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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양현혜

꿈과 짐: 김교신의 일상성 속의 주체적 신앙과 예언자적 역사의식 

 (요한복음서 14:15-21, 베드로전서 3:15-16)


201793일 주일예배

양현혜 교수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 요한복음서 14장 15~21-

 

[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15~16절-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각자 간직한 희망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어보면 언제라도 대답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누가 물으면 무엇이라 답변하시겠습니까. 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꿈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꿈은 좋은 것이고 짐은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젊었을 때는 꿈이 많고, 늙을수록 짐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꿈과 짐의 구별이 점점 어두워지고 양자의 차이가 애매해짐을 느낍니다. 어느 순간에는 꿈이 짐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어느 순간에는 짐이 꿈이 되기도 함을 봅니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받는 모습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되찾고 아버지의 영광을 되찾고 어릴 때 살던 집을 되찾겠다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습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그녀는 그 꿈을 향해 일관되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실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의 시작이었습니다. 꿈이 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버지처럼 사는 것, 아버지의 방식대로 하는 것, 아버지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이제 그녀를 억누르는 짐이 된 것입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그녀의 머리였습니다. 감옥에서조차 올림머리를 하고 재판에 나와서도 올림머리를 했던 것입니다. 유명한 미용사의 서비스를 받지 못할 때는 수십 개의 핀으로 머리를 고정하여 기어이 올림머리를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머리 모양 하나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그녀에게는 부모에게 잘난 딸이 되겠다는 꿈이, 이제 그녀를 옥죄는 망령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꿈과 짐이 그렇게 구별되는 것이 아님을 또한 꿈이 꼭 좋은 것이고 짐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꿈과 짐은 때로는 한 세트로 얽혀있을 정도로 인생은 복잡하고 다양함을 조금씩 이해해 가게 됩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다가오는 당신의 죽음 앞에서 주님이 죽은 후에 겪을 제자들의 어려움을 미리 내다보시고 주님이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말씀입니다. 당신이 가신 후 성령님이 오시어 제자들과 함께 살고 제자들 안에 계실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남은 제자들을 결코 고아들처럼 버려두시지 않겠다는 위로의 말, 약속의 말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3년간 주님과 공생활을 한 제자들은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보고 신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과 함께 그분을 따라 그분이 말해준 삶과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은 스스로를 선구적 지도자라는 자긍심으로 가슴 벅차게 했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인가 대단히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은 커다란 존재감과 자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존재감과 자존감에는 분명히 어떠한 인간적인 우쭐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셨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되면 그 꿈이 그들의 짐이 되어버릴 것임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미리 위로의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이 죽은 후 그들의 삶은 철저히 망가졌습니다. 패가망신의 몰락이 쓸고 간 자리에서 꿈은 잊혔으며 대신 두려움만이 그 자리를 매웠습니다. 이제 꿈이 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꿈이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을 거쳐야 진정한 꿈,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절망의 상태에서 모든 인간적인 욕심과 거품이 사라진 후 그래도 아직 빛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꿈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꿈 너머 꿈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꿈과 짐이 점복되는 혼란 후 진정한 꿈과 짐의 구별도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그분을 배반하고 도주했습니다. 유대인의 체포를 피해 모든 문을 다 걸어 잠가야만 할 정도의 불안 속에서 떨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고통과 두려움의 순간 속에서 모든 인간적인 욕심과 거품이 털어내집니다. 기적적인 힘을 가진 예수님에 의지해서 쌓아올렸던 그들의 꿈, 자긍심, 존재감의 확대, 우쭐거림 등의 모든 거품이 털어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그 두려움의 한 가운데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선언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야 눈이 열려 주님의 참 모습을 보고 주님이 가시고자 하는 길을 올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죽기까지 서로 사랑하라고 하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자신들을 세상으로부터 쫓아내어 세상에게서 쫓기게 하여 그들의 짐이 된 예수님. 그래서 그들의 원망의 대상이 된 그분의 길을 따라 그분을 전하는 것이 이제 그들의 새로운 꿈이 된 것입니다. 그들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을 거쳐 모든 인간적 욕심이 무너져 내린 절망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진실한 꿈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꿈과 짐이 전복된 혼란을 거치고 난 후 비로소 진정한 꿈과 짐을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 꿈을 위해 기꺼이 짐을 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꿈을 발견한 자가 짊어진 짐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거기에는 물론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고통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벌로 받는 고통이 있다면 스스로 짊어지는 사연 있는 아름다운 고통도 있는 것입니다. 한 조각가가 예수님 상을 조각하다가 그만 나병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병을 원망하며 십자가를 보면서 조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매일 기도하며 주님 저를 낫게 해주십시오. 병들은 육신을 끌고도 제가 이렇게 당신을 아름답게 조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살아계신 아버지인 당신도 저를 낫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마침내 조각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완성된 예수는 나병투성이의 일그러진 몰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병은 이미 다 나아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생줄리오 성당에 있다고 하는 이 일그러진 예수상은 흉측한 모습이지만 그 사연을 알고 보면 흉측하지만도 않은 커다란 감동을 준다고 합니다. 아마 그것은 일그러진 예수의 고통의 사연이 있는 고통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가 된 그들의 짐도 이런 종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짐을 사연 있는 아름다운 고통으로 수락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짐이었으나, 자신들이 꿈꾼 꿈의 길, 희망의 길 즉 자신들의 꿈으로 가는 길로 수락한 것입니다.

