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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는 새길에 발을 담그고


                                                                                                                                                                             김향미



운전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몇 년 전 아버지에게 날라온 우편물 고지서를 받았다. 보통은 직딩인 내가 고지서를 받는 일은 드물었지만 당시 엄마의 건강문제로 부모님이 시골에 자주 오가실 때라 두 분이 없는 주말에 내가 받았던 것이다. 확인해보니 속도위반 딱지(?)였다. 평소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시던 분인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살짝 놀렸다.

- 아부지도 이런걸 받으시네요.

아버지는 당황하셨고, 엄마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 그럼요. 안하죠. 잔소리 엄청 하실텐데..

 

그리고는 한달 쯤 후 주차위반 고지서를 한 번 더 받았을 때 농담은 나오지 않았다.

- 주정차 위반까지 하신거예요?

아버지는 자존심이 상하신 듯 말이 없으셨다. 그 모습을 보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깊어졌다.

- 죄송해요. 근데 교통지도과라고 써있으니까 뜯어봤죠.

그제서야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잔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엄마께도 말씀드렸고, 그것이 단순히 고지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나이듦을 보여주는 작은 메시지라는 것을 받아들 일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네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속도를 줄이셨지만 예전보다 순발력이 떨어지셨던 게 아닌가 싶다. 흔한 변명도 없이 내가 이렇게 되고 말았어.’ 라는 표정으로 고지서를 받아드셨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아팠다.

 

그때였던 것 같다. 나도 미루던 운전연습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운전면허는 있지만 가끔 일 때문에 사무실 차량으로 벌벌 떨며 운전한 경력이 전부였고, 운전도 차량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변화를 감지한 후,  딸이 운전도 못해 급한 일을 놓쳐버리면 너무 죄스러울 것 같았다. 게다가 운전이 하루아침에 느는 것도 아니고, 평소 공간지각능력은 제로에 수렴하고, 깊은 길치의 병을 앓고 있는 나로서는 더 늦어지기 전에 운전을 제대로 시작해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더 무뎌지시기 전에...

 

그런 이유들이 쌓여 결국 차를 구입했고, 그때부터 나의 바보스런 운전생활이 시작되었다.

시동을 켰는데 앞으로 나가지 않는 차에서 30분을 씨름하기도 하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린 채였다.) 뜨거운 연애를 하듯 차와 벽 키스(?)를 시도하기도 하고, 주차를 위해 차를 앞뒤로 삼만오천이백번쯤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는 것은 예사였다. 매주 오는 교회를 헤매지 않고 오는 날이 드물었고, 집으로 가는길 같은 도로를 대여섯번 뺑글뺑글 도는 것도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사실 대여섯번이라고 말 했지만 긴장해서 몇 번 돌았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 여긴 어디 난 누구... 어느 행성을 맴돌고 있는 것일까..

1년 넘게 매달 오가는 안산 분향소도 갈 때마다 길이 달랐고, 걸리는 시간을 예측할 수 없었으며, 가장 먼저 출발하고 가장 나중에 도착하는 운전자였다. 어쩌다 누구라도 차에 태워야 하는 날이면 물었다. 구원의 확신은 있으신가요? 아님 생명보험은? 그 말을 들은 탑승객들은 (하악, 왕초보로구만...내리고 싶다.) 내릴 수도 탈수도 없는 애매한 표정으로 웃어보였고, 나도 온 얼굴로 무언의 대답을 했다. ‘죄송해요. 저도 제가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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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은 흘러 2~3년간 출퇴근도 하고, 교회 오가는 길도 익숙해지고, 사무실 차로 출장 나갈 때 떨지 않고 운전할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사무실 후배가 자기도 운전 연수를 받고 있는데 사무실 차를 몰아보면 안되냐고 물었다. 별 고민없이 그러라고 했는데, 아직 혼자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으잉?

어쩌다 나는 그 친구 옆에 앉았고, 어느새 '천천히 돌려봐. 그렇지.. 여기서 깜빡이 켜고.. 그래 그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것이 사이좋은 잉꼬부부도 이혼 위기에 처하게 한다는 운전연수? 거절을 못하고 한두 번 그러다 보니  '난 이제 네가 운전하는 차 안탈래.' 라고 말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 오늘도 제가 운전해봐도 될까요?

- 으으응... 그럼 천천히 다녀와. 난 안가도 되지?

- 안되죠. 혼자는 못가요.. 아직 주차도 못하는데. 옆에 타셔서 봐주셔야죠..

- 나도 이제 겨우 초보 딱지 뗐는데? 누굴 가르쳐줄 상황이 아니야.

- 저 연수해준 강사님보다 나으신데요? 그분은 겁 먹고 잔소리 엄청하시는데 훨씬 침착하시니까 제가 덜 떨려요.

