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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2002.01.16 19:14

[1998.10.25] 생명의 씨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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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서창원 목사

"생명의 씨알"

(성서본문: 요한복음 12:20∼24)

 

1998.10.25

서창원 목사

[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 요한복음 12:20∼24



  오늘날 사회 현실 가운데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풍조의 하나가 생명 경시의 태도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철없는 자녀까지를 강제로 동반자살에 참여시켜 생명을 멸절시킵니다. 또 사랑과 종교의 명분으로 집단 자살을 순교의 길이라 미화하여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감정적인 흥분을 자제하지 못하고 프로판가스통에 불을 놓아 주위의 선량한 이웃까지 졸지에 피해를 주는 사태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생활이 어려워지면 범죄가 증가하고, 심리적 안정성이 저해되고,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사회 전반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크고 심각한 문제는 삶의 가장 현실적 실체인 에 대한 바른 인식이 결여된 오늘의 문화전반입니다. 모든 것을 수량적인 사고와 물량적인 척도로 인지하는데 익숙해 있는 오늘의 경제의 위축은 그대로 삶의 축소와 희망을 잃어버린 절망과 비관주의로 우리를 내몰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역사적 정황 속에서 겪는 고통을 대면하면서 우리는 깊은 자기 반성을 하여야 합니다. 고통은 역사의 실체 중 현실적 실체로서 우리를 자기성찰과 잃어버렸던 의식을 자극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수량적 개념은 힘과 수가 많은 사람에게 유리하던 게임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확대와 축소의 갈등적인 사고만이 작용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변증법적 창조의 계기가 닫혀 있는 사고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성서의 말씀은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최후의 수난을 '하나의 밀알'로 성격화시켜 자기 동일화를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 한 알갱이의 밀알마저도 썩어져야 한다는 역설을 말하면서 그래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창조적 자기 변증의 사고를 전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힘이 저편에서 오는(power from over) 것에만 익숙해 있지 힘이 우리 안에서 오는(power from within) 것에는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의 원리는 확대 재생산되고 번성되며 재창조되는 자기 변증법적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은 생명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씨알 정신이며 하나의 밀알 정신입니다. 수에 관계없이 거기에 생명의 정보와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면 하나의 알갱이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씨알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념, 영적인 의식, 자기 철학 그리고 더불어 사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 이 세계를 질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빵의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식사라고 하는 생명을 키우는 영적이며 정신적인 문제와 떼어서 생각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말씀을 함께 명상하여 봅니다.

  첫째, 생명의 원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진리이며 하나님이신 예수를 다양하게 은유하고 있습니다. 빛, 생수, 반석, 진리, 영생 그리고 생명 등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진리가 의 진리입니다. 삼라만상의 만물일체는 하나의 큰 생명체입니다. 생명은 연대적 구성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의 원리와 신앙 인식은 우리들의 소명적 삶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는 사는 삶, 생활 자체를 그저 영위해 나가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가는 소명의 삶으로 인식하며, 인생 자체를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선 삶으로 여깁니다. 생명의 포괄적인 개념은 어떤 개념보다 절대적 개념입니다. 이에 생명을 살리며 보전하며 보살피는 상생의 방법과 생명을 퇴락 시키고 멸절시키는 상극의 방법이 방법론적으로 분류가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자기의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온 생명의 체계 아래에서 상호 돌봄과 침투의 원리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즉 생명은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 되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 깊이 묻고 새로운 자각을 해야 합니다.

  둘째, 생명은 사랑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은 생명의 실체이며 물질이지만 이 생명을 살리고 생명 되게 하는 길은 자기 부정의 십자가의 길이라 주님은 가르쳐줍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사랑의 표현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인 무생물, 생물, 식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진리는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인식됩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의 삶을 가르쳐 이제 남은 것은 "나의 몸을 번제로" 드리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 전체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개신교의 원리는 마틴 루터가 주장한 대로 '영광의 신학'과 대립되는 '십자가의 신학'입니다.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을 처절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하고 세계를 구원하는 능력이 된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낳고 생명으로 거듭나려는 모두에게 십자가의 신학을 선포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의 밀알이 썩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생명을 섬기며 사랑하는 십자가의 삶을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셋째, 새로운 가능성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기적은 외부로부터 오는 능력이 아닙니다. 내재적 가능성의 비약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표현되고 있는 모든 이적 사건들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적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분은 먼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를 물으신 까닭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돌연변이의 내재적 비약의 변화는 유전이 된다고 알려줍니다. 한 생명의 씨앗인 밀알이 이제 30배, 60배, 100배의 기적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에게 부활의 삶을 예시해줍니다. 어둠, 절망, 죽음의 세계가 아니라 빛과 자비의 생명의 세계가 있음을 보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생명의 씨알'에서 우리는 오늘의 문제 해결은 생명의 원리를 알고 사는 삶이 실천의 문제로서 예수 전체를 알고 그의 제자로서 사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가장 귀중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 죽고 그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사는 것이 없이는 새로운 인식의 변화도 진보도 완성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는 새 생명의 씨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는 결단이 있을 때에야 어둠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기다리며 가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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