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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습 이대로 

                           

                                                                                                                                                                                                                                                                                               민병배

 

사회불안장애의 핵심적인 고통은 무엇일까? 남들 앞에 나섰을 때 불안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불안해하는 모습이 부끄러워 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불안과 싸우는 것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상황에 처하면 불안을 느낀다. 그 불안이 한편으로 고통스럽고 다른 한편으로 수치스러워서, 우리는 그 불안을 없애려 애쓴다. 그런데 불안을 없애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역설적으로 불안은 더 심해진다. 사실상 불안이 문제가 아니고, 불안을 적으로 대하여 이를 물리치려는 태도가 문제가 된다. 불안을 변화시킬 게 아니라, 불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어야한다. 불안을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불안은 우리의 마음이라는 무대를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또 하나의 경험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 사소한 일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속으로 그를 소심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잠시 저조한 기분에 젖어 있는 사람을 보고는 어두운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체한 사람을 약한 사람으로, 환청을 경험한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성소수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한다. 심지어 자신의 부정확한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상대를 답답한 사람이라 부르며 자신의 답답한 가슴을 친다. 답답함을 느끼는 건 자신인데, 왜 상대가 답답한 사람인지? 우리는 경험 그 자체의 일차적 고통보다는, 남들로부터 자신이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배척되고 소외되는 이차적 고통으로 인해 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상대방의 판단이 섞인 반응을 접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나는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자신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각자의 기나긴 투쟁의 역사가 시작된다.


                                                 심리2.png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의 경험을 받아들여주기보다는 아이 자체를 판단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아이가 숙제를 못해서 불안해하면, “너는 왜 그깟 일로 그렇게 소심하니?”라며 아이 앞에서 속상해한다. 아이가 먹을 것을 가리면, “너는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까다로우니?”라며 아이를 나무란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방금 전에 먹고도 또 배가 고프니? 걸신이라도 들렸니?”라며 야단을 친다. 아빠의 상습적인 음주 폭력에 온 가족이 무서워서 아빠에게 말 한마디 못한 채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데, 중학생 아들이 혼자서 용기를 내어 아빠에게 반항을 하였다. 엄마를 포함한 다른 가족들의 반응은 너는 왜 그렇게 유별나니? 너만 조용하면 집안이 조용한데, 왜 집안의 분란을 키우니?”였다. 그 아들의 분노표현방식은 다소 미숙했을지 몰라도 그의 분노만큼은 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란만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만다. 마치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혼자서 정직하게 고발했는데, 군중 다수는 그를 미친 사람으로 매도하는 꼴이다. 결국 그 아들은 반항하는 나는 유별나다고 자신을 탓하며, 마음의 병이 깊어간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이 입은 트라우마를 말하고 싶어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트라우마 희생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트라우마를 입은 것이라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데이트 성폭력을 당한 딸에게 한 엄마는 도서관에 간다더니 왜 그 밤에 거기 있었니?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 없니?”라고 비난하였다.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있을 때, 한 지도층 인사는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왜 수학여행을 경주로 가지 않고 제주도로 갔냐?”는 말로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탓을 돌렸다. 물론 그 엄마가 자신이 더 속상해서 그런 말을 했을 수 있고, 그 인사 또한 안타까운 심정에서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피해자의 고통의 원인을 그의 잘못에서 찾으려는 뿌리 깊은 경향이 있다. ‘네가 당하는 고통은 네 죄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피해자들은 우리가 무심코 던진 판단의 화살을 맞고 더 깊은 상처를 입는다. 트라우마의 일차 피해만큼이나 그런 말로 인한 이차 피해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더 심해진다.

 

나는 상담실 안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내담자들이 사회적인 주류 혹은 강자가 암묵적으로 가하는 문화적 폭력의 희생자들임을 발견한다. 유교적인 학자풍의 집안에서 발랄하고 충동적인 소년이 제지를 당하고,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 소녀가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아버지에게 무시를 당하며, 학교공부가 재미없는 청소년들이 입시위주의 교육에 피해를 당하고, 동성애자가 이방인이나 외계인처럼 경원시된다. 서로 다를 뿐인데, 소수자, 비주류, 혹은 약자들은 틀린 사람,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판단을 당한다. 서로 다름을 수용하고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속에서, 소수자가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의 마음의 병은 치유되기 시작한다.


                                               심리1.jpg      

 

우리는 내 경험과 내 모습을 판단하면서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의 경험과 상대의 모습을 판단하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함은 그 꽃에 대한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꽃이 본래 존재하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 꽃이라는 존재와 만날 수 있게 된다. 진정 나를 만나고 상대를 만나려면, 우선 있는 그대로의 경험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한 사람을 판단함으로 그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 왔는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여리고 섬세한 메시야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만나주셨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무관심한 다수의 방관자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피해자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그의 고통을 공감하는 한 사람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억울한 고통에 공감하여 순수하게 그의 에 다가가려는 사람마저도 3자 개입으로 치부하려 한다면, 피해자의 곁에는 누가 남아 있을까?




** 민병배 형제님은 임상심리학을 전공하고, 마음사랑인지행동치료센터에서 25년째

심리상담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새길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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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7.02.25 18:59
    이글 첫번째 독자로 정말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경험 그 자체의 일차적 고통보다는, 남들로부터 자신이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배척되고 소외되는 이차적 고통으로 인해 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이 부분에 우선 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어요. 나 자신도 이런 이차적 경험을 겪은 고통이 있지만 나로 인해 또 이런 이차적 경험을 겪은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 자신에게도 더욱 필요한 좋은 글 써주셔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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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철 2017.02.25 23:10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많은 것들을 나만의 틀에 맞추려는 습성... 반성하고 반성하지만 막상은 잘 안 고쳐지네요.
    이글을 읽은 지금, 다시 한번 더 반성해봅니다. 그리고 당장 내일부터 "있는 그대로의 이해"를 실천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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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식 2017.02.26 01:20
    잠자던 마음 다시 일깨우는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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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음 2017.02.26 21:10
    '마음이라는 무대를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또 하나의 경험'이라는 말씀에 뭔가 안도가 되는...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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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소리 2017.03.03 11:15
    " 내 경험과 내 모습을 판단하면서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의 경험과 상대의 모습을 판단하면서 상대에게 상처를"
    이 모습 이대로...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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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그대 2017.04.11 08:12
    서로 다름을 수용하고 공감하는 따스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가득한 나라를 꿈 꿉니다. 감동의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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