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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경일


지금 여기에서 예수를 따라 

 (마태복음서 16:1~4)


2017827일 주일예배

정경일 형제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느라고,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자기들에게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녁 때에는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내일은 날씨가 맑겠구나하고,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한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이 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남겨 두고 떠나가셨다.]

- 마태복음서 16장 1~4-

 


 

오늘의 말씀증거는 다음 주일부터 8주 동안 있을 지금 여기에서 예수를 따라: 한국 종교개혁 사상가들의 뜻과 삶을 배우는 예배의 서론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에,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아닌 한국의 김교신, 유영모, 함석헌, 서남동, 안병무, 변선환, 그리고 여성신학자들의 뜻과 삶을 배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루터의 종교개혁에 한계 혹은 미완의 과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단순히 기념하지 않고 2의 종교개혁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물론, 루터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닙니다. 이번 말씀증거를 준비하면서 루터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루터를 마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묘사하며 너무 비판만 해왔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100% 선한 이나 100% 악한 이는 있을 수 없고, 공로만 있고 과실은 없거나 과실만 있고 공로는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루터에게도 공로와 과실이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루터의 공과 과를 함께 생각해보면서, 한국의 종교개혁자들을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해보겠습니다.

 

루터, 시대의 징조를 읽은 사람

 

오늘 함께 읽은 성서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시대의 징조, 우리의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루터는 그의 시대의 징조를 읽고, 그것에 용기 있게 응답하며 참여한 사람입니다. 루터가 읽은 시대의 징조, 즉 하나님의 뜻은,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루터가 살았던 중세 말기의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14세기 말에 창궐한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고, 15세기에는 급격한 인구 감소와 급격한 인구 증가가 롤러코스터처럼 이어지면서 사회가 격변했습니다. 농민들은 제후들이 강요하는 높은 세금과 강제 부역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죽음의 공포와 사회적 불안이 세상을 질식시키고 있었지만, 교회는 전대미문의 부와 권력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의 공포와 불안은 교회의 부와 권력의 자원이었습니다. 두렵고 불안하니까 민중은 종교적 위로와 보증을 갈망했습니다. 교회는 거짓 위로와 거짓 보증을 해 주는 대가로 부와 권력을 누린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황으로 평가받는 알렉산데르 6세 이래로 족벌주의, 성직매매, 사치, 성적·도덕적 타락 등 교회의 부패가 극심해졌습니다.

     1510,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젊은 수도자 마르틴 루터가 수도회의 공무로 로마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공무 틈틈이 큰 기대감을 갖고 로마의 성지들을 순례합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로마의 성지는 돈과 미신에 뒤덮여 있었습니다. 루터는 로마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의 실상을 생생히 목격하며 경악합니다. 한 번은 거룩한 계단(scala santa)”을 찾아갑니다. 사람들은 이 계단의 하나를 오를 때마다 9년간 지은 죄가 없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속죄의 계단인 것입니다. 루터는 늘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속죄를 갈구하며 무릎으로 계단을 오릅니다. 하지만 계단 꼭대기에 도달한 루터는 그곳에는 속죄의 구원이 아닌 속임수의 부패만이 있을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온 후 7년 동안 기도하고 성서를 연구하며 개혁의 불씨를 준비합니다.

     마침내 1517, 루터를 떨쳐 일어서게 한 결정적 사건이 발생합니다. ‘면죄부판매 사건입니다. 이 면죄부 판매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원래 면죄부는 신자가 교회법을 어겼을 때 교황이 처벌을 면하여 주는 제도였습니다. 일종의 대통령 특별사면과 같은 법적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교황 율리오 2세에 이어 교황 레오 10세가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을 새로 건축하면서 재정이 부족하게 되자, 죽은 후에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보증해주는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면죄부는 죽음과 심판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엄청난 상품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적 인간은 필연적 죽음을 예상하면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천국에 들어갈 만큼 신앙과 삶이 완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종교 사업에 이용한 것이 면죄부 판매 사건입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루터는, 15171031,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반박문을 게시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95개 문제들에 대한 반박문이 아니라 면죄부 한 문제에 대한 95개의 반박문입니다. 그만큼 중세 교회의 신학적, 윤리적 부패와 타락이 모두 면죄부에 응축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읽어 보겠습니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하고 시인하는 것 이외에 어떤 죄도 사할 능력이 없다. ...

20. 교황이 모든 죄의 완전한 사면을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모든 죄의 용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부과한 죄의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다.

21.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부를 받는 사람은 모든 형벌로부터 해방되며 구원되었다고 말하는 면죄부 설교자들은 모두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27. 연보궤 안으로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자들은 인간적인 것을 설교하는 것이다.

32. 면죄부를 가졌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친 선생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6. 진심으로 뉘우치고 참회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면죄부 없이도 형벌과 죄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37. 죽은 자나 산 자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든 은혜에 참여한다. 하나님께서는 면죄부 없이도 이것을 참된 그리스도인에게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43. 기독교인들은 가난한 이에게 주고, 궁핍한 자에게 빌려 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좋다고 배워야 한다.

