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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완상

"忍從의 성자 요셉 - 크리스마스에 잊혀진 성자"

(성서본문: 마태복음 1:18-25)

 

1994.12.25

한완상 형제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

   마태복음 1:18-25



  성탄절 행사는 이제 천박한 축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세속적 경축일처럼 변질되어 원래의 성탄절 뜻은 희미하게 바래지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인데도 그의 탄생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상업화된 선전광고를 보면 예수도 없고 십자가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크리스마스 축제의 많은 助役들을 기억하면서도 우리는 예수의 生父 요셉은 잊고 있습니다. 동방박사, 목자들, 천사들, 헤롯대왕, 산타클로스 등의 조역들은 주인공처럼 행세하는데 성자 요셉은 까맣게 잊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 역사적인 사건을 가능케 한 조용한 성자 요셉의 갈등, 번민, 인종(忍從)에 주목해 봅시다. 그리고 거기서 은혜를 받읍시다. 요셉의 이력은 그가 명문가 집안임을 말해 줍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성품에 대해서는 그를 義로운 사람으로 성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세 율법을 그 정신에 따라 순종하는 착하고 정의로운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약혼을 했기에 나날이 가슴 부푼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약혼녀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순결해야 할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에 접하게 됩니다. 여기서 요셉의 번민과 고민은 심각해집니다. 그가 마리아를 사랑했을수록 그의 고뇌는 더 컸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는지 또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순종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성자 됨이 여기서 드러나고, 그의 인품을 우리는 오늘에 되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탄의 신학은 있으나 성탄의 윤리가 없는 오늘 상황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그는 먼저 조용하게 法에 따라 해결코자 했습니다. 당시 法(신명기 22;23-24)을 가혹하게 적용하면 마리아는 공개재판에 회부되어 돌로 쳐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법(신명기 24:1)을 적용하면 두 사람의 증인 앞에서 이혼서를 써주면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조용하게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조용하게 파혼하려 했던 동기를 성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약혼녀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동기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수치감은 개인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기에 때로는 수치감 때문에 자살하기도 합니다. 국가 간의 분쟁도 수치감 때문에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다른 나라의 지도자에게 수치심을 주게 되면 국경 분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요셉이 임신한 약혼녀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면서 파혼을 추진한데서 우리는 요셉의 고매한 인품을 봅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인품'이요 성탄절의 인격입니다. 우리는 과연 남의 수치심에 대한 인간적 배려를 합니까? 심지어 자식의 자존심마저 존중하지 않는 우리 자신은 아닙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온갖 고난을 이겨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임신한 약혼녀를 버리지 말고 주저 없이 아내로 맞으라.
                                임신에도 불구하고 아내로 대접하라.
                                아내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부관계를 맺지 말라.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아기 이름을 지을 권리는 없다.
                                 아기 이름은 예수라고 불러라.

  참으로 '가혹한' 명령입니다만, 그는 忍從했습니다. 초인적 순종이었습니다. 뿐만 입니까. 그 인종의 실천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겸손케 합니다.

  날로 불러 가는 아내의 배를 보며 느끼게 되는 아픔과 두려움.
만삭의 아내를 나귀에 태우고 멀리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고통.
종착지에 와서 이류, 삼류여관도 찾지 못하여 당황하게 되는 요셉.
마침내 냄새나는 구유에 만삭의 신음하는 아내를 눕혀야 하는 요셉의 곤혹스러움.

  이러한 요셉의 처지를 상상해 보면, 우리는 결코 상업화된 낭만적 풍경이 얼마나 거짓인가를 알게 됩니다. 아기와 엄마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존경 표시에 견주어 요셉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무지 요셉의 役割은 주목의 대상이 되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예수 탄생으로 헤롯왕이 아기 학살을 시작했습니다. 이집트로 줄행랑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요셉의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식으로 말하자면 아기는 〈복덩이〉가 아니라 〈화덩이〉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아픔, 곤혹스러움, 불편, 불안을 그는 초인적으로 견디어 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인간입니다.


 

  이 모든 곤경을 딛고서 그는 오래 참고 온유한 가운데 아들을 잘 키워 세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물로, 아내를 세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여성으로 부각시켰습니다. 자기는 안보이게 하고 남을 돋보이게 하는 조용한 성자 요셉, 그가 바로 오늘 우리가 복원시켜야 할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입니다.


 

  사랑하는 자매형제 여러분, 사도 바울이 사랑 詩(고린도 전서 13장)의 主語를 요셉으로 바꾸어 다시 읽어봅시다. 우리는 거기서 인내의 요셉, 평화의 요셉, 사랑의 요셉을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않는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오랫동안 잊어 온 요셉을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우리 속에서 다시 되살립시다. 이것이 성탄절을 맞는 새로운 자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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