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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장회익

“‘포도나무 비유에 담긴 뜻은

(요한복음서 15:1-5)

201764

환경주일

장회익 교수(서울대 명예교수)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요한복음서 15:1-5

 

 

저는 지금 2천여 년 전 팔레스타인의 한 시골 풍경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젊은 스승이 보입니다. 30대 전후의 이 분은 광야에서 40일 간의 수련을 거친 후, 비범한 능력을 얻어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피면서 그들을 바른 삶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삶을 옭아매는 기존의 종교 관행을 신랄히 비판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자애로운 아버지 같은 분임을 일깨워 줍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어떠한 예속에도 구애받을 필요가 없는 하나님 나라의 자유로운 백성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연히 당시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기득권자들에게 엄청난 반발을 사게 되고 급기야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과감히 혁명적 신념을 선포하는 당사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사실 이 문제는 예수님 당시에도 이미 논란이 되어있었고, 이후 2천 년의 긴 역사를 통해서도 여전히 합의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문제입니다. 물론 주류 기독교에서는 이른바 삼위일체 교조를 통해 이를 이해해 왔고, 여기 계신 많은 분들도 아마 그렇게 받아들이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독교의 긴 역사를 통해 보면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이를 현대인에게 설득시키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읽다가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아주 명확한 설명을 해주고 계신 부분이 있습니다. 설혹 비유이기는 하나,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들 이렇게 3자 관계에 대해 아주 분명한 언급을 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1절에서 5절까지 나오는 말씀이 그것인데,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고, 내 아버지는 이를 보살피는 농부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들은 그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포도나무에 달린 가지들이고 하나님이 이를 가꾸시는 분이라는 비유는 알겠는데, 그리하여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고 그렇지 못한 가지는 제거될 것이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런데 예수님이 그 포도나무자체라는 것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포도나무와 그 가지 사이의 관계가 되는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한 관례적인 해석은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지칭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뭔가 좀 이상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던 당시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그 분이 그토록 질타하던 유태교 공동체일 텐데, 이것을 자신의 몸이라 지칭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훗날 자신의 이름으로 모이게 될 교회들을 미리 상정하고 말씀하셨을까요? 아마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는 분이시니, 미래의 일인들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에 덧붙여 다음과 같은 설명이 추가되었을 겁니다. 훗날 내가 떠나간 후, 당신들이 내 이름으로 모여 교회라는 것을 만들 것입니다. 그 때 이루어질 교회라는 것이 바로 내 정체입니다. 나는 그 교회가 사람으로 화신해서 미리 나타난 존재입니다. 이것을 나는 포도나무라고 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있었어야 할 텐데,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설혹 그런 말씀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이며, 누가 그것을 받아들였을 겁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포도나무 비유는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선명한 그러나 누구도 쉽게 상정할 수 없는 이미지여서, 복음서의 저자를 비롯한 그 누군가가 임의로 고안해서 쓴 글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 우리들 뿐 아니라 당시의 청중들이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제 추측으로는 거의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러한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세 권의 복음서들에는 이 비유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를 기재한 요한도 포도나무 그 자체에 주목했기보다는 그 가지에 해당하는 우리들이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한다는 다소 평범한 교훈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그러한 의미의 비유였다면 예수님이 그 안에 굳이 자신의 정체성 곧 포도나무 그 자체로 명시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수님의 정체가 관심의 초점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존재 위상을 꼭 집어 언급하면서 허투루 표현했을 리가 없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훨씬 더 심오한 뜻에서 이것을 말하셨지만, 당시 이를 알아들을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지난 2천 년 간 예수님의 정체성 자체가 미궁에 빠져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스스로 지칭한 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기록들이 여기저기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하나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내가 있었다.”(8:58)고 하는 표현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예수님이 스스로 지칭한 이 라는 존재는 말씀을 전하고 있는 한 개체로서의 인간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특정 개인을 넘어서는 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복음에는 그래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1:1)고 하며,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1:14)고 하면서 예수님을 이 말씀곧 로고스와 동일시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육신론인데, 이는 대단히 심오한 해석이기는 합니다만, 이것이 과연 예수님이 스스로 밝히신 자신의 정체성 곧 포도나무 비유에 맞는 해석인지는 의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예수님이 분명히 밝히신 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이들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 내용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의 증언이나 복음서를 기재한 저자 요한의 증언들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후대 기독교에서는 신격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요한복음의 이해를 바탕으로 삼위일체교조를 제정했으며, 오늘날까지 이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관계를 가장 선명하게 밝히고 있는 포도나무 비유는 아무리 보아도 삼위일체 