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90.156.148) 조회 수 433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설교자 김희국

사람 나고 돈 났다

(마태복음 20:10-16, 누가복음 18:18-23)

 

20141214일 주일예배

김희국 형제(새길교회 운영위원장)

 

 

 

오늘은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여러분 살림살이는 올 초에 비해 좀 나아졌습니까? 그리고 안녕들 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아마도 그렇지 못하다고 느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지난 416일 어처구니없는 세월호참사로 자식을 잃은 어느 유가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가 있을 때는 우리는 가난했지만 단란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나마 있던 소박한 행복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참사 이후로 삶의 모든 근거를 빼앗긴 유가족들은 왜, 어떻게 생떼 같은 자식들이 구조되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는지 이유를 밝혀 달라고 호소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 해가 끝나가는 이 시점까지 세월호참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정권은 시종일관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고, 온 나라의 이권을 먹잇감으로 끼리끼리 덮어주며 범죄를 자행하는 관피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마피아와 기득권자들의 뻔뻔한 행태와 또한 온갖 비열한 방법으로 국민을 이간질하는 언론이기를 포기한 신문과 방송을 볼 때 과연 이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하는 절망감을 느낍니다.

 

공자님은 상()을 당한 사람을 보면 나이가 어려도 예를 갖추었고 지나갈 때에도 조심스럽게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게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論語 향단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자가 일을 마치고 귀가했는데 하인이 달려와서 마구간에 불이 났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묻습니다. “사람이 다쳤느냐?” 하인이 대답합니다.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싱거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인 그 당시에는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 때에는 말()의 값어치가 사람보다 훨씬 비쌌다고 합니다. 더구나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하층민에 속했을 것이고 다치거나 죽어도 별다른 사건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공자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혹 말()을 구하려다 다친 사람이 있었는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마구간지기인 하인보다 자기의 아끼는 말()이 죽거나 상하지는 않았는지에 더 관심을 두었을 테지요.

그럼 지금은 어떻습니까? 저는 어릴 적 학교에서 이렇게 배웠습니다. ‘사람 나고 돈 났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이 옳다고 보시나요?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지요. 귀한 사람이 있고 천한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과 부와 명성을 지닌 사람이 그렇지 못한 자들을 차별하고 멸시하고 심지어 사람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말로 잉여로 낙인찍고 있는 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림1.JPG그림2.JPG


 

국제간 무역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세계관세기구(WCO)’에서는 국가 간에 거래하는 모든 물품에 ‘HS코드라고 하는 번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모두 10단위로 되어 있는데 6단위까지는 국제적으로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종류별로 다 코드가 있습니다. 다만, 거래 대상이 되지 않는 자연과 살아 있는 사람은 값을 매길 수가 없으므로 번호가 없습니다. 그러나 ‘HS코드로 분류할 수 없는 사람도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는 값이 매겨지고 있습니다. ‘직업이 무엇이고 연봉이 얼마이고, 아파트 등 부동산과 현금 재산이 얼마하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지요.

 

인도 사람 비노바 바베(VINOBA BHAVE)’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림3.JPG 그림4.JPG 그림5.JPG

 

그는 마하트마 간디의 제자로서 간디와 사티아그라하정신에 따른 비폭력 생명평화운동을 했습니다. 그는 브라만으로 태어났음에도 최상위계층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평생을 육체노동자로 살면서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영혼임을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간디가 존경한 간디이후의 최고 지도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땅은 하느님의 것이며 그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아무도 땅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가 그 소유를 주장한단 말인가? 공기, , 햇빛, , , 강 그리고 땅은 우리 지구의 유산이다. 어떤 집단이나 개인도 그것을 차지하거나 소유하거나 망치거나 오염시키거나 파괴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땅의 열매들을 하느님에게서 선물 받으며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다시 하느님에게 바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비노바 바베는 도둑질은 범죄이지만 많은 돈을 쌓아놓는 것은 도둑을 만드는 더 큰 도둑질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재벌 오너들과 부자들은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는 간디가 세상을 떠난 후 비폭력 생명평화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걸어서 인도 전역을 여행하면서 13년 반 동안 부단(토지헌납)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림6.JPG 그림7.JPG

 

 

그는 지주들에게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듯 우리는 우리보다 행운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사랑을 흘려보내야 한다. 참된 사랑은 우리를 그냥 앉아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그 사랑이다.” “만약 당신이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면 땅 없는 가난한 농부를 여섯 번째 자식으로 여기고 6분의 1의 땅을 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6분의 1을 요구하는 근거는 인도의 가정들은 평균적으로 아이를 다섯 명 정도 두고 있기 때문에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여섯 번째 아들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지주들로부터 땅을 헌납 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이 운동으로 남한 면적의 1/5 정도에 해당하는 500만 에이커의 땅을 헌납 받아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사진은 비노바 바베의 단식하는 모습입니다.

