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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경일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요한복음서 7:17~18)


2017319일 주일예배

정경일 형제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만,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진실하며, 그 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다.]

- 요한복음서 717~18-

 

정치의 과잉?

 

주문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마침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었습니다헌재 선고가 있을 때 저는 세월호 유가족새길교회 몇 교우와 함께 청와대 앞 청운동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었습니다한 시간 쯤 뒤저 멀리 경복궁역 쪽에서 깃발을 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행진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그 때 제 마음에 떠오른 말은 봄이 온다!’였습니다민주주의의 봄은 그렇게 환호하듯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습니다이번에도 보수·진보 편가르기 프레임이 작동하면서 이념적 갈등이 격화되었기 때문입니다공안검사 출신의 보수적 성향으로 알려진 안창호 헌법재판관마저도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보충의견을 냈는데극우세력은 헌재의 탄핵 인용을 종북좌파에 의한 반역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박 전 대통령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면서 탄핵 인용 결정에 불복하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안타깝게도 이념적 편가르기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하고 유지하고 확대하는 극우의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이런 편가르기 정치가 불러오는 갈등의 격렬함 때문에 한국사회의 정치가 너무 과잉되어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한국정치는 갈등관계에 있는 어느 한 편이 이겨야만 끝나는 적대적 대결 양상으로 치달아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하지만 그런 적대적 대결을 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한국사회의 문제는 정치의 과잉이 아니라 정치의 결핍입니다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사회적 갈등이 적대와 증오를 초래하는 것입니다이는 우리 사회에 정치가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갈등을 품는 민주정치

 

사회적 갈등에 대한 태도에 따라 정치의 성격이 달라집니다전체주의 정치는 갈등을 억압합니다가장 갈등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입니다그 대표적 예는 한국의 유신체제입니다유신 시절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1972년 처음 실시된 제8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 단 한 명이었고총 2359명의 대의원 중 2357명의 찬성으로 그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단 2표만이 무효표였는데그것은 박정희의 이름 한자를 잘못 쓴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고, ‘100퍼센트’ 지지의 북한 선거와 차별화(?)하기 위해 일부러 무효표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습니다실제로 같은 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선거 결과는 100퍼센트 투표에 100퍼센트 찬성이었습니다이처럼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전체주의 정치는 반대와 갈등을 허용하지 않습니다반대와 갈등 없는 전체주의 사회의 본질은 평화가 아니라 공포입니다.

 

반면 민주주의 정치는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지닌 개인과 집단이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갈등을 억압하는 대신 갈등을 통해 변화하고 성숙하는 것한마디로 잘 갈등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원리입니다한국정치의 문제는 잘 갈등하는 법을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잘 갈등하는 법은 무엇일까요그것은 우선 갈등 관계에 있는 서로의 개인적집단적 역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그러면 갈등이 적대와 증오로 발전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종북좌파로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 중에는 노인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왜 그랬을까요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저는 그들이 지금도 정신적으로 박정희 체제를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그들의 얼굴에는 전쟁과 가난의 상처가 주름처럼 깊숙이 패여 있습니다그런 그들에게 정치적 반공과 경제적 성장을 두 축으로 하는 박정희 체제는 전쟁과 가난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메시아적 체제였습니다그들에게 박근혜는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하며 내면화해온 박정희 체제의 당대적 상징입니다그래서 그들은 박근혜의 위기를 박정희 체제의 위기즉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가치의 위기로 인식하며 태극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물론 태극기를 든 이들의 상처와 좌절과 분노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들의 이념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진정한 이해의 결과는 일치만이 아니라 불일치일 수도 있습니다촛불을 든 국민 중에도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많았습니다그들은 태극기를 든 국민이 망각하거나 부인하는 박정희 체제의 악과 불의를 고통스럽게 기억합니다전태일의 분신인혁당 8인에 대한 사법살인’, 여성노동자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며 대변을 퍼부은 동일방직 테러 등 박정희 체제는 민중을 정치적경제적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박정희 체제는 문화적으로도 억압적이었습니다국가가 남성의 머리 길이와 여성의 치마 길이를 통제했습니다금지곡금서통행금지 등박정희 체제는 온통 금지공화국이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그때 그 시절을 왜 그렇게 잘 아냐고요저도 유신체제의 어린이였기 때문입니다. 1977초등학교 3학년이던 그 어린이는 반공시를 써서 최고상을 받습니다제목은 총싸움입니다.

