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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평생 떨쳐 버리지 못한 충격

                                                                

                                                                                                                 양재복

 


*이 글은 올해 여든 넷 이신 양재복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70년 전 한 사건 이야기입니다

                                                     

 

대동아 전쟁(당시 부르던 이름으로 썼습니다.)이 끝나고 미국함대가 인천항구로 입항을 했어요.

 

전선에서 바로 입항한 미군들은 미친 듯이 시내로 들어와

아무데서나 여자를 만나면 겁탈하던 무서운 때였지요.

우리나라 치안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때입니다.


         

             images.jpg                다운로드.jpg



어느 날 아침에 집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데, 전화기 바로 앞에 있는 거울에 흑인 미군 얼굴이 보입니다. 깜짝 놀라 다시 보니 사라지고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잠시 후 앞대문으로 그가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찌할 바를 몰라 엉겁결에 큰 오빠, 껌둥이!’ 라고 소리쳤습니다.

(당시는 흑인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 순간 총소리가 들리고 그 흑인은 양손을 들고 뒷걸음 쳐 도망 나갔습니다.

그 순간 나는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그 후부터 전화 공포증이 생겼습니다. 전화를 걸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고,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길이 생겼지만, 그마저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잠깐의 사건 아닌 사건이 평생 내 마음에 큰 공포를 남긴 것이지요.

그 때 권총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은 어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날 살려준 권총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놈들은 도망치기에 바빴고, 우리 정부는 아직 수립되지 않은 상태여서 조병옥 박사님께서 치안국(정확한 기관 명칭은 기억 나지 않네요)을 세우시고 비서 겸 영어 통역관을 모집할 때였어요.

내 큰 오빠께서는 전에 은행원으로 근무하였으나, 종전 후 모든 기관이 폐쇄된 상태여서 이 통역관에 응시를 했습니다.

다행히 채택이 되어 권총을 보급 받게 되었는데, 그것이 나를 살린 것입니다.

오빠는 후에 조병옥 박사님의 사위가 되었지요.

 

세월이 많이 지나 70년이란 시간 전의 사건이지만 아직도 그때 받은 정신적인 상처는 남아 있는지, 지금도 전화와는 친하지 않습니다. 전화 통화로 감정의 소통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남아 있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격동기를 살아 온 사람의 흔적인가 봅니다.




** 양재복 선생님은 1931년 태어나셨고,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신 후 청량리 병원에서 행려정신병 환자들을 맡아 돌보셨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시면서 해방 후 미군들이 들어와 주둔하게 되는 과정을 눈으로 생생히 목격하시고, 대학 입학하자마자 맞은 6.25 전쟁 때는 어렵게 부산으로 피난하여 그곳에서 의과대학 실습을 하셨습니다. 은퇴 후 운전면허를 따신 후 전국 국보순례를 하셨으며, 노인대학에서 강의도 하셨습니다.

정광복 선생님과 공저로 이제 겨우 80이다라는 책도 출판하셨으며 교회에서는 비디오반, 의료봉사에 열심히 참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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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5.09.04 16:39
    아픈 순간의 경험을 생생한 글로 표현해주신 양재복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전문가의 손길로 글을 다듬어주신 정영훈 자매님께도 감사드리고요.

    선생님께 글 부탁을 드렸을 당시는 미처 생각을 못했는대, 글을 읽고 나니 광복 70주년을 맞아 가장 적절한 새길 컬럼이 되었네요.
    아픈 근현대사 한 소용돌이속에서 늘 배려의 삶을 사신 선생님 정말 존경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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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철 2015.09.05 12:29

    새길칼럼에서 선생님의 글을 볼 수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 인지요.
    더구나 해방 전후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시니 해방 70주년이 더 의미 깊습니다.
    더 건강하셔서 80주년 되는 해에도 그때의 기억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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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5.09.09 14:10
    근철 형제님!
    영화 홍보등으로 많이 바쁘실텐대 언제나 한결같이 우물가에 들어오셔서 댓글 달아주시니 늘 감사합니다. 글을 올리는 입장에서 형제님의 댓글이 항상 힘이되는거 아시죠?.ㅎ

    포스터도 예쁜 "기적의 피아노" 좋은 결실을 얻으시길 바라며, 저두 기회 있을때마다 주변에 입소문 동참하고 있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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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onk21 2015.09.10 04:16

    양재복선생님
    강대국에 의한 해방이 여성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던지, 그 한 단면을 생생하게 알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각인되는 역사의 모습... 특히 그것이 아픈 상처일 때는 쉽게 지워지지 않고 평생을 가네요. 훗날 이 시대를 기억할 지금의 청소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이 코너를 맡아 한결같이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 이혜영 자매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 부담을 지운 것은 저였는데 그동안 맘으로만 감사할뿐 제대로 표현도 못했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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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5.09.10 11:11
    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니 제가 선생님 덕분에 새길과 그리고 새길 많은 분들과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던거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조용히 혼자 예배만 지키다 가고 그랬을거 같아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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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onk21 2015.09.10 04:19
    위의 moonk21은 문경란입니다. 로그인을 안했는지 이름이 안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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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훈 2015.09.10 11:41
    생생한 글을 보내주신 양재복 선생님 감사합니다. 적절한 사진을 찾아 함께 올려주신 이혜영 자매님도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초고를 대하고 '시간의 품위를 간직한 고택'을 보듯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좋은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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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진 2015.09.29 17:48

    교회로 향하시는 뒷모습을 볼 때면 언제나 마음이 환해지는 하루를 맞이하게 됩니다. 같은 공간에 늘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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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국 2015.09.30 14:09
    우리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쓰라린 역사가 선생님께도 큰 상처를 남겼군요. 분단 70년이 되도록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지금도 뼈아픈 역사가 쓰여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항상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시는 선생님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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