     흔히들 꿈은 한계가 있고 짐은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은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꿈은 영원하되 짐은 한계가 있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류의 짐은 죽음으로 최종적으로 종결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꿈은 영원하고 짐은 한계가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꿈 너머 진정한 꿈을 발견할 줄 아는 자였고 짐을 꿈으로 바꿀 능력을 발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김교신도 그러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김교신은 1901418일 함경남도 함흥의 전통 있는 유가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김념희(金念熙)21세의 젊은 나이로 폐질환으로 병사했습니다. 김교신이 세 살 때 과부가 된 어머니 양신(楊愼)은 그와 유복자인 그의 동생 김교량 두 남매를 혼자의 힘으로 길렀습니다. 그가 9살이 되던 해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극진한 보호 아래 그는 여느 아이들과 같이 소에 여물을 먹이고 물맞이 목욕을 하는 보통 아이로 자랐습니다.

     한편 어릴 때부터 체득한 논어를 비롯한 한학(漢學)은 이후 그가 유교를 떠난 후에도 그의 품성과 기독교 이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평생 지속된 일기 습관도 10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일기를 통해 나날의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일일신(一日新)하고자 하여 유교적인 군자를 이상으로 하는 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19살이 된 1919년은 특별한 해였습니다. 그 해 3월 함흥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김교신은 3. 1독립 운동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3. 1독립 운동은 운동을 지도할 영웅적인 지도자도 체계적인 조직도 없는 가운데에서 이름 없는 들풀 같은 평범한 이 땅의 민중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규율한 기적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전국의 216개 군 중 212개 군에서 7개월에 걸쳐 거국적인 민족 독립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잠자던 민족의 독립에의 요구가 지축을 뒤흔드는 함성으로 터져 나온 이 날, 청년 김교신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태극기를 만들어 예배당과 보통 학교에 보내며 33일 함흥 장날의 만세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날 조선 민족 모두가 꾼 꿈이 청년 김교신의 꿈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는 학생 주모자로 체포되어 모진 고초를 겼다가 기소 유예로 겨우 풀려 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함흥 지역 3. 1운동을 수사한 일본인 검사의 수사 기록에 서 그의 이름이 발견되어 그는 2010815일 광복절에 건국 포장이 추서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3.1 운동과 그 체포 경험은 그의 삶에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당시 19세였던 그에게 3. 1독립운동의 체험은 그의 일생의 대전환을 이룰 정도로 강열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철들기 시작할 무렵인 9살 이래 계속 식민지였던 조국 조선은 원래부터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조선이 식민지인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새삼 온 몸으로 자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3.1운동이 혹독한 희생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뼈아픈 실패로 끝난 이후의 현실은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신은 식민지민인 이 현실, 투옥과 수감 생활을 강제하는 이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31일 그 날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한 때는 꿈이었으나, 실은 자신의 삶을 억누르는 짐으로 치부하고 버려버릴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그는 운동 직후 교육을 통해 동포를 각성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경의 정칙(正則) 영어학교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도일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으나 현해탄을 넘어서 일본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도항증명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도항 증명서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19369월호 조광(朝光)잡지에 실린 이광수의 도항 증명서라는 글을 살펴봅시다.