 

탕탕탕!

아이들이 총싸움을 한다.

부서진 나무 조각 주워 모아서

망치로 뚝딱딱 만든 권총.

총싸움을 하면서 생각하는 것,

나도 커서 국군 되면 공산당을 무찔러야지.

 

별 생각 없이 시를 썼다가 뜻밖의 상을 받은 그 어린이는 반공이 상을 받는 가장 쉬운 길임을 깨닫고 계속 분발하여 그 이듬해 4학년 때도 반공글짓기대회와 반공그리기대회에서 뛰어난 작품을 내서 상장을 받습니다.

 

이런 일화를 지금은 웃으며 말하고 듣지만우리의 웃음 뒤에는 역사의 상처가 있습니다박정희 체제는 반공을 명분으로 사회를 병영화했고국민을 사병처럼 부렸고내부의 약자와 반대자를 빨갱이로 몰아 배제하고 억압했고심지어 어린 소년의 마음에도 미움을 심었습니다그렇게 박정희 체제는 역사에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시대에 대한 두 기억은 세기가 바뀐 오늘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박정희 체제는 현재 속에 강력하게 실재하는 과거입니다사실 촛불시민이 무너뜨리려 하고 태극기시민이 수호하려는 것은 박근혜 정권이 아니라 박정희 체제입니다박정희 체제에 대한 기억의 내전이 격화되면서 촛불시민도 태극기시민도 상처가 더 깊어집니다그래서 더욱 정치가 필요합니다정치는 서로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치가 더 어렵게 여겨집니다특히 우리를 종북으로 몰면서 빨갱이는 죽여도 돼!” 라고 외치는 극우를 이해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하지만 우리와 갈등 관계에 있는 이들의 인간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그들을 악마화하지 않는 것그것이 민주주의 정치의 기초입니다어려운 일입니다하지만 그럴 수 있을 때만 적대와 증오의 악순환을 끝낼 수 있습니다갈등을 품는 민주정치를 사회가 못한다면 교회가 할 수 있어야 합니다교회를 세운 예수께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마태 5:44)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기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턱 걸립니다같은 그리스도인들끼리도 사랑은커녕 정치적 이념 때문에 적대하고 증오하기 때문입니다사회가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습니다종교적 신앙이 다른 것은 참아도 정치적 이념이 다른 것은 참지 못합니다복음은 정치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여야 할 텐데 현실은 거꾸로입니다.

 

한국교회의 정치적 입장은 매우 보수적입니다그것은 한국교회가 반공 이념을 신앙화해온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해방 후 북한 공산주의 세력의 억압을 받고 월남한 서북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한국교회의 중심세력이 된 역사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은 아닙니다하지만 극우 그리스도인들이 태극기뜬금없이 성조기와 이스라엘기게다가 십자가까지 들고 나와 탄핵 반대를 외치고촛불시민을 종북좌파로 몰며 악마화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신학자 김진호는 정치는 적을 이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는데오히려 이웃을 적으로 만들고 있는 극우 그리스도교에는 정치도 신앙도 없어 보입니다과연 그런 적대와 증오의 극우주의와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은 공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도 혼란스럽습니다극우 시민과 그리스도인이 표출하는 적대와 증오를 보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그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자신이 없습니다또한 이제는 촛불과 태극기의 화해와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둘의 가치가 양립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보수와 대화하면서도 진보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보수와 진보가 갈등을 품고 합의할 수 있는 사회적 지점은 무엇일까요그 답을 오늘 함께 읽은 복음서 본문을 통해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내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다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만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진실하며그 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다." 

