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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이숙진

 

 

여혐과 민주주의는 같이 갈 수 없다

(창세기 12:1~4a)


2017312

세계여성의 날 기념 여성주일

이숙진 자매(한국여성신학회 회장)

 


[교회력에 따른 오늘의 성서본문은 창세기 12장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그리고 아브람은 주님의 말씀대로 길을 떠났습니다.]

- 창세기 121~4-

 

 

새길 교우님들, 반갑습니다. 한국에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제게 새길교회는 샘터 같은 곳입니다. 강남청소년회관시절 존경하는 새길 선생님들로부터 시원한 생수를 얻어 마시곤 했는데 이렇게 말씀증거의 자리에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부활절을 기다리는 사순절 둘째 주일입니다. 기독교인에게 사순절은 히브리 백성들의 40년 광야생활과 예수의 40일 광야기도를 동시에 기억하는 교회절기입니다. 광야만큼이나 우리의 지난겨울도 혹독했습니다. 영하 10도 아래의 맹추위를 겪어야만 꽃이 피는 것을 춘화현상이라고 합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절실한 마음들을 깃발에 매달고 혹한을 견뎠던 것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한 춘화과정이었겠지요. 이제 우리사회도, 새길 교우님들 한분 한분의 생활에도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하길 축원합니다.

 

저는 현재 한국여성신학회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신학회가 신학의 한 분과로 인정받은 지 올해로 서른 두해가 됩니다. “여성신학이라구? 그럼 남성신학도 있나?” “신학을 하는데 남자여자 구분이 왜 필요하냐?” “그게 신학이냐?”는 놀림과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선배 여성신학자들이 고군분투한 끝에 한국기독교학회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신에 관한 학문 곧 신학은 신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의 고백적 언어들을 성찰하여 체계적으로 분석탐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러하기에 모든 신학에는 신학 하는 사람의 삶의 자리와 경험 그리고 생각이 투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전통신학이 남성의 경험만이 반영된 것을 깨달은 여성들은 자신들의 경험으로 신학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신학은 임신 출산 양육 등의 몸의 경험이나 여자라서 겪어야만 했던 그 모든 경험으로 신과 세계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학문적 행위입니다. 또한 여성신학은 제도와 무/의식에 스며든 여성과 사회적 배제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고발하는 일련의 개혁운동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신학이란 구체적인 일상경험을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며 아래로부터의 신학”(정경일)을 주창하는 새길 교우님들은 이미 한국여성신학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3.8 여성대회와 여성혐오의 현실]

이번 수요일에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대회가 있었습니다. 1920년부터 시작된 한국의 3,8여성대회는 각계각층의 여성과 남성이 모여, 성차별의 현실을 진단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신장을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저는 3.8여성대회를 계기 삼아 늘 있었기에 너무나 익숙한, 그래서 오히려 잘 보이지 않았던 우리사회의 여성혐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는 여성혐오의 말들이 난무합니다. 2006년 야후코리아가 조사한 인터넷 유행어 1위로 된장녀가 등장한 후 김여사, 김치x, 맘충...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악녀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김여사는 운전미숙으로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자를 대표합니다. 또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의 덕을 보려는 자를 된장녀, 김치X라고 합니다. 이런 호칭들에는 여성들을 무능력하고 몰염치하며 기생적인 존재로 보려는 짙은 혐오감이 깔려 있습니다. 한국여자들이 무임승차를 한다든지 의존적이라든지 하는 이런 말들이 과연 정당한 평가일까요?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왔던 성, 사랑, 결혼 생활이 박탈된 근본원인이 여성에게 있나요? 빈부격차, 일자리 감소, 3, 5, 7포 세대가 과연 여성들의 탓일까요?

 

여성을 혐오하는 말들은 종종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지난해 5,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처럼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살인사건 피해자 중 여성비율이 51%G20 국가 중 1(UNODC, 2008)입니다. 강력범죄 피해자 중 90.2%(경찰청, 2013)가 여성이구요. 인구의 절반이 넘는 시민이 여자라는 이유로 성적 희롱과 능멸과 생존의 위협을 겪고 있습니다. 강남역사건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여성살해사건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강남역 10번 출구의 3535십장의 포스트잇에 새겨진 소리 없는 아우성은 이를 여성혐오사건으로 명명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를 혐오하는일군의 여전사들이 거울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혐오세력의 패륜행위를 미러링하였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섰지요. 이 여전사들의 거침없는 행보는, 이전의 그 어떤 페미니즘 운동보다 괄목할만한 효과를 거뒀습니다. 일례로 페미니즘 관련 다양한 서적이 출간되었고, 판매고 매우 높았습니다.(인터넷 알라딘 서점통계, 지난해 대비 무려 178%증가) 덕분에 페미니즘의 르네상스를 누리고 있습니다만, 일상에서부터 국가정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여성혐오도 여전합니다.

