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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친해지기 - 또 하나의 여정

새길교회 말씀증거













2004. 11. 14.





 



죽음과
친해지기 - 또 하나의 여정


[시편 2 3:1~4, 요한복음 11:25~26]


 


차옥숭 자매 



 



  지방에 있는 저희 대학은 금년 가을 단풍이 유난히 곱습니다.


  노란 은행잎들, 빨갛게 물든 단풍잎들. 갈색으로 유난히 곱게 물든 벗나무, 이미 잎이 다 떨어져 버린 감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빨간 감들...



 

  그런데 그 곱게 물들었던 단풍들도 며칠 전에 내린 비로 다 떨어지고, 계절은 긴 겨울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갈색으로 변해버린 마른 풀잎들이 길가에 누워있고, 얼마 전 까지도 황금물결을 이루던 논밭이 가을걷이가 끝나고 적막하리 만치 텅 비어있는 것을 바라보면 늦가을의 쓸쓸함을 더해줍니다.



 

  그러나 그 쓸쓸함은 그저 슬픔만은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서, 앙상한 가지로, 마른 풀잎으로 매서운 눈바람의 고통을 온 몸으로 맞게 되지만, 그 어둡고 긴 겨울의 터널을 빠져 나오면, 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압니다. 앙상했던 가지에서도, 말라 누운 풀잎 사이에서도 파란 잎들이 돋아나고, 비었던 논밭은 다시 새 생명으로 가득 채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신비이겠지요. 자연은 그 신비 속에 스스로를 맡겨 자연이 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인간만은 유독 스스로를 맡기는 데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혼자 세상에 왔다가 혼자 돌아갈 것입니다.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만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짙은 고독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고독의 감정은 병들어 있을 때 더욱 강하게 밀려오고, 산산히 부서져 내리는 현실을 느끼면서 죽음에 직면했을 때에는 말할 나위 없이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사람은 정말 죽음 앞에 홀로 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죽음을 가지고 여러분들과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삶과 죽음을 분리시켜서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농경문화 생활에서 터득한 지혜였습니다. “모통이 담만 돌아서면 저승인 것을”, “문턱만 넘어서면 저승인 것을”, “꽃 피고 새우는 바로 앞동산이 북망이로구나!” 하는 말들은 그분들이 죽음을 일상의 삶 속에 받아들이고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커다란 대해에서 부서지는 파도가 튕겨내는 물방울이 다시금 대해에 합쳐지듯이, 모든 생명은 이 세상에 잠간 머물다가 대생명과 하나가 된다고 보았던 것 같읍니다.



 

  우리는 삶은 죽음으로 통하고,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통한다는 것을 자연의 변화를 통해 깊게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도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태어남이 막힘을 뚫고 새로운 가능성이 되어 나왔듯이, 죽음 또한 막힘을 뚫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삶과 죽음은 단일한 신비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야기 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몇 번씩 망설여졌으니까요. 성서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재산을 쌓아 놓고 행복하게 살며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모든 일에 성공하고 아직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 죽음아, 너를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느냐!(집회서 41,1)



 

  죽음은 가장 일반적인 인간사이며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사건입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다른 어떤 인간의 행위보다 더 인간다운 행위로, 또는 삶의 성취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몇 해 전에 죽은 동료 교수가 있습니다. 선순화 목사라고, 여러분 중에도 아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임학을 공부하다가 신비체험을 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전공을 바꾸어 신학을 공부했고, 목사가 되어 한국에 돌아와 신학교 교수로 있다가 49세에 갔습니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3년 후에 재발을 하여 결국 죽었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 암이 온몸에 전이되었다고 진단을 받은 날, 만났습니다. 제가 많이 좋아했던 분이어서, 병원에서 가망에 없다고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 살렸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그 당시 기도 받을 수 있는 곳을 권유했던 저에게 선목사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는데 하느님께 나를 살려달라고 기도 드릴 명분이 없어. 다른 사람처럼 결혼을 해서 가족이 있는 것도 키워야할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꼭 한 가지 나는 후진들을 키워야 하니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할 것이고...”