46. 궁핍한 자를 보고 그냥 지나치면서도 면죄부를 돈으로 사는 것은 교황에게서 면죄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진노를 산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배워야 한다.

50. 교황이 면죄부 설교자들이 돈을 강제 징수하는 것을 안다면, 그는 자기 양들의 살과 뼈, 그리고 가죽으로 지어 올리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편을 택하는 게 낫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배워야 한다.

86. 가장 부유한 크로이소스의 재산보다 오늘날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왜 자신의 돈이 아니라 가난한 신자의 돈으로 베드로 대성당을 지으려 하는가?

 

느끼셨겠지만, 루터의 95개 반박문은 종교비판일 뿐만 아니라 사회비판이기도 합니다. 루터의 공로를 무시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그의 시대의 가장 중대한 문제인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면죄부 판매 사건에서 보았고, 그것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의 징조를 읽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강조해야 할 것은, 시대의 징조를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여름수련회에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거룩한 행동(Actio Divina)’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시대의 징조, 즉 하나님의 뜻을 읽은 사람은 그 뜻을 자신의 삶 속에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시대의 징조를 읽고 행동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루터는 95개 반박문을 발표한 후 목숨을 위협 당했습니다. 1520, 교황은 루터를 정죄하고 파문합니다. 하지만 루터는 물러서지 않고 교황의 파문 교서 사본과 교회 법전을 공개적으로 불태워버립니다. 그 다음해인 1521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새 황제가 된 카를 5세가 보름스에서 제국의회를 소집해, 루터에게 95개 반박문을 철회하라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거부합니다.

 

나의 양심은 오직 신의 말씀을 따를 뿐이다. 따라서 나는 그 무엇도 철회할 수 없으며,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양심에 거역되는 행동은 위험하며 고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 나를 도울 것이다. 아멘!

 

그러자 황제는 루터와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제국 추방령을 내립니다. 이로써 루터는 교회법만이 아니라 세속법에서도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루터는 죽은 목숨이 된 것입니다. 교황과 황제로부터 협공을 당한 루터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지만, 그가 읽은 시대의 징조,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결코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절대적 힘의 열세 속에 루터의 항의는 변방의 사소한 소동으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신성로마제국의 제후들이 연합해 황제에 맞서며 루터를 보호했고, 그 덕분에 루터의 개혁은 독일을 넘어 전 유럽으로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보호해 준 제후들에 대한 루터의 정치적 부채는 그의 개혁을 제한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 다시 하겠습니다.

     아무튼, 루터는 그의 시대적 현실을 치열하게 직시하면서, 시대의 징조를 읽고, 하느님의 뜻에 책임 있게 응답하고 행동했습니다. 루터는 그가 목격하고 체험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못 본 척 하지도, 침묵하지도 않았습니다. 바티칸과 신성로마제국의 위력적인 동맹 앞에서 루터의 항의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산산이 부서질 각오를 하며 자신의 전 존재를 시대 속에 던진 것입니다.

 

미완의 개혁: 루터가 배반한 루터

 

이제 루터의 과실 혹은 한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에서는 타협과 퇴행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급진적이었습니다. “모든 신자가 사제라는 그의 주장이 특히 그렇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평등한 하나님의 사제이며, 사제들 사이의 직무 구분은 있을 수 있어도 신분 차별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써 사제나 성직자의 중재를 통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직업이 성직이라는 생각도 확산되었습니다.

     루터는 제도와 의례도 개혁했습니다. 그는 사제들이 독점하던 일곱 성사 중 세례와 성만찬만 인정하고 나머지, 즉 견진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는 폐지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개의 성사를 직업적 성직자만이 집례하게 되고, 또 개신교 목사의 설교가 거의 성사수준으로 강조되면서, ‘탈성직주의로 출발한 개신교가 빠르게 재성직주의화되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이상과 현실이 가장 극적으로 충돌한 사건은 신약성서의 독일어 번역입니다. 루터 이전에는 교회가 라틴어 성서를 사용하고 있어서 전문 성직자와 귀족만이 성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공식 언어도 라틴어였습니다. 그러니까 민중은 읽을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외국어 같은 성서 말씀과 강론과 찬양을 들으며 구경꾼처럼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루터의 성서 번역은 성직주의를 지탱하고 있던 의례와 제도의 권위를 오직 성서”(sola scriptura)의 권위로 해체한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그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루터에 대해 비판적인 가톨릭 역사가 요하네스 코칼레우스조차도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의 신선한 충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터의 신약성서는 인쇄술을 통해 구두수선공, 여성, 그리고 보통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이들이 약간의 독일어를 배우면, 마치 지혜의 샘이 솟아오르듯 신약의 내용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성서를 가슴에 품고 다니며 외우는 사람도 있었다. 몇 개월 만에 성서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쌓아, 가톨릭의 평신도뿐만 아니라 성직자나 수도승 심지어는 성서를 전공한 학자나 교수와의 토론에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평신도나 개인뿐만 아니라 신학박사나 대학인과도 토론을 할 정도다.’

