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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만자

"광복 50주년과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신앙"

(성서본문: 창세기 1 : 16∼18, 요한복음 8 : 32)

 

 

1995.04.23
최만자 자매



[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1 : 16∼18, 요한복음 8 : 32



  이웃나라 일본에서 독가스 테러가 연발하고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의 연방정부 건물이 폭탄 테러를 당하는 등 폭력에 의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발하는 요즈음이다. 문명의 극치를 달리는 나라, 경제력의 위세가 대단한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이 사태들은, 그 문명과 경제력이 아무리 커도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인간 세력 앞에서 의미를 갖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 범죄의 직접 원인이 어디에 있는 지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증오와 보복심을 낳게 하는 문명의 발전, 경제 성장의 질주를 멈추어야 하고, 국제적.국내적으로 사회 병리적 요소가 생기지 않을 정책과 역사 지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이 민족의 일원으로서 오늘 우리 삶의 문제에 보다 집착하는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금년 1995년은 참으로 많은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해이다. 광복 50주년이고, 동시에 민족 분단의 비극적인 역사 50년이 되는 해이다. 기독교에서는 성서의 희년사상을 연결시켜 해방 50주년을 '희년'으로 선포하고 있다. 즉, 성서의 희년사상에 의하여 원래 상태로의 온전한 회복이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라는 확대 해석에 따라, 분단 조국 통일의 성취를 진정한 이 민족의 해방사건으로 보고 1987년부터 금년을 '통일희년'이라 선포하여 왔다. 우리 민족에게 해방과 분단 50주년은 금세기를 종료하고 새 역사의 지표를 설정할 전완점의 해임을 말해준다. 이렇듯 중요성을 가진 이 해도 어느덧 4월을 보내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민족적'이라는 거시적 차원의 일이 '나'라는 개인의 삶과 어떻게 상관될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광복 50주년의 가장 상징적 행사로 오는 8월 15일 경축식에서 구 총독부 건물을 폭파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치욕적 역사의 상징물, 조선 왕조의 맥을 끊고 민족의 정기를 억누른 구 총독부 건물을 제거함으로써 나라의 얼을 되찾고 기를 살려내야 한다는 주장에서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광복 50주년 축하와 의미가 다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광복 50주년을 축하보다는 그와 함께 한민족 분단 역사의 아픔이 더 큰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지난 역사의 반성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광복 50주년은 미완의 해방이었다. 통일국가를 이루는 일, 토지개혁을 통한 사회개혁을 이루는 일, 친일 잔재를 청산하는 일,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일 등의 과제를 하나도 이루어 내지 못한 50년이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소수민족들의 분쟁 요인이 각 민족의 식민지시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에 있다고 하는데,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 요인도 일재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식민지시대에 유지.온존되어 온 식민지적.봉건적 사회, 경제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여 바른 사회 건설이 좌절되었고, 국외적으로는 미국의 한반도 개입으로 일본을 세계 앞에 전범국으로 응징해 내지도 못하였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을 소련에 대결할 기지로 삼기 위해 일본을 전범국으로 처리하지 않고 오히려 원폭 피해를 입은 패전국으로 보아주어서, 일본은 자국의 복구와 경제 성장에 주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제국주의 침략과 군국주의적 만행을 뉘우치고 인권과 정의를 존중하는 현대적 국가로 거듭나지 못하였다. 전후 배상의 국제적 요구도 미약하였고, 일본 스스로도 전범국임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최근 한국의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끈질기게 추적하여 UN 인권위원회 차원까지 이 문제를 확대시켜 일본이 전범국임을 자인케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배상금도 민간 차원의 모금으로 해결하려 하고, 그 명칭도 위로금으로 하려고 한다. 마침 일본 내에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이 문제에 다수 동의하고 나서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미국은 한반도에 개입하여 일본을 전범국으로 내세우지 못하게 한 것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기지화하고, 이승만 세력과 결합하였다. 여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봉사한 지주, 자본가, 경찰, 군인, 관료, 지식인 등 친일 인물들이 역사적 심판을 피하여 미국과 이승만 주변으로 모였다. 광복 후에 새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잃었던 자주주권을 찾아야 하였고, 그 자주국권이 국민에게 있는,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시민사회 형성으로 연결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새로이 권력을 잡은 집단에게는 민족 민중의 개념이 없었다. 1948년 분단은 공식화되었고, 1950년 6.25는 분단을 고착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우리 모든 정책의 배경이 되었고 분단 역사의 삶을 지배하여 왔다. 인권 민권에 의한 해방역사, 자주적 역사는 시작도 못하고 미국 통제 아래 들어갔고, 뒤이어 독재정치와 군사정치로 이어져 온 것이 광복 50년 동안 우리 역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진지하게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과제를 찾아야 한다.


