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90.156.148) 조회 수 480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설교자 김응교 시인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습니다

(출애굽기 10:24-29, 누가복음 4:18-19)

 

20141130일 주일예배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출애굽기 10:24-29

[바로가 모세를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너희는 가서 주께 예배하여라. 그러나 너희의 양과 소는 남겨 두고, 너희의 아이들만 데리고 가야 한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임금님도 우리의 주 하나님께 바칠 희생제물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더 보태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집짐승을 한 마리도 남겨 두지 않고 다 몰고 가겠습니다. 우리는 그것들 가운데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바칠 제물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에 다다를 때까지는, 우리가 어떤 것을 바쳐야 할지를 알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바로가 고집을 부리도록 하셨으므로, 바로는 여전히 그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바로가 모세에게 소리쳤다. “어서 내 앞에서 썩 물러가거라. 다시는 내 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 네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나는 날에는 죽을 줄 알아라.” 모세가 말하였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나도 다시는 임금님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누가복음 4:18-19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구약과 신약의 두 구절을 읽었습니다. 이제는 두 구절을 묵상하며 말씀의 의미를 얻으려 합니다. 먼저 배경 설명을 하겠습니다.

 

첫째, 지도자 한 명이 잘못하면 이렇게 큰 고난을 당합니다. , , 개구리, 메뚜기, 우박, 파리, , 가축의 죽음, 빛과 어둠으로 이어지며 10가지 재앙이 쏟아집니다. 1-20절은 여덟째 메뚜기 재앙입니다. 농작물과 가축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주었던 우박 재앙에도 불구하고 애굽 왕 바로의 완악함은 수그러질 줄 몰랐습니다. 21-29절은 아홉째 흑암 재앙입니다. 절망적인 애굽의 현실을 맞이하면서도 자신의 고집을 철회치 않았던 바로와 애굽 위에 돌이킬 수 없는 최종적 재앙(사망)을 예견해 주는 칠흑 같은 어두움의 재앙이 3일 동안 엄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지역에는 구별하셔서 빛이 있었습니다.

한 명의 지도자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아 이집트 민족이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습니다. 바로는 당시 이집 사람들과 대화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판단력으로 400년간의 노예를 그렇게 판단했지만 그 결과 그는 자신도 멸망하고 민족도 멸망합니다.

 

둘째, 바로 왕의 사상입니다. 왕이 히브리인들을 대하는 것은 생산력을 높이는 기계였을 뿐입니다. 바로는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삼았고, 여호와는 히브리인들을 자유롭게 예배드리게 하려 했습니다. 24-25절을 읽겠습니다.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야훼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야훼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의 신학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400년간 히브리 민족의 삶의 행복했을까요? 일상의 예배가 아니라, 일상의 노예화였습니다.

 

캡처1.JPG

 

 

셋째, 여기서 모세가 예배를 드리겠다고 나옵니다. ‘예배란 무엇인지요? 예수님에게 예배는 가포눈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란 무엇일까요? ‘마카리오스'를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이셨던 김교신 선생은 환경이 지배할 수 없는 영혼 속에서 용출하는 내적 환희의 샘으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정당한 관계 안에서 사람 된 자의 진정한 도를 따르는 데서 발생하는 것입니다(김교신 전집4, <성서연구>, 노평구 편, 제일출판사, 1991, p.32).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은 조상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누가복음 624-26)

이 구절에서 전파하다는 말은 세 번 나옵니다. ‘전파하다는 헬라어 원어는 에케뤽센(ekeruiksen)’ 그 뜻은 단순히 전파하다’, 또는 선포하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이 단어가 복음을 전파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에케뤽센(ekeruiksen)’이라는 단어의 목적어인 복음이라는 뜻을 가진 유앙겔리온(unanggelion)’이라는 단어가 와야 합니다. 그럼,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가포눈눌입니다.

 

캡처2.JPG

 

 

저는 케리그마는 발의 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 어떻게 살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진짜 설교지요.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설교 보세요. 은퇴할 때 내가 나귀 한 마리 내 몫으로 남겨두지 않았다는 사무엘의 은퇴설교도 유명하죠. 그냥 자기의 삶을 얘기하는, 삶 자체가 말씀인 삶을 살고 싶습니다.


