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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2.05.17 14:08

[2012.05.13] 주님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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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육근해 관장

주님의 사명

(에베소서 2:10)

 

2012년 5월 13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육근해 관장

(한국점자도서관 관장)

 

한국점자도서관은 1969년 시각장애인이셨던 저의 선친께서 당신의 사재를 털어 당시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는 시각장애인들을, 책을 통해 자립자활을 시키고자 설립한 도서관입니다. 그때는 점자책이라는 것이 한점 한점 찍어서 만드는 것이어서 지금으로 환산하면 수십억 정도 되는 재산이 불과 5년도 채 안되어 다 사라지고 말았죠.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당장 한 끼 먹는 것도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형제들 모두가 점자책을 만드는 자원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 형제들은 대학진학도 단지 허망한 꿈에 불과한 것이 되었습니다.

 

5남매 중 막내였던 나는 온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어 어려운 살림에도 약간은 공주과에 속해 있었고 학교에서도 상위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나만은... 하는 기대감 속에 대학진학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동화 속에 소공녀처럼 뭔가 기적이 일어날 것 같았고 나만은 하는 기대속에 꿈꾸던 대학 진학은 제가 고3이 되었을 때 도저히 가망이 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어느 날 집에 오니 깜깜절벽이었죠. 이미 오래전 우리는 집이 없이 도서관과 집이 하나가 되어 방 1칸에 온 형제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전기세를 못 내서 전기가 끊겼던 것입니다. 촛불 켜놓고 시험공부를 하면서 나는 모든 꿈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등록금을 해주시겠다고 대학진학을 권유하셨지만 나는 더 이상 용기나 나지 않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큰 회사에 취업을 하고 집 가사에 도움을 주며 외형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제 마음은 한없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절망 속에 주님은 제게 오셔서 대학진학에 대한 소망을 주시고 꿈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주님의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대학 학업을 통해 세상의 지식을, 부모님을 따라 철야기도, 기도원 기도, 부흥회 집회 참석 등을 다니며 영적 훈련을, 시각장애인 목사님 교회에 출석하면서 섬김의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한때는 성령 충만하여 주님을 향한 열정도 있었으나 졸업하면서 그 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하면서 그저 평범한 주부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조그만 가게도 열어보고 하면서 그저 내 생활에 안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몇 년 안 되어 아버지가 저를 부르셨습니다. 도서관이 어려우니 와서 도우라고 강권적으로 요청하셨습니다. 이미 언니들도 아버지를 돕다가 다 출가해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었고 몇 명의 직원으로 근근히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무상으로 사용하던 건물도 주인이 비워달라고 해서 20여년의 역사를 갖고 길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거듭 강권적으로 요청하시는 아버지의 부름에 나는 1992년부터 도서관으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일하고 난후 정부가 관심을 갖고 지금까지도 유일한 특수도서관으로서 점자도서관을 건립하였습니다. 1997년 드디어 완공된 도서관으로 이사하고 아버지와 나는 이제야 건물 걱정 없이 도서관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쁨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주님께서는 저의 아버지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동안의 고생을 뒤로 하고 편히 쉬라는 뜻이었지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 입성을 부탁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 떠나가듯이 아버지는 그렇게 가셨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이 일이 주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라면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도서관의 운영을 위해 대학원을 진학하여 사회복지와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해외 도서관을 견학하여 견문을 넓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유업을 받아 한국점자도서관을 운영하는 것만이 저의 사명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확신시키는 전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가교로서 사용하셨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셨고 시각장애인교회를 오랫동안 다녔으며 한국점자도서관을 운영해온 나는 저 스스로 반시각장애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정부나 사회의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이 받아야 할 권리, 정부의 잘못된 정책 개선 등을 위해 의견 개진을 하며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누가 오라는 곳은 없어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가서 “장애인 서비스는요?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가요?” 하며 꼭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도록 발언을 하곤 했습니다.

