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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함세웅 신부


십자가의 수락과 확인이 바로 부활입니다

(21:4-9, 2:6-11, 3:13-17)

 

2014914일 주일예배

함세웅 신부

 

 

 

찬미예수님!

새길교회 공동체 모든 성도들께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기쁨과 희망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한인섭 교수님을 통해 새길교회를 알았고, 오늘 이렇게 그 현장에 와서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하느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학 상징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때문에 저 나름대로 신앙을 상징안에서 깨닫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914일은 가톨릭에서는 십자가현양축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에 십자가현양축일에 새길교회 예배에 오게 된 이 사실을 저는 더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며 개신교와 가톨릭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치의 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새길교회에서 가톨릭의 십자가축일의 성서말씀을 함께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가톨릭은 주일미사에서 제1독서, 2독서, 복음 등 3개의 성서말씀을 묵상하고 강론과 함께 신앙고백, 그리고 성찬례 등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십자가현양축일의 3개 성서 말씀을 그대로 선택하여 새길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읽고 묵상하고자합니다.

 

 

1독서는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이집트 노예에서의 해방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 감동의 체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과 감격의 체험도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망각하고, 만나와 메추라기 등 나름대로 먹을 것이 보장되었지만 이스라엘은 이러한 음식에 식상해 하면서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고 불평과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스라엘은 참지 못하고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바로 오늘의 나와 우리 공동체 현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함께 개인적 그리고 시대적 성찰의 기도를 올립니다.

참지 못하고 불평불만 하는 이 이스라엘 앞에 무서운 불뱀이 등장합니다. 불뱀은 백성을 물어 죽입니다. 무섭고 끔찍한 일입니다. 역사와 현실 앞에는 늘 이와 같은 끔찍한 일, 토인비의 말을 빌리자면 도전과 장애, 그리고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고통과 죽음 앞에 서있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며, 우리는 모두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 곧 도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반성과 기도입니다. ‘이열치열이란 말과도 연계됩니다. 도전을 도전으로 응답하라는 뜻입니다. 이에 성서는 불뱀의 위협을 불뱀으로 이기도록 명하면서 구리뱀을 얘기합니다. 불뱀의 어원은 불의 천사, 스랍과 어원적으로 통합니다. 따라서 불뱀을 능가할 수 있는 힘은 바로 하느님이라는 의미입니다. 구리뱀은 바로 하느님의 힘을 상징하는 표현이며 이를 예수님 자신이 오늘의 복음에서 확언하고 계십니다. 기둥에 달린 구리뱀은 십자가의 징표이며 우리도시의 높은 건물들의 피뢰침을 상징하고 또 하느님의 무서운 진노를 불을 끄는 의인들의 희생과 선업이라고 저는 묵상하고 있습니다.

 

 

2독서 필리피서 2장의 말씀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질과 핵심을 압축한 노래입니다. 그리스도는 과연 누구신가 라는 물음에 대한 신앙인의 실존적 대답과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신앙고백입니다. 몇 개의 주제어를 선택하여 묵상합니다. 하느님과 동등한, 종의 신분, 죽기까지 낮추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그리스도, 주님 등입니다.

그리스도 신앙고백문의 핵심을 많은 신학자들은 하강과 상승, 비움과 충만, 낮춤과 영광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이 삶을 학자들은 낮춤과 비움 곧 'KENOSIS' 라고 부릅니다. 철저한 낮춤과 비움,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핵심과 본질입니다. 불교의 핵심인 마음을 비우라는 공()의 사상도 이와 상통하는 내용입니다.

성주간 예수수난 금요일에 우리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이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예식입니다만, 사제서품과 수도자 종신 서원 때, 저희는 십자가 제단 앞에 완전히 엎드려 저희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고, 회중들은 하느님께 기도 올리며, 천사들과 모든 성인성녀 순교자들의 전구를 청하고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청년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고, 구원자이시며, 세상과 온 우주 만물의 해방자이심을 장엄하게 고백하는 순간입니다. 골고다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의 죽음은 비참했습니다. 한 민중혁명가의 처절한 죽음이었습니다. 외롭고 쓸쓸한 가련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서작가들은 그 비참함을 넘어, 바로 여기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음을 직시했습니다. 새로운 개벽의 시대를 예고하고, 성속이원론에 마침표를 찍은 결정적 사건임을 확인했습니다. 나아가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무덤에서 나와 부활하고 있는 영생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묵시록적 희망과 종말론적 완성의 확신이었습니다. 비참한 죽음에서 장엄한 부활을 상상할 수 있는 이 자체가 바로 인간의 위대함이며, 하느님 은총의 힘입니다. 이와 같이 바오로사도는 비참한 예수님의 죽음을 부활과 우주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시고 동등한 그분이, 인간의 신분, 곧 종의 신분을 취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성서작가는 찬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강생의 신비, 육화의 신비입니다. 이것은 또한 겸손과 겸허함만이 이웃에게 감동을 주고, 이웃을 움직일 수 있다는 교훈, 곧 하느님의 유일한 교육방법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매일 그리고 매 주일 이렇게 교회당에 모여 성서를 읽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십자가의 교훈을 되새기고 하느님을 찬미하고 노래합니다. 오늘의 찬미와 기도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낮추셨듯이 매일, 매순간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바로 내가 그와 같은 삶을 반복하고 재현하겠다는 다짐이며 약속입니다.

 

요한복음 3장의 말씀은 유다 최고의회 의원인 니코데모가 밤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와 나눈 대화의 내용으로 십자가와 관련한 예수님의 설명과 선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오늘 제 1독서에 언급된 광야의 구리뱀을 언급하시면서 바로 자신의 죽음,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십자가는 고통을 넘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는 행업니다. 십자가는 세상을 사랑한 하느님의 독특한 방법입니다. 십자가는 사형틀이었지만, 인간의 사형틀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사랑의 징표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신비와 큰 의미를 깨닫고 깊이 묵상합니다.

 

십자가는 꼭 부활과 한 짝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나 자신,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현주소와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상황을 말합니다. 때문에 오늘날 신학자들은 부활을 십자가의 확인, 십자가의 수락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부활은 허상입니다. 반면,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고통과 절망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고통의 십자가를 껴안고, 부활의 삶을 확인하는 실존적 증거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하신 말씀은 바로 매일 자기 자신의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삶과 한계와 상황을 있는 그대로 껴안고 하늘의 가치를 추구하라는 초대이며 말씀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이 예배에 함께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과 일주일, 우리는 모두 우리시대의 구리뱀이 되어 온 겨레를 구원하고 구원의 십자가가 되어 나 자신과 이웃 모두를 위한 부활의 상징, 새 생명의 길잡이 그리고 바로 새길이 되도록 다짐하며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배하며 노래합니다.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저희 모두 십자가를 성실하게 짊어지고 살아가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겠습니다. 이끌어주소서. 하느님,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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