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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만자

공감과 연대의 실천으로

(민수기 12:10)

 


2014108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청운동 촛불 기도회

최만자 자매(새길교회 신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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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제 생애 처음으로 길 위에서 설교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나 혹은 일정한 실내의 공간에서 하는 설교는 안정과 평안과 정리 된 자세와 마음을 갖게 한다면, 이 거리에서의 설교는 높은 목소리로 도전과 격정과 강한 설득을 해야 하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작은 목소리에 차분하고 조용한 제 성격이 이 자리를 감당하기 어렵게 생각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큰 설득력 못 갖더라도 고통 중에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잠시라도, 한번이라도 함께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이렇게 나왔습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열 명의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냥 가슴이 내려앉고 세월호 특별법이 유가족의 의사와 다르게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멀게 진행되는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 죽을 지경입니다. 세월호 참사 재판 결과라는 것이 나왔지만, 진상규명은 어림도 없어 보입니다. 지금 사실 우리의 심정은 답답함과 억울함, 그리고 한 푸리를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유가족들은 청운동에 자리 펴고 계시고 저희 종교인들은 이분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모인 것이 아닙니까? 생각해 보면, 영문도 모르고 억울하게 내 새끼들이 죽음을 당했는데 그 진상을 규명 해 달라고 애끓게 호소하는데 그 청원은 완전 묵살 당하고 오히려 국가질서를 위협하는 종북세력이요 파렴치한으로 매도당하며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유가족의 의사는 참여되지 못하고 정치논리로만 진행되니, 이런 천인공노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이 문제는 지금 권력을 가진 자들이 혁신적 자기반성을 하여 잘못을 바로 보게 되고 양심을 따라 회심의 태도로 희생자들과 유가족의 마음을 깨닫고 공감하여 진상을 규명하지 않는 한, 진상규명은 되지 않을 것이고 유가족과 우리들의 애끓는 청원은 '소귀에 경 읽기'가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국정원의 선거개입, 간첩조작 사건이 뻔히 범죄임을 볼 수 있는데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가고 군대 폭력문제도, 4대강 사업에 둘러싸인 불법적 행태들도 권력자들의 놀음대로 그냥 넘어가는 세상입니다. 눈뜨고 뻔히 보면서 그 불의들이 그대로 횡행되어도 우리는 그냥 모른 척 살고 있지 않습니까? 세월호도 저들 권력자들이 회심하지 않는 한 그럴 것이라 짐작이 뻔히 갑니다. 참 이상합니다. 사람들은 저들의 불법적 행태들은 모른척하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겐 온갖 참견과 폭력과 정죄를 일삼고 있으니 참 기막힌 세상 아닙니까?

 

이런 현실에서 저는 우리가 좀 더 냉정하게 모든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우선 진상규명을 위한 이 싸움은 긴 싸움이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제부터가 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엄격한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처벌,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반복하지 않는 미래사회를 위한 총체적 사회개혁의 일들은 우리들이 지금부터 하나씩 하나씩 시작해야 할 일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고 다양한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월호를 보는 시선이 '사고가 아니라 비리의 문제, 비리로 인한 참혹한 결과'로 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미 소설가 김훈 씨가 이렇게 표현한 것 같은데 정말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고 비리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비리와 부정의 문제가 속속 드러나야 하고 그것들에 대한 처벌이 있고, 그 구조들이 바로 세워져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저는 우리가 질기게 붙잡고 흔들어야 할 두 가지 과제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하나는 이미 말했지만 우리사회 구조에 뿌리 깊게 내려진 불의한 현실들을 처리해야만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우리 안에 만연해 있는 구조악의 일상성과 평범성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노력이 절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사회가 왜 이토록 권력과 돈에 의한 부정의 현장으로 되어버려 생명을 경시하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월호의 침몰은 우리사회가 얼마나 반생명적 구조에 깊이 뿌리 내려져 있어서 생명보다 돈이 우선이고,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위계적 권력에 충성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매몰되어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구조가 너무나 평범하게 일상화 되어 있어서 우리의 일상에서 전혀 그 문제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그냥 천연덕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물질 우선적, 권력 우선적 악의 구조가 형성된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영향을 행사 한 것이 1960년대 이후 압축적 경제성장을 하면서 쌓이게 된 물질만능 주의와 동시에 '정계, 재계, 관계'의 유착으로 인한 사회의 신뢰와 원칙이 사라진 것입니다. 정부주도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정계, 관계, 재계가 유착했고 연줄이라는 권력이 사회의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들을 뛰어 넘게 됐습니다. 그래서 돈과 권력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어 성공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고, 그래서 권력도 없고 지연, 학연 등을 갖지 못한 보통 사람들은 공개되지 않은 방식 곧 돈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 성공의 열쇄처럼 인지하게 됐으며, 이런 규칙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어떻게 정의의 자리가 있겠습니까? 세월호 참사에 깊이 관련된 소위 '해피아', '관피아'의 존재가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지요.