 

반면 장애인들은 오랫동안 차별받으면서 많은 것을 빼앗기다보니 절대로 양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 원만한 타협이나 대화가 안 되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정부나 사회가 그들 장애인들의 요구 사항을 100%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합니다. 즉,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정부는 1997년 한국점자도서관을 위한 특수도서관 건축을 계기로 장애인서비스에 대한 예산 지원을 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문은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시각장애인들의 욕구를 발산시켜 전국적으로 점자도서관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점자도서관의 발전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인 고민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 차례 건의를 드리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관심도 전문지식도 없다 보니 적절한 정책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지원하는 예산부분만 해도 늘 정부 편의주의였습니다. 2005년부터 지방분권이라 저희 한국점자도서관은 서울시에서 예산을 지원받고 있는데 금년 2012년도 예산이 얼마 책정되었고 언제 주겠다는 통보도 5월인 현재까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어떤 해에는 11월이 되어서야 그 해 1년 예산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2012년인 지금도 이런 상황이니 2000년대 초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결국 점자도서관들은 제대로 된 서비스를 시작해보기도 전에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정부 지원을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 그것이 모두 삭감되면서 직원들 급여도 못주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나는 총체적으로 이 문제를 고민하고 당장 시급한 재정적 문제보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해외 견학을 통해 얻은 모든 경험과 지식으로 내린 결론은 선진국처럼 우리도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설립해서 민간점자도서관을 비롯한 전체적인 장애인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결론을 내린 나는 이 소망을 놓고 2002년 1월부터 주님께 솔로몬의 일천번제 제단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일천번제 제단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어서 3년여 동안 소망을 품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기도가 끝난 후 우연히 한 포럼에서 알게 된 분이 J 국회의원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 분은 우리 현안문제를 듣자마자 그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나는 그 날부터 국회로 출근하다시피 했습니다. 국립시각장애인도서관 설립을 위해서였습니다. 때로는 한국시각장애인도서관 협의회 임원들과 함께 국회를 방문해서 관련 의원님들을 일일이 찾아가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국회 보좌관이 웃으며 “이렇게 국회를 자주 오는 사람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시던데요.” 하면서 농담을 건네기도 할 정도로 나는 정말 열심히 입법을 위해 뛰었습니다.

 

2005년 입법 발의를 한 이후 그동안 사회적 분위기도 바뀌어서 문화부는 국립장애인지원센터를, 또 다른 국회의원은 우리가 입법한 것과 같은 국립시각장애인도서관을 설립하는 안을 각각 입법 발의하였습니다. 1년 내내 3개의 법이 상충되면서 3차례 공청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지원센터는 절대 반대하면서 독립적인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2006년 국립장애인지원센터가 설립되는 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뜻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이 나라 장애인을 위한 선한 뜻으로, 눈물로 오랫동안 기도했고, 인간적으로는 최선을 다했으니 당연히 되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기대만큼 절망도 커서 나는 주님께서 주셨던 믿음에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법안 좌절로 인하여 절망 중이던 저를 주님께서는 나사렛대학교에 전임강사로 임용을 시켜 주셨습니다. 막 박사논문을 끝내면서였습니다. 나는 현장에서 뛰어다니느라 연구실적이 많은 것도 아니고 오직 박사논문과 오랜 경험이 있다는 것뿐이었는데, 그런 제가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우리 형제 모두가 대학 꿈도 못 꿨는데 제가 박사학위까지 받았던 것만으로도 우리 집으로서는 경사였습니다. 한데 거기에 교수까지 되니 개천에서 용난 셈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었지요.

 

나는 전임강사가 되었기에 의무적으로 일주일에 4일씩 천안에 소재한 나사렛대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고 학생지도를 해야 했지만 한국점자도서관 관장도 겸임하고 있었습니다. 점자도서관을 운영하는 것도 제 사명인데 이것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천안과 서울을 오가며 두가지 일을 병행하면서도 나는 진정 주님께서 원하신 것이 지원센터였을까 하고 다시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분명히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설립시켜 주신다고 하시면서 제가 다시 시작하길 바라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안에서 서울은 차로 2시간, 기차로 왕복한다 해도 국회를 가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도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계속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는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게 대학 교수라는 직분이 오히려 일을 하는데 더 용이하다고 하면서 절대 만류하였습니다만 나는 세상 방법이 아닌 주님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부귀도 명예도 주님 뜻이라면 의심없이 내려놓겠습니다 라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2차 입법발의를 주도하였습니다.

