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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종교의 자유에 대해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곧 신(God)의 사랑과 다름없는 절대적 명제라 생각됩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면 이는 예수님이 다시 인간세상에

오신다고 하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감히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들은 종교의 도그마에 빠져 인간의 존엄성중 종교의 자유를

해하게 된다면 종교를 아니 갖는 것 보다 못하다 생각됩니다..

항상 타 종교 내지 무신론자에 대한 깊은 관용이 필요하다 봅니다..

감히 토를 달아 교수님 죄송합니다..
>
>    
>        
>        황제의 것과 하나님의 것
>        
>        새길교회 말씀증거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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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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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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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10. 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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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황제의
>            것과 하나님의 것
>                    
>                    
>                        [마가복음 12:13~17]
>                    
>                    
>                         
>                    
>                    
>윤진수 형제 
>                        
>                    
>                    
>                         
>                    
>
>  저는 지난 2003년에 대학에 부임한 지 6년이 지나서 안식년을 맞아 미국 버지니아 주 샬롯츠빌이라는 작은 도시에 가서 1년을 보내고 왔습니다. 샬롯츠빌은 인구가 약 4만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로서, 주립대학인 버지니아 대학교가 소재하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대학교는 1825년에 개교하였는데, 그 설립을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 주도하였고, 제퍼슨은 초대 총장으로 재직하였습니다. 살롯츠빌 교외의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제퍼슨의 집인 몬티첼로라는 곳이 있는데,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저도 몇 번 가 보았는데, 날씨가 좋을 때면 그곳에 가서 입장할 때까지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옵니다. 이 몬티첼로는 다른 종교적인 성지가 없는 미국 사람들에게는 워싱턴의 집인 마운트 버논처럼 일종의 성지같이 여겨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이 몬티첼로에는 제퍼슨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퍼슨의 무덤에 새겨진 묘비명이 특이합니다. 이 묘비명은 제퍼슨의 유언에 따라 새겨진 것이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토마스 제퍼슨이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자, 버지니아의 종교의 자유에 관한 법률의 입안자, 버지니아 대학교의 창립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자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자랑스러운 일이니 이것이 묘비에 새겨진 것은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미국 대통령이라는 경력은 없는 것은 제 눈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버지니아의 종교의 자유에 관한 법률의 입안자, 버지니아 대학교의 창립자라는 것을 제퍼슨이 대통령을 지냈다는 것보다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 또한 의아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입안자, 창립자라고 번역했습니다만 원문에는 다같이 Father, 즉 아버지라고 쓰여 있습니다.
>            
>
>왜 제퍼슨이 종교의 자유에 그렇게 관심을 가졌는가, 미국에서의 종교의 자유는 어떤 상황인가 하는 데 제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미국에서의 종교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지난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래로 미국을 악의 제국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그 전에는 미국이 천사의 나라인 것처럼 생각하던 것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나 미국은 천사의 나라도 아니고 악의 제국도 아닙니다. 미국에는 여러 가지의 문제점이 있고, 비난받을 점이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교훈을 얻을 점도 많이 있습니다.  
>            
>
>우리나라에서도 근래 대광고등학교의 강의석 군 사태나 주로 여호와의 증인이 당사자인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때문에 종교의 자유 문제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 시간에 이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니리라 생각해 봅니다.
>            
>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이라는 나라는 영국에서 영국 국교도로부터 박해를 받은 청교도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20년에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플리머스에 상륙한 이야기는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청교도들이 이렇게 영국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신대륙인 미국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넓게 허용하였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와는 반대로 교리가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였던 것 같습니다. 흔히 호된 시집살이를 치른 며느리가 호된 시어머니가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            
>
>그 대표적인 실례로 로드 아일랜드 주를 설립한 로저 윌리암스 목사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윌리암스 목사는 1631년에 영국으로부터 매사추세츠주에 와서 살렘이라는 도시에서 목회를 하였는데, 여기서 그 교회의 신자와 다른 정치지도자와 충돌을 빚게 되었습니다. 충돌을 빚은 이유는 윌리암스 목사는 종교의 자유 신봉자여서 종교적인 교리를 법으로 강제로 집행하는 것을 설교단에서 비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1636년에 윌리암스 목사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추방되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집단으로부터 추방되면 죽기 십상이었지만 윌리암스 목사는 인근의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서 위기를 넘기고 매사추세츠 주 남쪽으로 와서 프로비던스라는 현재 로드 아일랜드 주의 주도인 도시를 세웠습니다. 프로비던스라는 지명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뜻이지요.