 그림8.JPG

 

여든일곱이 되자 그는 몸이 약해지고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의사들은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했지만 그는 일체의 음식과 물과 약을 거부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기까지 단식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친구들과 추종자들이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 모여들었고, 단식 80일째 되던 날 비노바 바베는 지극히 평화로운 가운데 그의 몸을 벗어버렸습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18장 말씀에는 어느 富者 이야기가 나옵니다. 18절에 그는 어떤 지도자또는 관원(Ruler)’이라고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요사이로 치면 정부의 고위 관료인듯 합니다. 그가 예수께 묻습니다.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물음에 예수님은 율법의 계명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들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합니다. 그는 아마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나름 판단하고 이를 예수께 확인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게 아직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그 부자는 큰 충격을 받고 심히 근심하여 슬픔에 빠졌다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그가 큰 부자이고 또 예수님은 그에게 재산의 일부가 아닌 모든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서 많은 돈을 쌓아 놓고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은 더 큰 도둑질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그 부자에게 깨우쳐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부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8월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숙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 뉴스가 되지 않는 반면,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 뉴스가 된다. 인간이 쓰고 버려지는 존재가 된 문화를 우리가 만들었으며, 그나마 배제된 사람들은 사회의 일원도 아닌, 착취의 대상도 아닌, 버려지고 잉여가 된 것이다. 우리는 돈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돈의 주인이라는 것을 부정했다는 것이 금융위기의 근원이다.”

 

몇 년 전에 ‘Les Miserables’이란 뮤지컬 영화가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한 여성노동자가 미혼모인 것이 밝혀지면서 장발장이 운영하던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고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딸을 양육하기 위해 몸을 파는 여성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아끼는 딸 꼬제트를 홀로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가슴 아픈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얼마 전 통영에서 경찰의 성매매 함정단속에 걸려 창문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잃은 여인을 연상케 합니다. 올해 나이 스물넷인 그 여인에게도 일곱 살 난 딸이 있다고 합니다.

 

그림9.JPG

 

엄마는 딸이 그려준 이 그림을 책상서랍에 고이 간직해 왔다고 합니다. ‘빅토르 위고가 묘사한 프랑스혁명 당시의 불쌍한 사람들 즉, Les Miserables들이 지금 우리나라에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노동빈곤과 소득불평등으로 인해 Working Poor, Rent Poor, House Poor, Young Poor, Silver Poor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회조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중 47%가 소득, 직업, 교육, 재산 등을 고려한 사회경제적 하류층으로 판단하였는데 이는 사상 최고치라고 합니다. 2%가 상류층인 것으로 조사되었고, 부의 편중현상 특히 임금소득 불평등은 매우 위험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2013년 기준 노인빈곤율이 48%OECD 국가들 가운데 최고 수준입니다. 어르신 두 분 가운데 한 분은 먹고 사는 생존위기에 처해 있는 게 우리나라입니다. 이렇듯 노인도 국민이 아니고, 그렇다고 청년도 국민이 아니며, 또한 장년세대라고 해서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닙니다. 얼마 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주택 1층에 세 들어 있던 한 60대 독거노인이 살던 집이 팔려서 거리로 쫓겨 나가게 되자 자신의 장례비조로 얼마의 돈을 놓아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림10.JPG

주인인 국민(國民)은 없고 궁민(窮民)만 넘쳐나는 이런 나라를 대체 누가 만든 것입니까?

 

 

