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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이풍

"하나님의 땅과 사람의 자유"

(성서본문: 레위기 25 : 10, 누가복음 4 : 18∼19)


 

 

1995.05.14

이풍 형제

 

 


[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 레위기 25 : 10, 누가복음 4 : 18∼19

 



  하나님께서 만드신 땅을, 그 어떤 사람도 만들 수 없는 땅을, 생존하려면 그 누구나 써야 하는 땅을 사람들이 돈을 주고받으면서 사고 파는 것이 당연하며, 어떤 사람이든 자기 이름으로 등기된 땅에서 생기는 이익을 혼자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고정 관념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 태어났다가 땅 속으로 되돌아간 사람들이 모두 이 고정 관념을 갖고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인디언들은 이런 고정 관념을 갖고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부족의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위대하고 훌륭한 백인 추장"으로부터 받은 시애틀 추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백인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우리의 누이와 형제와 우리 자신을 팔아 넘기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산 사람들조차 땅이란 사고 팔지 말아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는데도,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 명의로 등기된 토지를 빌려주고 지대를 받아 일하지 않고서도 편안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인 줄로 오해하는 사람들과, 토지 투기로 땀 흘리지 않고 떼돈을 만지며 땅땅거리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한심스럽게도 참으로 많습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고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술을 통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한 사람들은 토지를 영영히 팔고 사는 것을 허용하는 자본주의 제도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제도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서 사는 동안에 청지기 사명을 수행해야 할 우리 사람들에게 토지 사용권과 토지 수익권의 한시적 거래만을 허락하셨습니다(레 25:15).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토지 사용권과 토지 수익권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민 26:5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신 15:4∼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연 재해나 질병이나 게으름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땅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여 가난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곤란하고 궁핍한 이웃에게 손을 펴는 한 가지 방법은, 땅을 유업으로 배분 받았는데도 가난하게 된 사람에게 부유한 사람이 생계 유지에 쓰일 물자나 자금을 주는 대신에 그에게 배분된 땅을 다음 희년이 올 때까지 사용해서 그만큼의 수익을 올려 대가로 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쩌다가 가난하게 되어 토지 사용권과 수익권을 한시적으로 판 사람이나 그의 근족이 땅에 대한 권리를 넘기고 나서 지난 햇수를 계산하여 남은 값을 치르고 희년이 돌아오기 전에 유업으로 배분 받은 땅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라고 명령하셨으며(레 25:25∼27), 미리 되찾을 힘이 없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라도 희년이 돌아오면 자기 유업인 땅을 되찾아 가지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레 25:28).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희년이 돌아오면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되찾게 되는 공동체 속에서는 가난을 자손에게 대물리는 가정이 생길 수 없습니다. 희년의 법도와 규례가 지켜지는 공동체 속에서는 짐승처럼 겨우 먹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제 발로 찾아가 제 몸을 사서 써 달라고 애걸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노예'들이 생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유업으로 평등하게 나누어주신 까닭은 땅 위에서 땀을 흘리며 일해야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시려 함에 있습니다(레 25:10).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어느 하나를 더 얻으면 다른 하나를 그만큼 잃어야 하는 관계에만 놓여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수 23:6)는 하나님의 명령이 준수되는 공동체 속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손바닥과 손등처럼, 또는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따라다닙니다. 그 어떤 사람도 토지를 평등하게 사용하여 땅의 이익을 향수 하는 권리를 박탈당하면 자유마저 박탈당하여 짐승보다 못한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7)고 명령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면서 부자가 된 무리들에게 예수께서도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 6:24∼25).


  예수께서는 구약 시대보다 더 엄격한 의미의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예수께서 선포하신 "주의 은혜의 해"는 그의 제자라면 불로 소득을 볼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움킨 손을 펴야 하는 '자원적 희년'인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먼저 시행되어야 합니다. '자원적 희년'이 시행되는 정도는 우리 기독교 신자들이 갖고 있는 믿음의 정도를 가리킴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셔 승천하신 다음에도 한동안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처럼 소수 지주들의 토지 독점이 커다란 죄악임을 담대하게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부귀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소수의 지주들이 "도적질하지 말지니라"(출 20:15)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하나님의 소유인 토지를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는 죄악을 허용하는 로마 토지 제도에 대한 교부들의 신랄한 비난과 저주는, 어둠침침한 카타콤에서 휘황찬란한 바티칸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거처가 옮아가는 동안에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교회의 침묵 때문에만 이러한 비극이 초래된 것이 아닙니다. '음울한 과학'이라고 불리는 경제학의 과오 때문에도 이러한 비극이 초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음울한 과학'과 타락한 교회의 거짓말이나 침묵에도 불구하고, 지주들이 가장 점잖게 보이는 방식으로 가장 큰 도적질을 한다는 사실은 토지의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와서도 완전히 숨겨지지 못했습니다.


