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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과 사회, 그리고 소프트웨어

 


                                                                                                    안재하



위협받는 노동과 소프트웨어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인간의 지적활동의 상당부분을 고속으로 자동화하여 대체하는 일종의 로봇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 고도성장시대, 팔토시를 끼고 정확하게 대자를 대고 그린 표에 깨끗한 손글씨로 정리하던 회계장부는 이제 스프레드시트로 대체되었다. 커다란 종이에 삼색마커로 그리던 보고용 차트는 이제 김대리 혼자서 파워포인트로 야근 하루 하면 다음날 발표가능한 장표가 되었다. 지금 이 글이 쓰이고 있는 워드프로세서는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의 사무직은 오피스 소프트웨어 없이 불가능한 존재다.


2011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나 (Why software is eating up the world)’ 라는 제목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기사는 컴퓨터가 발명된지 60, 인터넷이 등장한지 20년만에, 아마존과 같은 미디어 산업부터 전통적인 농업에 이르기 까지 소프트웨어가 조용히 일으키고 있는 산업의 격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소프트웨어.jpg



2014년 이코노미스트지는직업의 미래: 돌진하는 물결(The future of jobs: The onrushing wave)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컴퓨터화(computerisation)로 인해 위협받을 직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텔레마케터와 회계사를 필두로 비행기 조종사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수집, 분석, 심지어 의사결정을 직접 실행하는 직업군들까지 모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노동을 끊임없이 요구받았다. 절도나 갈취없이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얻으려면 노동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구절은 노동을 신성시 하던 가치관을 반영한다. 노동없이 생활하는 자는 기생충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지나친 불로소득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기계의 등장과 산업화로 육체 노동은 줄어들었고, 지적 노동은 새로운 노동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이러한 지적 노동마저 서서히 없앨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이.jpg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소프트웨어와 같이 의식없는 지능 (non-conscious intelligence)이 현재까지 인류의 가장 놀라운 발명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수백만년 동안 오직 의식있는 존재들만이 고도의 지능을 요하는 노동 (사냥, 체스게임, 질병진단 등)을 할수 있었지만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묻는다: 중요한 것은 의식인가 지능인가?


고대 그리스라면 노예들이 밭을 가는 동안 철학자들이 한가롭게 이야기 나눌 주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쓸모로서의 인간을 평가하고 보상을 분배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소프트웨어가 인간의 지적인 쓸모조차 대체한다면 인간의 존재의미는 어디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치심 vs 죄의식 사회와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가 불러오는 변화에는 모바일을 비롯한 인터넷 네트워크의 깊숙한 보급과 발전이 큰 몫을 차지한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로대규모의 협력을 꼽는다. 상상력을 전달하여 공통의 목표와 가치관을 형성시키고 달성을 위해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루어 나간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이러한 대규모의 협력을 가속화시키고 깊숙히 고도화 시킨다.


그러나 안심할 수 만은 없다. 인터넷은 공짜(free)이며 동시에 자유(free)인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많은 통제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 구글은 여전히 납작 엎드려 있으며, 페이스북이 차단된 나라는 생각보다 꽤 많다. 작년 터키 사태에서는 정부가 트위터 접속을 통제하는 바람에, 벽에 스프레이로 적은 DNS 우회설정주소 사진이 떠돌았다. 특정 사이트나 컨텐츠 접속을 제어/차단할수 있는 장비는 전세계적으로 아주 잘 팔리고 있다. 구매처는 중동 아프리카 등의 각국 정부기관들이다.


                                                          DNS.jpg


이러한 국가들이 아직 의식수준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단순한 의견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 이유가 이 국가들이 대부분 수치심(shame)을 통해 지배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치심 기반의 사회에서 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 자아인 체면이며, 손상된 체면은 감추거나 역공세를 펴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죄의식(guilt) 기반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행위이며, 잘못된 행위는 용서를 통해 사해질 수 있다.


한국에서는 유독 익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몇십년간 관료사회와 학계에서도 익명의투서문화에 대한 비판을 쉽게 찾아볼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많은 익명의 반대투서들이 날아들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수치심 기반의 문화에 기인한다. 근래의 온라인 게임에서조차, 자신을 상대방에게 드러내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캐릭터는 유난히 한국서버에서 인기가 높다. 사회적 압박이 많은 공동체 안에서, 수치심의 굴레를 씌운다면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걸 배짱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묘하게도 수치심은 공동체 내의 피해자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일제 성노예 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전쟁여성기념관의 위치는 쉽게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다. 사회적 컨센서스에 따라 정해지는 공공건축물의 위치와 형태는 사회적 수치심을 반영한다. 우리는 그런 사실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인정하기에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것일까. 에릭슨의 심리적 발달단계에서도 수치심은 죄책감보다 한단계 낮은 편에 속한다. 우리는 수치심을 넘어 죄를 인식하는 단계로 언제 넘어갈 수 있을까.

 

마무리

 

학교에 아직 가지 않은 어린 아이를 지켜보면 참으로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한다. 호기심에 이끌려 모든 것에 다가가고 관찰하고 뜯어본다.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 아침에 나는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로 아내의 뱃속에 있는 내 첫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지지난 주 작은 점이었던 그것은 이제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나에게 보여준다. 그의 존재는 나에게 하나 쓸모가 없다.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그럴 것이다. 나를 귀찮게 할 것이고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고 (경험하기도 전에 이 모든 것을 미리 알려주는 사회 시스템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를 잠시 미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쓸모나 실용성이 아니라 독립적인 의식이기 때문에 나에게 소중하게 느껴진다.

 

부모와 학교의 훈육 및 교육은 아이를 사회적으로 쓸모있는 사람으로 키워낸다. 그러나 내가 느낄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은, 쓸모가 아닌 의식으로서의 존재임을 확인할 때가 될 것이다.


 

 

** 안재하 형제님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 귀가하는 아버지를 꼬마 시절부터 몹시 의아하게 생각하였으며,

지금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작은 회사의 구성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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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5.05.10 21:15
    제가 글 부탁을 드렸을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승락해주시고 이렇게 좋은 정보가 되는 훌륭한 글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ㅎ

    인공 지능과 인간의 미래는 어떨지? 자못 긴장되며 기대가 되네요..
    얼마전 로봇이 인간 지능을 대체하는 사회가 되면 사라질 직업에 대해 언급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무척 흥미롭고 궁금해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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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철 2015.05.11 09:28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무조건 좋은 일만은 아니군요.
    전문가다운 깊이 있는 글을 접해서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알려주신 2세 소식에 축하의 말씀 드립니다.
    이미 훌륭한 부모로써의 품성을 갖춘 두분과 새롭게 탄생할 2세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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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훈 2015.05.11 17:50
    형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불어, 좋은 소식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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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그늘 2015.05.14 17:37
    우와... 안재하 형제님, 도례미 자매님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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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국 2015.05.22 14:31
    치부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는 그만큼 용기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알리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할텐데 말이지요. 형제님 도례미자매 잘 보살펴 주세요.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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