 

그리고 2011년 12월 29일 극적으로 국립장애인도서관 설립 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제가 주님께 소망의 기도를 드린 지 꼭 10년만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이루셨습니다. 학교도 그만두고 2차 입법발의를 했지만 계속되는 국회 정쟁 속에서 심의도 안 되고 잠자고 있을 때 2011년 2월 전격적으로 예상치 않았던 분이 문화부 신임 장관으로 오시면서 이에 대한 분명한 뜻을 가지고 추진해주셔서 급진전되어 극적으로 통과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국립장애인도서관은 8월 오픈 예정으로 이 도서관을 설립 운영할 국립중앙도서관의 TF팀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43년동안 우리 한국점자도서관은 국내외적으로 우리나라 대표격인 중앙센터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런 노하우를 앞으로 설립될 국립장애인도서관에 많은 부분 이관시켜서 국립이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적극 도울 예정입니다. 한 나라에 2개의 중앙 대표가 있을 필요가 없고 나의 이기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민족 장애인을 위해서 국가가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가 국립장애인도서관 설립을 위해 분주하게 다니고 있을 때 우리 한국점자도서관의 재정적 문제는 더 커져갔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갖고 히스기야처럼 주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제단을 통해 주님은 제게 장애인을 위한 눈물의 기도를, 온전한 섬김을,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나는 한국점자도서관을 운영하고, 국립도서관 설립을 위해 시간도, 물질도 바쳐가며 일하는데 오히려 저를 시기하고 모함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 내가 오랜 시간 찾아다니며 설득해서 시작한 프로젝트도 다른 장애인 기관이 뺏아가는 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내가 이런 일을 당하면서도 이 일을 계속 해야만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할 정도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처난 마음으로 새벽에 주님 앞에 가면 주님께서는 내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내게 상처를 준 장애인을 위해 더 기도하게 하시고 또 더 많은 장애인들의 삶을 위해 국립도서관 설립, 더 나아가 국가 정책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나는 내게 그렇게 눈물이 많은지 정말 몰랐습니다. 날마다 얼마나 울어대는지, 교인들이 수군댈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육집사는 왜 맨날 우는거야” 뭐가 그렇게 문제가 많지?”사실 저의 남편은 교회에 나왔다 안 나왔다 합니다. 아직 영적 체험이 없어서 믿음이 깊지 못하죠.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 사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오직 주님의 일을 할 때 주님께서는 나의 가족을 책임져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1960년대 전후나 지금이나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심지어는 도우미를 하실 정도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저의 아버지는 다른 부모님들과 달리 우리 먹을 쌀도 없는데, 그저 무엇이든 다 털어 이웃집 시각장애인 어려운 가정에 덜렁 갖다 주고 오시곤 하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에게도 학교 공부보다 점자책 만드는 일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어느 날은 그런 아버지에게 우리 자식은 어떡하라고 그러시냐고 하셨더니 우리 자식은 그래도 눈은 보니까 무엇이든 해서 먹고 살 수 있잖아. 건강한 우리가 우리 자식들이 그런 장애인들을 도와야지,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그 말에 저의 어머니도 더 이상은 반박하지 못하셨다고 훗날 나는 어머니께 들었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주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습니다. 나는 장애인을 위해 빛도 이름도 없이 그렇게 일생을 살다 가신 저의 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 앞으로도 장애인을 위한 일에 더 헌신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제게 원하시는 일이고 저의 아버지가 기뻐하실 일이기에 나는 앞으로도 남은 인생을 이 나라 장애인들의 자립자활과 행복한 삶을 위한 국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게 주신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계기가 되어 새길교회 성도님들도 생각이 나실 때마다 이 나라 장애인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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