에 살게 하고, 다시는 서울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무슨 수를 쓰라고 무리하게 떠맡겼습니다. 청이 조카 안국을 데리고 안동으로 내려가 부임하여 여가에 글을 가르쳐보았으나 판서 형이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청은 조카를 불러, “안국아 네가 왜 이러니하고 물었더니, 안국이 말하기를 저는 민담설화를 들으면 정신이 맑아져서 죄다 기억이 되지만 문자에 대해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도무지 터득이 안 될 뿐 아니라 글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벌써 두통이 일어납니다. 아저씨께서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다만 글공부는 아니되니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에 청으로서도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이나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청은 가난한 양반집에 당혼한 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청혼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서울의 귀족의 아들이 하찮은 안동 좌수의 딸에게 청혼하니 의심하게 되었다. 청은 안국이 서울의 정승이자 대제학의 정실 아들임을 확인시켜주니, 그래도 의심하는지라, 직접 대려와 여러모로 건강한 것도 보여주니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안국이가 글공부를 못해서 판서대감의 노여움으로 여기에 쫓겨 온 것이라고 하니, 의심을 풀고 청혼을 받아들였다. 안국이 장가를 들고 처가의 별당에 틀어박혀서 문밖출입도 안하니 신부가 묻기를 글도 읽지 아니하고 바깥 출입도 없으시니 웬일이냐고 하니, 안국은 자기는 절대로 글공부는 싫으니 절대로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합니다. 신부는 낙담하면서 어떻게 다른 길이 없는가 생각하다가 남편에게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시험해 보리라고 하고, “저와 옛날 이야기나 하실까요?” 하였더니 안국의 눈이 번쩍 뜨이고 반가워하는 것이 아닙니까? 신부 이씨가 천황씨 이래로 역사를 풀어서 이야기 해주었더니 안국이 열심히 듣더라는 것입니다. 한번 외워서 다시 이야기해 보라고 하니, 그대로 외는데 틀림이 없었습니다. 신부 이씨가 기뻐서 저 사람이 탁월한 재주가 있는데 글은 싫어하는구나하고 이야기로써 신랑을 교육시켜서 결국 몇 해 안 가서 대문장이 되어 장원급제하여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는 얘기입니다. 숙부 청이 달려와 대제학 형에게 감탄하며 말하기를, “형님 우리 형제가 평생 가르치지 못한 것을 그의 처가 가르쳐 놓았습니다고 했습니다.

 

이 민담이 말하는 것은 여자의 힘이 이렇게 크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여기에 더해서 담론이나 문장보다는 이야기가 더 크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박사공부를 한 사람이지만, 박사 공부 잘못하면 영원한 바보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Permanent Head DamagePh.D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게 아이러니하게도 맞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가끔 박사학위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못 알아 들을 때가 있지요. 아는 것이 많아서 말은 많은데 알아듣기도 힘들지만, 틀린 말을 많이 하거든요. 담론을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대신 이야기는 쉽습니다. 예수는 이야기로 하나님의 나라를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과거 시험제도가 있었고, 요즘에는 입학시험이 있고, 고시공부가 있습니다. 이것이 다 담론의 세계입니다. 이런 선발 과정으로 창조력은 뒤로 처지고 말았습니다. 예술과 문화는 이런 담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종합적인 정서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것들과 가장 가까운 말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안국은 이야기의 힘을 경험한 영민한 청년이었습니다. 다만 담론을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국이 담론의 시험과정인 과거에 장원급제했다는 것은 담론의 원래의 자리, 원천은 이야기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언어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었던 그는 담론의 원리를 쉽게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외는 글공부가 아니라, 모든 삶의 역사의 원천인 이야기의 세계를 섭렵한 후에 일어난 글공부였기 때문에 안국의 글 실력은 남다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남동 선생은 하나님의 언어는 이야기이고, 예수님의 화법도 이야기였고, 성령의 통신매체도 머리의 언어가 아니고 몸의 언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교리라고 하는 담론, 머리의 언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신학에서도 이야기는 사라지고 교리를 분석하는 이론적 언어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민담이나, 사람들,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서남동 선생은 이야기꾼, 스토리텔러였습니다. 그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민중 문화 속에 있는 작품들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 기도 속에 들어 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찾아서 이야기로 들려주었습니다.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는 강의하면 많은 경우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 시대는 이런 이야기꾼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이런 이야기가 들려지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야기는 대체로 짧습니다. 춘향전과 심청전과 같이 긴 것이 있지만, 소설처럼 긴 것은 아닙니다. 주로 소설과 이야기를 비교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소설보다 길지 않고, 플롯 즉 구성이 치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공백이 많아서,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예수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는 가르치실 때 이야기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가나의 잔치 이야기, 혈루 병든 여인 이야기, 세리 삭개오 이야기, 씨 뿌리는 여자 이야기, 군대귀신 들린 사람 이야기,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 마리아와 마르다에 관한 이야기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소설과도 다르지만, 역사와도 다릅니다. 사실로 채워진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에는 그 안에 여백이 있습니다. 해석의 여지를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위한 공간, 즉 여백의 공간을 남겨 놓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가지고 얼마나 다양한 설교가 나오고 있습니까? 그 이야기는 다른,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꽉 짜여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빈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소설처럼 단일한 구도 하에 철저히 인과관계로 짜놓은 구조가 아닙니다. 소설에는 빈 공간을 되도록 없애지마는 이야기 안에는 빈공간,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들을 남겨놓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고, 그래서 재미마저 있습니다.