>            
>
>당시의 상황을 알려 주는 또 다른 사례는  1692년에 살렘에서 일어났던 마녀 재판입니다. 당시 살렘의 새무얼 패리스라는 목사의 딸과 조카딸이 이상한 증세를 보였는데, 이를 치료하던 의사가 이는 마녀의 소행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마녀 소동은 걷잡을 수 없게 확대되었습니다. 당시 마녀를 재판하기 위한 특별 법정이 설치되었고, 심문을 받은 사람들은 겁이 나서였는지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는지 자신들이 마녀 또는 마법사라고 자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19명이나 되는 남자와 여자가 마녀 또는 마법사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으며, 한 남자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            
>
>물론 이와 달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주도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로드 아일랜드 주가 그러했고, 또 펜실베니아 주도 그러했습니다. 펜실베니아 주는 영국 왕으로부터 토지를 하사받은 윌리암 펜이라는 퀘이커 교도가 1682년에 세웠는데 이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독립 당시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주가 많았습니다.
>            
>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독립하게 되었고, 1785년에 후에 미국의 제4대 대통령이 된 제임스 매디슨은 그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토마스 제퍼슨과 함께 “종교의 자유를 확립하는 법률”을 기초하였고 버지니아 주 의회는 이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누구도 종교적 집회나 예배의 출석을 강요당하지 않고,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고통을 받아서도 안 되며, 또한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고백하고 이를 유지하는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            
>
>나아가 미국 전체에서 종교의 자유가 확립된 것은 이 매디슨이 기초한 헌법수정 제1조에 의해서입니다. 1791년에 제정된 이 헌법수정 제1조는 종교의 자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의회는 종교의 확립에 관한 어떤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되며,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어떤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국가는 특정 종교를 지원하여서도 안 되고, 반대로 개인이 신봉하는 종교를 금지하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            
>
>이러한 헌법수정의 규정은 세계 최초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만, 현실이 반드시 법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요. 가령 1830년에 조셉 스미스라는 사람이 흔히 모르몬 교라고 부르는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를 창립했는데, 이 모르몬 교는 일부다처제를 신봉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셉 스미스 자신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지요.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아서 조셉 스미스는 1844년에 암살되었고, 그 후계자인 브리감 영이 모르몬 교도들을 이끌고 지금의 유타 주 솔트 레이크 시티로 이주해 가서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모르몬 교도들은 일부다처제 문제 때문에 계속 연방정부와 충돌을 빚다가 1890년에 일부다처제를 포기하고 유타가 연방의 준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또 현재에도 KKK단이라는 조직은 흑인들 뿐만 아니라 카톨릭과 유태인을 박해하는 것을 조직의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
>이러한 어두운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미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가장 잘 보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
>우선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을 들 수 있습니다. 1860년에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하자 많은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이것이 성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진화론을 반대하였고, 미국의 보수적인 근본주의자들은 각 주의 의회를 움직여서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거나 진화론을 창조론과 같이 가르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게 하였습니다. 우선 유명한 것이 1925년의 스코우프스 재판이지요. 1925년에 미국 테네시 주에서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처벌하는 내용의 법률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자 스코우프스라는 테네시 주의 고등학교 교사가 이 법률에 도전하여 자신은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이 사람은 생물학 교사가 아니라 수학 교사였기 때문에 진화론을 가르치지도 않았지만,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ACLU라는 단체가 여론의 주목을 받게 하기 위하여 이 사람을 내세워서 재판을 벌인 것입니다. 재판의 결과 스코프스는 유죄 판결을 받아서 100달러의 벌금을 내게 되었지만 이 재판이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            
>
>이후에도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계속되었습니다. 예컨대 1968년의 Epperson v. State of Ark. 판결에서는 공립학교나 공적 자금의 지원을 받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아칸소 주 법률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이 법률이 창세기의 특정 종교적 해석과는 모순되는 것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진화론 반대론자들은 진화론을 못 가르치게 하려고 하기보다는 진화론과 창조론을 같이 가르쳐야 한다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1987년의 Edwards v. Aguillard 판결에서 공립학교에서 창조론과 함께만 진화론을 가르칠 수 있게 한 루이지애나 주 법률도 종교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하였습니다.  
