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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김명수 목사

"천지불인(天地不仁)의 하나님"

(시편 147:1~4)

 

 

2005.02.20
김명수 목사(경성대 신학과 교수)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 시편 147:1~4

 

 


주전 1000년경 이스라엘을 통일한 다윗은 자기 고향인 예루살렘을 왕국의 수도로 정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높은 구릉 위에 위치해있고,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천혜적인 방어조건을 갖춘 난공불락의 요새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풍부한 수자원이 있었고, 주민들은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성벽 안에 항상 필수품을 보관해놓았기 때문에, 그들은 외국군에 의해서 포위를 당해도 상당기간동안 버틸 수 있었습니다.     

방어벽 뒤에는 솔로몬이 건축한 야훼성전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야훼성전이 석양빛을 받으면 황금빛으로 반짝거려 멀리 남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하늘과 땅이 맞닿은 천상의 도성처럼 보였습니다.      

예루살렘은 4백 년 동안 외국인의 침략을 한번도 받지 않았는데, 천혜적(天惠的)인 방어 조건도 그 이유 중에 하나이겠지만, 유대인들은 성전에 계신 야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지켜주시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기원전 618년 유대 왕 요시아는 성전을 수리하다가 우연히 하나의 율법서를 발견했습니다. 이름하여 신명기 법전이라는 것이었는데, 그는 이 법전에 근거해서 소위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요시아왕은 유대지역에 있는 모든 우상신상(神像)들을 철폐하고, 예배 처소인 벧엘과 단을 모두 폐쇄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주요 명절인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만 지키도록 법제화(法制化)했습니다. 이와 같이 요시아는 율법 중심의 신앙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요시아의 종교개혁 이후로 예루살렘은 거룩한 야훼 하나님의 도성(都城) 시온(Zion)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시아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20년 뒤, 기원전 598년에 시온성 예루살렘은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바빌론 군대에 의해서 허망하게 정복당하고 맙니다. 느부갓네살은 당시 유대왕이었던 여호야긴을 인질로 삼아 바빌론으로 끌고 갔고, 그 대신에 그의 숙부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식민통치를 했습니다.    

10년 후에 온갖 압제에 견디지 못한 유대 민중은 바빌론의 식민통치에 항거하여 봉기를 일으키고 2년 동안 예루살렘을 사수(死守)했으나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은 바빌론 군대에 의해서 함락 당합니다. 두 번째 침략인 셈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바빌론 군대는 유대인 저항세력을 모두 살육하였고, 성안의 건물들은 남김없이 파괴했습니다. 집들은 모두 불에 탔습니다. 무엇보다도 야훼 하나님의 거처라고 신봉하고 있는 성전이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 왕이 보는 앞에서 그 아들들을 처형하고, 왕의 두 눈을 뽑아 바빌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 시온성은 이와 같이 무참히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전은 돌무더기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참담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유대인들은 그들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거점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빌론 군인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던 상당수에 이르던 중산층 유대 지식인 전쟁 포로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유배당한 히브리인들은 유프라데스강 유역에서 강제노동에 투입되었습니다. 고된 노예생활을 하면서 히브리인들은 두고 온 고국의 산하와 시온성 그리고 야훼성전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유배생활을 합니다.(왕하 24~25장)  
            
시편 137편에서 우리는 바빌론으로 유배당한 히브리인들, 이역만리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온갖 고초를 겪고있는 히브리인들, 그들의 고향 시온성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히브리인들의 한(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빌론 강가,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놓고,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노래하라고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고 온 그 사람들이 ‘한 가락 시온 노래를 불러라’고 하였지만, 우리 어찌 이국의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 손이 말라비틀어질 것이다.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가 너보다도 다른 것을 더 좋아한다면, 내 혀야, 입천장에 붙어버려라. ..”    
            
하루 종일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히브리인들, 고된 몸을 이끌고 저녁에 막사에 돌아오니, 바빌론 병정들이 야유합니다. 너희가 믿는 야훼가 강하다면 너희가 이렇게 노예로 끌려왔겠는가? 시온의 노래를 한 곡조 불러 우리를 즐겁게 하라! 그 때 히브리인들은 바빌론 강가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두고, 고국과 하나님께서 계신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중에 “나부코”가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바빌론 유배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데, 나부코는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끌고 간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을 지칭합니다. 이 오페라 중에 나오는 “히브리인들의 합창”(coro di schiavi ebrei)은 바로 이 시대의 바빌론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의 고단한 노예생활과 고국과 야훼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을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아, 황금빛 날개로,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아름답고 정다운 내 고향, 산들바람 불어주는 내 고향, 요단강 강물에 인사하고, 시온성 무너진 첨탑을 보라. 오, 내 조국, 빼앗긴 내 조국, 내 마음 속에 사무치네, 운명의 여신이 타는 하프 소리, 그리운 가락을 울려다오, 마음 속에 불타오르는 추억, 정답게 나에게 말해주오. 구슬픈 운명의 여신이여, 슬픔에 잠겨 노래를 부를 때, 그 대 노래 위에 주님의 자비를 내려 주소서. 주여,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포로 생활 이전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민족만을 특별히 선택하였고, 특별히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원은 히브리인에게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유배생활을 하면서 히브리인들은 더 이상 그런 믿음을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낮선 땅, 유배지에서 히브리인들은 수백 년 동안 그들이 섬겨왔던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근본적인 회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기 이전, 히브리인들이 믿던 하나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출애굽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노골적으로 히브리인의 편을 드는 분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아무 죄도 없는 이집트인들의 장자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야훼 하나님은 노골적으로 히브리민족의 편을 듭니다. 하나님의 명령 하에서 히브리인들은 블레셋, 아모리 등 가나안 족속들을 약탈하고 죽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인을 위해서라면 반인륜적인 살육도 서슴지 않는 하나님으로 그들은 섬겨왔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히브리민족에 의해서 사유화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바빌론이라는 넓은 국제 사회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게 되면서, 히브리인들은 그들이 지금까지 신봉해왔던 편파적인 하나님 신앙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은 히브리민족의 수호신으로서의 야훼 하나님 신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히브리민족의 수호신을 넘어서 이방국가들을 다스리는 하나님,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관장하시는 조물주 하나님으로 신앙되기에 이릅니다. 바로 이 시기에  창세기가 쓰여졌습니다.    