  지금은 새로운 세계질서가 성립되고 있다. 국경 없는 자유 왕래의 세상이 되어가고, 다국적 자본이 세계 규모로 퍼지며 세계 분할을 시작하고 있다. 각 민족의 자결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가운데 곳곳에 테러가 일어나고, 기술문명은 정보화시대를 급속히 도래시키고 있다. 정부는 이런 도전 앞에 모호한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광복 50주년에 즈음하여,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게 되는 것이다. 일본을 징계하는 것도 필요하고, 구 총독부 건물도 철거해야겠지만, 21세기를 바라보는 오늘의 현실에서 과거 청산과 함께 미래 지향적 의미를 가지고 민족 자주적 주체적 국민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즉 오늘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제 36년과 광복 후 50년을 돌아보면서 아직 주체적이지 못하고 자주적이지 못한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탈 식민지시대에 살고 있다. 일제 치하에서는 민족 독립운동을 하였다면, 21세기 미래 세계를 바라보는 오늘의 우리는 자주적 주체적 민족사를 만들어 나가는 자생 능력을 키워내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50년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민족사 읽기를 해야 한다. 이 미래적 민족사 읽기에 우리의 신앙은 무엇이며, 기독교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우리 민족사와는 어떤 관계에 있게 되는가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민족에 대한 고민과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서로 단절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우리의 역사는 올바르게 알지 못하면서 성서의 역사 기록 구절들을 줄줄 외우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초기부터 민족적 종교로 시작하였다. 선교 초기에 있었던 한 이야기를 보자. 그 당시 성행하던 어느 사경회에서 그리슨 선교사는 남자 반을 맡고, 그 아내 레나 여사는 여자 반을 맡아 인도하였다. 삼일 째 되는 날 저녁 집회에서 십계명을 가르치게 되었고, 레나 여사는 제 6계명, 곧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힘주어 가르쳤다. 당시에 끔찍한 살인 기사가 많았는데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암살하는 사건이 많았고, 그것을 의로운 행위로 쓴 것을 본 선교사가 매우 놀랐기 때문에 여섯 번째 계명을 힘주어 가르쳤던 것이다. 그날 밤 부인들이 남편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고, 교회 안에 큰 분노의 소리가 일어났다. '한인이 왜놈을 죽인 것이 죄냐? 성경에는 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돌로 쳐죽인 다윗을 영웅시하느냐?'라고 하면서 노발대발 소동이 났고, 그리슨 목사는 왜놈의 앞잡이라는 소리가 높아졌다. 사경회는 중단되었고, 결국 한국 목사가 교인들 하나 하나를 설득하여 겨우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당시에 우리 민족에게 강하게 있었던 민족의식을 보여 주며,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시에 민족의식을 가졌던 사실을 보여 준다.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는 민족의식이 강한 지식층에 의해서 수용되었다. 구한말 유교적 군주제를 청산하려는 실학파에 의하여 천주교가 크게 수용되었고, 개신교도 새 역사에 관심을 가진 청년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이 때의 민족의식을 정치적-주체적 민족의식이라 부를 수 있다. 독립협회가 그 대표적 예인데, 천부인권 만인 평등사상을 주장하면서 서재필, 윤치호, 남궁억, 이상재 등에 의해 주도되었다. 한말 근대적 민족주의 이념은 적어도 개신교인을 통하여 매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07년 의병운동도 국군을 회복하려는 민족의식을 가졌으나 그것은 절대 군주체제 재건을 목표로 하였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국민주권주의적이면서 민족의식을 가진 독립협회가 근대적 민족의식으로 새 역사운동을 한 것으로 평가되며, 여기에 기독교가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기독교인의 대부분이 이런 주권의식, 민족의식을 성서로부터 찾았다. 주기철 목사의 '모세 120년'이라는 설교는 모세의 미디안 광야생활을 정치적 망명으로 해석하고 우리 민족 독립운동가에 은유하였다. 항일 민족의식과 만민 평등의식이 기독교 전체의 분위기였고, 따라서 교회는 자연히 정치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의식적 교회 모습은 내적으로는 선교사들에 의하여, 그리고 외적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해체되어졌다. 선교사들은 교회 안에 대 부흥운동을 전개, 확대시켜 한국교회의 비정치화를 이루어 나갔다. 즉 일본이 민족의식을 가지는 한국교회를 주목 감시하면서 핍박함에 따라, 선교사들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될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 민족 백성들에게 정치의식을 빼고 개인적 평안과 위로를 받는 쪽으로 신앙의 관심을 돌리는 전략을 폈던 것이다. 1907-1910년 사이에 일어난 한국교회 대 부흥운동은 당시의 교회를 탈 정치화하는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앙 형태를 기초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당시 선교사들과 한인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 1903년 원산에서 선교사 하디 목사가 한인에 대하여 악감정을 가진 것을 공중 앞에서 회개하며 자신의 선교의 실패의식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한인들에게도 죄를 깨닫고 확실한 신앙체험을 가질 것을 권유하고, 단순한 신앙체험이 성령의 은사를 받는 동기라고 하여 큰 흥분과 뜨거운 감정을 경험한 바 있었다. 이것이 1904년에도 계속되었으며, 1907년에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대단한 성령강림 현상의 체험을 하는 등 몇 년간 비슷한 사건이 여기 저기서 일어났다. 선교사들은 한국교회를 비 민족적 교회로 만들기에 노력하였고, 한국인들이 주님과 자신을 개인적인 관계로 생각하도록 신앙을 이끌었다. 이는 정치화된 교회에 대한 숙정작업의 일환으로 선교사의 탈 정치화정책의 승리였고, 한국교회가 탈사회적 보수적 형태로 고착되게 하였다. 그 결과 1907년에는 57%의 신도 성장률을 보였으나 1908년에 19%, 1920년 17%로 하락하며, 탈사회적 복음증거에 매달리는 이들이 중심적으로 교회에 남았다.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자주를 위한 저항 담론은 일반 사회에서도 있었다. 이런 움직임은 1920년대부터 확산되었는데, 최남선은 민족문화를 기반으로 단군신화를 논의한 대항 담론을 만들었고, 이능화는 무속으로, 손진태는 토착적 민중문화로 각각 민족자각의 근간을 찾으려 하였다. 특히 최남선은 '불함론'에서 독자적 국가 기원을 만들려고 고대사회와 신화를 연구하였고, 정치적 자주를 강조하여 일제의 동화주의에 맞섰다. 그는 단군신화로부터 이어지는 장구한 역사와 그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조선민족 시조로 중국 일본 문화와 차이를 내려 하였고, 별개로 존재해 온 문화의 고유성과 역사의 깊이를 드러내어 문화권의 중심을 조선에 두고 일본을 주변화 시키려는 야심을 가졌다. 위의 두 경우, 기독교는 정치적-주체적 민족의식으로, 최남선 등은 문화적-주체적 민족의식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둘 다 한계를 가졌다. 기독교는 위에 언급한대로 탈 정치화로 무산되었고, 해방 후에는 미국식으로 우리 역사를 바꾸어 나가는 친미적 모방과 이식에 한 몫을 하였다. 해방 후 50년은 서구 식민지화로의 이행의 역사가 아니었는가? 최남선 등의 대항 담론은 단순히 조선 제일주의를 주장함으로서 새 역사와 질서를 가져오기에는 미흡하였다. 근원적으로 세상의 지배-피지배의 틀, 그런 관계 구조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수준까지 제시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즉 단순한 지배 세력의 교체가 아니라 지배-피지배의 구조악을 직시하고 그것을 대안해 낼 수 있는 민족적 주체의식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colonialism, patriarchy, paternalism 등을 극복하고 새 역사, 새 질서를 도래시킬 언어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였다.