불평등을 조금 더 얘기해 보겠습니다. 2013년 우리나라의 개인 소유 부동산 가치가 총 3,100조원(1천만 가구 평균 3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상위 10%의 개인이 절반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고, 2주택 이상 보유자가 250만 명가량 됩니다. 주택 100채 이상을 갖고 있는 사람도 1,100명으로 이는 5년 전에 비해 38%나 늘어난 수치라고 합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이 제아무리 열심히 일해 봐야 은수저를 입에 물고태어난 자를 따라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요. 요즈음은 아이들의 교육이 할아버지의 재산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3포 세대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장래 희망까지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4포 세대가 될 것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임금노동자는 약 1,800만 명 정도이고 그 중 무기계약직과 사내하청을 포함한 비정규직이 50%가량 됩니다. 그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기본생활조차도 유지하기 힘든 불안노동임금노동자들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의 임금이 정규직의 49%에 불과하고, 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998IMF금융위기 이후 임시직 등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노동자들 간의 계층 분열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종전에는 다 같은 노동자이었는데 이제는 정규직이 있는가 하면, 무기 계약직, 기간제계약직, 촉탁직, 파견직, 임시직, 알바 등등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 새로운 신분제로서의 노동계급이 형성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의한 고용체제로 인해 임금노동자도 옛날의 신분제를 능가할 정도로 나뉘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 근로인구의 절반을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현대판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같은 국민을 마치 식민지 국가의 이등국민처럼 집중착취하고 있습니다. 각급학교에서도 교직원의 40%가 이미 비정규직이고 그 비중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정규직에는 국내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도 저임금과 열악한 조건에 시달리는 시간강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읽으신 마태복음 말씀은 포도원 주인이 하루 품삯으로 ‘1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꾼을 고용합니다. ‘1데나리온은 그 당시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주인은 날이 저물어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면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오후에 잠깐 일한 일꾼에게도 똑같이 ‘1데나리온씩을 지불합니다. 그러자 종일 일한 사람들이 주인에게 불평을 합니다. 이에 대하여 주인은 나는 자네에게 약속한 품삯을 주었는데 무슨 소리냐? 자네 일당이나 받아 가게. 나중에 온 일꾼에게 자네와 똑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네.”라고 말합니다. 노동자가 일을 하든, 안하든 생활비는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인은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생활이 되게끔 배려한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국가가 이러한 포도원주인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부는 기업과 국민으로부터 일정한 세금을 받아서 이를 적절하게 배분하여 가난한 이들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소득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러한 불평등한 소득의 균등분배를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의 실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이란 사회 구성원 누구나 아무런 조건 없이 기본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금액을 소득으로 수령하는 것입니다. 어른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일을 하건 하지 않건 동일한 금액을 국가가 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입니다. 2013년에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제도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한 서명운동이 성공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일하지 않는 자에게도 소득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포도원 주인의 임금지급방식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된 제도입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제 종래의 소비 지향적 경제성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봅니다. 세계적인 내수침체와 불경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소득주도 경제성장(Income-led Growth)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합니다. ,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보다 균등히 부를 분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부자와 대기업들은 갈수록 부유해지는 반면, 서민들의 주머니는 갈수록 얇아지고 빚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소득불평등으로 경제적 격차가 지금보다 더 커진다면 가족이라는 제도 자체에도 균열이 생기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생길 우려도 있습니다. 여러분 손을 펴서 손가락을 한 번 보십시오. 다섯 손가락의 길이가 모두 똑같은 사람이 있나요? 앞서 소개해 드린 비노바 바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산술적인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평등은 다섯 손가락 사이의 평등과 같다. 다섯 손가락은 길이가 각각 다르지만 완전한 협동 속에서 수많은 일을 함께 수행한다. 우리는 올바른 분별과 조화로운 평등을 원한다.”

 

지금 정부는 민영화/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전 국민 특히 서민의 생존기반이 되는 공공재를 일부 재벌과 외국기업을 포함한 민간 자본의 돈벌이 대상으로 넘겨주고 있습니다. 공공성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마저도 마치 쳐부수어야 할 원수처럼 간주하고, 심지어는 단두대라는 섬뜩한 말까지 나왔습니다. 사회에 꼭 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것은 일반국민 특히 서민들의 생존기반을 허무는 것이며, 세월호에서 평형수를 빼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무분별한 민영화는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모두의 안전과 생활의 기본이 되는 핵심 공공재의 재벌기업에 의한 갈취는 곧바로 제2의 세월호 참사 즉, 또 다른 힘없는 사람들의 떼죽음을 초래할 것입니다. 현 정권에서 진행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공교육의 상실과 사교육시장의 팽창, 공공 연금제도의 약화, 각종 사회간접시설의 민간매각 등 공공재를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일을 이제는 멈추어야 합니다.

세월호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평형수가 필수적이듯이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공공성의 회복이 절대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VINOBA가 말한 대로 땅이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하느님의 것인 것처럼 사회공공재는 자본의 것도, 국가의 소유물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생존과 안전을 위한 국민의 공동재산입니다.

