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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장숙경, 문경란

 

201439일 새길살림 헌신예배

장숙경, 문경란 자매

 

 

<여성연대, 그 절실함에 대하여>

사사기 11:34-40

장숙경 자매

 

어제 38일은 UN이 정한 세계여성의 날이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입다의 딸이 인신제사의 희생제물로 바쳐진 것을 함께애곡하던 이스라엘 여성들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여성의 날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은 인신제사가 관습으로 남아있던 시절 억울하게 희생된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저는 마지막 절인 이스라엘에서 하나의 관습이 생겼다.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산으로 들어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애도하여 나흘 동안 슬피 우는 것이다에 주목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에는 이들의 애곡의식이 당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부장적 관점으로 서술된 성경이 여성들의 이러한 행위를 굳이 기록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의 집단행동은 결코, 일상적인 일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고대 사회에 인신제사의 관습이 있었다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이미 입증되고 있는데, 이때쯤이면 사람들 사이에 인신제물을 바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장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희생자, 즉 약자의 억울함과 잘못된 관습에 대한 분노에 공감했고, 그를 위해 함께 모여 애곡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해마다’ ‘나흘씩이나 함께애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특별한 집단행동은 분명 강한 필요’, 또는 절실함에 의한 것이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이 여성들의 연대와 반복되는 집단행동은 잘못된 관행이 되풀이 되는 것에 대한 비폭력적인 그러나 분명한 저항적 시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 이 부분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드릴 말씀과도 매우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성운동이라고 부르는 여성연대의 효시는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몇몇 용감한 여성이 감히 남성들로만 구성된 국민의회에 정치상 남녀가 동권이어야 한다는 건의를 한 것이지요. 당시로선 대단한 용기였는데, ‘약자로서의 오랜 경험과 뼈저린 자각이 시민의식의 성장과 더불어 이때 비로소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들로부터 이런 요구를 받은 기득권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리고 이런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과는 매우 참담했습니다. 구즈라는 여성은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처형되었습니다. 메리쿠르라는 여성은, “자신의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비난 속에 미쳐버렸으며, 다른 여성들은 모두 투옥되었습니다. 이후 프랑스에선 모든 여성집회가 금지되었고 여성단체들은 해체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1792, 메리 울스톤크래프트가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을 출간한 것을 계기로 여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자유론>으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여성의 종속>이란 책도 여성운동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 여성들은 참정권을 얻기 위해 1903년부터 여성사회정치동맹을 결성하고, 격렬하고 과격한 시위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선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진행되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여성들이 미국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흑인노예해방문제를 제기하다 여성문제에 눈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초기 여권운동은 흑인노예해방운동과 함께 전개되었습니다. 1848년 뉴욕 주에서 엘리자베스 스탠튼과 루크레샤 모트에 의해 세계 최초의 여성권리대회가 열렸을 때에도 흑인노예들이 함께 자리했지요. 여성들은 이 자리에서 소신선언을 하고 여성참정권을 요구했습니다. 미국여성들은, 1869년부터, ‘여성참정권협회를 결성하고 매년 의회에 여성참정권을 청원하였지만 번번이 묵살되고 말았습니다.

 

여성들은 왜 이처럼 참정권을 갖고 싶어 했을까요? 수적으로 전 인구의 절반이나 되고 인류사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존중받지 못하고 약자로 억울한 대우를 받는 이유가 바로 정치적인 권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여성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정치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고, 이것이 여성들을 연대하고 줄기차게 투쟁하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여성참정권을 거부하는 기득권자들이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주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여 그린 것입니다. 그 다음 것은 1930년대에 신여성이 등장하자 역시 여성들의 변화를 우려한 한국 남성들이 그린 그림입니다. 느낌이 어떠신가요?

 

이처럼 기득권자들의 강한 거부로 진전이 없던 여성참정권운동은 19세기 중반 이후 여성노동자운동과 함께 전개되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서구세계가 자본주의 체제로 급속하게 변환하던 때입니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여성들도 노동계급의 일원이 되기 시작했지요. 자본주의 체제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가혹했습니다.

