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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작하면 언제 주인공 돼?


                                                      송준화

 

                                          untitled.png


'슬로우 비디오는 손에 대한 영화입니다. 젊은 여자의 싱그러운 손! 여자가 춤을 춥니다. 아름답게 단풍이든 골목길. 춤추는 손에서 여자가 보입니다. 발랄하고 경쾌한 율동. 손끝의 놀림에서 생기가 퍼져 나갑니다.

영화에는 청년들, 우리 곁의 평범한 청년들이 나옵니다. 이 시대 평범한 청년들의 삶은 고통스럽습니다. 이들은 종로구의 오래된 동네, 아직 재개발이 안되었고 앞으로도 될 것 같지 않은 달동네에 삽니다. 이들은 편의점에서 일하고, 택배회사에서 일하고, 마을버스 운전을 하고, 구청의 CCTV 관제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혹은 시간제로 일합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로 하루를 보냅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갑니다. 주인공들이 이제 서른이 되었습니다. 여자가 이야기 합니다:


            살면 살수록 예전이 더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삶을 유예합니다.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아서, 아직 보여줄 것이 없어서요. 사랑도 유예합니다. 어느덧 서른이 되니 현실이 더 갑갑하고 미래가 더 불안 합니다. 바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양극화는 청년들에게 치명적입니다. 사람을 설레게 하는 젊음! 진취적인 기상! 세상을 밝게 만들 것 같은 기대!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이들은 도전하지 못하고, 선택에 집착합니다. 청년들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많습니다. 성취의 경험이 없습니다. 자기 확신도 부족합니다. 평가에 예민하고, 실망과 후회가 빠릅니다.


청년세대의 양극화는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불안감 속에서 파악하게 합니다. 시작부터 포기하게 합니다. 청년은 절망하고 침묵하고 냉소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손을 거두고 마음을 격리합니다. 그 속에서 삶이 유예되고 세상은 늦깎이 청년들로 채워집니다. 주인공은 그나마 모든 것을 유예하고 버티면서 끈질기게 오디션을 찾아 다닙니다. 늦게 오디션에 합격해서 단역을 맡은 주인공의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이미 지친 친구가 그에게 건조하게 말합니다.


지금 시작하면 언제 주인공 돼?”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스크린이 백지처럼 텅 비었습니다. 구석에 작은 손이 보입니다. 작고 깨끗한 손! 백지 위의 손이 싱그럽습니다, 환하게 웃습니다, 초등학교 아이처럼 웃습니다. ‘아직도 보잘 것 없는서른의 여자에게 작은 관심이 찾아옵니다. 손이 환하게 살아 납니다. 여자는 함께 춤을 추자고, 이야기 하자고 수줍게 그 손을 내밉니다. 무척 오랜만에


역시사랑연대입니다. 영화도 이런 상투적인 접근을 합니다. 적절하고도 모호한 방식입니다. 여자는 다시 찾아 온 어린 시절의 사랑을 피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과거보다 나아질 수가 없을 것 같아서요. 영화는 슬로우 비디오를 만병통치의 마술램프로 꺼냅니다: 슬로우 비디오는 사랑의 프리즘입니다. 주인공들은느린 화면으로 CCTV를 보면서 사랑을 확인해 갑니다. 사랑과 연대는 자본주의적 일반화도 교리화된 규범도 아닙니다. (한때 유행했던토크 콘서트도 아니고 교회 청년부의 정기적 모임도 아닙니다.) 뚜렷한 구체화이고 개인화입니다. 내 손과 네 손이 서로 맞잡는 것입니다. 그 감촉을 가슴으로 느끼는체험입니다. 슬로우 비디오는 이 뚜렷한 사랑을 천천히 눈으로 확인하게 합니다. 억눌리고 어두워진 마음의 눈을 다시 뜨게 합니다. 사랑의 프리즘을 통하니 달동네의 풍경도 거기에 사는 힘 빠진 주민들도 아름답습니다. 가난함이 따뜻함으로 변해가는 순간입니다. 희망이 다가옵니다.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든든해 집니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imagesFYWQ0H75.jpg