  이제 우리는 성서에 우리의 상황을 조명해 보자. 이스라엘 역사 또한 전쟁, 국권의 상실의 위기 속에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러한 식민지적 상황에서도 자기 인식, 주체적 자기를 상실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대국의 역사, 신화, 언어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세계적인 가치를 창출하여 낸다. 이스라엘이 국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기원전 586년 바빌론에 의한 포로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포로기에 나라의 엘리트들이 잡혀갔고, 그 이후 페르시아 점령 때도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 포로 신세는 절망적이며 나라도 성전도 종교적 제의도 모두 상실한 상태에서 강대국의 힘 앞에 무력한 자신들의 삶에 비관적인 나날을 보내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절망 속에서 오히려 세계적인 비전을 가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디아스포라 생활이 야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죄의 고백부터 시작한다. 민족적 자기 회개가 앞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게 강한 것은 바로 자기 성찰, 자기 직시의 힘, 곧 회개의 자세이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다는 시인, 민족의 비극이 자신들의 과오에 있다는 자각적 고백이 그들을 새롭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들은 단순한 복구, 공허한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절망에서, 식민지적 경험으로부터 그것을 단절시킬 근원인 하나님 신앙 안에서 새롭게 역사를 보고 신관을 정립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오늘의 성서 본문 말씀, 이 장엄한 선포는 바로 포로기의 절망적이고 고독한 생활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세상의 질서의식이다. 주로 사제단에 의해 이루어진(P문서) 창세기 1장의 야훼의 창조 선언은 사라져 가는 민족의식, 잃어 가는 자신들의 언어를 회복함과 동시에 세계적 안목으로 이를 재건한다. 바빌론의 창조신화는 마르둑 신이 인간을 신들의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창조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마르둑 창조신화를 듣고 보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고 그들에게 복을 주고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위임한다는, 판이하게 다른 창조사건을 만들어 내었다. 고대 근동사회에서는 오직 왕만이 신의 아들이 될 수 있었다. 지배-피지배적 사회계급 형태가 신화로 성립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여, 인간 존엄과 동시에 만인의 평등함을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이 신앙은 인류 역사의 변혁에 핵심이 되는 메시지이다. 문예부흥기, 곧 봉건영주 지배사회를 허물고 근대적 시민사회로 전환시킨, 인간 해방사상을 싹트게 한 메시지이다. 근대인간 해방사상과 그 운동, 여성 해방운동의 성서적 기독교적 근거가 되는 성서말씀이다.