 

뉴욕의 방직 직물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값싼 노임으로 하루 12-14시간씩 일하면서도 남자 반장들에게 시달리고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았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1857년부터 시위가 발생합니다. 물론 여성노동자들의 시위와 요구는 경찰에 의해 가볍게 진압되고 무시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기본적으로 근무시간 단축과 임금향상, 작업환경 개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에 나이어린 여성노동자들의 시위가 상당히 많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190838, 뉴욕 럿거스 광장에서 발생한 의류업계투쟁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요구하게 됩니다. 매우 중요한 대목인데, 노동자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적 권리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은 비단 미국에서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즈음 서구 전역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여성운동가대회에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독일의 클라라 체트킨이 세계여성의 날을 제창하고, 노동자를 포함한 세계여성들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기로 합니다. 곧 세계여성의 날은 현대판 입다의 딸들을 애곡하는 세계 여성들의 공동연대로 시작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여성들이 간절히 원하던 참정권은 언제 갖게 되었을까요?

미국 여성들은 70여년의 투쟁 끝에 1920년 비로소 참정권을 획득했습니다. 영국에서는 19181차 대전에서 여성들이 전시노동에 참여한 데 대한 보상으로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참정권을 부여하지요. 전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은 130여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이 지난 1928년이 되어서입니다. 프랑스는 첫 참정권 요구가 나온 지 150년 후인 1944년이 되어서이지요. 여성들은 참정권 하나를 얻기 위해, 이처럼 인종과 신분의 벽보다 더 험하고 거친, 차별의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투쟁 없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제정헌법에서 남녀의 평등한 참정권이 인정되었는데, 그 뒤에는 이처럼 오랜 시간동안 여성선배들의 피눈물 나는 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참정권 획득만으로는 근본적인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자각을 하게 된 여성들이 또다시 들고일어나면서 1960년대에 여성해방의 물결이 뜨겁게 달구어지게 됩니다.

 

그러자 UN에서는 1975년 처음으로 멕시코시티에서 138개국에서 2천여 명의 대표가 모인 세계여성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첫 대회였지만 뜨거운 열기로 낙태반대론부터 전투적인 여성해방론까지 전 세계 여성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이 다양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3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제정하고, 미스와 미세스로 불리던 여성을 미즈로 통일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여성의 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나라도 있는데, 우리는 올해로 27년째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중성을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여성들의 권리가 남성들과 동등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안계시지요? 참고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의 성 격차지수는 OECD국가 중 108위입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아직도 사회 곳곳에 또 우리 안에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여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폭력도 자주 발생되고 있습니다. 현대판 입다의 딸들은 아직도 있고, 여성이 연대해 해결해 나가야만 할 일들 역시 산적해 있습니다.

 

고대 길르앗 여성들의 집단행동이 인신제사 관습을 없애는데 기여했고, 18세기 말부터 지속된 여성들의 연대와 시위가 전 세계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게 하였듯이, 우리는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한,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의 억울한 희생과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저항해야 합니다.

 

여성들의 연대적 활동은 언제나 비폭력적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불의에 맞서, 억울함과 희생이 없는 평등사회 건설, 사회 변혁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새길 여성들의 연대 역시 새길 내에서는 물론 우리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멋진 새길 남성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더해질 것을 믿습니다.

 

만약 우리 여성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만약 우리가 남성들과 동등한 일을 하고 있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조직을 만들어 노동조합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리고 산전산후 휴가와 탁아소 시설에 어린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우리 중의 누가 의사 박사 법관 전문기능직 그리고 교수가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재산을 상속받고 우리의 이름을 가질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가 모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정당과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할 수 있다면

우리가 우리의 성(섹슈얼리티)과 수태를 조정할 결정권이 있다면

이것 모두는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와 할머님들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펜하겐에서 열린 세계여성의 날 기념대회 연설 중)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누가복음 18:2-5

문경란 자매

 

말씀 증거는 언제나 부담스럽지만 이번 준비 과정은 더욱 조심스럽고 힘들었습니다. 여선교회의 이름을 새길살림회라 바꾸고, 또한 5월 가정의 달에 드리던 헌신예배를 3·8세계여성의 날 기념예배로 드리는 첫 예배여서 입니다. 여기에 보태, 제 말씀이 은혜롭지 않을까 싶어 사실 저는 매우 고심했습니다.

