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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2004.12.03 16:41

[2004.11.21] "일상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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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쁨 - 이혁배 목사

새길교회 말씀증거













2004. 11. 21.





 



일상의 기쁨


[전도서 3:1~13]


 


이혁배 목사 



 



 


   사람들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갑니다. 기업가는 기업경영의 목표를 정하고, 학자는 연구의 목표를 세우고, 주부는 저축과 내 집 마련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면서 살아갑니다. 목표라고 하는 것이 노력한다고 해서 곧바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목표를 세운 시간과 목표가 실현된 시간 사이를 기다림으로 메워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목표들이 항상 단기간 안에, 혹은 예정한 시간 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세운 목표들은 계획한 시간보다 훨씬 늦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달성되지 않는 목표도 존재합니다.


   우리가 짧은 인생 가운데 세운 계획들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들이 너무 늦게 실현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니 그 계획들이 평생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정말로 허망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허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서본문에서 전도서 기자는 이러한 허망함이나 허탈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약성서는 크게 네 덩어리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곧 율법서, 예언서, 역사서 그리고 성문서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전도서는 잠언 및 시편과 함께 성문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이런 전도서의 서두를 보고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전도서를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인 경향을 지닌 책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합니다. 물론 전도서를 표면적으로만 대하면 이런 단정이 전적으로 그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전도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면 전도서 기자가 제기하는 질문마다 회의적이지 않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간의 의미에 유의하면서 전도서의 내용을 파고 들어가면 전도서 기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회의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제기하고 있는 모든 질문들 위에 모든 가치의 원천이 되시고 모든 일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오늘의 본문에서 인간의 계획을 이루는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때를 관장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고 뽑는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가능하고, 허물고 세우는 때도 하나님이 관장하시는 것입니다. 사랑과 미움도, 전쟁과 평화도 인간의 마음이나 뜻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도서 기자의 생각은 잠언 기자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자주 인용하는 잠언의 구절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계획은 인간이 세우지만 그 계획을 진행시키시고 완성시키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자신이 세운 계획을 이루기 위해 아무리 애쓴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계획은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완성의 때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면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이 기다리는 것 말고는 무슨 다른 일이 있겠습니까. 물론 전도서에서 이야기하는 기다림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 이것이 전도서 기자가 의도하는 기다림입니다.


   그런데 전도서에서 의도하는 기다림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성취의 때를 맞이하는 시간보다 성취의 때를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더 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대부분이 기다림의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전도서는 적어도 기다리는 시간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만 강조하는 것은 전도서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무책임하게 비춰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전도서 기자가 답변하고 있는 부분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12절과 13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다림의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려면 일상생활에서 기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에서 만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도서의 쾌락주의적 권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낯선 것일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쾌락을 맛보아라! 현실의 작은 일들에서 즐기는 삶을 살라! 이런 전도서 기자의 권유는 진지함과 엄숙함, 그리고 금욕적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쾌락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비록 소수의 무리였지만 끊임없이 그 맥을 유지해왔습니다. 이들은 쾌락을 주는 것이 선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인간의 위장을 즐겁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쾌락주의적 주장은 많은 경우 사회의 주류사상으로부터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쾌락주의가 전혀 무의미한 사상적 흐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평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쾌락주의는 감각적인 것을 지독하게 부정하려고 했던 주류사상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또한 쾌락주의는 사람들을 질식시키기 쉬운 금욕주의와는 달리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게 할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쾌락주의가 지니고 있는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면서 쾌락주의를 옹호합니다. 거창한 역사적 명분과 딱딱한 율법의 준수만을 강조하는 율법주의자들과 통치자들 아래서 그 당시 백성들은 고단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도서 기자는 역사적 사명감과 율법규정의 이행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작은 즐거움도 소중하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가 의도하는 쾌락주의는 일반적 의미의 쾌락주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도서가 말하는 쾌락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의 기쁨과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면서 갖게 된 모노야휘즘(mono-Yawhism), 곧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은 전도서 기자에게서는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신앙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전도서 기자가 강조하는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신앙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순간순간 기뻐하고 있습니까? 혹시 많은 계획을 세우면서 그 계획을 반드시 실현시키고 말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행여나 미래를 위해 무조건 현재를 희생시키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몇 달 전 저는 우연한 기회에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들이었습니다. 대화 도중 한 친구가 재테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드는 바람에 재테크가 그날 대화의 중심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그 젊은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처음 안 사실인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10억 만들기’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이런 유행을 이용해 출판계에서는 ‘10억 만들기’에 관한 책자들이 속속 출판되어 그 수가 현재 30종을 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10억 만들기’를 추구하는 인터넷 동호회의 경우도 그 숫자가 수천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한 저는 ‘10억 만들기’에 관한 책자를 구입하여 그 내용을 대충 훑어보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읽어보신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안 읽어보신 분들을 위해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해보겠습니다. ‘10억 만들기’ 제안자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은 대략 20여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10억원은 행복을 위한 충분조건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누구나 노력하면 10억원을 모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셋째, 받을 돈은 최대한 빨리 받고 줄 돈은 최대한 늦게 주어야 한다.