>            
>
>이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요새도 가끔 미국에서는 어느 주의 교육위원회가 진화론과 창조론을 같이 가르치도록 결정하였다는 뉴스가 나오곤 합니다.
>            
>
>물론 미국에서도 공립학교나 공적 보조를 받는 학교가 아닌 사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자유입니다. 위 헌법 조항은 국가가 특정종교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지요.
>            
>
> 또 다른 예로서 공립학교에서의 기도와 성경 읽기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예컨대 1962년의 Engel v. Vitale 판결에서는 뉴욕 주의 교육위원회가 공립학교에서 매일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이 우리와 우리 부모, 우리 선생님 및 우리나라에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라는 내용의 기도문을 암송하게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위 기도문이 특정 종파의 입장을 반영한 것은 아니더라도 역시 국가와 종교의 분리에 어긋난다고 하여 위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963년의 Abingdon School 판결에서는 수업 시작 전에 성경 구절이나 주기도문을 읽고 암송하게 하는 것도 위헌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1992년의 Lee v. Weisman 판결에서는 학교 졸업식에서 성직자가 기도를 하게 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하였으며, 최근인 2000년의 Santa Fe Independent School Dist. v. Doe 판결에서는 공립학교에서 Football 시합 전에 학생 대표가 기도를 하게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            
>
>이러한 기도 금지 판결은 연방대법원의 판결 가운데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이었습니다.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다수가 학교에서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199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는 학교에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 개정을 지지한다고 하였으나, 부시가 낙선했기 때문에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8년에 미국 하원에서 그러한 헌법개정안이 발의가 되었습니다. 이 개정안은 하원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받았으나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 2에 미달하여서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            
>
>또 다른 학교에 관련된 사건으로는 여호와의 증인인 학생이 국기에 대한 경배를 거부할 때 이 학생을 퇴학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1940년의 Minersville School Dist. v. Gobitis 판결에서는 그것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1943년의 West Virginia State Board of Education v. Barnette 판결에서는 이 1940년 판례를 뒤집고, 이처럼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강요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
>미국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미국에 있던 작년에 일어났던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일단 마치겠습니다. 2001년에 앨러배머 주 대법원장이 된 로이 무어라는 사람은 앨러배머 주 대법원 건물에 2.5톤에 달하는 십계명이 새겨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러자 어떤 시민이 이 기념비를 철거하라는 소송을 연방법원에 냈고, 연방법원은 2003년 8월에 이를 철거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무어 대법원장은 이 판결에 불복해서 철거에 반대하는 농성을 하였으나 결국 이 기념비는 철거되었고, 무어 대법원장은 연방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였다는 이유로 해임되었습니다.
>            
>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는 기독교가 많은 박해를 받았고, 일제시대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순교자가 나오기도 했으며, 6‧25나 그 후에도 공산당이 기독교를 박해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 후에는 적어도 남한에서는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박해를 받지는 않았고, 오히려 기독교가 강자가 되면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을 박해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            
>
>최근에 문제가 된 대광고등학교의 강의석 군 사건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 내용은 대개 아시고 계시겠지만 기독교 학교에서 기독교 신자가 아닌 학생에게 예배를 강제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대광고등학교의 문제는 우리 새길교회의 여러 형제자매가 나서서 힘을 쓴 것도 도움이 되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되었지만, 아직 다른 학교에는 이러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또 이 문제는 기독교 학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불교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            
>
>물론 기독교 학교나 불교 학교나 다 건학이념에 따라서 종교교육을 시킬 수 있는 자유는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대학교와는 달리 선택의 자유가 없는 중고등학교에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종교적인 신념을 존중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의 의미에서의 기독교 정신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
>또 마찬가지로 금년에 문제가 되었던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가지고 새길 이야기 2002년 봄호에 글을 쓴 바도 있습니다만, 법적으로 따지자면 이는 여러 가지의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 8월에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하여 이 문제가 일단락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기독교 정신에서 볼 때 양심적 병역거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저 자신은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처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것은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을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 안 된다고 하는데, 이는 원수까지 사랑하여야 한다는 원래의 기독교 정신과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재판소도 국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하여 병역 대신 대체복무하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            
>
>마지막으로 종교의 자유 문제를 성경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론 구약을 보면 대답은 명백하지요. 구약에는 우상숭배 하는 사람들을 학살한 이야기가 얼마든지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            
>