 

지난달 말, 한 국책연구원에서 결혼시장 이탈계층 방지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연구를 요약하면, 스펙쌓느라 적령기를 놓치니 고스펙 여성들에게 채용시 불이익을 주자, 배우자 탐색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대학에 보급하자, 여성의 눈높이를 낮춘 결혼매칭을 유도하자는 것입니다. “민중은 개돼지와 같으니, 먹고 살게 만 해주면 된다는 고위 공무원의 막말과 행자부의 가임기여성지도가 준 충격과 모멸감이 되살아납니다.

 

시민들의 공분에 부랴부랴 대책위를 소집하고 여성자문위원들을 호출했답니다. 대책회의 자리에서 관계자들은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이지요? 왜들 난리입니까라고요. 무슨 악의가 있다거나 여성에 대한 억하심정으로 그런 연구를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성도 인간이다는 사실을 그들이 몰랐던 게지요.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지식과 정치의식을 가진 자라도 페미니즘을 모르면 여성혐오의 언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로 알려진 사람이 파렴치한으로 뉴스에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남녀공학에서 여성학관련 수업을 하면 남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수강이유를 물은 적이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페미니즘은 너무 익숙해서 폭력이나 혐오로 보이지 않는, 일상화된 폭력에 대한 성찰적 태도를 요청합니다.

 

1차 베이비붐이 끝난 직후 출생한 저희 또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학문적 신앙적 아버지들의 적극적인 격려와 지지로 페미니즘에 눈을 떴고, 알파걸에서 알파우먼으로 성장했습니다. 남자들만의 리그가 펼쳐진 다양한 경기장에서 씩씩하게 도전했고, 크고 작은 열매를 얻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 새 가부장사회의 피해자로, 때로는 비판자로, 때로는 가부장사회의 수레바퀴를 함께 굴리는 공모자로 역할한 적이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딸아들 구별 없이 두 명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 표어를 보고 자랐습니다. 심지어 둘도 많다며 자궁을 통제하는 국가정책과 공모하며 서서히 아버지의 법에 길들여졌습니다.

 

2017,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며 통제하려는 그따위 국가정책은 여전하지만, 젊은 여성들은 달라졌습니다. 지난 10년간 출산율 증진을 위해 80조원을 썼다지만, 저출산의 늪은 깊습니다. 여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 없이는 아무리 돈을 퍼붓는다한들 소용없을 것입니다. 취업준비생으로 젊음을 저당 잡힌 그녀들의 리액션을 보시겠습니까? “정부야 네가 아무리 나대봐라 내가 결혼하나 고양이랑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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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유혹자]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후 여성혐오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상어가 되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멸시나 편견을 뜻하는 여성혐오는 여성을 유혹하는 존재, 열등한 존재로 여깁니다.

 

교회의 오랜 가르침과 성서해석은 여성을 열등하고 유혹하는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여성혐오를 조장하거나 방조해왔습니다. 출애굽의 해방 사건에서 모세를 낳고 키웠던 여성들의 지혜와 헌신보다 남성 모세의 업적만 기억됩니다. 자기 아이를 살리기 위한 어머니의 간절한 외침이 솔로몬의 폭력적 명령을 바꾸게 했지만, 대다수의 한국 교인들은 솔로몬만을 지혜의 담지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에게 동등한 인격성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문화는 민주적인 신앙공동체를 꿈꾸는 여성들의 끼어들기시도를 늘 좌절시킵니다. “시기상조다” “여성은 인재가 없다” “몫을 나눌 만큼의 규모가 아니다고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 어느 사회 영역보다도 심각한 여성폭력사건이 발생하고, 교계지도자들의 여성혐오 발언들이 난무하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혐오의 말들이 교회공간을 부유합니다.