 

사건과 이야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마는 좀 다릅니다. 태초에 사건이 있었고, 역사 속에 계속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데, 사건은 이야기에 담겨집니다. 사건에서 이야기로 담겨질 때 그 안에 공백 혹은 여백이 들어가고, 반전과 재미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일반적인 역사 얘기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유대계 독일 문학평론가인 발터 벤야민이 아파했습니다. 우리들 세계에는 정보와 담론, 소설 등만 있지, 이야기, 스토리는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복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의 화법이 부활되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왜 이야기가 필요한가요? 이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 답변은 점심식사 후에 토론 시간에 좀 더 자세하게 말하려고 합니다. 설교 단위에서 너무 길게 말하면 모두가 힘듭니다.

 

이제 저의 이야기의 결론으로 가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더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제가 서남동 선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진리의 전면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의 일면, 특히 뒷면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어떠한 진리도 나타났다가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나타나는가요? 이야기나 예술이나, 종교적 깨달음에서 나타나지만 그러나 곧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오래 머물지를 않습니다. 오래 머물 수가 없는게 진리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만 그것을 느끼고 감지하는 정도입니다. 항상 그것의 맨 뒷자락만을 얼핏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진리를 문자화하여 영구히 남겨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 문자나 텍스트가 있다면 그것은 깨지게 마련입니다. 뒷사람이 와서 그 소위 진리라는 것을 깨버리고 맙니다. 새로운 시대에 진리의 새로운 측면이 새롭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남동 선생은 그의 생애 말년에 아주 중요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 시도가 성공할 수 있었는지 아직 모릅니다. 그는 진리의 담지자, 하나님의 복음의 담지자, 계시의 담지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담지자 안에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남동에게 있어서 이야기는 매체였습니다. 진리를 담는 그릇으로 이야기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의 내용은 어떤 담지자들에 의해서 표현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서남동은 진리의 담지자, 계시의 담지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난한 자입니다.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신학이 계시적인 것이 되려면 그것이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소외된 자가 다시 역사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하는 데에 공헌할 때만 그렇게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고로 가난한 사람은 복음 선포의 대상이 아니라, 복음의 복음이 될 수 있게 하는 구성요소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복음 선포는 가난한 자들과의 연대에서만 진정한 복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379). 우리의 말씀이나 복음이, 즉 우리의 신학과 신앙이,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담론이나 이론이, 가난한 자들이 주인공이 되게 하는 것일 때만 예수의 복음과 통할 수 있고 진정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요약하면, 저의 생각으로는 서남동 선생은 그의 민중신학을 하던 마지막 10년 동안 두 가지의 중요한 화두를 우리들에게 던지셨던 것입니다. 첫째는 이야기 곧 스토리이고, 둘째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 두 개의 화두를 순서적으로 혹은 동시적으로 던져놓고, 66세의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신학은 60대부터 진짜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서남동 선생은 60대 중반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분은 너무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분은 이 두 개의 화두를 던져놓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종합해 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다 해놓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이것을 그 후대에 남겨놓고 가신 것입니다. 이 분은 신학을 하되 당신 자신을 온 몸으로 던져서 했습니다. 그리고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과감한 논리를 펼쳤습니다.

 

서남동 선생은 모세가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듯이 진리를 보기 위해서 온 생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뒷모습만을 볼 수 있었듯이 서남동 선생도 진리의 뒷모습만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의 삶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실재 전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실재의 일부분만 볼 수 있습니다. 실재의, 하나님의, 진리의 뒷모습만은 잠깐 잠깐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에만 그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새길교회의 신학적인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민중신학에 대해서 오늘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중은 이제 끝난 개념이고, 민중신학은 한국사회에서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새길교회는 민중신학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앞서가신 기독교의 선구자들과 함께 한반도에 진정한 해방과 평화와 통일이 오도록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일하고자 합니다. 저희 공동체를 지켜 보호해 주시고, 새길 공동체가 지성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 삶으로, 이 시대의 횃불이 되어 시대를 비출 수 있는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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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2017 [2017.08.27] 지금 여기에서 예수를 따라 file 2017.08.30 정경일
1024 2017 [2017.08.06] 단테의 '신곡' 여행 file 2017.08.10 문현미, 노선희, 박흥식
1023 2017 [2017.07.30] 사탄의 문제? 사람의 문제? file 2017.08.02 최현섭
1022 2017 [2017.07.16] 내 안의 선악과(善惡果) file 2017.07.18 김용덕
1021 2017 [2017.07.09]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file 2017.07.13 정경일
1020 2017 [2017.07.02] 손의 회복 file 2017.07.13 구미정
1019 2017 [2017.06.18] 내가 모르던 기도 file 2017.06.22 박현욱, 정영훈
1018 2017 [2017.06.04] '포도나무 비유'에 담긴 뜻은 file 2017.06.08 장회익
1017 2017 [2017.05.14] 꽃 핀 쪽으로 file 2017.05.17 정경일
1016 2017 [2017.05.07] 죄는 어디에서 오는가? file 2017.05.12 박경미
1015 2017 [2017.04.23] 하나님의 능력, 우리의 능력 file 2017.04.26 윤여성
1014 2017 [2017.04.16] 부활하신 예수는 어디에 계신가? file 2017.04.21 김성수, 정공자, 김희국
1013 2017 [2017.04.02] 사랑과 믿음 file 2017.04.04 권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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