 

이 본문에서 예수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가르침과 인간의 생각에서 나오는 가르침을 대조시키십니다둘의 결정적 차이는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가르침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만 인간의 생각에서 나오는 가르침을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구한다는 것입니다또한 예수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가르침은 진실하고 정의롭다고 함으로써 인간의 생각에서 나오는 가르침은 거짓과 불의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을 분별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고 하십니다결국 관건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적대와 증오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고뇌한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남북전쟁 당시 하나님은 남과 북 중에 어느 편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링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관심은 하나님이 우리 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내 가장 큰 관심은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북부와 남부의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자기들 편이라고 주장하며 싸울 때 링컨은 하나님 편이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적대적 편가르기 정치의 과열을 식혀줄 만한 신앙적 통찰입니다.

 

그런데여기에서 우리가 매우 주의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생각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이라는 생각도 거짓과 불의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 2008년 미 대선 때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면서 링컨의 하나님 편” 이야기를 인용해 논란이 일었습니다한국의 극우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들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다고 믿고 주장했습니다이처럼 하나님은 자기편이라는 주장과 자기는 하나님 편이라는 주장은 상반되는 것 같으면서도 동일하게 적대와 증오를 부추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은 선()조차 악용할 수 있다는 데 악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링컨도 처음에는 노예제를 폐지하려는 북부 사람들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곧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남부 사람들도 그들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고 믿는 것을 알고 번민합니다결국 북부와 남부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였습니다남북전쟁에서 군인 62만 명과 민간인 50만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그런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링컨은 생각을 바꿉니다북부와 남부 모두 인간을 노예로 삼은 죄악에 공모한 공동의 책임이 있기에 전쟁의 고통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정치적 선택 기준이 분명해집니다하나님은 북의 편도 남의 편도좌파의 편도 우파의 편도진보의 편도 보수의 편도 아닌오직 고통 받는 이의 편이라는 사실입니다그러므로 정치적 갈등의 현실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편인가?”도 우리가 하나님의 편인가?”도 아닌 이 시대 고통 받는 이웃은 누구인가?” 입니다고통 받는 이웃이 우리의 신앙과 정치의 기준인 것입니다역설적으로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고통을 겪는 것그들과 함께 우는 것그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그것이 바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은 고통 받는 이들 가운데고통 받는 이들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지난 3월 10저는 청와대 앞 청운동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피켓팅을 하고 있었습니다그때 우리 주변에 태극기를 두른 사람들 십 수 명이 탄핵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헌재의 탄핵 결정이 나오자 격앙된 그들은 도로를 점거한 채 탄핵을 규탄하는 집회를 시작했습니다그런데 집회 발언의 상당 부분이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공격과 모욕이었습니다그 요지는 세월호 유가족 때문에 그들의 대통령이 탄핵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박 전 대통령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대성통곡 하는 그들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억울함이라면자식들을 잃고 삼 년이 다 되도록 진실을 밝혀 달라며 호소해온 세월호 유가족만큼 억울할까요탄핵 인용을 기뻐하는 시민들과 함께 있으면서도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은 인정할 수 있는 자료가 없으므로 탄핵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선고에 울부짖는 유가족보다 억울할까요? “도대체 왜세월호만 안됩니까왜 우리 애들만 안 됩니까? ... 왜 죽였는지왜 죽었는지그거 하나만그거 하나만 알려달라는데왜 우리 애들만 안 됩니까?” 그렇게 절규하고 오열하는 예은 아버지보다 더 억울하고 비통할까요그날청운동에서아직도 돌아오고 있지 못한 아홉 미수습자의 사진과 이름을 담은 피켓을 붙잡고 서 있으면서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비로소 저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누가 하나님의 편인지하나님의 편에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은 고통 받는 이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진보와 보수의 정치적종교적 정당성은 그들이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의 고통을 없애거나 줄일 때 비로소 입증됩니다그렇지 않고 고통 받는 이웃을 모욕하고 적대하고 증오하는 것은 반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반신적입니다그것은 고통 받는 자를 우선적으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과 함께 20차로 종료되었습니다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적으로 만드는 반공의 우상을 탄핵할 때까지고통 받는 이웃에게 무관심하게 하게 무자비하게 하는 탐욕의 우상을 탄핵할 때까지 계속 촛불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그것이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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