 

#1. 노숙인 문학 / 여주 소망 교도소

 

캡처3.JPG

 

#2. 성매매여인들과 활동가들의 눈물 / 1%라도 있다면

 

캡처4.JPG

 

 

#3. 촛불교회 / 박득훈 목사님의 눈물, 최헌국 목사님 촛불교회가 없어지기를너무 힘들어서


캡처5.JPG

 

제가 했던 말은 기억투쟁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넷째, 과거의 잘못된 길을 자신있게 끊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입니다. 모세는 단호히 과거의 좋은 혜택을 거부합니다. 29절에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말합니다. “말씀 잘 하셨습니다. 나도 다시는 임금님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모세가 무슨 빽으로 그럴까요. 하나님 빽입니다. 우리는 긍지입니다. 하나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긍지로 거부하는 겁니다.

 

본회퍼 이야기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캡처6.JPG

 

본회퍼는 너무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독일 최고 대학의 교수였고, 집에 변호사 형제들이 많았고, 하인이 늘 4-5명인 집에서 자라났습니다. 그가 14살 때 신학교 가기를 결심합니다. 놀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좋은 집안이 이 집이 나를 삶의 음지에서 격리시키고 사회적 피해자들에게서 멀어지게 했다고 갑자기 토로합니다. 좋은 집안이 우리가 세계를 제대로 못 보는 가림막이 되고 있다는 기록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이들을 이해할 기회가 없어. 모든 버거운 짐을 덜어주시는 부모님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야. 부모님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뻔뻔스러울 정도의 안전을 제공해주거든.”

 

그는 이미 그 어린 나이에 선택을 하고 집중을 합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공부합니다. 그가 23살에 박사를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핑겔발데의 공동체 신학교육을 시행합니다. 그에게 있어 삼위일체 신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일상에서의 예배를 강조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설교자
223 2014 [2014.09.07] 악어의 눈물 2014.09.16 이영교
222 2014 [2014.09.14] 십자가의 수락과 확인이 바로 부활입니다 2014.09.18 함세웅 신부
221 2014 [2014.09.21] 진정한 예배 2014.09.24 김기협
220 2014 [2014.09.28] 구원은 어디에서 오나? 2014.09.30 권진관
219 2014 [2014.10.05] 희망을 길어 올리는 사람들 2014.10.15 차옥숭
218 2014 [2014.10.08] 공감과 연대의 실천으로(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청운동 촛불 기도회) file 2014.10.15 최만자
217 2014 [2014.10.12]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았다 2014.10.15 서진한 목사
216 2014 [2014.10.26]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종교개혁주일) 1 2014.10.31 이만열 교수
215 2014 [2014.11.02] 죽음이 삶에게 (공동체추모예배) 5 file 2014.11.04 정경일
214 2014 [2014.11.09] 부끄러움 file 2014.11.11 강경희
213 2014 [2014.11.23] 태초에 '품음'이 있었다 2014.11.27 최만자
» 2014 [2014.11.30]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습니다 file 2014.12.02 김응교 시인
211 2014 [2014.12.07] 십자가의 길: 조롱과 모욕의 비를 맞으며 2014.12.09 한인섭
210 2014 [2014.12.14] 사람 나고 돈 났다 file 2014.12.16 김희국
209 2014 [2014.12.28] 가장 좋은 길 file 2014.12.31 정경일
208 2015 [2015.01.04]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 2015년, 우리의 선제적 원수사랑 실천 file 2015.01.08 한완상
207 2015 [2015.01.11] 베드로를 통해 본 2015년 우리들 자화상 file 2015.01.14 이정배 교수
206 2015 [2015.01.18]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 file 2015.01.21 양희송 대표
205 2015 [2015.01.25] 우리 하나님: 나와 그것 사이에 file 2015.01.28 권진관
204 2015 [2015.02.01] 비를 맞으며 '같이' 걷는 것 file 2015.02.06 김성수
Board Pagination Prev 1 ...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 57 Next
/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