 

  그 후 한 섬에서 통증에 시달리면서 요양하고 있던 그를 찾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선 목사를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나도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그를 살려 주십시요.”하고 말입니다. 섬이어서 바람소리가 창문을 유난히 흔들어 대던 이른 봄 이었습니다. 하루 저녁 그곳에서 자면서 선 목사에게 하느님께 제가 기도하는 내용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 목사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분 아니세요.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선배 하나가 암에 걸려 죽어갈 때 그를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하면서 하느님께 매달렸어요. 그리고 선배는 얼마 후에 죽었지요.”



 

  집에 돌아오면서 저는 감동을 안고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그리고 철저하게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기고 자신을 객관화 시켜서 바라볼 줄 아는 그의 삶의 태도에 가슴이 멍하도록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몹시 힘들어하면서도 끝까지 진통제 한번 맞지 않고 갔습니다.



 

  저는 그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은 우리의 삶을 철저히 내맡기려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한 자기 비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비워진 곳에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 흘러들어 하느님과 하나를 이루는 것이겠지요.



 

  흔히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을 감추어 버리는 장막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죽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던 사람들도, 갖은 보약에 좋은 것은 다 먹고 오래 살아보겠다고 버둥거리던 사람들도 끝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죽음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죽음을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의 모습들은 여러 가지입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들을 잘 보여줍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그 중에서 주인공인 사랑하는 두 연인의 모습이 인상깊게 남아 있지만, 그 못지 않게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 출구가 봉쇄된 채 물이 차 오르는 지하 방 침대에서 어린 아들을 꼭 껴안고 조금이라도 아이의 공포를 덜어주기 위해 침착하게 등을 다독여주면서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읍니다. 그리고 기울어 가는 선상 위에서 마지막까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자기의 위치를 끝까지 지키는 선장의 모습 등이었습니다.



 

  죽음을 우리가 슬프고 비통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죽음은 바로 이 세상과, 가까운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리, 영원한 분리, 비통의 절정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서, 죽음을 삶의 마감이 아니라, 대생명과 하나가 되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인류가 하나 되는 그런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요? 죽음을 새로운 삶으로의 또 다른 여정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요? 죽음을 절망이 아니라 소망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요? 소망을 가지고 죽음에 직면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을 성실하고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죽음, 가장 큰 선물」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가난하게 죽습니다. 최후의 시간이 이르렀을 때 우리의 목숨을 연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과 영향력이 커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가난입니다.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라는 말씀처럼 죽음이라는 가난 안에는 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두 같은 하느님 나라의 형제 자매로 만들어주는 복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영원에서 영원까지 안전하게 운반해주는 복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제 아버님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시는 것 같은 아버님께 저는 두 손을 꼭 잡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아버님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버님은 잡고 있던 제 손을 놓으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놈아 너도 당해 봐! 죽음은 누구나 다 두려운 거야. 다만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이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 말씀을 들으면서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말씀을 몇 번씩 곱씹었습니다. 그래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이지 하고 말입니다.


 


 어떤 믿음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를 헨리 나우웬은 써커스단 곡예사와의 대담한 내용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공중 날기를 할 때 공중을 나는 사람은 자신을 붙잡아 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고 합니다. 붙잡아 주는 사람은 1초의 몇 분의 몇까지 맞출 정도로 정확하게 공중 나는 사람이 갈 자리에 와 있어야 하고, 공중을 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팔과 손만 뻗고서 붙잡아주는 사람이 그를 잡아 안전하게 끌어주기를 기다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나는 사람이 붙잡아 주는 사람의 손목을 잡는다면 둘 중의 한사람의 손목이 부러지게 되고 둘 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공중 날기를 하는 사람은 날기만 하고, 붙잡아 주는 사람은 붙잡기만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공중 날기를 하는 사람은 붙잡아 줄 사람이 자기를 위해 제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믿고 팔을 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에 임박했을 때, 예수님께서 “아버지 나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걸 잘 생각하세요. 당신이 길게 점프할 때 하느님께서 이미 그 자리에 와 계실 겁니다. 하느님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분이 당신을 붙잡아 주실 거예요. 그러니 그저 팔과 손을 앞으로 내밀기만 하세요. 하느님을 믿으세요. 믿고 또 믿으세요.”라고 말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의 성경 말씀 시편(23, 1-4)을 묵상하면서 두려움 없이 행복하게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야웨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이 없노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길이요, 나 비록 음산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



 

  끝으로 성녀 테레사 수녀님께서 임종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주여, 이제 당신이 확실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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