     이광수는 19365월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내 허영숙을 만나려고 일본에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겪었던 도항 증명서에 관한 경험을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동경에 있는 가족을 보려고 5월 초에 서울을 떠났다. 시모노세키를 건너가는 데에는 도항 증명서가 절대로 필요하다. 관리는 도항 증명서를 가지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도항증명서를 얻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사진관에 가서 명함판 사진 2장을 박아 호적 등본 한통을 얻어야 한다. 대서소에 가서 도항 증명서를 하나 써달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만일 고등계 주임이 나를 보낼만하다고 인정하면 떠나는 날 다시 경찰서에 출두하라고 명한다. 그 날 가서 증명서를 받아들면 여간한 기쁨이 아니다. 나는 진정으로 고맙다는 절을 수없이 안할 수 없게 된다. 증명서라는 것은 호적등본에 본인의 이름 위에 있는 사진을 붙이고 그 등본 여백에 붉은 잉크로 아무개의 일본으로의 도항을 소개한다. 행선지는 동경 운운. 도항의 목적은 아내면회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이 도항의 소개라는 말에 당국의 번민과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도항 증명서가 얼마나 번잡한 절차가 필요한가를 상세히 설명한 후에, 일본인이 입으로는 내선일체를 크게 부르짖으면서도, 도항증명서라는 서류를 제출하게 하는 것은 이론상 모순됨으로 도항을 소개한다는 수사학적 편범을 쓰는 것을 꼬집으며 식민 지배의 실제 모습을 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을 유학하기 위해서 김교신도 이러한 도항증명서를 준비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해탄을 건너는 배의 갑판 위에서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하루 저녁에 아무래도 너는 조선인이로구나!’하고 연락선 갑판을 발 구른 자는 둔한 자이었다...학적 야심에는 국경이 보이지 않았다. 애적(愛的) 충동에는 사해가 흉중(胸中)의 것이었다. 이상의 실현에 이르러는 전도가 다만 양양할 뿐이었다. 때에 들리는 일성은 무엇인고? 아무리 한대도 너는 조선인이다!” 김교신은 식민지 조선인이라는 세계사적 노예의 자리에 있는 자신의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고서는 어디에도 자신의 참된 삶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현해탄의 갑판 위에서 뼈저리게 실감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김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상적 과제는 조선의 독립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짐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짐을 기꺼이 져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아가 그 힘을 어떻게 동포들과 나누어서 그들에게도 조선의 독립이라는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짐을 기꺼이 수락하여 지어내게 할 수 있는가를 씨름하는 것이었습니다.

     김교신은 1922년에 동경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校= 현재 츠쿠바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도덕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유교의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란 것과 기독교의 네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베풀어라란 것을, 그리고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라는 공자의 말과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이다는 그리스도의 말을, 바른 것으로써 원수에 보답하고 덕으로써 덕에 보답한다란 공자의 교훈과 적을 사랑하며 오른쪽 뺨을 치는 자에게 왼쪽 뺨을 향하라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유교를 능가하는 기독교 도덕의 깊이에 매료되어 자기완성의 도덕률을 기독교에 의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위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내면의 동기까지도 중요시하는 기독교의 요구 앞에서 극심한 죄의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유교적 수행에 의한 자기완성을 꾀하던 김교신은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통절한 자각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죄란 유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본심을 잃은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그 본성 그 자체가 이미 죄악에 젖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죄악의 괴수라는 자각 속에서 자기에 대한 깊은 환멸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때 그는 지극히 높으신 신의 아들이면서 가장 낮은 자리로 오시는신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퇴폐한 자와 병상(病傷)한 자의 한 숨을 들어주시고 눈물을 씻어 주셨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달아 비천과 치욕의 극에 까지 내려가셨다는 그리스도였습니다. 김교신은 인간의 죄와 고통에 참여하여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대신 죽는 신, 이 대속적 사랑에 의해 인간의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신에 의해 인간에게 완전히 새로운 자아가 선물로 주어진다는 기독교의 구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란 철저히 신의 사랑과 그것을 체득한 인간의 응답으로서의 믿음이라는 관계 안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을 신앙인의 밖에 있는 종교적 제도로서가 아니라 신과 사람 사이의 살아있는 관계성안에서 본 것이 김교신의 기독교 이해의 커다란 특징이었습니다.