 

사회는 점점 더 신뢰와 원칙이 없고 돈과 권력이 판을 치는 사회로 치달았고 모든 국민이 원칙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생존의 전략을 추구하는 권력만능, 돈 만능의 사회가 되었고 누구도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월호 침몰을 통해 우리가 확실하게 보게 되는 것은 우리사회의 구석구석-군대, 학교, 가정, 교회, 직장 등 곳곳에 만연해 있는 악의 구조입니다. 돈과 권력의 횡포, 그리고 온갖 위법적 환경에서 결과한 것은 정의 부재인간성의 왜곡입니다. 돈과 권력을 소유하기 위한 경쟁은 모든 것을 대상화하고 인간을 야비한 인간성으로 죽이는 문화를 만연시켰지요. 나만 잘되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고를 아무 죄의식 없이 가진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사회를 결과했습니다.

불의한 사회는 비판적 사고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면 압축적 경제성장과 토건국가 정책의 과정이 초래한 온갖 피아들과 정의 불감증의 깊은 내면화와 일상화로 비판적 사고는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세월호의 아이들을 수장시키고 온 사회를 생명위기로 몰게 되었음을 밝혀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길은 이런 문제를 예민하고 깊게 파헤쳐 원인과 현상을 밝히고 토론하고 또 토론하면서 여론화 시킬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길이 지식인 교회'라고 비판받는다 하는데, 저는 지식인이라 잘못된 것이 아니고 지식인의 책임을 못하기 때문에 비판받게 되는 것이라 봅니다. 그러므로 새길은 문제 본질을 연구, 분석, 담론화, 여론화하는데 더 집중할 필요가 있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성서 본문은 출애굽 광야에서 미리암이 문둥병-피부병에 걸린 모습입니다. 민수기 121-16절에는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 공동체로 떠도는 중 영도자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에 대하여 함께 백성을 이끌고 온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판하게 되었는데, 아론은 괜찮고 미리암만 악성 피부병(문둥병)이 걸려 눈처럼 하얗게 되었고, 아론이 모세에게 미리암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기를 간청하고, 모세가 간절히 기도하여 미리암은 이레 동안 격리되어 치료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리암이 다 나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오직 그를 기다린 후 그가 회복되어 진영으로 돌아 온 후에야 행군을 다시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본문이 교회안의 권력들 특히 남성 지도력들이 평신도, 특히 여성들이 자신들을 비난하거나 의견에 반대 할 때 인용되어 권력에 대한 비판이나 도전을 하면 중한 벌을 받게 된다는 공포의식을 줄 때 매우 적절한 증빙문서로 사용되곤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 본문 배후를 더 깊이 살펴봄으로서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새로운 메시지를 찾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구약성서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아론, 모세, 미리암은 표면적으로는 혈연관계로 맺어진 삼남매로 나타나지만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상황에서 보면 세 사람은 탈출 공동체를 이끈 민족의 세 지도자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미리암이 두 남성과 동등한 공동체의 지도자로 볼 수 있는 것은 출애굽기 151-20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을 때 민족 해방의 신명나는 한판을 미리암이 이끌었다고 합니다. 또 미가서 64절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서 너희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왔다"라는 기록 등에서 한 집단의 리더가 분명합니다. 사실 히브리민족이 애굽을 탈출할 때 실제로는 단일 집단이 아니라 몇몇 집단이었고 아론, 모세, 미리암은 각각의 공동체의 유능한 리더였고, 광야생활 동안 주도권 싸움이 잦았으며, 결국 모세집단이 가장 힘 있는 그룹으로 되어 성서역사의 편집은 모세중심으로 되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도전한 후 미리암만 중병-피부병에 걸리는 징벌을 받습니다. 왜 미리암만 피부병에 걸렸을까요? 이 본문은 지도력에 대한 도전은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무거운 징벌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메시지로 교권에서 강력히 해석해 왔습니다.

