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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완상

"<하면된다>의 복음과 흉음"

(성서본문: 마가복음 10:23-27. 38-39)

 

1994.11.27

 한완상 형제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마가복음 10:23-27, 38-39


 〈하면 된다〉는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적극적 사고와 행동이 우리를 슬프게도 하고 분노케도 합니다. 1970년대 유신시대의 〈하면 된다〉는 구호는 숱한 백성들을 감옥으로 보내기도 했고,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건설사업을 이룩했으나 그 내실이 얼마나 허술했던 것인지를 지금 성수대교 참상에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라살림을 잘못 관리해 간다면 제2, 제3의 성수대교 사건이 계속 터질 것입니다. 얼마전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고 그 증언자들을 무참하게 처 죽인 살인마 김경록은 〈하면 된다〉라고 무모한 가치관을 또한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자. 살인이면 살인, 노동이면 노동, 범죄면 범죄, 오직 충실할 뿐이다. 하면 된다. 한번 말하면 끝까지 책임진다. 그 일이 나쁜 일이라도 오직 책임에 충실할 뿐이다.  그는 나쁜 일이라도 〈하면 된다〉라는 미신을 확신했기에 마침내 을씨년스런 가을 산에서 외롭고 비참하게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지존파 두목 김기환의 넋두리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하면 된다는 식의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정권을 불법 탈취한 전직 대통령은 무죄인데 같은 신념으로 몇 사람을 죽게 한 나는 왜 유죄냐"는 식의 항변을 내 뱉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우울한 상황에서 성서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까요?

먼저 〈하면 된다〉가 갖는 기쁜 소식의 측면을 살펴봅시다.
   첫째 성서는 공익을 위해서는 적극적 사고와 행동을 항상 권고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는 쉼 없이 적극 나서야 합니다. 믿음은 희망의 실상(히브리서 11장)입니다. 참된 믿음은 모든 사람들이 올곧게 바라는 바를 구현시키는 힘입니다. 특히 절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구현을 안겨다 주는 힘입니다. 또한 믿음은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 생각, 과감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난 달 5월 10일 남아프리카의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에서, 만델라가 27년 간 옥고를 견디면서 온 국민과 인류가 바라던 꿈을 구체화시키는 감동의 장면을 지켜보면서, 저것이 바로 믿음의 현주소임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의 적극적 믿음의 열매를 본 것입니다.


   둘째, 성서는 또한 억울하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도록 권고합니다. 적극적으로 짐을 진 사람들의 그 아픔을 나누어 갖도록 권장합니다. 함께 아파하고(compassion) 함께 떡을 나누고(companion) 함께 힘을 나누는 일(comfort)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주님은 격려하십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라고 적극 명령하십니다. 이같이 나누는 일에 적극적일 때 감동의 파장은 큰 법이지요.


   셋째로, 성서는 이기적 자아를 억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권고하십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이겨낸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아야 하는 일차 대상은 자기의 탐욕, 위선, 독선, 교만입니다. 이 일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기를 남들 앞에 내세울 일이 있다면, 그것도 적극적으로 내세울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약함을, 못났음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고린도 후서 12:7-10). 이렇게 성서는 적극적으로 하면 되는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면 된다〉의 흉음(凶音)을 우리는 더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잘못된 적극적 사고와 행동은 부당한 권력과 재력을 가진자들의 자기 합리화에서 나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편법적 행위와 범죄적 결정은 모두 〈하면 된다〉의 이기적 미신(迷信)에서 나온 것입니다. Hitler, Stalin 등의 독재자들은 모두 이 방면의 선수들입니다. 오늘의 거대한 문화유적으로 남아 있는 피라미드, 만리장성 등의 큰 공사도 따지고 보면 민초들의 땀과 피를 짜서 얻어낸 〈하면 된다〉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 공사들로 억울하게 죽은 백성들의 한소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체로 이기적 탐욕에서 오는 〈하면 된다〉는 가치관은 나쁜 일도 철저하게 하면 된다 잘못된 신념에 불과합니다. 반란도 철저히 진행시켜 성공시키면 된다는 식이지요. 결국 김경록의 최후같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면 된다〉와 〈하면 안 된다〉를 분별하는 지혜를 성서에서 얻게 됩니다. 먼저 성서에서 발견하는 두가지 잘못된 분별을 살펴봅시다.


  첫째 〈하면 된다〉를 〈하면 안 된다〉로 착각했던 비복음적 소극주의에 주목합시다.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하면 되는 것을 할 수 없거나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착각하여 오판한 대표적 본보기를 우리는 빌라도에서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무죄임을 알면서 무죄를 선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원된 여론의 세찬 소리에 질려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면서 세숫대야에 손을 씻는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가혹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지요.

   둘째로, 하면 안 되는 것을 하면 된다고 착각한 비복음적 적극주의자로 헤롯왕을 보게 됩니다. 그는 애첩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춤에 매혹되어 "네 소원을 말하라... 나라의 반이라도 주겠다"라는 허튼 약속을 함부로 했습니다. 지도자의 탐욕적 적극 발언은 항상 재앙을 불러오는 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단호한 〈No〉를 배워야 합니다. 〈하면 된다〉의 유혹을 과감하게 물리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꼬임, 마귀에 순종하여 천하대권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유혹, 마귀에 순복하여 불사(不死)하는 카리스마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유혹에 대해 주님은 단호하게 〈안 돼〉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골고다의 험한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면 된다는 신념을 분명하게 심어 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듯이, 부자는 그 재산을 공익사업을 위해 내어놓을 수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억울하게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민초들을 위해 부자는 자기의 소유를 처분하는 일에 하면 된다는 신념을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자는 그것을 할 수 없다고 믿어 근심에 찬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타적(利他的)인 존재는 할 수 있음을 주님은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을 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낙타로 하여금 바늘구멍에 들어가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라는 신념의 중심이 이기적일 때는 불가능하나 이타적일 때는 가능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의 공동체는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공동체가 필요한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면 된다는 복음의 구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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