교조와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교조에 따라 포도나무 비유를 본다면, 농부와 포도나무가 일체로서 하나의 신격을 형성하고, 그 포도나무의 가지들은 오히려 이와 분리된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이상한 해석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포도나무 비유안에 담긴 참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 제가 겪은 신앙의 여정을 조금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저 자신은 고등하교 학생일 때까지 삼위일체설을 포함한 기독교의 전통적 교조를 착실히 수용하는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특히 물리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면서부터 전통 교조(도그마)를 통한 신앙의 수용과 사물을 이해하는 합리적 이성(과학) 사이에 양립시키기 어려운 갈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한 가지 해결책으로, 하나님에 대한 좀 더 철저한 신앙을 추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작품인 자연을 바로 이해하고 이것이 지시해주는 삶의 방향을 따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특히 자연의 기본원리는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안에 있는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발견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생명이 무엇인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명이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의 기본원리를 통해 생명의 이해를 시도해왔고, 그 결과가 지난 이삼십년 간 제가 주로 이야기해 온 온생명개념입니다. 이것의 주된 내용은 몇 년 전에 출간한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라는 책에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기에 여기서는 간단히 요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생명에 대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것 또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또 물질 체계 안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 어떻게 모여야 생명이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구상한 개념이 바로 온생명입니다. 즉 그것만으로 충분히 생명이 되며 그것에 미달할 때는 생명이 될 수 없는 물질 체계의 최소 단위가 무엇이냐를 찾고, 이를 온생명이라 부르자는 것입니다. 이는 곧 생명의 자족적 단위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태양과 지구를 합한 태양-지구계는 주변의 아무런 도움 없이도 생명활동이 가능하므로 하나의 온생명을 이룹니다. 그러나 이 안에 있는 토끼 한 마리는 그 자체만으로 생존할 수 없으므로 자족적 생명 곧 온생명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살아있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온생명 안에 있기에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지, 만일 온생명의 나머지 부분이 함께하지 않으면 생명의 기능을 전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것을 조건부 생명으로 보고 있으며, 온생명과 대비해 개체 생명혹은 낱생명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또한 그 자체로서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는 낱생명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하는 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사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존재론적 실체가 자신을 주체적으로 의식해 지칭하는 명칭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살아있는 실체로서의 를 의식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라고 부르는 개체로서의 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건부 생명에 해당하는 개체로서의 내 몸을 라고 여기고, 이러한 를 주체로 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생명을 지닌 존재로서의 곧 온생명으로서의 를 의식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는 마치 내 몸에 달린 각각의 부위들, 예를 들어 손가락 발가락들이 제각기 독자적인 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다투며 살아가는 꼴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현실이며, 그래서 수없이 많은 분쟁과 분란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떠한 분인가? 우리가 만일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신화적 각색을 한 꺼풀 벗겨내고 예수님이 실제 해 오셨으리라 생각되는 행적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분이야말로 바로 이 온생명을 자기 자신 곧 라고 여긴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분의 모든 실제 행적이 이러한 가정에 가장 잘 부합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지요? 왜 그랬을까요? 온생명을 로 보는 관점에서는 이웃이 바로 내 몸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내가 있었다.”고 하셨을까요? 우리 온생명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보다 먼저 있었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온생명 안에 태어났지, 온생명이 아브라함 이후에 태어난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 자신의 입으로 가강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여기서 포도나무가 바로 온생명이며, 포도나무의 가지들이 바로 온생명 안에서 온생명과의 연결을 통해서만 생존해가는 우리들이고, 이 모두를 보살피는 농부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이 얼마나 명쾌합니까? 사실 온생명을 설명하는 비유로서 포도나무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포도나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은 이미 생명은 본질적으로 온생명임을 자각하시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임을 체득하신 분으로서, 이 온생명 안에 살아가는 모든 낱생명들을 자신의 몸으로 껴안고 보살피고 사랑하신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온생명 안에 살아가는 또 다른 낱생명들인 공중에 나는 새’(6:26)들에 핀 백합’(6:28-29)들을 종종 언급하시면서 이들 또한 하나님의 보살핌 아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포도나무를 보살피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보살핌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포도나무라고 한다면, 이들 또한 포도나무에 속하는 예수님의 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온생명의 한 주요 부분인 우리의 생태계 또한 자신의 몸이라 느끼며 이를 사랑하고 보듬어 주신 분이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체로서의 예수님은 물론 십자가에서 종말을 거두셨지만 대신 온생명으로서의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더욱 크게 활동하게 되셨기에 이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불러 아무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오늘 우리는 온생명의 소중한 한 부분인 우리 생태계를 마구 훼손하고 있는 오늘의 작태가 온생명을 자신의 몸이라 여기셨던 예수님의 몸에 또 한 번 못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이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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