>저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이에 관한 언급이 없을까 하고 성경 말씀을 읽어 보았고, 다른 분에게도 여쭤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다른 것은 찾을 수 없었고, 다만 오늘 본문으로 읽은 말씀이 그런대로 이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러분이 다 잘 아시는 것처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트집을 잡기 위하여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하고 물어 봅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와라 하고는 물으시기를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뿐만 아니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
>물론 이 이야기는 유대인, 요새 말로 한다면 기독교 신자들에게 황제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라고 한 것이지만, 반대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황제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야 된다는 말씀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지 자유에 맡기고 황제의 권력이 이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            
>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것도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데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기독교가 권력을 쥐게 되자마자 이번에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나 혹은 기독교 내에서의 다른 분파를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박해하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            
>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령 예수님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을 내어 쫓은 것을 보면 예수님에게도 종교의 자유라는 생각은 없었던 것 아닌가 하구요. 그러나 이 문제는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꾸짖은 것은 성전을 이용하여 장사를 하는 것이었고, 이는 마땅히 꾸짖어야 할 일이지요. 종교를 빙자하여 돈벌이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종교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면 올바른 종교인으로서는 마땅히 비판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우상숭배의 금지도 이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을 사람 이상으로 숭배하는 것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죄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우상 숭배가 종교적인 의미에서 죄악이라고 말하는 것과, 그런 사람들을 죽이거나 처벌한다든지, 특정 종교를 강제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후자의 문제는 종교의 자유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이고,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토론과 논쟁을 통하여 바로잡아야지, 강요에 의하여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            
>
>성경 말씀에서 종교의 자유의 근거를 찾는 것은 좀더 탐구할 필요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지식과 능력이 부족한 탓으로 더 이상 깊은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            
>
>이러한 종교의 자유라는 명제는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기 위하여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즉 내가 내심으로는 내가 믿는 종교가 절대적인 진리이고 다른 종교는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믿는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종교를 믿게 되면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잘못된 길로 간다고 보아 강제로라도 이 종교를 믿게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참된 정신이 원수도 사랑하여야 한다는 데 있다면 다른 사람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일반 국민들이 오늘날에는 기독교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우리 새길교회의 형제자매님들 앞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 것은 결국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형제자매님들이 이런 정도의 초보적인 이야기를 모르실 분들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            
>
>어쨌든 부족한 저에게 이처럼 말씀증거를 하게 할 기회를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
>            

>                    
>
>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                            
>                            
>                            http://saegilchurch.or.kr
>                    
>                    
>                        
>                            
>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                            새길
>                            
>                            http://saegil.or.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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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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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8호(13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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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8 2018 [2018. 9. 30] 들어라, 이스라엘아: 함께 찾는 유대인 예수의 믿음 file 2018.10.19 강철웅
1067 2018 [2018. 9. 23] 지금 여기서 사는 영생 file 2018.10.19 김기협
1066 2018 [2018. 9. 16] 언제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교회'를 묻다: 공공적/수행적 교회 file 2018.09.20 김성수
1065 2018 [2018. 8. 5] 고통과 선(善) file 2018.08.16 김용덕
1064 2018 [2018. 8. 26] 어느 일요일 아침의 기도 file 2018.09.06 정경일
1063 2018 [2018. 7. 29] 담을 허무는 사람, 문익환 file 2018.08.07 문영미
1062 2018 [2018. 7. 22] 청년, 우리 시대의 이웃 file 2018.07.26 김홍일
1061 2018 [2018. 7. 15]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신앙고백 file 2018.07.20 권진관
1060 2018 [2018. 6. 3] 자연의 신음과 고통은 하느님의 가쁜 숨입니다! file 2018.06.12 김대식
1059 2018 [2018. 6. 10] 여성들은 그 때 어디에 있었나요? file 2018.06.14 정영훈
1058 2018 [2018. 5. 27] 이 세상의 하나님 file 2018.06.01 추응식
1057 2018 [2018. 5. 20] 일하시는 하느님 file 2018.05.24 차옥숭
1056 2018 [2018. 5. 13] 하나님의 권세와 세상의 권세 file 2018.05.16 김경호
1055 2018 [2018. 4. 8] 일상의 신성 file 2018.04.24 안인숙, 박현욱
1054 2018 [2018. 4. 29] 경건에 이르는 길 file 2018.05.09 이은경
1053 2018 [2018. 4. 22] 가톨릭 아나키스트, 도로시 데이 file 2018.04.26 한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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