  걸핏하면 자본주의 체제의 헌법을 들먹이는 지주들의 변명을 물리치기 위하여, 영국의 경제학자 프레드 해리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자본주의는 소비자에게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는 일로써 부를 축적하는 것을 요건으로 삼는다. 이 일은 상호 교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토지 독점은 일방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이 창조적 과정을 손상시킨다. 독점자는 자연이 품고 있는 자원에 대한 법률적 소유권을 확보하고 나서는 토지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 이외에 아무런 대가도 내놓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부의 일부를 요구한다. 이는 법률이 정당화한 강도 화적의 경제 논리이다."


  "강도 화적의 경제 논리"를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는 '법률'이라는 것은,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힘을 가진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선지자'라고 불렸던, 헨리 죠지(Henry George)는 이 힘이 토지 소유에서 나옴을 불후의 명저 [진보와 빈곤]에 이렇게 밝혀 놓았습니다 : "토지의 경우는 노동처럼 굶는 일도 없고 자본처럼 가치가 줄어드는 일도 없다. 토지 소유자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그래서 헨리 죠지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토지 소유는 귀족층의 근거이자 거대한 재산의 기초이며 권력의 원천"이라고 말했습니다.


  헨리 죠지는 지주들의 도적질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 "토지의 절도는 말이나 돈의 절도와는 달리 행위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매일 매시 계속되는 반복적인 절도에 해당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 "지대의 사유화는 과거의 절도일 뿐 아니라 현재의 절도이며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어린이에게서 천부적인 권리를 뺏는 행위이다."


  헨리 죠지는 이처럼 지독한 도적질을 하는 지주 계급의 거대한 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담대하게 선언하였습니다 : "빈곤을 타도하고 정당한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의 사적 소유를 공동 소유로 대치하여야 한다. 그 밖의 어떠한 방법도 악의 원인에 도움을 줄 뿐 희망이 없다." 그런데 헨리 죠지는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사유 토지의 몰수와 형식적인 공유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토지 가치세'의 부과를 통하여 모든 지대를 공동체에 귀속시킴으로써 법률적으로 사유화되어 있는 토지를 실질적으로 공유 재산이 되도록 하자고 제창하였습니다.


  페어린더(Verinder)가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알아내었듯이, 헨리 죠지가 제창한 토지 가치세는, '십일조'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모세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알려 주신 정의로운 제도입니다.
"땅의 이익은 뭇 사람을 위하여"(전 5:9) 있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레위 사람들에게도 "땅의 이익"이 필요함을 아시면서도, 그들에게 생계 유지에 충분한 땅을 맡기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으셨습니다(민 18:20∼22).


  '현대판 십일조'라고 할 수 있는 토지 가치세가 부과되면 토지 가격이 떨어져서 투기 이득을 노렸던 사람들이 본전도 건지지 못하게 되는 일이 생길 것인데, 이렇게 되면 지주들이 '보상'을 요구하며 아우성 칠 것을 헨리 죠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보상 옹호론자들에게 헨리 죠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 "내가 어제도 강탈당하였고 그제도 강탈당하였고 그 전날에도 강탈당하였기 때문에 오늘도 강탈당하고 내일도 강탈당하게 되는 고통을 꼭 감수해야 하는가? 강도에게 나를 강탈하는 기득권이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라고 말한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삭개오가 토색질을 중단하는 대가로 보상을 요구했다면, 예수께서는 그를 "독사의 새끼"라고 부르셨을 것입니다. 페어린더가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보상'은 땅을 차지한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는 보상"밖에 없습니다.


  소수 지주들의 토지 독점을 허용하는 제도가 바로 '우리 시대의 노예 제도'임을 밝혀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알리려고 드는 거짓말쟁이들은, 쉽사리 천막을 쳤다가 거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시대에는 땅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것이 가능했지만, 오늘날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가득 찬 대도시들의 땅을 어떻게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줄 수 있느냐고 제법 그럴 듯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다운 백성은,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참다운 목회자들은 그와 같은 의문에 부딪쳐 할 말을 모르는 채 "벙어리 개"(사 56:10)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안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어느 거대한 회사의 시설이나 기계를 물리적으로 나누어 갖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회사를 소유하며 그 회사의 이익을 나누어 갖도록 하여 주는 주식 회사 제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헨리 죠지가 주창한 토지 가치세 제도는, 민족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주주로 삼는 거대한 '토지 임대 주식회사'를 만들어 임대 이익을 나누어 갖게 하는 '현대판 십일조'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 점을 먼저 깨달아 널리 알려야 하고, 교회 안팎에서 궤변을 늘어놓는 지주들의 회개를 촉구해야 하며, 새길 교회가 지향하는 것처럼, "쌓아 올리는 교회에서 나누어주는 교회로 발돋움"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앞장서서 주창하는 토지 가치세 제도의 시행을 세상 사람들도 점점 더 많이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만 욕심의 노예인 부자들도 진리의 말씀으로 자유롭게 되고 부자들의 노예인 가난한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유업을 되찾아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고 나서야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고, 분단된 이 나라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통일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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