 

흔히 언어는 사회적 관계를 반영한다고 하지요. 예컨대 동양은 서구유럽을 중심으로 본 것이며 유색인종이란 말도 백인을 기준으로 한 말이겠지요. 요즘 흔히 듣는 노동 유연성을 노동자가 이름을 짓는다면 멋대로 해고쯤 되지 않을까요? 언어 속에 사회적 권력관계가 녹아 있으니, 사회적 약자의 언어는 드러나기도 쉽지 않고 생소하게 들립니다. 때문에 불편하지요. 말 잘하는 것이 말 수 적은 것보다 비호감인 우리 사회에서 특히 여성의 말은 박수를 받기보다 불평불만이나 편협한 주장으로 간주되기가 쉽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부드럽고 차분한 말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험상, 남성의 부드러움은 품격으로 평가되는 반면, 여성의 부드러운 주장은 우유부단하고 명료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돼 주목 받지 못하거나 무시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증거에서 제가 형제자매님들을 좀 불편하게 해도 어느 책 제목처럼 불편해도 괜찮아라고 응원해주시면 힘이 나겠습니다.

 

저는 876월 항쟁 직전인 198767, 새길교회에 첫발을 디딘 이후 줄곧 이곳에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27년간 예수 따르미로서의 정체성과 새길 신앙고백은 제 삶의 지주가 되었다고 감히 고백합니다. 새길이 없었다면 제 삶은 얼마나 더 부끄러운 것이 되었을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편으로 교회가 좀 불편했습니다. 성경도 불편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발견되는 가부장적 교리들을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이해하고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니 순종하라(에베소서 5:22~24)”거나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고린도전서 118~9)는 말씀 같은 거지요. 바울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할 권리마저도 부정합니다. 디모데전서(211~12)에는 여자는 조용해야하며,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열매와 관련한 창세기 말씀이겠지요. 이 구절은 이브의 후예인 여성을, 인류를 타락시킨 존재, 남성을 유혹하는 성적 대상, 부끄러워해야 할 불결한 존재로 이미지화하는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생명의 출산을 고통스런 속죄의 과정으로 여기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함으로써 수천 년간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정당화시켜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새길에서 이같은 성경구절을 토대로 한 말씀증거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새길에서 성경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귀한 경험을 해오고 있습니다. 새길교회 초기에는 민영진 목사님이, 이후 최만자, 차옥숭 신학위원을 비롯, 이경숙, 박경미, 구미정 교수 등과 같은 여성신학자들의 말씀증거가 바로 그것이지요. 이분들은 성경의 가부장성을 드러내고, 여성의 억압을 정당화해온 성경구절을 새롭게 재해석해내고, 나아가 성서 속의 여성들의 공적인 리더십과 역할을 찾아내며 여성 해방적 성서해석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이쯤 되면 역시 새길은 달라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신학위원 여섯 분 중 여성이 두 분 계시고, 여성 평신도에게 말씀증거 할 기회도 주고, 게다가 오늘처럼 모든 예배를 자매들이 주관하는 일도 가끔 있으니 새길에는 성차별이란 없다라고 말입니다. 교회 밖 사회에서는 이제 여자 세상이 됐다거나, 여성차별보다는 역차별이 더 문제라거나, 남편들이 아내의 비위를 잘 맞춰 순종해야 한다고 엄살을 뜨는 남성들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사이버 상에는 인명재처(人命在妻 : 사람의 운명은 아내에게 있다), 진인사대처명(盡人事待妻命 : 최선을 다한 후 아내의 명령을 기다리라), 처화만사성(妻和萬事成 : 아내와 화목하면 만사가 순조롭다) 과 같은 패러디가 인기를 끌며 여기저기서 공유되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정말 살기 좋아졌을까요? 남녀간의 힘(Power)은 과연 역전되었을까요? 저는 먼저 우리사회에는 빈부 격차만 있는 게 아니라 남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격차, 성차별과 여성주의를 이해하는 공감의 격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타인의 현실을 잘 모릅니다. 쉽게 말하면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처지를 잘 모르고 백인이 흑인의 어려움을 잘 모른다는 겁니다.