 

교회 밖은 어떠한가요, 여성가족부의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는 우리사회가 여성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고 있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7200명 응답자의 과반수이상이 성폭력은 피해자의 탓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은 줄일 수 있다는 문항에 남성 55%이상, 여성 43%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이 답변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성폭력을 줄이거나 없애려면 가해자가 없어져야 하지 않나요. 모든 폭력의 원인은 가해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폭력에 대해서만 유독 그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립니다. 피해자에게 왜 그런 옷을 입었느냐, 왜 그 시간에 다니느냐, 그 장소에 간 이유는 무엇이냐, 추궁하면서 2, 3차 피해를 양산하는 것입니다.

 

[여성혐오-보호대상자]

여성을 무시해도 되거나 보호해야 하는존재로 인식할 때도 여성혐오입니다. 이 경우 종종 여성을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혐오가 작동됩니다.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의 주역이 여성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교회공동체의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를 보면 여성은 아주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있습니다.

 

또 여성에게 제대로 가르쳐주고’ ‘설명해주고’ ‘대신해주고’ ‘도와주는방식으로 혐오가 작동되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호의로 설명해주고 도와주는 것인데 지나친 피해의식으로 곡해하는 것이 아니냐며 불쾌감을 토로하는 이른바 진보적인 남성들이 적지 않습니다.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의 규범을 익힌 이들은 페미니즘이 너무 협소하거나 깐깐하다며 자못 불편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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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노골적이거나 폭력적인 형태로 드러난 경우, 법의 심판을 받습니다. 호의적인 여성혐오는 행하는 자도, 당하는 자도 그것이 혐오인 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노골적인 혐오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혐오문화를 우리의 일상 속 깊숙이 지속시키기 때문입니다.

 

딸을 너무 사랑해서 딸 앞에서 바보가 되는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 있습니다. 바로 딸바보입니다. 자식을 엄하게 훈육하는 전통적 아버지와는 완전 대조적입니다. 딸이 없는 훈남 연예인이나 아이돌까지 너도나도 딸바보가 되려하기에 오늘날 매력적인 남성이라면 갖춰야 할 덕목이 되었습니다. 이 딸바보 이미지에도 여성혐오의 코드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와 자원으로 딸을 미성숙한 주체로 범주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파걸이 두각을 나타내고, ‘딸바보가 되려는 남성들이 늘어날 때 여성혐오 역시 기승을 부리는 현상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쓴 우에노 치즈코는 혐오가 작동하는 데는 삼인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차별을 당하는 자, 차별을 말하는 자, 그리고 차별에 동조하는 자입니다. 저는 여기에 묵인하거나 침묵하는 방식으로 혐오에 동조 또는 조장하는 자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우선 영상하나 보겠습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이 딸바보 아빠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혐오는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과 사소한 행동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이런 손길과 눈빛이 쌓여서 혐오가 내면화되고 결국 누적되어 폭력으로 터져 나옵니다. 참된 딸바보는 내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일 때 우쭈쭈하는 아빠가 아닙니다. 여성이 밤길을 다녀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 세상, 원하는 대로 옷을 입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 누군가 혐오발언을 할 때 적극적으로 제지하며, 제대로 된 여성정책을 지지하는 아버지야말로 참된 딸바보일 것입니다.

 

[아브람의 떠남과 광야에 서서]

교회력에 따른 오늘의 성서본문은 창세기 12장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그리고 아브람은 주님의 말씀대로 길을 떠났습니다. (12:1-4)

 

아브람이 버려야 곳은 살고 있는 땅, 기득권, 익숙함, 바로 아버지의 집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환경이나 삶의 방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질서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몸과 무/의식에 각인된 것 중에 옳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성차별적 문화가 그러하듯, 우리의 사유와 일상에 자연스레 밀착되어 있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떠나보낼 수가 없지요.

 

사순절 둘째 주에 주신 이 본문에는 떠남을 명령하는 하나님과 그 명령에 말없이 순종하는 아브람이 등장합니다. 성서본문에는 아브람의 그 어떤 반문도 망설임도 없습니다만, 샤갈은 아브람의 마음을 읽은 듯합니다.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며 재촉하지만, 아브라함은 가야할 쪽을 응시하지도 않고 잔뜩 웅크리고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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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독 이 그림의 천사가 외치는 듯 합니다. “여성혐오는 민주주의와 같이 갈 수 없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간 덕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 걸음 나아갔다면 자유로운 개인의 평등한 공동체,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익숙한 고향을 떠났듯이 우리도 혐오와 차별의 관행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이번 사순절은 성평등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광야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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