- 뭐라고? (그건 내가 그 강사보다 뭘 잘 모르니까 그런거 아닐까?)  .. 그럼 의자랑 백미러 잘 보이는지 맞추고 천천히 출발해 (.. 내가 이렇게 용감한 사람인가? 내 초보시절 탑승해주신 모든 분들의 용기에 경배를... )

 

그렇게 나는 제대로 운전한 지 1년도 안되어 또 다른 병아리 운전자 운전연습 강사가 되어있었다. 인생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그리고 바짝 당겨진 의자에서 전진하는 자세로 땀을 흘리는 그 친구를 보면서 수없이 버벅거리고 바보같았던 나의 레알완전대박왕초보 시절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이제는 가끔 한 손으로도 하고(아직 대부분은 두 손으로^^), 운전하면서 음악도 들린다. (전에는 음악을 틀어도 안들렸다.ㅎㅎ) 그리고 그 정신없던 초보시절 수많은 조언 중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 걱정 마. 초보 때는 사고 안나. 엄청 조심하니까. 오히려 2~3년 차에 조심해야해. 보통 2년쯤 넘어가면 괜히 깝죽대고 3~4년때는 눈감고도 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큰 사고 내지.

 

*

초보시절 나에게도 운전경력 2~3년차라는 시간이 올까 싶었지만 그런 시간은 득달같이 왔다.

그저 닿은 새길에 온지도 4년쯤 되었다. 그 시간도 도둑처럼 왔다.

 

어떤 이는 교회에 대해, 교회에서 만난 이들에 대해, 교회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말한다.

 

난 새길의 그걸 이해할 수 없어.

그 사람은 어떻게 새길에서 그렇게 행동하지.

새길의 그 부분은 정말 불필요해.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똑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난 새길 이게 너무 좋아.

새길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새길의 이 부분이야 말로 정말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이 양쪽 날개의 무게는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일 없이 지속되었다. 나에게는 한발을 담그고 한발은 뺀 상태의 미지근함이 남아있었고, 새길에 대한 나의 태도는 글쎄.. 아직 잘 모르겠어. 어떤 부분은 나를 설레게 하고, 어떤 부분은 여전히 이상하게 느껴져...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2.png


얼마 전 본 한 영화에서 인용된 헤라클레이토스의 <The Cosmic fragments : 우주의 파편들>의 한 구절이 마음에 닿았다.

“The meaning of the river flowing is not that all things are changing so that we cannot encounter them twice.

But that some things stay the same only by changing.“

"흐르는 강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것이 변화하며 우리는 그것들을 같은 상태로 두 번 마주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오직 변화함으로써 같은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철학에 대해 문외한이라 '변함으로써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강물'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서른 살 이후의 갈 길을 더듬으며 평신도 신학의 실천을 고민하는 새길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예배의 의미와 공간에 대한 고민, 깊은 묵상의 시대와 사회적 격랑에 주저없이 뛰어드는 일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이 모든 일에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새길은 공중에 매달린 곡선처럼 위태하지만 변화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렇다. 겨우 초보를 벗어났다고 섣불리 멋대로 질주 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어설픈 운전강사인 양 짧은 생각을 진리처럼 떠벌리지도 말자. 잘못하다간 예상치 못한 속도위반이나 주정차 고지서를 받아들 수도 있고, 초보들조차 내지 않는 사고를 낼 수도 있다. 특히 인명사고(?)는 절대 금지다.

 
새길이라는 이 애매하고도 이상하지만, 매우 친밀하고 매력적인 세계에 발을 담근 채

그 세계가 다양한 물의 모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다.

누구도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면,

매순간 다른 새길, 그러나 여전한 새길.에 발을 담그는 일도 꽤 괜찮은 일처럼 느껴진다.

 

올 여름엔 자전거로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우연히 발견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서늘한 물소리를 들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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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향미 자매는 사회복지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 새길과 함께하여 이제 막 초보를 벗어난 새길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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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철 2018.06.28 13:39

    자매님이랑 새길이라는 강물에 같이 발을 담그고 있어서 참 좋습니다. 익숙함에 안주하지않고 새로움에 흔들리지 않는 새길에서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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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yphard43 2018.07.01 22:03
    운전 4년차에 접촉사고를 내고는 정신이 번쩍들었던 저의 옛날이 기억이 나네요..^^
    올려주신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저도 새길이 새길이라 어쩔땐 낮설게 느껴질때도 있지만, 함께 길을 가는 신앙의 선배, 동료들이 있어 충분히 든든하고 용기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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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2018.07.01 22:15
    아! 맑은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향미님이 옆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폴폴 제게 전해집니다. 성탄절날 향미님의 말씀 증거를 듣고 난 후, 한동안 연예인을 보는 것처럼 떨리고 반갑고 옆에 있기만해도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아! 우리가 새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게 또한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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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인숙 2018.07.03 08:57
    흐르는 새길, 마음에 드네요. 그 물 속 자갈엔 이끼가 끼지 않는다지요? 글 잘 읽었어요. 부대끼면서  흔들리면서 가면 오히려 오래 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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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8.07.04 12:37
    흐르는 새길이란 강물에 함께 발 담그며 그 변화와 변화지 않음을 자매님과 함께 오랫도록 느끼고 싶네요. 음성, 표정 지원 되는 듯 이글을 읽으면서 자매님 얼굴이 떠올라 싱긋 미소지어 봅니다.ㅎㅎ

    새길컬럼 기꺼이 맡아주셔서 고맙구요, 게다가 좋은 글로 편안함까지 안겨주시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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