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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줄 <담요> 한 장

                                                                                                                                                 정공자


                                                      담요 (2).jpg                                      

처음으로 은행골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전 나는 나름대로 그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여러가지 이유로 부모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잠깐이나마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 갔다. 막상 아이들을 만나보니 내가 상상했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살짝 어색한 눈빛과 솜털 가득한 피부의 여리여리한 초딩, 중딩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어른들과의 서먹함이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사람 많은 놀이 공원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려면 금강산도 식후경, 우선 배를 채워야했기에 아이들에게 소시지빵을 건내며 화려하게 지나가는 퍼레이드의 무용수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렇게 시작한 아이들과의 놀이공원 원데이투어는 이름과 학년을 물으며 이야기를 이어갔고 우리는 놀이기구 하나를 타기 위해 길고 긴 줄을 서야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일요일에 할로윈 데이까지 겹쳐 학생들, 가족, 연인들까지 발디딜 틈 없이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은 지치고 힘든 표정이 역력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스마트 폰을 꺼내 들고 게임을 시작하자 다른 아이들도 금새 게임에 빠져들었고 나는 그 타이밍을 놓칠 세라 내가 좋아하는 게임은 이런 건데…’ 하며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아이들도 새로운 게임을 재밌어 하는 바람에 휴대폰을 온전히 내어 주어야 했지만 한시간반이 넘는 긴 대기줄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낼 수 있었다. 마침내 순서가 되어 함께 배에 올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급하강할 때 덮치는 물벼락 속에서도 우리는 같이 목이 터져라 환호했고 배에서 내린 후에도 뒤따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다시한번 그 흥분된 기분을 떠올리며 신나했다. 함께 소리를 지르며 시간을 보낸 덕분인지 이것저것 보고 체험하는 동안 아이들이 먼저 손을 잡을 만큼 금새 친해질 수 있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기억 속에 은행골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자리할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며 함께한 선생님들과 정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우니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추워진 날씨에 바깥에서 늦게까지 놀아서인지 몸도 노곤해진 상태에서 문득 몇 해 전 인상깊게 읽었던 만화책 한 권이 생각나 꺼내 들었다. 친구들의 따돌림, 부모의 무관심 등으로 암울했던 소년기를 보내며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려했던 자전적 이야기, 크레이그 톰슨의 <담요>라는 그래픽 노블이다. 담요가 주는 이미지처럼 추운 계절에 포근하고 따뜻하게 몸을 감싸줄 만한 이야기가 필요했을까.. 하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정작 따뜻한 위로가 되어야할 가족 구성원이 때로는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언행으로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하고 평안을 전해줘야 할 교회는 지옥의 고통만을 말하며 복음만이 살 길임을 강조했으며 성경 캠프에서는 학교에서보다 더한 따돌림을 당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크레이그에게 담요는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 함께 침대를 써야만 했던 동생 필과의 진하게 얽힌 공유의 흔적임과 동시에 사랑의 감정을 나누었던 여자친구 레이나의 아름답고 포근한 추억이기도 하다. 근본주의 기독교에 빠져있는 어머니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리고 덩치 큰 학교 친구들의 괴롭힘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라고는 동생과의 상상놀이와 그림 그리기, 그리고 신앙생활이 고작이었다. 크레이그는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의 도피처로 늘 천국을 꿈꾸다가 성경캠프에서 만난 여학생 레이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갖게 되면서 현실보다는 내세를 기약하는 종교 생활에서 깨어나 사랑과 욕망에 눈을 뜨게된다. 이혼 위기에 처한 부모님과 자신의 안위 밖에 모르는 언니, 그리고 정신지체장애인 오빠와 여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레이나 역시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 유일한 희망은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의 크레이그와 함께하는 시간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예쁜 천을 골라 한땀한땀 손으로 만든 퀼트 담요를 그에게 선물하고 둘은 그 담요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도 한다 

                                         담요1.jpg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여자의 벗은 몸을 그리는 것 조차 허용하지 않는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크레이그가 자신의 방에 걸린 예수상을 볼 때마다 자신을 향한 정죄의식을 투사하게 되는데, 어린시절 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의 예수 모습은 슬퍼하며 등을 돌리는 뒷모습으로 표현되고, 조금 자란 후 레이나를 만나 사랑의 감정으로 서로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사랑을 나눈 후  성스럽고 신비로운 그녀를 빚어 낸 신의 천재적인 솜씨에 감탄하며 바라본 예수 이미지는 오히려 그를 향해 환하게 반겨주는 인상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레이나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인정 받고 싶은 것이었을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이 주는 깨우침이었을지.. 아무튼 그렇게 2주 동안 레이나의 집에 머물면서 서로를 알아가던 그들은 사랑을 원하면 원할 수록 자꾸만 멀어짐을 느끼게 되고 레이나가 짊어져야 할 가족의 무게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이별을 고하게 되면서 크레이그는 이별의 아픔으로 열병을 앓게 되고 자신이 믿었던 종교적 우상들이 결국 허상임을 깨닫게 되고 소심한 소년에서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가서도 매일매일 성경을 읽는 것을 거르지 않았으며 한때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성직자의 길을 꿈꾸기 까지 했던 그가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면서 성경을 멀리하게 되는 계기가 생기는데 그것은 그가 성서의 색인을 보던 중에 <전도서>의 비관적인 분위기를 상쇄시키기 위해 덧붙인 몇 개의 구절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떨어졌을 때처럼 알몸으로 돌아가더라. 일껏 수고해서 얻은 것을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니.. (5 15)” 와 대비되는 내용으로 먹고 살 돈과 재산을 하느님께 몫으로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알아 수고한 보람으로 즐길 일이다. (5 18)”. 이 외에도 그는 상반되는 많은 구절들을 가지고 목사를 찾아가 의문을 제기했더니 수세기 동안 성경의 원전을 옮기는 과정에서 필사생들의 개인적 견해가 추가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 모든 게 성서의 성장 과정이라고 일축해 버렸고 성경 구절들이 모두 신의 입에서 곧장 나온 말씀이라고 배웠던 그는 크게 실망하여 성경과 신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게 되었다.