  혹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는 차라리 기독교 밖, 성서 종교 밖의 세계역사 변혁에, 그리고 법의 공정성에, 인권운동에 더 크게 영향력을 미쳤다고 말한다. 초기 한국의 천주교 전래에도 천주신앙과 동시에 만인 평등사상이 구 봉건질서 해체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신앙은 철저히 하나님 주권을 선포하는 것, 동시에 세상의 다른 모든 권리는 완전히 상대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재건하는 힘이 된다. 자신의 회개,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과정을 가진다. 광복 5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가 할 일은 아직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이제 한마디로 하자면, 그것은 더 이상 식민지적 상태를 지속하는 일들을 버리는 것이다. 21세기를 바라보는 민족적 의식, 주체적 의식은 국민 주체적 시민사회 형성의 정치적 주권을 갖는 민족의식이 되어야 할 것이고, 국민 주체적이 되는 것은 개개인의 주체적 삶이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식민지적 상태는 인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인 듯 다루는 상태이며, 비주체적 인간은 자기 삶을 자기 스스로 규정하지 못하면서 다른 존재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의하여 규정된 삶을 살아가는 존재를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기준과 표준을 스스로 만드는 일부터 하여야 한다. 탈 식민지화하기 위하여 주체적 자주적이 되기 위한 핵심은 모든 기준을 재 설정하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흑인 여성작가 토니 모리슨의 소설 '푸른 눈동자'를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글은 흑인들이 노예해방을 부르짖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을 목숨을 걸고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미의 기준이 푸른 눈동자와 흰 피부, 그리고 곧게 뻗은 머리라는 사실, 즉 백인 우월주의가 깊이 뿌리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그런 미적 기준에 의하여 흑인 스스로 얼마나 자기 비하에 빠져 왔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바로 그 기준을 재 설정하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로서 당당할 수 있는 자신을 가지는 일이며, 결핍된 상태로서의 '타자'가 아니라 '차이'를 가지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찾는 일이다. 민족의 문화도 더 이상 서구적 규정, 강대국의 규정에 우리를 내맡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그것들을 상대화시켜 내는 자생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보다 문화적, 지적 차원에서의 할 일을 지금 말하고 있다. 이 근거에서 정치, 경제의 탈 식민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성서 읽기도 다시 해야 한다. 서구화된 도그마를 기독교 전통으로 받아들이고, 이름 있는 서구 신학자의 권위에서 신학을 출발하는, 서구에 의존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을 고민해야 한다. 참으로 한국인의 심성과 언어로 성서를 읽어야 할 것이며 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 선교 초기에 기독교 신앙이 식민지 억압을 극복해 내는 언어로 차용되었고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였다면, 지금 21세기에는 문화적 사대주의를 벗어나서 자기 자신의 기준을 설정하는 능력을 갖고, 자기의 언어 삶을 만들어 내는 자생력을 키울 사명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 교육도, 설교도, 예배도 이러한 자생력을 만들 물음 앞에 서야 한다.


  광복 50주년은 구호만이 아니라야 한다. 희년은 노예가 자기의 언어를 찾게 하고, 가난한 자와 빚진 자가 자기 모습, 자기 말을 찾게 하여 자신으로 인간화시키는 사건이다. 우리는 서구적 권위에 의존해 온 죄과를 용서받고, 나의 옷, 나의 말이 아닌 것에 짓눌렸던 짐을 내려놓고 우리로, 나로 살아야 한다. 서구에의 탐색은 필요하나, 그 권위에 의해 우리 행위를 규정짓지 말아야 한다. 오늘 탈 식민지적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은 진정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아는 일이다. 이 진리로 자유하게 될 때 광복 50주년은 의미 있게 된다. 새길 공동체는 이 시대 민족적 교회로 설 가능성을 가진 교회라고 기대한다. 자민족 중심주의적 전통에로의 회귀가 아니라, 인간의 주제로 자민족 중심주의를 넘어서면서 자기로 사는 삶을 찾는 데 모델이 되는 교회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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