     한편 기독교의 속죄 신앙을 받아들인 그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이탈하여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토대 위에 자신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속죄신앙은 한편으로 구원에 있어서 신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이외의 어떠한 인간적인 권위로부터도 독립자유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신에게만 의지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일하는 신의 섭리와 경륜을 의식하고 어떠한 인간적인 능력이나 원조에 의지하지 않는 자유독립의 단독자로서 서는 것이 기독교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김교신은 인식했습니다. 초월적 신에 의거한 독립을 통해 그는 자신의 주체성을 새로이 형성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신에게만 의지하여 모든 피조물로부터 독립한 주체로 서는 의뢰적 독립의 신앙에 굳게 서서 인간의 육체만을 죽일 수 있을 뿐 영혼은 결코 죽일 수 없는, 세상의 권력 앞에서, 두려움 없이 아름답게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 짐을 꿈으로 바꾸는 비결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동포들과 나누는 것이 그의 소명이 된 것입니다. 김교신이 이 소명을 실천한 자리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성서조선이라는 월간 잡지였습니다. 김교신은 일본에서 귀국한 직후인 19277월부터 함석헌, 송두용 등과 함께 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잡지를 성서조선이라 명명한 것은 조선과 자아(自我)의 관계를 빼놓고서는 보편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에게 기독교의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면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유일한 진리 실천의 장()인 조선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쓴 성서조선의 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주고 싶은 것은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고 싶으나 인력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자는 음악을 조선에 주며, 어떤 자는 의술을 주어 조선에 꽃을 피우며,

옷을 입히며, 관을 씌울 것이나,

오직 우리는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뼈를 세우며,

그 피를 만들고자 한다.

같은 기독교로서도 어떤 자는 기도생활의 법열의 경을 주창하며,

어떤 자는 신학 지식의 조직적 체계를 애지중지하나,

우리는 성서를 배워 성서를 조선에 주고자 한다.

더 좋은 것을 조선에 주려는 자는 주라.

우리는 다만 성서를 주고자 미력을 다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조선에”.

 

가장 사랑하는 대상인 조선최진(最珍)의 선물인 성서를 소유시킴으로써 조선을 성서에 기초한 존재로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성서조선의 취지였습니다. 즉 성서를 조선에 줌으로써 조선 독립의 주체가 될 참 기독교인참 조선인을 키워 내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성서조선15호까지는 동인지 형식으로 발간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인들의 지속적인 투신이 어려워지게 되자, 19305월 제16호부터는 김교신이 주필로서 성서조선의 발행에 전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총독부의 검열에 의해서 삭제, 발행금지 처분을 받으면서도 19423월 폐간될 때까지 총 158호를 발간했습니다. 그는 인쇄소에 맡긴 잡지의 초고가 나오면 대체로 5회 이상 읽어 오자· 탈자를 잡아내어 교정을 보았습니다. 잡지가 나오면 총독부에서 검열을 받고, 문제가 지적되면 경무국 도서과에 출두하여 시말서를 제출하고 수정 지시 사항을 반영해 수정하여 그것을 다시 조판해 재인쇄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허가된 잡지가 나오면, 서점에 배달하고 우편으로 받는 독자들에게는 우체국으로 가 일일이 우표를 붙여 구독자들에게 발송했습니다. 사환에서 편집자, 주필, 사장의 일까지 묵묵히 해내는 언론인이었습니다.

     김교신에게 성서조선은 단순히 기독교의 진리를 표명하기 위한 종교 잡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 민족에게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기독교적 사회평론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지 독자는 문자를 문자 그대로 읽는 외에 자간과 행간을 능히 읽는 도량이 있기를 요구하는 때가 종종 있다. 이는 학식의 문제가 아니오, 지혜의 문제이다. ……정도의 차는 있으나 본 지도 일종의 묵시록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세대는 비유나 상징이나 은어가 아니고는 진실한 말을 표현할 수 없는 세대이다. 지혜의 자()만 지혜를 이해한다.”

     암울한 시대, 이렇게 늘 깨어 희망을 찾고 전하던 성서조선19423월호에 쓴 조와(弔蛙)가 문제가 되어 폐간되고 결국 그도 1년 여간 수감되고 맙니다.

 

한편 김교신이 의뢰적 독립에 의거한 신앙에 서서 참 조선인으로 참 사람으로서 사는 꿈을 영원히 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져야할 짐을 꿈으로 바꾸는 비결을 나누는 또 다른 자리는 교육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는 1927년 귀국하자 함흥의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를 비롯하여 양정고등학교, 경기 고등학교 등에서 15년간 교사로서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의 각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진리의 구도에 의한 자기 확립으로 수업 시간에는 학과 공부이외에도 하나님과 인물을 가르쳤습니다.

     김교신의 학생 지도에서 특이한 것은 그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정의로 학생을 다스리는 한편 그들을 위해 눈물과 기도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졸업식 날에는 그는 새벽에 깨어 목욕재계한 후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50명 전원을 위한 호칭 기도를 했습니다. 학생을 체벌하고 돌려보낸 다음에도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흡연 중 발견된 학생이 우리 반에 있었음으로 긴 시간 말로 타이른 후에 매 30대를 때리다. 저를 보낸 후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다. 실로 20세기 학교 교육의 한 기이한 광경일 것이다.”

