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자의 기억하는 법
장은정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가는 즈음. 올해도 ‘빛에 빚지다’ 달력을 주문했다. 연말이면 어디선가 선물이나 판촉물로 받는 달력이 여러 개 쌓이지만, 그것들을 다 놔두고 굳이 돈 내서 사는 달력이다. 2009년 용산 참사 때 현장에 머물던 사진가들의 고민으로부터 처음 시작해서 올해로 여섯 번째. ‘사진을 통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세상의 작은 현실 하나는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진가들이 만든다. 최소한, 단 한 번이라도 고개 들어 바라봐주고 들어주어야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 그래서 홀로 떠안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야 하는 이야기. 사진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사진이기에 그 이야기들은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이 되었다. 그리고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확장하려는 방법으로 달력을 만들어 판매했고 수익금은 그 해 가장 연대가 시급한 곳에 쓰인다.
처음에는 용산 참사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희생자 유가족에게 한 푼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로 기륭전자, 쌍룡 차, 콜트콜텍의 해고 노동자들,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례로 달력의 슬픈 주인공이 되었다. 올해는 제주 강정마을과 경남 밀양마을, 제2의 밀양이 되어버린 경북 청도마을에 수익금이 전달될 예정이란다. 폭력적으로 강행되고 있는 해군기지와 고압 송전탑으로 삶의 물리적 터전이 부서지고 무너짐은 물론이고 서로 아프게 뜯기고 갈라져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마을공동체. 그들의 이야기가 2015년 달력에 담길 것이다. 결코, 화사하고 예쁜 사진이라 말할 수 없겠지만, 우리 안에 존재하는 분명한 현실로 외면할 수 없는 삶의 풍경. 그것을 일상에서 곁에 두고 지나칠 때마다 바라보는 것은 때로 마음 고달프다. 사서 보는 아픔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고 ‘최대한’의 연대로 가는 고리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달력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나의 ‘최소한’은 너무 작구나…
사실 달력 팔아 모은 돈이 얼마나 도움이 되려나 싶었다. 용산 참사만 해도 5년이 넘도록 진상규명과 고인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고 기륭, 쌍룡, 현대 자동차도 최하 5년에서 10년이 넘도록 긴 싸움이 이어졌으니 이런 작업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나. 그런데 달력 판매 수익금을 전달받은 이들은 말한다.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건 후원 금액보다도 달력에 새겨진 이름이었다고. (달력에는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프로젝트에 동참하며 선 구매 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다.) 그 이름들은 누군가 함께 하고 있다는,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알고 있다는, 억울하고 원통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 사실이 위로와 힘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올 봄부터 사계절이 다 지나도록 광장과 거리에서 들었던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자식 잃고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잊은 어미 아비에게 “힘내세요.”보다 고마웠던 말은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라던. 역시 기억을 나누는 것이 고통의 나눔 그 시작이다. 기억 없이는 최소한의 변화조차 있을 수 없을 테니까.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늘진 곳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곳에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고 그 삶의 가치 또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일 것이다. 하루하루 무심히 살아가는 중에 그 마음은 참 쉽게도 희미해진다. 그래도 다행이다. 매일 밥 먹고 잠자고 아옹다옹 일상을 사는 공간에서 문득 눈에 들어온 달력의 사진들이 무심했던 것을, 잊히던 것을 깨우쳐주기도 하니 말이다. 치열한 현장을 뛰어다니는 어느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자신에게 사진은 ‘세상을 만나는 도구’가 되었다던데 그를 보는 또 다른 사람, 적어도 내게는 ‘세상을 기억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가슴 저린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도구, 사람들과 소통하는 도구, 일상에서 아픔을 함께하는 도구이기도 하지 않은가.