바빌론 포로의 경험을 통해서 히브리인들은 하나님 신앙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단지 히브리민족의 수호신으로 머물러 계신 분이 아니라, 세계를 통치하시는 보편적인 하나님으로 확장되기에 이릅니다. 바빌론 유배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은 히브리민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편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공의(체데카)와 자애로움(헤세드)으로 온 세계 만민을 다스리는 공평무사한 분으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바빌론 유배 경험을 통하여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 신앙의 확장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민족의 하나님 신앙에서 보편적인 하나님 신앙에로의 확장이 그것입니다.
   
예수 시대에도 여전히 편파적인 하나님 신앙에 매달리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선민의식이 강했고, 배타적이었습니다. 야훼는 바로 유대인에게만 율법을 주었고, 율법 없이 생활하는 이방인은 죄인이라고 치부하여 그들과는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예수는 말한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 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 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너희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마태 5:45~48)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설정해놓은 선과 악의 이분법, 옳음과 그름의 이분법을 해체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내린다는 바리새인들의 분별심을 파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구원하고, 죄인을 응징한다는 바리새인들의 고정관념을 해체시킵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의인과 죄인, 아름다움과 추함을 판별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잣대가 존재합니까? 이러한 분별은 모두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 아닙니까? 바리새인들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의인과 죄인, 미와 추라는 관념이 고정된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인과 죄인이 실체적으로 존재한다면, 의인은 영원히 의인이며 죄인은 영원히 죄인으로 머물러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실체론적 사고에서는 죄인이 의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영원히 차단되고 맙니다. 예수는 이러한 실체론적이고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해를 주시고, 의인이나 죄인을 가리지 않고 똑 같이 햇빛과 비를 내려주십니다. 예수의 이러한 선언은 당시 하나님을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이나, 자기들은 이방 죄인들과는 달리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자만심에 빠져있던 바리새인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들이 믿는 종교에만 계시고, 자기들만을 사랑하고 구원하신다는 종교적 특권의식(特權意識)과 배타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들에게 일종의 폭탄선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선인과 악인을 질적인 차별로 보지 않고 양적인 차이로 보았다. 선인이 악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선인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인도 악인도 똑같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지는 불인하고(天地不仁), 천도는 무친하다(天道無親)고 말합니다. 하늘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사랑을 베풀지 않으며, 하늘의 도는 특정한 사람을 편애(偏愛)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자가 살았던 춘추전국 시대에 왕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 곧 천자(天子)라 칭하였습니다. 그가 휘두르는 권력은 하늘 상제의 권력을 대변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바로 이들을 향하여 노자는 천지불인을 주장합니다. 하늘은 왕과 같은 특권계층만을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 의해서 억압당하는 민중도 하늘은 똑 같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왕이라 해서 편애하지 않는다는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 사상은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해와 비를 주신다는 예수의 가르침과 서로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예수는 어디에서 하나님의 완전함을 보았는가? 일체 인위적인 차별을 철폐하고 공평무사한 행위에서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보았습니다. 예수는 신앙인의 최종 목적을 완전함(teleios)에서 찾습니다. 어떻게 해야 완전하게 될 수 있는가? 하늘 아버지처럼, 사사로움에 매이지 않고 공평무사한 삶을 살 때 비로소 완전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바빌론으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이나,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과 유사한 감정에 싸이게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독점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려고 합니다. 기독교라는 테두리 안에 하나님을 감금시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기독교가 독점하고 사유화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 신앙에 충실하다면, 하나님을 기독교라는 한 종파에 소속된 분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내 교파나 내 교회에 다녀야 구원을 주는 하나님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을 넘어서 타종교인들도 사랑하시고, 인간을 넘어서 우주만물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기독교인이나 인간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타종교인이나 우주 만물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처럼 완전하게 되라는 예수의 명령은 종교적 이기주의나 편파성에 매몰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내 종교, 내 교파, 내 교회라는 종교적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일종의 선전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을 자처하면서 예수의 가르침에 반대로 살거나 진리의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가운데 진리가 아닌 것들이 많습니다. 기독교인이냐 비기독교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수를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수를 따라 진리의 길을 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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