 

그림11.JPG

 

작년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영화 설국열차는 기상이변으로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기차 한 대가 끝없이 뻗은 레일 위를 달립니다. 오직 앞으로만 전진하는 기차는 우회로가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와 같이 선택된 사람들이 타고 있는 열차 안의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선택된 사람들이 술과 마약을 즐기며 호화로운 객실에서 뒹굴고 있는 앞쪽 칸, 그리고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의 꼬리 칸으로 나뉘어 극도의 불평등을 보여줍니다. 마치 신자유주의에 도취해 오직 성장과 경쟁만을 부추기는 지금의 세상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기차가 달린지 17년째 꼬리 칸의 사람들은 긴 세월동안 준비해 온 폭동을 일으킵니다. 기차의 심장인 엔진을 장악하여 꼬리 칸을 해방시키고 선택된 사람들이 있는 호화로운 앞쪽 칸을 향해 질주합니다.

이제는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오직 앞으로만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간판을 내건 대한민국호 설국열차를 멈추어야 합니다. 과열된 엔진을 끄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조용히 살펴봐야 합니다.

 

이제 며칠 후면 아기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올해에는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시기를 여러분은 기대하십니까?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의 차가운 바닷물에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끝없는 슬픔과 먹먹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숯덩이가 되어버린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꿈에서라도 보고픈 아이들의 모습으로 올지도 모릅니다. 이 사회의 가장 아픈 현장인 세월호참사의 진실규명, 군대를 비롯한 곳곳의 인권문제, 꽉 막혀버린 북한과의 대화,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노후화된 원전,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각 사업장의 해고 노동자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송파구 세 모녀와 같은 서민들과 노인들의 자살, 4대강 막개발로 죽어가는 강과 하천 등 참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되는 신자유주의라는 주술에 휘둘리는 성장과 경쟁 일변도의 경제논리에서 벗어나서 생명, 인권, 정의, 평화, 공공성 등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제자리로 갖다 놓아야 합니다. 그 때에라야 비로소 아픔의 치유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성탄절이 지나고 곧 다가오는 새해에는 차별이 없는 세상,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향하여 한 발짝이나마 나아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희망은 보다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한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감꽃이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림12.JPG

 

 

감꽃김준태

 

어릴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주님,

자본과 권력의 끝없는 탐욕과 무자비한 폭력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속출하고 있고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생활의 방편으로 만들어낸 돈이 오히려 주인이 되어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주님, 어리석은 저희들도 대세를 좇아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좋아하다가 이웃을 멀리하고 나아가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 염려됩니다. 새길공동체가 연대와 사랑의 힘으로 먼저 깨어나게 하시고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옵소서. 이 나라에 주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옵소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자들의 친구로 오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설교자
952 2015 [2015.10.04] 원칙의 사람, 원만한 사람 file 2015.10.20 정수복 형제(사회학자/작가)
951 2015 [2015.10.11] 겉사람, 속사람 / 상호 의존하는 관계성 file 2015.10.16 강기철 / 류홍렬
950 2015 [2015.09.20]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file 2015.10.06 정원진 목사
949 2015 [2015.09.13] 이 매임에서 풀어주라 file 2015.09.23 구미정 교수
948 2015 [2015.09.06] 거위의 꿈 file 2015.09.11 장윤재 교수
947 2015 [2015.08.30] 바쁜 삶과 활동적인 삶 file 2015.09.03 정경일
946 2015 [2015.08.16] 예수 그리스도, 자유케 하사 섬기게 하신다 file 2015.08.26 변상욱 기자
945 2015 [2015.07.12] 다음 30년의 상상 Part 2: 연약함이 길이다 2015.08.20 정경일
944 2015 [2015.04.26] 다음 30년의 상상 Part 1: 처음마음 2015.08.20 정경일
943 2015 [2015.08.09]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 file 2015.08.11 이재정 신부
942 2015 [2015.08.02] Follow Up 하시는 예수님 file 2015.08.06 전인백
941 2015 [2015.07.26]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1 file 2015.07.28 추응식
940 2015 [2015.07.19] 어려운 하나님, 쉬운 하나님 file 2015.07.23 천세영
939 2015 [2015.07.05] 나타내고자 하시는 바 file 2015.07.08 정형선
938 2015 [2015.06.28] 새내기 소망: 60만 분의 2 file 2015.07.08 김경혁
937 2015 [2015.06.21] 이스라엘의 남북 분단이 주는 교훈 file 2015.06.23 이만열 교수
936 2015 [2015.06.14] 친구이신 예수님과 마주하는 순간 file 2015.06.18 차옥숭
935 2015 [2015.06.07] 생태적 관심과 감수성, 그리고… file 2015.06.09 최현섭
934 2015 [2015.05.31] 하나님 사랑의 의미 file 2015.06.02 오경자
933 2015 [2015.05.24] 소통하는 불의 혀 file 2015.05.26 차정식 교수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54 Next
/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