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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방언 이야기

    

                                                                                                                                         강기대

 

때는 2007. 저는 당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청운의 꿈에 부푼 소년이었습니다. 비록 모의고사 점수는 반타작을 겨우 넘긴 수준이었지만, 반드시 일류 대학을 가고 말겠다는 꿈을 꼭 쥐고 있었더랬지요. 고교에 입학하고 저는 같은 반이었던 전교 1등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가 앉을 때 앉고, 일어날 때 일어나고, 인터넷 강의를 보면 따라 보고, 그 녀석이 읽는 책을 사고, 듣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기행의 절정은, 녀석이 다니는 교회를 따라 출석했던 것이었습니다. 귀신론으로 유명한, 영등포의 한 대형교회였죠.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때의 일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식이었습니다. 처음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 약 한 달 동안 성경 공부, 교리 공부를 시킵니다. 새 신자 교육을 위한 작은 책자도 있었죠. 군데군데 빈칸이 뚫려 있는 교과서를 한 칸 한 칸 메우면서 한 달간의 교육을 성실히 이수하면, 교회 공동체에 정식으로 입문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때 결정적인 입문례는 침례였죠. 교회 지하에 마련된 커다란 욕탕 - 정말 욕탕입니다. 목욕탕, 찜질방에 있는 그 욕탕 말이죠! -에서, 하얀 예복을 입은 채 첨벙, 하고 나면 그제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침례식.png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희한하게도, 모든 신도들이 방언을 하는, 해야만 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른이며 아이며 할 것 없이, 방언을 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고, 그것이 일종의 질병으로 치부되었습니다(암묵적으로요). 제가 침례를 받기 전이면 괜찮았지만,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들이고 난 이후라면 문제시 될 수 있는 것이었지요. 침례를 받고 나올 때, 고등부의 친구들이 우르르 저에게 몰려와 감격을 표했습니다. 또 한 명의 공동체 일원의 탄생을 순수하게 감사해하고, 즐거워하는 것이었죠. ,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비꼬려는 의도는 아니에요. 어찌됐든, 저는 교회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침례실에서 나와 대로변으로 나왔습니다. 침례실 출구는 교회 바깥으로 연결되어 있었거든요.


바로 그 순간, 아이들은 저를 중앙에 두고 둥글게 원을 그렸습니다. 열댓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저는 어리둥절했지만, ,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 곳에 간 이후로 거의 모든 일들이 처음 겪는 일들이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은 원이 완성되자,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전도했던 그 전교 1등 친구도 그곳에 있었죠. 아마 대표 기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기도의 문장을 마치자, 바로 그 때부터, 무언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언어를 여읜 언어의 축제였습니다. “나는 나다!“라고 언어의 유희를 물리치셨던 모세의 하나님이 그리했듯, 이 친구들은 언어적 구획 짓기를 초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인 즉슨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원을 이루는 각 점들과 똑같은 정도로 떨어져있는 점의 개수를 아십니까? 정답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의 점을 우리는 원의 중심이라고 하죠. 하나라는 숫자는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하나님도 혼자시구요, 예수님도 혼자십니다. 때론 독생자라고 불리시죠. 그리고 그 당시 그 원에서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숫자도 세어보니... 하나였습니다. 하나 혹은 혼자. 그 때 혼자라고 느꼈던 것은 저 혼자였겠지요. 여하간 하나라고 하는 숫자는 각별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하나는 곧 여럿으로 떨어지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게라는 말을 썼습니다. 결국, , 저는 여럿이 되었습니다. 그네들의 입모양을 따라, 발성을 따라 방언을 하게 된 것이었죠. 직관적으로, 그것은 성령의 임하심에 의한 것이라기 보단 그냥 군중심리였습니다. 한 마디로 페이크 방언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하던 저는 방언을 하면서 실눈을 떠 주변을 살폈습니다. 저의 구라는 먹혀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제 방언을 듣더니 그 감동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목소리를 돋웠습니다. 아무도 제 거짓 방언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알아차렸다고 그 분위기에 무슨 말을 했을까만은요)

그렇게 위기를 모면하고, 저는 그 친구들에게 환대를 받으며, 잠깐의 담소를 나눈 후 귀가했습니다. 얼떨떨한 느낌이었지만, , 당장의 위기를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했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침례하고 난 후에 교회에서 준 봉투를 열어보았습니다. 침례 인증서와 침례 할 때의 제 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사진을 보자 후회가 밀려들었습니다. . 표정에 신경 좀 쓸 걸. 그렇게 침례의 날이 저물어 갔습니다. 어찌어찌 잘 넘겼... 나 싶었는데, 훨씬 더 중대하고, 미묘하고, 초현실적인 위기가 곧 닥쳐왔습니다.


