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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017.05.17 11:35

[2017.05.14] 꽃 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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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경일

“꽃 핀 쪽으로


2017년 5월 14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억주일

정경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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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줍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 같이,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 요한복음서 13:34

내 계명은 이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 요한복음서 15:12

내가 여러분에게 명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사랑하십시오. - 요한복음서 15:17 

 


인생을 바꾼 사건

 

우리에게는 인생을 바꾼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득 인생과 세계를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 아하경험일 수도 있고, 과거의 잘못에 대한 참회일 수도 있고, 기존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는 회심이나 전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결정적 변화는 주로 극심한 고통과 같은 부정성을 개인적 혹은 집단적으로 경험할 때 일어납니다. 지금까지의 제 삶에도 그런 인생을 바꾼 사건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제 유년의 도시에서 있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5.18은 국가가 국민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죽임당한 국민이 오히려 폭도로 매도당했습니다. 진실은 은폐, 왜곡되었고 애도는 금지되었으며 분노는 억압당했습니다. 5.18 당시 저는 서울로 이사와 살고 있었고, 또 어렸기 때문에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다만 어른들의 숨죽인 수군거림을 들으며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5.18 광주1980년대의 사회적 금기어였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 대학생이 되었을 때 비로소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 ,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학살 2)라며 절규한 오월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그 순간 그때까지 제가 살고 있던 하나의 세계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 시절 제게 광주는 한 도시의 이름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는 물음이었습니다. 오월 광주가 일으킨 분노, 슬픔, 죄책감, 부끄러움, 두려움의 격랑 속에서 당시의 많은 청년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학생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37년 후, 전두환과 강용주

 

그런데 그렇게 제 인생을 바꿨던 사건이며 물음이었던 광주를 언제부턴가 잊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국민을 학살한 사건에 대한 위험한 기억이 국가의 공식적 기념으로 대체되면서부터였습니다. “광주소요사태”, “광주폭동대신 광주민주화운동5.18의 공식 이름이 되었습니다. 국가가 살해하고 폭행한 시민들은 폭도라는 오명을 벗었습니다. 반정부 시위에서 불리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정부의 5.18 기념식에서 제창되었습니다. 그런 일련의 사회적 변화들은 5.18을 마치 해결된 과거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광주가 흘린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광주 현지의 지휘관들은 명령 받은 대로 작전을 전개했다고 하고, 하위 장교와 사병들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하는데, 정작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는 없습니다. 학살의 음모자들과 집행자들 중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반면 희생자 유가족, 부상자, 광주 시민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그날의 상처를 갖고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깊이 보면 그 상처는 광주 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의 몸과 마음 깊은 곳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국민을 학살한 사건은 쉽게 잊히거나 치유될 수 없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발생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한 채 광주로부터 너무 빨리 빠져나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5.1837년 전의 과거가 아니라 37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현재임을 일깨워주는 두 대조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전두환 회고록의 발간입니다. 그 회고록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공식 명칭조차 부정한 채 자신은 광주사태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라는 이상한 말까지 합니다.

 

다른 한 사건은 428일에 있었던, 국가폭력의 대표적 희생자인 강용주 씨의 보안관찰법 위반에 대한 재판입니다. 5.18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시민군에 참여했다가 마지막 순간 두려움 때문에 도청에서 빠져나옵니다. 도망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방황하던 그는 몇 년 후 의대생이 되어 학생운동에 투신합니다. 그러다 안기부가 1985년 조작한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으로 체포되어 35일간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안기부가 시키는 대로 방송에서 거짓 자백을 합니다. ‘전두환 장군때 두려움 때문에 도망친 죄책감과 전두환 대통령때 고문 때문에 거짓 자백을 한 부끄러움으로 괴로워하던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인간 존엄성을 파괴당하지 않기 위해 전향제도와 준법서약제도를 거부하며 목숨 건 옥중 투쟁을 벌입니다. 그렇게 세계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14년 형을 살고 석방된 후에도 보이지 않는 감옥인 보안관찰법에 맞서 싸우다 이번에 재판을 받은 것입니다. 강용주 씨는 피고인 모두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527일 새벽 4시경, 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점령되어 시민군들이 체포돼 끌려나오는 것을 보고 총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영혼은 하고 금이 가버렸고, ‘살아남은 자로서 견디기 힘든 아픔과 부끄러움, 죄스러움에 시달렸습니다.”

 

그 잔인한 오월로부터 37년 후, 우리는 학살의 책임자이면서도 부끄러움과 죄의식 없이 살아온 전두환의 회고록과 국가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영혼에 하고 금이 간 채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살아온 강용주의 모두진술을 동시에 읽고 있습니다. 과연 2017년의 이 봄과 1980년의 그 봄은 얼마나 다른 걸까요?