 

성차별이 사라지고 여성이 살기 좋아졌다는 생각에도 남녀 간에 시각의 격차, 공감의 격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비해 여성이 살기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언론을 통해 소위 ‘1호 여성또는 여풍류의 뉴스를 요즘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언론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고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여성 1호 뉴스가 요즘도 뉴스가 되는 것을 보면 아직 여자 세상이 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뉴스를 자꾸 접하다보면 제비 한 마리(1호 여성)가 봄(평등)을 다 가져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제비가 왔으니 시간이 지나면 봄이야 오겠지만 꽃들이 만개한 완연한 봄이 되기 위해, 땅속의 씨앗들은 엄청난 생명의 꿈틀거림을 해야 하고 사람들은 새싹이 말라 죽지 않도록 꾸준하게 물과 비료를 줘야합니다.

 

오늘은 3·8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한 헌신예배이니 이 땅의 여성들의 현실을 잠깐이라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몇 가지 통계를 보겠습니다. 집 안팎을 합쳐 한국 여성의 노동량은 2위를 한참 따돌리는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맞벌이 여부와 상관없이 남성의 6배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를 둔 다수의 남편들이 집안일을 안 한다는 말이지요.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해온 저에게 가정은 안식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일터였습니다. 슈퍼우먼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울트라 킹왕짱 슈퍼우먼이 아니고선 버틸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반면 여성이 받는 평균 임금은 고작 남성의 61%에 불과합니다.

 