                                                           방언기도.png


새길 칼럼을 만약 2회에 걸쳐서 썼더라면 이 부분에서 끊었을 텐데, 한 회라 이어서 쓰겠습니다. 무협지나 만화적인 느낌으로 여기서 딱, To be continue... 라고 하고 싶은 부분이었는데 말이죠. 어쨌든, 위기는 침례한 날로부터 머지않은 때, 사실 바로 그 다음 주일에 찾아왔습니다. 그 교회는 오전에 본 예배가 있고, 예배가 끝나면 청년부나 고등부, 중등부 등 각각 나뉘어 다시 한 번 예배와 성경 공부 모임을 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오후에는 2, 3부 예배가 있었죠. 아침 고등부 예배가 끝나고 사교모임을 하고 있을 때, 저를 전도했던 친구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청년부에 방언 해석의 은사를 가진 분이 계시다고, 자기가 모셔 올 테니 제 방언 기념으로 해석을 한 번 받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타짜를 보신 분이라면 알고 계시겠지만, 이럴 때 쫄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한 발 뺀다거나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친구는 제 방언이 페이크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아차릴지 모릅니다. 그런 일은 있어서 안 됩니다. 저는 짐짓 쿨한 척, 고마운 척을 하며 친구에게 부디 그리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녀석은 총총거리며 고등부 예배당을 나갔고, 저는 교회를 다닌 후 처음으로,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혹여나 거기 계신가요. 계시다면 부탁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제가 진짜 방언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건 곤란하시다구요? 그렇담 제가 그 분을 속일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참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친구가 돌아왔습니다. 곁에는 어떤 청년분이 계셨는데,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나이는 얼마 정도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분과 저는 기다란 예배당 의자를 중간에 두고 마주 앉았습니다. 저는 예배당 의자의 좌석 부에 무릎을 꿇고 뒤를 돌아보고 앉았고, 그 분은 보통 예배자들이 앉듯이 바르게 앉아 저를 지긋이 지켜보았습니다. , 기도하자. 나긋나긋한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목이 조금 메었지만 개의치 않고 목소리를 돋우었습니다. “우루뤠뤠우뤠뤠렝에에에...(이하 5분간의 소음은 생략) 헉헉신비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상황을 모면하고자 아무런 소리를 막 내고 있었는데, 그 분은 나긋나긋, 조용하게, 소음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방언 통역은 동시 통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분은 읊조리듯,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듯... 좋은 환경과... 좋은 친구들... 좋은 인연들 사이에서...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대충 이런 식이었습니다.


제가 숨이 차 더 이상 거짓 방언을 할 수 없게 되자, 그 분의 읊조림 또한 끝이 났습니다. 그 분은 저를 지긋이 보더니, 인자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리곤 제 머리를 쓰다듬더니, “우리 기대는 참, 감사하는 영혼을 가진 것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 ‘감사라니... 어떤 감사였을까요. 그 분은 제가 삶 자체를 긍정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좀 더 좁은 의미의 감사였을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순간 제 면피를 가능하게 하셨기에 갖는 감사의 마음 따위 말입니다. 그 분께서 첫 번째 기도(진짜 방언을 하게 해달라는)를 들어주셨던 걸까요, 아니면 두 번째 기도(지금 이 순간 이 사람을 속이게 해달라는)를 들어주셨던 걸까요?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영원히 알 수 없는 질문이겠지요. 어찌됐던, 중요한 것은 저의 두 번째 위기, 중대하고, 미묘하고, 초현실적인 위기가 일단락 됐다는 사실이겠지요.


이 사건이 있은 지 몇 달 후, 저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었지만, 사실 그 보단 교회 자체에 많은 실망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떠난 지 곧 십년이 되어갑니다. (새길 교회에는 201411, 이건우 형제를 따라 왔었더랬죠. ? 이번에도 친구를 따라왔군요?) 그 동안 행복할 때도 있었고, 불행할 때도 있었습니다. 주로 불행했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고, 술독에 빠져 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내 마음 한 구석, 그 어느 한 편에선, 살아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내 영혼 속에는, 기본적으로, 삶이 좋은 것이라고, 살아있는 것은 감사한 것이라고 느끼는 일부가 있지는 않은가. 생명, 생명력, 삶을 좋은 것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느끼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가.


                                                           20160713_180718.jpg


얼마 전 프랑스 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간 김에 떼제 공동체에서 일주일을 보냈죠. 영어가 부족한지라 성경 공부 시간에는 늘 도망 다니면서, 밀밭이며 언덕을, 오래된 교회를 배회하며 소일했습니다.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푸르고 누런 구릉들을 바라보며, 몰래 가지고 나온 담요를 펼쳐놓고 누워서는, 명상적인 기분에 젖어들었습니다. 그 때 불현 듯, ‘감사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번잡한 서울 생활에서 벗어나자, 의식의 저 아래에 묻혀있던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긍정의 느낌이었습니다. 구름을 드나드는 변덕스러운 태양, 언덕 사이를 따라부는 시원한 바람, 먼 데서 들려오는 정겨운 새소리...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즐거이 끌어안는 나의 인식, 나의 존재, 나의 생명. 이것은 나에게서 온 것이기도 하지만 어디에선가 온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디, 누군가는 하나님이라고도 하였고 한울님이라고도 했으며, 브라흐만 이라고 하기도 했고 우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상제라고 하기도 하였고 이치라고 하기도 하였으며, 로고스라고도 했죠. 이름이 무엇이건 간에 저는 그 어디를 향해, ‘를 향해, ‘그것을 향해 감사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건데, 아마도 이런 감사의 마음은, 아주 어려서부터 늘 저와 함께 해오던 것이었습니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달팽이를 잡으러 나가던 날의 초등학교 교정에서, 친구들과 놀고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 골목길에서, 저는 사는 것이 참 재밌고 좋은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저는 그 두 번째 위기의 날, 진짜로 방언을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방언 해석의 은사를 가졌다는 분은, 정말로 방언을 해석할 수 있는 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제 안의 감사 기도를-오랫동안 내 안에 있었던-, 그 분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꿈보다 해몽이네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때로는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방언이 그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말입니다.




