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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보다 청춘이었을까?

                                                                                                                                     최균

 

                                                imagesKAURM3HC.jpg

 

그 풍경은 낯설고도 익숙했다. 사막이 그렇게 광대했고, 하늘이 그렇게 푸르렀는지 그 곳에 살 때는 느끼지 못했다. 윤상, 유희열, 이적 세 명의 연예인의 페루 여행기를 담은 꽃보다 청춘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최근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프로를 본 내 주변의 사람들도 페루에 가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한다. 페루는 한국의 몇몇 이들에게 꼭 가봐야 할 이상향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에게는 낯선페루라는 나라는 사실 나의 인생에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내가 살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연예인이 새벽에 페루 수도 리마 공항에 도착했을 때 화면이 잡은 그 침착한 두려움을 나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1995 6월 그들처럼, 겨울이 시작되던 그 때 나도 새벽에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있었던 1995년 중반 페루는 TV가 보여준 여행하기 괜찮은 나라가 아니었다. 주류 인구인 인디오, 메스티조가 아닌 뜬금없이 일본인 2 (알베르토 후지모리 박사) 5년 째 독재 철권 통치를 하는 초현실주의적 상황이었고, 스페인 식민시대의 화려한 건물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지독한 가난한 걸인들이 넘쳐 나고 있었다. 그 중 제일 놀랐던 것은 리마의 아주 가난한 동네에는 지붕이 없는 집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에 도시가 있다 보니 생겨난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 대한 반발로, 치안은 불안했고 사회는 어지러웠다. “빛나는 길같은 자칭 모택동파 게릴라 조직과 마약 마피아의 영향이 사회 전역에 걸쳐 있었다. 96 12월 우리집에서 몇 백미터 떨어진 일본대사관을, MRTA라는 과격 단체가 점거해, 6개월 간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다가 전원 사살되기도 했다. (방탄조끼와 권총을 들고 거리에 서있던 후지모리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지금 그는 인권유린과 양민학살 혐의로 감옥에 갇혀 있다)   


                      imagesY8TX0V74.jpg


그리고, 꽃보다 청춘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된 마추픽추는 나의 기억 속에 댕기열이라는 질병과 닿아있다. 그 때 아버지는 마추픽추에서 멀지 않은 지역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방학을 맞아 아버지를 방문 했을 때, 나는 댕기열이라는 고통스러운 열대병에 걸린 아버지를 발견했다. 작은 병원에 누워 계셨던 아버지는 어느 날 나에게 뜨거운 닭백숙 국물이 먹고 싶다고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아직 서툰 스페인어로 눈이 참 예뻤던 동네 식당 아가씨에게 백숙이라는 음식을 설명했는데, 국물은 다 버리고 뽀얗고 탐스러운 통닭만 들고 나타난 그 아가씨를 아버지는 지금도 이야기하신다.

열악한 생활 환경과 치안불안, 동양인이라고 가끔씩 학교에서 받았던 놀림은 나의 생활 반경을 좁게만 만들어 갔고, 나의 성격은 꽤나 내성적이 되어 갔다. 90년 말 이해찬의 입시개혁 폭풍전야에 던져진 한국의 나의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았으나, 페루 생활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러한 불만족은 소심한 저항의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 머리를 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때 사진을 보면 지금은 민망한 중3병의 느낌이지만, 그 시절에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크기변환___.JPG


                                          


어쨌든, 두려움과 소심함으로 나는 페루인들과 페루사회에 대한 벽을 만들었고 변변한 구경조차 못 해본 채 나는 대학진학과 함께 1998년 그 곳을 떠났다. 그리고, 지난 15년간 나는 페루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지지 않았다. 가끔씩 단편적으로 보이는 TV 프로그램의 장면과 뉴스만 스쳐 지나갔을 뿐 그곳은 한국에 돌아온 나의 세계와는 단절된 곳으로 잊혀져 갔다. 그런데, 얼마 전 페루는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삶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90년대 유명한 마약 거리였던 유희열, 윤상, 이적이 머물렀던 리마의 숙소 ‘flying dog’ 근방은 말끔히 정리되었으며, 장거리 버스도 너무 좋아졌고, 이까의 사막 오아시스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들이 탄성을 자아냈던 나스카 지상그림을 나도 보았건만, 감동보다 그 때 나는 왜 비행기 멀미 걱정과 사기 당하지 않을까 하는 근심이 더 컸던 걸까?

