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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김옥순



“선생님, 이 학생 상담해 주세요, 말이 거의 없고 친구사이도 좋지 않은 것 같고, 너무 지저분하기도 하고 고집이 너무 세서 힘들어요.”

이렇게 담임은 한 마디를 툭 던지고 학생 등을 탁 쳐서 상담실에 밀어놓고 사라지셨다. 머리는 기름떡이 져서 제각각 말라붙어 있고, 교복 칼라 깃은 하얀색을 잃은 지 오래고, 소매 단은 때가 끼어 매끄럽고 스커트 단은 터져 여기저기 축 늘어져 있고, 새끼발가락이 훤히 보이는 신발, 고개는 숙이고 있으나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습이 자신이 있고 싶지 않음을 보여주는 녀석의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녀석과 마주 앉아 있으려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자신에 대해 알려주기를 거부하는 몸짓이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저항들에 숙련이 되었지만 코를 비집고 들어오는 역한 냄새에 익숙해지기엔 내 감각기관이 세련되지 못했다. 상담시간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노려보거나 아예 엎드려 자거나 화장지를 수북하게 찢다 수업종이 울리면 휑하니 가버리는 녀석. 그래도 꼬박꼬박 상담날짜는 기억하고 찾아오는 그 성실함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신호가 내 눈에 들어왔다.


                                                   untitled.png


“네가 하고 싶은 만큼 하렴, 기다려줄게”

한 달이 지나서야 녀석은 그 말처럼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알려주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중국집 배달원, 엄마는 세 살 때 가출하여 얼굴도 기억 안 나고, 두 살 위 오빠는 배고프면 먹을 거 구해 오라며 자신을 때리고, 집안에 화장실이 없어 외부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온수가 나오지 않아 씻을 수 없다며 힘겨움을 그렇게 덜어냈다. 아버지의 수입에 따라 청소년 공동생활시설과 집을 오가며 사는데 굶지 않고 더운 물이 있어 좋다며 공동생활시설을 선호했다.

한 달 용돈이 천 원이어도 기쁘고 아버지의 고생을 귀하게 여겨 차마 쓰지 못하는 아이, 흔하게 여기는 공부나 친구 사귀기가 아닌 점심을 먹기 위해서 학교 오는 아이, 상담실에 배달된 피자를 처음 먹어보는 아이, 학교 화장실에서 세수해야 하는 아이. 마음을 후벼 파는 녀석이었다. 그 아이에게 내 마음 한 편을 내어주고, 그의 얘기에 내 귀를 빌려주고, 마주잡은 손에 힘 한 번 쥐어주는 일이 내 일이었다.


그동안 녀석은 교사와 친구관계에서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다. 부모의 정서적 지지나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감정을 수용당해 본 경험이 부족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관계는 어떻게 맺는지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모델링도 없고 행동 수정하려는 의식도 약한 채 자기방어가 본능적이며 충동적으로 표출되어 스스로 소외와 고립이 심해졌다.

자기세계에 갇혀 있던 녀석이 차츰 다른 세상, 주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교사들에게 인사도 하고, 상담실을 지나가며 손을 흔들고 가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은 나와의 약속은 어기게 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녀석은 한 뼘 자라고 있었다.

별 하나를 이고 있는 초록색 트리, 삐뚤삐뚤하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적힌 분홍색 카드가 초코우유와 나란히 책상위에 놓여 있었다.‘이게 뭐지?’카드를 펼친 난 펑펑 울고 말았다. 자기에게 엄마라는 의미를 알려줘서 감사하다며, 유치원생처럼 내 얼굴을 그리고 엄마라고 쓴 글에, 그리고 차마 쓰지 못한 천 원을 나를 위해 썼다는 그 마음에 미안함과 고마움, 아쉬움이 뭉클뭉클했다. 그것은 내가 받은 가장 비싸고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내 고객이다. 아이들의 요구사항이나 교사, 학교, 학부모의 소리도 담아야 한다. 각자가 자기 말을 더 들어주기를 바란다. 과장되게 표현하면 모두 떼쟁이들이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면 이해와 소통이 되어 만족감이 높아질 텐데 거울 속의 자기만 보려하고 창문은 보려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욱하는 성질을 못 이기거나 장난으로 시작한 행동이 학교폭력이라는 어마어마한 사항으로 마주한 아이에게 감정 조절하는 훈련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에라 이 녀석아’하고 군밤을 주고 싶을 때가 있다. 아픈 친구의 마음은 나 몰라 하고 자기 입장만 고수한 채 장난이었다고 주장하는 아이가 미울 때가 있다. 나중에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녀석을 볼 때면 엄마의 기질이 나타난다.

“괜찮아, 실수였잖아.” 하는 내 목소리도 떨린다.

괜찮다고, 힘내라고, 이제부터 잘하면 된다고 남에게 하기 전에 자신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을 하라고 권한다. 이러한 자기 위안과 힘을 주는 일이 남에게도 깨우치고 스스로도 다짐하는 위로가 중요함을 알게 한다.