이런 진부한 설정이 얼버무림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더 나은 해결책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스토리가 진행되고 절정에 이릅니다. 주인공들은 꼼짝 못할 나락에 빠집니다. 여자는 빚 독촉을 못 이겨 마지막 보루인 집을 팔고 시골로 내려 갑니다. 남자는 여자를 구하려다 무리해서 시력을 잃습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여자친구를 그립니다. 마음에 새겨진 모습을 천천히 꺼내어 그림으로 그려냅니다. 반전입니다. 젊은 마음에 깊이 새겨진 사랑이 어느덧 용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들이 갖게 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이들도 영화를 보는 사람도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관행화 된 청년 성공은 부조리이기 쉽습니다. 일찍 성공하고, 그 후에는 실패하지 않는다? 이것이 관행화된 사회는 다수의 불안과 절망의 대가 위에 만들어진 집입니다. 청년이 가난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수 있습니다. 청년은,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연대로 힘을 얻고 치열하게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는 세대입니다. 그래야 미래의 사회가 밝아 집니다.


손은 연대의 표징입니다. 어려움을 회피하고자 자폐를 선택했었던 남자 주인공은 이제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연대를 청합니다: 


, 나 좀 잡아줘. 나 안 괜찮아!”

 

 

**송준화 형제님은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이시며, (하나님, 예수) + 소통, 연합, 창의, 청년이 형제님 마음속 단어들이라고 합니다.

  • ?
    루시사랑 2014.10.22 21:21
    따뜻한 글 감사해요! 문학적 감수성이 묻어나는 필치에 깜놀했어요!ㅎ

    읽다보니 공감 단어가 많아요, '사랑', '연대', 그리고 '구체화', '개인화'...
    선생님은 '손'을 연대의 표징으로 표현하셨는데, 저희 교회가 사회와 연대를 하는 표징은 '곁'이겠지요.
    '손', '곁'... 온기를 느끼게 하는 단어들 이네요.
  • ?
    김근철 2014.10.23 09:45
    송준화 형제의 따뜻한 마음을 빼어 닮은 글을 읽으면서 연대의 중요성을 생각해봅니다..
    내가 할수 있는 연대는 무엇일까?
    손을 내민 그들의 곁에 함께 있고자 함이며,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먼저 손을 잡아줌이 내가 할수 있는 연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
    김명식 2014.10.23 16:35
    "나 안 괜찮아!" 꽤 오래 올림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글 감사합니다~
  • ?
    정영훈 2014.10.23 20:44
    글 감사합니다.
    지금 시작하면 언제 주인공 돼? 라는 질문이 청년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군요.
    언제나 길이 멀어 보이기만 하는, 그 심정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영화를 보고 싶네요.
    형제님의 관심사가 한 편의 글에서도 묻어나와요.^^
  • ?
    한점 2014.10.25 18:23

    송준화 선생님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젊은 세대를 귀히 아끼는 마음, 이 시대를 향한 따스한 마음을 느끼곤 했었는데,

    늘 생각하고 계신 과제이시네요!!

    카이스트 학생들은 송준화 선생님 강의에 숨죽이고 감동하며 어록을 만들기까지 한다는 것도 알았구요!!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에게는 게임연구로 박사학위를 유도하고(?) 미국대학의 교수로 만들어내기도 하신분!!

    가슴이 따스한, 아니 뜨거운 과학자!!

  • ?
    루시사랑 2014.10.26 19:43

    선생님! 늘 따뜻한 말씀 정말 감사해요! 오늘도 많은 힘이 되었어요.ㅎ
    저두 처음 새길에와서 어리둥절할때 따뜻한 격려의 말씀에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 ?
    김근철 2014.11.03 17:27
    이 글을 읽고 <슬로우비디오>란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감독이 담아내고자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읽어 낸 형제님의 따스한 눈길에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 ?
    김희국 2014.12.14 20:55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고민 아픔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참 답답함을 느낍니다. 손을 내어주는 연대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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