기억을 (글로) 기록하는 일을 하고자 했을 때는 나도 그랬다.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에도 사연이 있듯이 세상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무게와 총량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이야기가 쌓여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삶일지라도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우주의 이치가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은수저 물고 태어난 출신 환경, 가방 끈의 길이, 가진 것,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어떤 사람의 일생이라도 이야기(글)로 엮어낼 수 있다고 여겼다. 특히 고통 속에 숨죽여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기록으로 더 많이 남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믿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야말로 놓치기 쉬운 이 사회의 아픔을 돌아보고 통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소멸하는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역사를 이어가는 것이라 자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들을 귀’를 갖고 마음으로 듣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야기를 글로 옮기며 사람과 삶보다 개념과 수사, 현학적인 언어가 앞서지 않아야 했다. 무엇보다도 내놓기 민망한 내 글 쓰는 잔재주를 마치 질소를 넣어 포장한 과자 봉지처럼 과장하고 확대해서 상품화에 구걸하지 않아야 한다고 되뇌었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만나고, 소통하고, 기억하는 방법이었다.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마저 기억해야 할 일이라니, 나는 또다시 헤매고 있나 보다.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을 만드는 사진가들은 달력에 ‘빛에 빚지다’는 이름을 붙였다. 빛없이 사진을 만들어낼 수 없으니 어느 사진인들 빛에 빚지지 않은 것이 없어서라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빛뿐 아니라 빛이 비춰주는 모든 대상에 마음의 빚을 지고 사진을 얻기에, 그것으로 작은 현실 하나는 증언해야 했고 세상에 필요한 최소한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했다고. 이토록 아름다운 빚도 있단 말인가. 풍경이든 사람이든 세상 무엇에든 빚지지 않은 것이 없어서 하나라도 돌려주고 싶었다는 말이 무슨 신앙고백처럼 들린다. 그 말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몇 해 전 초여름 어느 일요일, 주소 하나만 들고 낯선 동네를 헤매다가 겨우 찾아낸 곳. 예수와 예수의 삶에 집중할수록 이 땅의 교회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절망했으면서도 차마 버릴 수 없는 고향처럼 더듬더듬 찾아낸 가난하고 작은 예배공동체. 밤새 흥청거리다가 민망한 아침을 맞은 유흥가 거리 귀퉁이에서 ‘빚진 자들의 집’을 만났었다. 술집, 노래방과 같은 입구를 쓰던 그곳에 들어서며 처음 본 글귀가 새삼 기억난다. 내 머릿속에도 지우개가 들은 양 잊어버리는 것 투성이지만 그 ‘빚’은 빛처럼 가슴에 새어들어 선명한 자국을 남긴 듯하다.
'우리는 모두 사랑의 빚진 자입니다.
자연으로부터는 생명의 빚을,
사람으로부터는 사랑의 빚을 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빚을 가장 낮은 곳, 가장 절실한 곳에서부터 갚아가고자 합니다.’
‘빛에 빚지다’ 달력은 내 빚을 기억하게 했다. 사랑의 빚진 자임을 인식하게 해준 ‘빚진 자들의 집’에 대한 기억까지 재생시켜 주었다. 사진가에게 사진이라는 언어가 있듯이 기억을 기억하기 위한 내 방식을 돌아보게 했다. 허둥지둥 한 해를 보낸 이즈음, 새 달력을 벽에 걸듯이 빚진 자로서 ‘최소한’의 기억하는 법을 다시 마음에 걸어야 할 시간인가 보다.
** 장은정 자매님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나누고, 기록하는 생애사(生涯史) 기록단체에서 글을 써 왔으며, 지금은 지자체 문화재단의 스토리텔링 작가, 지역방송 시민기자, 잡다한 글 용역자, 좋게 말해 글 쓰는 프리랜서 라고 자신을 수줍게 소개했습니다.
우선 기한보다 훨씬 일찍 좋은 글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게다가 사진까지...
자매님의 따뜻한 글을 읽다보니 장외에서 직접 행동으로 참여하는 예쁜 모습과 오버랩되네요.ㅎ
지난 봄, 여름, 가을... 아마 우리 '곁'의 가장 뜨거운 심장을 지닌분이 자매님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기억'과 '기록', 다 우리들의 몫이 되어야 할텐데... 우리들 작은 몸짓이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 물꼬가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