 

그런데, 자신이 번역한 성서를 민중이 자유롭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보면서, 루터가 느낀 것은 뿌듯한 기쁨이 아니라 당혹스러운 두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서의 예언자적 정신에 눈을 뜬 민중은 종교개혁에 만족하지 않고 사회개혁으로까지 나아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성서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지만, 막상 하나님 나라의 혁명적 평등사상이 성서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루터는 전문적 신학교육을 받은 신학자나 성직자만이 성서를 해석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중에게 성서를 읽을 자유는 주었지만 해석할 자유는 주지 않은 자기 분열적 태도였습니다.

     루터의 이러한 자기분열은 그의 사회정치적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루터는 종교개혁 초기에는 농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제후들과 귀족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1523년에 쓴 세속 권력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루터는 다음과 같이 예언자적 목소리를 냅니다. “사람들은 너희의 학정과 무자비함을 더 이상 견디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 하나님은 더 이상 참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불과 한 해 뒤인 1524년에 독일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루터는 태도를 바꾸어 농민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농민전쟁을 무력으로 진압하도록 제후들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줍니다. 이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을 보호하고 개혁을 지지해 준 제후들과의 정치적 결속을 포기할 수 없었던 루터의 한계를 드러내줍니다. 모든 신자가 사제라는 루터의 가르침에 고무되어 세상을 바꾸려 했던 농민들은 루터에 대해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독일 농민전쟁에서 약 10만 명의 농민이 죽임 당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이 보인 태생적 한계는 탈성직화를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하고 재성직화로 돌아선 것과, 종교개혁에서 사회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루터가 루터를 배반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알프스 이북인가 알프스 이남인가?


이제, 한국의 시대 현실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재작년 가을, 종교개혁을 주제로 한 어느 평신도 포럼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발제자가 들려준 이야기 중, 종교개혁에 대한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견해가 흥미로웠습니다. 부르크하르트는, 종교개혁이 종교적 부패가 가장 극심했던 알프스 이남 로마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그곳의 부패가 너무 심해서 개혁의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부패해 있던 알프스 이북 독일에는 가느다란 개혁의 희망과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물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알프스 이북의 상태인가요, ‘알프스 이남의 상태인가요?” 발제자와 참가자 모두 대답 대신 씁쓸히 웃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알프스 이남의 상태라는 것을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 36, 한국전쟁, 군사독재, 광주학살, 세월호 참사로 이어지는 고통의 역사 속에서도, 부와 권력을 탐하며 덩치를 키워 온 한국교회의 부패는 루터를 경악시킨 16세기 유럽 교회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겁니다. 루터가 알프스 이남의 상태와 같은 지금의 한국교회를 본다면. 그는 개혁할 용기를 낼까요, 아니면 질려서 포기해 버릴까요? 저는 양심과 열정의 사람 루터는 개혁의 목소리를 내며 행동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시대의 징조를 읽고, 그것에 용기 있게 응답한 개혁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음 주부터 만나게 될 한국의 종교개혁 사상가들도 루터처럼 고통의 역사 속에서 시대의 징조를 읽고 응답하고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또한, 16세기의 종교개혁이 배반되었다고 해서 지레 절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종교개혁의 기원과 푯대는 16세기의 루터가 아니라 1세기의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개혁자 예수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새 길을 가려고 했기에, 스스로 길을 내고 스스로 길이 되었습니다. 그 길은 배제의 길이 아니라 포용의 길이었고, 심판의 길이 아니라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권위주의적 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자유롭고 평등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은 위험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루터는 민중과 끝까지 하나 되지 못했지만, 예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민중과 하나 되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공동체 사람들은 서로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서 하나의 몸이라는 은유를 사용했습니다.

     교회는 젊은 개혁자 예수를 지금 여기에서 기억하고 따르는 이들의 한 몸 공동체입니다. 몸이 아플 때 우리는 몸을 버리지 않습니다. 몸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몸을 치유하고 변화시킵니다. 1세기 예수와 16세기 루터와 20세기 한국 종교개혁자들의 뜻과 삶을 배우려는 우리 새길은, 개혁을 포기하고 떠나온 이들의 피난처가 아니라 개혁을 위해 모인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부패하고 타락한 제도교회를 떠나왔고, 그 떠남 자체만으로도 항의, 즉 프로테스트(protest)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떠나는 것이 전부라면, 그것은 항의라기보다는 좌절이나 포기일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프로테스트는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새로운 교회,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새길은 알프스 이남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루터처럼, 아니 루터를 넘어 더 철저히 항의하는 공동체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예수를 따라 살려고 하고, 그것을 막는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에 맞서 항의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새길은 프로테스탄트교회입니다.

     프로테스탄트인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읽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알아차려야 합니다. 예수도 루터도, 그리고 우리가 다음 주일부터 만나게 될 한국의 종교개혁자들도, 모두 자기 시대의 징조를 읽고 응답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교회를 개혁하고 사회를 변혁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제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열고, 선배 종교개혁자들의 뜻과 삶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 배움을 통해 교회와 사회를 개혁할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개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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