수년이 흐른 뒤 동생의 졸업식과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에 온 그는 오래전 레이나가 만들어 준 담요와 함께 상자 깊숙히 숨겨 두었던 성경책을 찾아내었다. 오랜만에 펼친 성경책의 책갈피를 넘기다가 혹은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각주들을 보고는 나는 <혹은>이라는 단어가 좋아. 불확실성은 오히려 고무적이니까.’ 라며 반가운 마음으로 <루가의 복음서(누가복음)>를 다시 읽게 되었고 그의 마음에 신앙의 불씨를 일깨워 줄 각주 하나를 발견한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 할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너의 가운데 [혹은 너의 안에] 있다.>” 그리고 그 날 밤 저마다의 질감과 음율의 조각들을 모아 담요를 만들었을 레이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어느 때보다 큰 위안을 느끼게 된다.

그래픽 노블 또는 그림소설이라고 불리는 이런 예술 만화장르의 책들은 보통 한번 보는 걸로 만족할 수 없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그 감정선을 따라가는 역동적이고 수려한 패턴들,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기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 정도로 보았다가 두번째는 팟캐스트에 소개하기 위해 인물 분석과 주인공들의 고민,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야기에 집중했었다면, 이번에 읽을 때는 주인공 크레이그의 잔잔한 심경의 변화는 물론이고 상황의 전환점이 올 때마다 성경의 한구절 한구절을 깨알처럼 기술하며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게 전개됨을 엿볼 수 있었다. 590쪽에 달하는 이 두꺼운 만화책은 위스콘신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소년이 격게 되는 고통과 사랑을 담아낸 성장 소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때 신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주인공 크레이그의 신앙 고백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여름 부천만화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방한했었던 작가 크레이그 톰슨은 이 책에 대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를 꺼내는 작업과 부모님을 권위적이고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이 책이 최고의 그래픽 노블 중에 하나로 인정받게 되고 전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면서 지금은 오히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 한다며 시간이 어려웠던 많은 부분을 해소시켜주었다고 한다. 담요의 주인공처럼 억압적인 부모와 힘든 학교생활 등으로 고민하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집이나 학교처럼 통제된 공간에 있다보면 다른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더 큰 세상으로 나가면 달라진다며 넓은 세상에서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기회를 갖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은행골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와 이 책이 눈에 들어 온 까닭이 바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실의 가혹함에 끝없이 함몰되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을 종종 만나게 되며 또한 그러한 상황을 끊임없이 견뎌내며 살아야 한다.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종교나 가족의 사랑이 그 힘이 되어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가고 그들과 함께 서로의 고단한 짐을 덜어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추운 겨울에도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담요 한 장처럼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 정공자 자매님은 순수미술과 광고 디자인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 했으며 현재 설치 미술 작업과 팟캐스터로 활동 중입니다. 새길교회는 2015년부터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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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7.11.02 20:49

    지난 5월 자매님과 함께 서울 북페어에 같이 갔던게 저에게도 자극이자 계기였던거 같네요. 그 이후 그래픽 노블들 중 느낌이 오는 책들을 저작권자들에게 신청하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매력적인 독자들과 시장이 준비되어 있는 줄 몰랐거든요.

    소개해주신 이 그래픽 노블 "담요" 계속 눈이 가네요.
    그에게 "담요"는 '공감(공유)'이고 '사랑(위로)'이고 '소통' 이네요. 아니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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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명금 2017.11.02 21:32
    은행골 아이들은 새길의 역사속에 긴 부분을 차지하고 지금도 자리하는군요
    예전에 잠깐 만났던, 지금은 사회로 나왔을 그들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맘. 그리고 지금의 학생들에게 훗날 놀이공원의 추억이 즐겁고 따뜻한 기억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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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철 2017.11.02 22:20
    날씨도 쌀쌀해지는 날에 참으로 따뜻한 글을 만났습니다. 담요보다 더 포근하게 아이들을 안아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자매님의 모습이 꾸며지지 않았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새길에서 만나고 또 등나무카페에서 함께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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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음 2017.11.04 00:38
    자매님의 글 또한 따뜻한 퀼트 담요 같군요.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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