   넷째, 무조건 내 집부터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주식은 반드시 여유자금으로만 해야 한다.


   여섯째, 45세까지 10억원을 만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일곱째, 종자돈을 모을 때는 철저한 자린고비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런 항목들을 접하면서 저는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물질만능주의나 물질숭배풍조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전도서 본문과 이런 항목들이 오버랩 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미래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의 삶을 철저하게 희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10억원이란 돈을 모으기 위해 인생의 황금기인 삼사십 대의 시간을 완전히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삶을 의미 있게 사는 것일까라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10억 만들기’에 관련된 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은행원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린 시절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에 있는 일류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금융기관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들어가 보니 다른 동료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어느 정도 재산을 물려받아 그것을 종자돈 삼아 재테크를 하여 재산을 크게 불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부모님에게서 뭔가를 물려받기는커녕 부모님께 생계비의 일부를 다달이 드려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처지를 못 마땅하게 여기던 중 대학친구를 통해 ‘10억 만들기’에 관한 책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그는 자신의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미국증시가 한국증시에 선행한다고 믿고 있던 그는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미국주식시장을 분석하면서 그곳에 돈을 투자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잠깐 눈을 붙이고 8시 30분에 출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자꾸만 감기는 눈 때문에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상사의 꾸중은 이어지고 야근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심장병을 얻게 되었고 현재 휴직계를 내고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경우 젊은 세대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교회들을 들여다보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도 더 윤택한 미래, 더 안락한 미래, 더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오늘의 순간을 포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목표가 성취되는 미래를 기다리면서도 지금 여기서의 삶에 충실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다림이 고통스런 기다림이 아니라 즐거운 기다림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순간순간 기쁘게 살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우리는 자신이 세운 목표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는 집착에서 놓여나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목표를 성취하고 계획을 이룰 수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이 세운 목표나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계획을 이루어주지 않으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도 아니고 목표가 성취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태도이며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마음자세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기쁜 심정으로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급해해서는 곤란합니다. 즐거운 기다림은 마음의 속도를 줄이는데서 가능합니다. 빠른 마음은 인간을 병들게 합니다. 조급한 기다림은 고통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반면에 느린 마음은 건강합니다. 여유 있는 기다림은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먼 미래에 우리가 목적하는 바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성취의 감격과 기쁨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런 감격과 기쁨 또한 순간적일 뿐입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쁨을 얻는 훈련을 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위대하고 어마어마한 계획이 실현되었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기뻐할 수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행복과 불행은 먼 미래에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삶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계획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기다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즐겁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먼 미래보다도 일상의 삶에 충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림을 지루해하지 말고 기다림을 즐기라고 권고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권고에 응답하여 미래의 때에만 고정된 우리의 시야를 돌이켜 현재의 삶에 대한 관심을 다시 회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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