 

한강의 소년이 온다

 

광주를 다시 불러낸 두 사건을 계기로 37년의 세월을 압축해서 돌아보면서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휩싸일 때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고통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요. 소년이 온다를 읽게 된 계기는 세월호 참사였습니다. 지난달 세월호 참사 3주년을 앞두고 세월호와 관련된 글을 함께 읽고 묵상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때 한 참여자가 소년이 온다중 일부를 읽어 주었는데, 그 중 한 문장이 천둥소리처럼 제 정신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소년이 온다1980527일 도청에 끝까지 남았다가 죽임당한 중학생 동호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을 담아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논픽션의 요소도 갖고 있습니다. 동호는 작가 한강이 살았던 광주 중흥동 집에 뒤이어 이사 들어와 살았던 소년으로, 교사였던 한강의 아버지(소설가 한승원)가 가르쳤던 학생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한강은 아버지와 막내고모의 대화를 들으면서 동호를 알게 되었고, 훗날 동호의 가족을 직접 만난 후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소년이 온다에서 한강이 붙들고 씨름하는 물음은 소년 동호가 왜 시민군이 되었고 왜 도청에 끝까지 남았는가 입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소년 전사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설 속의 한 시민군은 도청에 함께 남았던 소년들을 다음과 같이 기억합니다. “총을 메고 창 아래 웅크려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들,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소년 동호를 끝까지 도청에 남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죄책감입니다.

 

동호는 학살이 처음 있었을 때 친구 정대와 함께 정대의 사라진 누나 정미를 찾아 나섰다가 시민들의 시위에 합류합니다. 얼마 뒤 계엄군의 총격이 있었고, 그때 총을 맞고 쓰러진 정대의 손을 놓치고 달아납니다. 그리고 군인들이 정대의 시신을 끌고 가는 것을 겁에 질려 바라봅니다. 그런데 나중에 상무관을 찾아 온 동호는 정대가 총에 맞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보았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동호는 정대가 총을 맞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았고 군인들이 정대의 시신을 끌고 간 것도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까요. 쓰러진 친구를 버리고 도망친 죄책감이 그의 지각을 왜곡했던 것입니다. 동호는 두려움 때문에 죽어가는 친구를 버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 죄책감이 그를 상무관과 도청을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과 도청을 지켰다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도 깊은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여고생 은숙과 여성 노동자 선주는 반 쯤 넋이 나간 채 죽은 친구를 찾아 헤매던 동호에게 하루만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동호는 마지막 날까지 도청에 남았다가 목숨을 잃게 된 것이었습니다. 훗날 선주는 비통하게 말합니다동호야. ... 내 책임이 있는 거야, 그렇지? ...내가 집으로 가라고 했다면, 김밥을 나눠 먹고 일어서면서 그렇게 당부했다면 너는 남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 왜 아직 내가 살아있는지 물으려고.”

 

동호와 함께 있었던 대학생 진수는 도청에서 총기소지 극렬분자로 체포된 후 상무대에서 끔찍한 고문과 학대를 당합니다. 군인들이 수감자들의 인간성을 모욕하고 파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두 사람이 한 식판으로 한 줌의 밥을 나눠 먹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수도 도청을 함께 지켰던 동지인 시민군과 서로를 짐승의 눈으로 노려보며 밥을 먹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려 했던 사람들이 밥알 하나, 김치 한 쪽때문에 싸우기도 합니다. 중학생 시민군이었던 영재는 싸우는 어른 시민군들을 말리며 더듬더듬 말합니다. “, 그러지 마요. ..., 우리는……,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상무대에서 풀려난 후 영재는 몇 번의 자살 기도 끝에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죽지 않고 살아남은 죄책감과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었던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진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처럼 악한 가해자들은 아무런 참회 없이 잘 살아왔는데 선한 피해자들은 오히려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괴로워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비극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광주에서 죽어간 이들, 살아남아 깊은 상처로 고통을 겪는 이들이 보여주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은 그들의 선한 인간성을 아프게 입증해줍니다. 그 연약한 이들의 선함을 이야기해주는 소년이 온다야말로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입니다.

 

악에 대한 이해의 거부와 선의 신비

 

5.18은 인간의 근원적 악과 선을 동시에 드러낸 사건입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도 그날의 악과 선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방식은 악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고 선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끔찍한 악을 경험할 때 이해를 시도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악은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악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인 동호, 은숙과 선주, 진수, 동호 어머니, 시민군의 목소리가 있고, 심지어 죽은 정대의 혼까지도 왜 나를 죽였지?” 물으며 목소리를 내지만 가해자들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가해자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왜 죽였는지 알게 할 수도 있을 텐데 한강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가해자의 목소리가 없는 소년이 온다는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통찰을 떠올리게 합니다. 레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났던 일은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아우슈비츠가 왜 존재했는지 이해한다는 것은 아우슈비츠를 있을 수 있는 일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광주학살을 신군부의 권력 장악과 안정화를 위한 전시적 폭력으로 이해하든, 인간의 근원적 악과 잔인성의 발현으로 이해하든, 그 어떤 이유로든 이해한다면 학살은 있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강은 가해자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5.18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절대악임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강은 ‘5.18의 악에 대한 이해는 거부하지만 ‘5.18의 선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동호, 은숙, 선주, 진수는 한 가족, 한 자매형제처럼 서로를 돌보고 사랑합니다.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고 왜 끝까지 도청에 남았던 걸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죄책감이 그 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함께 고통을 겪는 서로에 대한 사랑도 그들을 떠나지 못하게 한 한 이유입니다.