그러나 매우 다른 시각의 해석을 주목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실 물도 없고 먹거리도 없고, 악성 피부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야의 생활은 고통과 위기의 상황이었지요. 오래전 나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이 나환자가 되었던 한 성직자의 고귀한 삶이 연상됩니다. 성서의 본문을 넘어 약간의 상상을 더하면 미리암은 늘 백성들 가운데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백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 삶의 자리에 늘 함께했던 미리암, 그는 결국 민중의 고통 안에 들어갔고 그들과 아픔을 같이하다가 피부병에 전염 되었던 듯합니다. 출애굽의 준비를 할 때도 남성 지도력들은 정책 결정의 자리에만 있었지만 미리암은 사람들의 집집을 찾아다니며 문설주에 어떻게 양의 피를 발라야 하며 탈출을 위한 음식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며 옷가지들 등 물품들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구체적인 생활 내용들을 현장에서 도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리암이 피부병에 걸린 것은 레위기의 기록에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확실한 사실로 보입니다. 분명한 사실을 알기야 어렵지만 미리암은 병이 전염될 가능성이 많은 환경에 있었다고 볼 수 있고, 그렇다면 그는 백성 가운데 그들과 같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한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백성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방인성, 김홍술 두 분 목사님의 모습이 연결됩니다.


지금 우리는 긴 싸움 앞에, 거대한 권력 앞에서 사실 참 막막함 앞에 서 있습니다. 거대한 바윗돌 앞에서 계란 몇 개를 던지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앞서 얘기 했지만 모든 열쇄는 권력자들이 쥐고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길, 헤쳐 나갈 힘은 없을까요?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공감하고 연대하며 아픈 자들 에 있는 것입니다.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곳은 가장 아픈 곳이며, 생명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라고 합니다. 문화평론가 강유정은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지도자는 나라를 이롭게 하는 자가 아니다. ...이롭기만 하면 그것이 덕이자 선이 되는 시기는 지났다. 책임보다 더 먼저여야 하는 것이 바로 공감이다. 공감에서 출발한 책임은 그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공감을 뜻하는 영어단어 ‘compathy’는 어원상 함께의 ‘com’과 고통을 뜻하는 ‘pathos’의 결합어지요.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공감은 진짜 공감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상상력이 지닌 가장 놀라운 기적이 있다면 바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다움의 핵심이야 말로 공감연민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타자와 공감할 때, 타자의 삶을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선한 지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아이리스 머덕은 말합니다. 이것이 도덕적 비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아픈 이들과 공감하고 연대하는 지도력을 절실히 요구하는 현실에 처해있고 그러한 지도력에 의해서만 공동체의 위기를 이겨 낼 수 있는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요구되고 필요한 관계맺음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미리암처럼 고통당한 이들의 곁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공감과 연대의 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으로 작용하여 전혀 뜻밖의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역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해야 할 정치는 누구에게 무엇을 청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지향하는 바를 우리 스스로 엮어 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미리암처럼 긴 싸움의 준비를 하고 보다 명석하게 악한 사회를 분석하고 아픈 이들의 곁에, 안에 함께하여 공감하고 연대할 때, 우리들이 지향하는 바가 엮어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우리들이 소망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고, 영원히 세월호 참사를, 4.16을 잊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분들과 실종자 가족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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