                                                                            imagesY5A9MVVC.jpg



학습부진이나 결손가정, 학교부적응 학생을 학부모와 일대일로 연계하여 정서적 안정 및 대인관계와 자존감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기적 멘토모임을 만들어 구성원 간의 소속감과 자부심을 갖게 하고 상담기법을 교육시켜 멘티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게 하고, 멘티들과 정서적 교류를 적절하게 하도록 한다. 자기 옆에 사람이 없어 외로운 게 아니라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외로움이 생긴다. 외로움은 같이 사느냐, 떨어져서 사느냐 이런 데서 발생하는 문제일수도 있지만, 마음의 문을 닫으면 더 외로워진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사는 환경에서도 어쩔 수 없이 외로운데 멘티들은 가족이 해체된 경우가 대다수라 더 외롭다. 멘토들이 아들을 대하듯 살뜰히 살펴주는 손길에 엄마 대리가 있고, 응석과 함박웃음을 가져다주는 멘티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랑은 누구나에게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되고, 연결고리를 통한 멘토들의 우연적사건의 역할이 멘티들에게 친구관계나 학교생활 더 나아가 진로결정에 도움을 주는 엄마표 상담자로서 행복했으면 한다. 또한 멘티들은 멘토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 칭찬을 통해 주변인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자기 만족도를 가지는 변화된 모습이길 기대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히려 내가 많이 배우고 깨닫게 된다. 부모-자녀관계에서 갈등으로 아파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나와 내 자녀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미안함과 고마움을 재 경험하게 된다. 사랑은 나누려 할 때 더 커지고, 주려고 할 때 더 많아진다는 걸 느끼게 된다. 자녀를 씨앗이라 표현한 것에 진한 공감이 간다. <그것이 자라 무엇이 되고, 무엇이 열리는지를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씨앗이 자라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모습은 어떤지, 어떻게 꽃을 피우는지 등등 알아야 한다.> 이처럼 부모는 자녀가 어떠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인내와 믿음으로 독특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꽃을 보면 5월에 피는 장미가 있고 여름에 피는 해바라기,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가 있다. 너무 예뻐서 빨리 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를 5월에 피게 한다면 금방 시들거나 제 멋을 표현하기 어렵다. 제철에 피어야 가장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법이다. 이래서 자녀는 하늘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자 평생 안고 가야 할 과제인가보다. 

 

마음을 이끌어줄 지도자는 누구보다 마음의 이끌림을 많이 받아본 적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잘 알고 있는 건지, 혹시 습관처럼 보아오고 습관처럼 눈에 익숙해져서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뒤늦게 새로움을 찾아냈을 때의 그 오묘한 기쁨처럼 숨겨진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아마도 더 깊고도 소중한 의미를 발견해내지 않을까. 나 역시 섣불리 ‘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즐거운 망설임이 생기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교사나 부모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게 해 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눈은 더 큰 세상을 품을 수 있고, 생명의 씨앗을 갖게 함으로 세상에서 각자 거목으로 성장, ‘being’ 과 'doing' 이 실행되기를 소망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 공감하고 힘을 북돋워주는 일이지만 인간적으로 이 두 가지를 평형으로 유지하기에는 참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여전히 기쁘게 홀림을 당하고 있다.



**김옥순 자매님은 현재 중학교 상담교사로 아이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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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사랑 2014.07.05 14:23

    자매님의 미소만큼 따뜻한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님의 선한 인상과 상담! 넘 잘 어울린다는...

    상담을 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더 위안을 받는다며 수줍게 미소짓는 그 모습이 이 글을 읽는 내내 떠오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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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철 2014.07.05 16:30
    글을 읽으며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상처받은 그 아이가 점점 밝아지고 있다는 글에 안심이 됩니다. 또한 자매님이 그 학교에 있는 한 그 아이는 엇나가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도 생깁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야 커다란 나무에 가렸던 작은 나무들이 잠깐이라도 햇볕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고난의 순간에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자매님이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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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일 2014.07.07 07:38

    마음으로 밑줄을 그으며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네가 하고 싶은 만큼 하렴, 기다려줄게"


    "그 아이에게 내 마음 한 편을 내어주고, 그의 얘기에 내 귀를 빌려주고, 마주잡은 손에 힘 한 번 쥐어주는 일이 내 일이었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면 이해와 소통이 되어 만족감이 높아질 텐데 거울 속의 자기만 보려하고 창문은 보려하지 않는다."


    "자기 옆에 사람이 없어 외로운 게 아니라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외로움이 생긴다."


    "제철에 피어야 가장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자라 무엇이 되고, 무엇이 열리는지를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마음을 이끌어줄 지도자는 누구보다 마음의 이끌림을 많이 받아본 적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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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훈 2014.07.07 10:03
    그렇군요. 정말 씨앗과 같아서 어떤 향기, 어떤 모양의 꽃이 필지 아직 알 수 없는 존재군요.
    새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깊은 울림을 주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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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진 2014.07.09 11:10
    그 아이가 가졌을 행복감에 울컥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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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국 2014.07.21 17:29
    아이와 선생님의 관계가 아름답게 변해가는 모습이 눈에 선히 떠 오릅니다. 현장감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사랑은 나누려 할때 더 커지고 주려고 할때 더 많아진다. 좋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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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2014.08.03 07:28
    많이 배우고 갑니다. 요즘 말 배우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는 저를 돌봐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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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4.08.15 17:43
    좋은 글 읽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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