     학생을 체벌하고 그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은 김교신의 당대에도 진기했으나, 모든 것이 입시교육에 수렴되어 버린 오늘날의 교실에서는 참으로 진귀한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된 김교신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것 중 하나는 손기정과 관련된 일화입니다. 농구 코치며 마라톤 코치를 맡아 학생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운동장을 뛰어 다녔던 김교신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의 마라톤 코치이기도 했습니다. 손기정은 김교신과 함께 도쿄로 가 베를린 올림픽 예선전을 통과할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김교신 선생님의 눈물만 보고 뛰어 우승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선생과 같이 커다란 진실한 교육자 그리고 애국을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스로 실천해 온 분은 본 적이 없다. 선생은 실로 큰 분이었다.”

     이에 대해 김교신의 19369월 일기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손군은 우리 학교의 생도요, 여배도 일찍이 동경 학코네(箱根) 역전 경주의 선수여서 마라톤 경주의 고와 쾌를 체득한 자요, 손군이 작년 113일 경성 명치신궁(明治神宮) 코스에서 두 시간 1641초로서 세계 최고 기록을 작성할 때에는 선생님 얼굴이 보이도록 자전거를 일정한 거리로 앞서 모시오하는 요구에 설마 선생 얼굴을 보는 일이 뛰는 다리에 힘이 될까하면서도 이때에 생도는 교사의 심장 속에 용융합일(鎔融合一)이 되어버렸다. 록코교(六鄕橋) 절반 지점에서부터 종료까지 얼굴을 제시하고 응원하는 교사의 얼굴에는 제제할 줄 모르는 뜨거운 눈물이 시야를 흐리게 하니 이는 사제 합일이 화학적 변화에서 발생하는 눈물이었다. 그 결과가 세계 기록이었다.”

     김교신은 손기정과 함께 예선전을 치렀으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는 손기정의 코치로서 따라가지 못 했다. 손기정만을 홀로 보내놓은 후 무거운 짐을 진 어린 제자를 위해 김교신이 바친 기도가 그의 일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193689() 흐림

오전은 일요학교. 잠언 3110절 이하로 동양 고유의 모범 여성을 배우다. 오늘 밤 11시부터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뛸 양정고보 제 5학년 학생 손기정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잠자리에 들다

 

“1936810() 천둥 번개

오전 6시 반부터 베를린에서 오는 전파를 듣다. 올림픽 마라톤 실황을 듣는 동안 주먹에 땀을 쥐다. 손기정 1, 남승룡 3위의 보도에 기쁘지 않을 수 없으나 또한 눈물이 복받치지 않을 수 없다

 

“1936812()

함형(= 함석헌)편지 아래와 같다. ‘주 안에 건재를 빕니다. 오늘 아침 손기정 군의 마라톤 1등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나약한 조선을 위하여 만장의 기염을 토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양정의 그 집과 그 운동장이 세계 1등의 마라톤 선수를 내었다면 우리 조선이 영원의 경주장에서 용사의 관을 쓰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더 두터워 갑니다.’ 운운.”

 

세계사 서열 최하위에 있던 식민지 조선인의 자존과 기개를 세계에 증명해 낸 어린 제자에 대한 감사와 그의 쾌거에서 민족의 역량을 확인하고 조국 해방의 희망을 읽어내는 김교신과 그의 친우 함석헌의 뜨거운 맥박이 전해지는 일기 한 토막이었습니다.

     이렇게 45년의 삶을 언론인으로서 교사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말할 수 없는 밀도로 삶아낸 그는 출옥 후 취업한 함흥 질소 비료 공장에서 회사 내의 발진티부스 환자를 밤을 새워 간호하던 중 병사했습니다. 해방을 4개월 앞둔 1945425일이었습니다.

     김교신의 삶에서 짐과 꿈은 분리될 수 없는 한 세트였습니다. 그는 의뢰적 독립이라는 신앙을 통해 인간적인 모든 욕망과 거품이 해체되고 난 자리에서 여전히 빛나는 꿈 너머의 꿈을 발견해 내고 그 꿈을 영원히 꾸는 길을 발견해 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짐을 꿈을 이루는 길을 내는 아름다운 짐으로 수락하고 짊어지는 비결을 발견해 내고 그 비결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었습니다.

 

다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꿈 너머의 진정한 꿈을 발견한 김교신, 짐을 꿈으로 바꿀 능력을 발견한 김교신에게서 배우는 저희를 축복하시옵소서. 그리고 저희에게도 누가 당신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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