 

한강은 은숙과 선주는 “피가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가두방송을 듣고 각자 헌혈을 위해 전남대 부속병원에 갔고, 시민자치가 시작된 도청에 일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왔다가 얼결에 시신들을 돌보았다고 씁니다. 이 문장에서 저는 얼결에라는 표현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숭고한 열망과 영웅적 희생정신으로 역사의 현장에 뛰어든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차마 남의 고통을 못 본 척 할 수 없어서 얼결에서로 돌보고 사랑한 보통 사람들입니다.

 

5.18 광주를 기억하면서 놀라게 되는 한 가지는 계엄군에 의해 열흘 동안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했는데도 매점매석이나 폭리를 취하는 이들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광주 시민들은 서로 음식을 나눠 먹었고, 부상자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혈했습니다. 또한 정부 조직이 부재한 가운데 총기를 소지한 이들이 많았음에도 강도 사건이나 폭동이 없었습니다. 소설 속의 한 시민군은 5.18의 선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 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렀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이처럼 당시의 기록과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상기시켜 주는 광주 시민의 선함은 신비하게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선의 진정한 신비는 선의 비범성이 아니라 선의 평범성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동호, 은숙, 선주, 진수처럼 평범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죽임당한 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부끄러움과 양심 때문에 얼결에나섰다가 자신들도 죽임당하고 폭행당하고 모욕당했습니다.

 

고통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느껴지는 고통의 강도가 너무 심해지면 책장을 덮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에는 참혹한 고통의 이야기를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과 악의 상황에서 서로 돕고 돌보고 사랑하는 선의 신비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죽어간 이들, 살아남아 고통을 겪는 이들과 내면의 교감을 한 한강은 이렇게 고백합니다.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1980527, 선한 이들의 저항은 실패했습니다. 광주 시민은 국가가 보낸 군대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최장집 교수는 전두환 군부독재는 평범한 광주 시민이 가공할 화력의 군대 앞에서도 도피하거나 굴종하지 않고 저항한 5.18을 경험했기에 19876.10 민주화운동때 군대를 동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분석합니다. 한 도시가 아니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고 있던 상황에서 무력 진압을 시도할 때 흘려질 피를 군부독재도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1980년 광주 시민의 목숨 건 저항이 없었다면 876.10 민주항쟁과 지난겨울 촛불혁명은 무참히 유혈진압되었을지도 모릅니다. 1980년에 목숨을 내놓은 소년 동호가, 선한 광주 시민들이 오늘의 우리를 보호해주고 구원해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오늘 말씀증거를 위해 선택한 세 본문은 동어반복으로 여겨질 만큼 무척 비슷합니다. 예수께서는 거의 같은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 말씀이 중요했기 때문일 겁니다. 중요하니까 반복하신 것이겠지요. 요한복음서 기자가 예수의 반복된 세 말씀을 그대로, 심지어 같은 장에서 두 번이나 나오도록 놓아둔 것도 그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일까요? 같은 장인 요한복음서 1513절에 예수의 사랑법이 있습니다.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죽기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당신의 자매형제들을 사랑하신 방식입니다. 예수께서 뜻하고 행하신 사랑이 그런 것임을 알게 되면 예수의 계명을 지키며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우리는 예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도 그날의 소년 동호와 광주 시민처럼 죽기까지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 자신 없음과 두려움은 그날 도청에 끝까지 남았던 이들도 갖고 있었던 태도이며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저처럼, 아니 저보다 더 평범하고 연약한 그들은 얼결에서로의 고통에 참여하고 얼결에끝까지 남고 얼결에서로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그 사실이 저를 부끄럽게 하면서 동시에 가느다란 희망을 갖게 합니다

 

5.18을 다시 맞으며 우리가 마주해야 할 물음은 인간은 왜 이렇게 악한가?”가 아니라 인간은 왜 이렇게 선한가?”일 것입니다. 고통의 암흑 속에서 더 밝게 빛나는 선의 신비, 선의 평범성, 그것이 바로 우리 안의 소년입니다. 그 소년이 광주 이후’, ‘세월호 이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고통 속에서 서로 사랑하는 인간의 선함이 피어나는 곳으로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기도/에필로그

 

소년 강동호의 어머니는 오월 어머니가 되어 죽은 아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동호를 캄캄한 어둠 속의 희생자가 아니라 햇빛 있는 데로, 꽃 핀 쪽으로 당신을 이끈 아이로 기억합니다. 그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기억을 나누는 것으로 오늘의 기도를 대신하겠습니다.

 

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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