** 강기대 형제님은 청년부 소속으로 현재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열정의 청년 철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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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6.08.31 21:57

    와우!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ㅋㅋㅋ
    방언에 얽힌 웃픈 이야기. 몇번 큰소리내며 웃었답니다.ㅋㅋㅋ
    삶에 대한 형제님의 긍정적인 시각이 너무나 싱그럽고 생동감 있네요.ㅋ

    급한 상황에 부탁을 했는데 바로 OK하고 글도 이렇게 빨리 보내 주고...
    무튼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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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태치타 2016.09.01 15:32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당ㅋㅋ 저 근데 소개글에서 철학자는 빼주시면 안될까요...ㅋㅋ 감히 저 같은 쩔이가 철학자를 참칭하면 안돼요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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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6.09.01 18:40

    제 관점에선 자격 충만합니당.ㅋㅋㅋ
    시간도 넉넉치 않았을텐데 어찌 그리 유쾌한 글을 쓰시는지?ㅋㅋ

    근데 읽으면서 궁금한게, 그 형제님 전도한 전교 1등 친구 아직 그 교회 다니나요? 그 친군 지금 방언의 고수가 되어 있을란가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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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태치타 2016.09.02 01:12
    ㅜ 사람들이 자꾸 놀리네.. 철과에선 교수님도 감히 철학자라구 안 해요...
    쨋든 그 전교 1등 친구는 다른 교회로 옮기고 잘 다니고 있는듯합니다 ㅋㅋ 연락이 안 닿은지 몇 년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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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철 2016.09.01 00:22

    성격만큼이나 유쾌하고 산뜻한 글이네요. 읽는 내내 입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나도 방언의 기분을 한번쯤은 경험하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새길정신으로 무장한 신앙심과 기도로써 충동을 이겨내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바르고 밝은 기대형제와의 만남을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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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태치타 2016.09.04 02:23
    방언의 기분이라... 저는 야매로 밖에 안 해 봐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일체화의 경험이겠죠?? 저는 방언을 통한 일체화 보담도 노동, 공감, 봉사를 통한 경험을 더욱 소중히 하는 고로, 형제님의 경험을 더더욱 듣고 보고 물고 뜯고 얘기하고 싶은데요?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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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음 2016.09.01 01:13
    아 나 미쳐버려... ㅎㅎㅎㅎㅎ 넘 재밌게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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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태치타 2016.09.04 02:20
    그냥... 의식의 흐름을 따라썼을 뿐인데... 재밌게 보셨다니 감사드립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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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16.09.02 18:29
    ㅎㅎㅎ 철학이 아니라 문학을 하는게 어떨지...
    글을 너무 재밌게 쓰네요. 거기다 감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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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태치타 2016.09.04 02:19
    ㅋㅋㅋㅋ 과찬이세요. 재밌게 읽으셨다니 넘나 기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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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윤경 2016.09.05 16:24
    글에서 음성지원 되는 듯... 기대 목소리가 들려...ㅎㅎㅎ
    그 때 우리집에서 이 이야기를 정말 재밋게 들었는데, 글로도 이렇게 재미나게 풀어내다니~ 이런, 천상 이야기꾼 같으니라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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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소리 2016.09.11 23:04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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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yphard43 2016.09.19 22:19
    ㅋㅋㅋ형제님 글에 흡입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막 상상도 되고..ㅋㅋ
    너무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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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6.09.20 10:28
    ㅋㅋ 모두들 재밌게 읽으셨다는 반응이네요.
    형제님을 새길 컬럼 고정 필진으로 여겨도 될지요?
    아주 가끔씩 한번 재치와 유머가있는 글들 써주시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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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표도노래다 2016.10.03 10:12
    기대쌤 말씀대로 인생은 꿈보다 해몽입니다. 해몽을 잘 하려면 끊임없이 배워야죠. 천국을 자신 속에서 찾을 수 없다면, 밖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방언?'은 어느 종교 건 다 합니다. 기독기에서 방언을 해야 성령을 받은 증거라고 하는데, '망언'입니다. 성령은 받는 게 아닙니다. 모든 만물에 계십니다. 각기의 차원으로 임재해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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