슈퍼우먼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빈곤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근로자의 2/3는 비정규직이고, 동시에 비정규직의 2/3는 여성입니다. 얼마 전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동반자살 했던 송파구의 세 모녀는 빈곤의 벼랑 끝에 서있다 결국은 더 이상 디딜 곳이 없어 죽음이라는 절벽으로 떨어진 경우입니다. 이 세 모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언론은 전합니다. 소수의 좀 잘 나가는 여성들만 보고 여자 살기가 나아졌다고 우리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요? 다수의 여성문제는 비정규직, 장애, 이주자, 노인, 10, 빈민 등의 문제와 결합돼 있어 달리 분류될 뿐입니다.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지요. 착시효과로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한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의 투쟁 이야기입니다. 이 재판관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니 분명 양심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는 철면피에 냉혈한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이라고 점잖게 번역했지만, 아마도 이 재판관은 과부에게 인간대접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부는 어떤 사람일까요? 당시 과부는 가장 불쌍하고 힘없고 가난하고 앞으로 살아갈 뾰족한 방도도 없는 그런 억눌린 사람을 상징하는 듯싶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 가장 밑바닥 인생이지요. 과부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재판관을 찾아가 줄곧 내 권리를 찾아 달라고 조릅니다. 과부가 주장하는 권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여성, 특히 과부의 삶을 떠올려보면 이 또한 상상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먹고 살기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제대로 임금을 못 받았을 수 있습니다.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하다가 쫓겨났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일하다 다쳤는데 치료도 못 받고 해고를 당했을 수도 있겠지요. 혼자 산다고 넘보는 남자들에게서 성폭력을 당하거나 남편이 없다고 핏덩이 아이를 시집에 뺏겼을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 온갖 호소를 해봤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없으니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갔을 겁니다. 성경속의 과부는 수도 없이 문전박대를 당했겠지요. 재판관이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도 집요하게 찾아가니 어느 날 재판관과 맞닥뜨린 게지요. 과부는 처음엔 사정을 하다, 나중엔 조목조목 따지다, 그래도 안 되니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너무도 끈질기게 요구하자 재판관이 드디어 항복을 합니다.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주어야겠다고요. 앞에서 제가 과부의 투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단순한 요구나 주장이란 말로는 그 집요함과 처절함을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3·8세계 여성의 날이 탄생하기까지 여성선거권과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 참여했던 수많은 여성들은 악랄한 재판관을 항복시킨 과부들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과부 이야기를 읽으면서 호주제 폐지를 위해 약 50년간 투쟁했던 수많은 이 땅의 여성들도 떠올랐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구절에 이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 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두시겠느냐라고요. 간절하게 바랄 때 우리는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뤄주세요라고요. 오늘 말씀 속의 힘없는 과부 또한 밤낮으로 부르짖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는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냉혈한 같은 재판관을 발이 닳도록 찾아가서 사정하고 요구하고 투쟁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기도는 행동이고, 실천이고, 투쟁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골방에서 소원을 비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행동은 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지만 가만히 있는 자들을 고쳐주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리에 둘러싸여 가까이 다가갈 수 없자 옷자락 끄트머리에라도 손을 댔던 혈루병 걸린 여인, 마귀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과 논쟁도 서슴치 않았던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비슷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하늘에서 떨어뜨려준다고 어떤 일이 이뤄지는게 아닙니다. 사람이 행동하고 투쟁에 동참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길살림회 이야기로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여선교회가 새길살림회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제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어느 페친이 설마 교회 살림을 도맡아 하겠다는 뜻은 아니겠지요?”라고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새길 살림회의 살림의 뜻은 생명을 살리고, 사회를 살리고, 교회를 살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도맡아왔던 돌봄노동은 매일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출산·육아를 통해 세대를 재생산함으로써 사회를 살리는 노동으로 최근 새롭게 자리매김 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돌봄노동은 가치 없는 것으로, 주부는 노는 사람으로 폄하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살림노동으로 이름만 바꾼다고 그 의미가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남성이 여성만큼 돌봄노동을 하지 않는 한, 그리고 돌봄노동을 담당함으로써 그 노동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한, 돌봄노동이 사회의 주요한 원리로 작동하지 않는 한, 돌봄노동이 살림노동으로 탈바꿈되지는 않습니다.

 

새길의 밥상공동체는 초창기부터 내려온 전통이자 새길의 자랑거리입니다. 공동체 구성원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공동체적 평화를 가꿔가는 좋은 공간이자 시간이지요. 하지만 그 오랜 기간 밥상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정작 누가 밥상을 차릴 것인지에 대해 공동체 차원에서 깊이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자매들이 수고하고 여선교회가 이를 주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공동체의 밥상을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새길의 여러 자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의 손길이 없었다면 새길공동체가 이렇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유지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올해부터 형제자매 모두가 함께 밥상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새길의 여선교회가 명실공히 새길살림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회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일에 나서려면 형제님들이 밥상 차리는 일에 적극 동참하고 그 의미를 공유하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형제님들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하는 일로 여기고 참여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새길에서 여성신학에 관한 말씀증거는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그 문제의식을 새길살림회와 새길공동체 전체의 문제의식으로 가져올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영향력 면에서는 여전히 소수자입니다. 여성의 억압당한 경험은 다른 소수자의 억압에 예민하게 작동해 세상의 약자를 돕고 세상의 평화를 이루는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또한 소수자의 시각은 새로운 세상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과부가 악랄한 재판관을 항복시켰듯이, 새길공동체가 스스로 해방되고, 교회의 성차별을 해소하며, 힘없고 가난한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에 앞장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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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근 2014.04.15 11:40 (*.5.248.81)
    장숙경자매님의 여성운동의 역사에 대한 좋은 강의말씀과 아직까지도 턱없이 모자란 현실에 대해 분개(?)하시며 말씀증거를 해주신 문경란 자매님께서... 가까운 시일에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실천주체로서, 오히려 당당하고 여유있게 증거하시게 될 날을 기다려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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