나의 기억 속의 페루는 가난하고 불안한 사회에 던져진 10대 외국인의 두려움과 지루함으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러했던 나를 지금 나는 후회한다. 비록 감동을 높이기 위해 좋은 것들 위주로 편집을 했겠으나, 페루에는 참으로 볼만한 것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나는 그런 것들을 경험할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꽃보다 청춘…” 꽃이 아름다운 이유,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스쳐 지나감을 대겠다. 가수 이적이 봤던 이카의 그 짧은 석양처럼, 꽃도 청춘도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것이 빠르다는 것을 알기가 참 힘들다. 내가 페루에서 살았을 때는, 그곳에 영원히 살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사는 게 참 지루했고,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 그래서 후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과거를 후회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20년 뒤에는 돌아보면 30대 후반의 지금 내가 꽃보다 청춘시절로 느껴질텐데, 그 때가 왔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주어진 지금 세상을 최대한 느끼고 경험하면서 살아야겠다. 그래서, 오늘 나는 집 앞 올림픽공원에 나가려고 한다. 그 곳에도 쿠스코의 골목 같은 내가 걸어보지 못했던 많은 작은 길들이 있을테니까. 

 

** 최균 형제님은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에 다니다가, 현재 영국 런던에서 공부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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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4.09.13 13:53

    가슴 한편에 아껴두었던 추억을 꺼내주신 형제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두 이 프로 띄엄띄엄 보다가 이번 추석 연휴때 6부 모두 연속 방송하기에 한꺼번에 몰아서 다시 몰입해서 보았습니다.
    페루의 이색적인 풍광과 이들 세 친구의 우정과 잘 버무려져 더욱 감성적으로 느껴졌답니다.


    페루 길거리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고 이 세 뮤지션들이 감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ㅎ

    형제님 곧 영국으로 가신다고 하는데, 모쪼록 하시는 공부 잘 마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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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철 2014.09.13 23:14
    글을 읽는 내내 나의 청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나는 지금도 청춘이다"라는 스스로의 착각을 공고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님은 새로운 결심을 하고 런던으로 공부를 하러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런던에서 보내게 될 시간은 페루에서 보낸 시간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런던에서 형제님의 불타는 청춘이 다시 시작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건강도~~
  • ?
    루시사랑 2014.09.13 23:37
    형제님! 역시 두번째 댓글 주인공이시네요.ㅎ
    형제님의 "나는 지금도 청춘이다" 인정 인정!!!

    청춘은 찰나의 스쳐 지나감으로 더욱 소중하고 찬란한거 같네요. 저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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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훈 2014.09.15 22:49
    형제님 정말 감사합니다. 마추피츄와 댕기열, 방탄조끼를 입은 후지모리 대통령, 모택동 게릴라 조직과 마피아.... 제게는 뉴스에서나 보던 단어들이 형제님 인생에 스쳐 지나갔군요. 닭 백숙 이야기는 읽기만해도 가슴이 아립니다.
    내가 모르고 지나간 이 순간이... 누구에겐가는, 또 언젠가는 한없이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일지 모른다는 형제님 말씀에 저도 동의 합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으니까요. 교회에서 얼굴을 보았을 텐데.... 인사는 못 나눴어요. 다시 뵙게 된다면 반갑게 악수하고 싶습니다. 멋진 글 읽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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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만자 2014.09.16 10:22
    가슴 아리게 글을 읽었습니다. 최균형제님의 어린 시절에 그런 절절한 경험이 있었던 것을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지금 21세기에도 진행되고 있는 소위 '신유목민들'의 아픈 경험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같은 풍광을 보면서도 누군가에겐 꽃같은 아름다움으로, 또 다른이에겐 가슴막히는 고통 혹은 슬픔으로 느끼게 됨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제 새꿈을 품고 영국에서의 학업을 잘 수행하고 돌아오시기 바라고 힘껏 응원합니다. 늘 기억하고 기원할께요. 좋은 글 다시 감사드립니다.
  • ?
    김명식 2014.09.16 14:58
    내가 너에게 글을 넘긴게 잘 한거 같다!^^ 잘 준비해서 안착하시길! 그리고 기회되면 유럽서 재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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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4.10.02 18:00
    형제님! 책 출간 추카드려요.ㅎ

    그리고 최균 형제님께 좋은 글 받을 수 있도록 중간 역할 해주셔서 감사했구요.
    내년에는 형제님 글도 새길 컬럼에서 접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 ?
    김명식 2014.10.06 09:12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음서요~^^ 내년에도 청년들의 글이 필요하시면 제가 콕 집어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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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4.10.06 10:41
    형제님 말씀만으로도 든든합니다.ㅎ
    형제님을 청년부 섭외 부장님(?)으로 내맘대로 추대하려해요. 괜찮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형제님 글도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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