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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김경남 목사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성서본문: 마태복음 9:36∼38)

 

1998.10.11

김경남 목사

[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

- 마태복음 9:36∼38




  IMF와 혹독한 수해 등 수많은 고난의 일년이었는데 무슨 감사할 일이 있겠는가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할지 모릅니다. 구약성서의 하박국 선지자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믿는 자의 삶의 자세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드리는 감사야말로 진실한 감사이며 축복 받는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이 시간에 우리는 현재의 시련과 역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려는 그 뜻과 계시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2,000년 전 이스라엘 농촌상황을 보시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의 우리의 농촌현실을 정확히 갈파하시고 계셔, 예수님의 시공간을 초월한 말씀의 신비를 다시 한번 느끼고 감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이스라엘의 농촌현실을 갈파하는데 머물지 않고 보다 깊은 의미를 담은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은 그 앞의 35∼36절 말씀에서 분명해집니다.


  35절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면서,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절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명퇴 당하고 해고되어 직장을 잃고 거리를 떠도는 백성, 가뭄과 홍수로 굶주리고 시달리며 허덕이는 한반도 남북의 백성들, 이들을 돌보고 위로할 일꾼이 적으니 일꾼을 보내주소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생생히 와 닿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올해 1월부터 전북 무주군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푸른 꿈 고등학교를 설립하여 대안교육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사자격증도 없으며 교사 경력도 없습니다만, 교육 현장에서 여러 해 동안 교사로 봉직하면서 우리 교육이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통감하여 참교육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젊은 교사들의 굳은 의지와 헌신성, 열성에 감동을 받아 견딜 수 없어 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30년 가까이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힘(저는 그것을 성령의 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에 이끌리어 멍에에 매인 소처럼 사회선교 주변을 맴돌아 왔습니다만, 이번에도 그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손길에 이끌리어 이 대안학교 설립을 새시대의 새로운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을 실천하자는 그 교사들과의 9개월 가까운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저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보다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으며, 우리 교육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매년 10만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가정을 떠나고, 학교를 떠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 태반이 학교를 뛰쳐나가고 싶지만 다만 용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뉴스보도에 따르면 우리 나라 고등학생 46∼7%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문제로 자살유혹을 느끼고 있으며, 그중 17%는 실제로 약을 산다던가 하는 자살시행을 했다는 놀라운 통계가 있습니다. 가정을 떠나고 학교를 떠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아이들을, 우리는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문제아, 학원 폭력배라고 지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가정과 학교를 떠나도록 등을 떠밀어내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누구입니까? 그것은 잘못된 교육현실, 사랑 없는 가정, 옳지 못한 교육관을 가진 우리 부모들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부모들이 우리들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있지는 않은지, 참으로 오직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우리 아이들을 문제아, 학원 폭력배 등으로 비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밀 룻소는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참된 인간을 만드는 교육입니까? 우리의 교육은 대학입시 전쟁에 승리하는 기계, 출세기계, 약육강식의 게임에서 살아남는 기계, 이기주의라는 기계를 양산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사랑이 없는 교육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반역이다"라는 서양의 말도 있습니다. 우리 교육에 정말로 사랑의 원리가 존재하고 있습니까? 저는 IMF 난국의 본질은 잘못된 교육풍토에 기인한 면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남보다 높이 높이, 남보다 많이 많이, 남보다 빨리 빨리,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교육풍토가 부실경제, 부실사회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교육제도가 이와 같이 만신창이가 된 것은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부분 한국교회에도 그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기독교사를 보면 한국의 대중교육의 장을 연 것은 기독교였습니다. 이화학당, 배제학당, 이화전문학교, 연희전문학교 등이 기독교인 등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애초에 기독교가 이러한 학교를 세운 목적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예수님의 정신으로 우리 민중을 교육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복음에 입각한 교육보다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으로 타락하였으며, 그에 뒤따라 세워진 세속의 학교와 다를 바 없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국가통제하의 교육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우리의 교육을 망친 주범은 아닐지라도 방관자요 공범자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기를 포기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역사 앞에 죄지은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우리의 교육현실을 보신다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우리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추수할 아이들은 많은데 참다운 교육을 할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명하실 것입니다.

  무주에서 저희가 세우려는 학교는 생태적 이념을 교육이념으로 하는 교육부가 인정한 특성화 인문고등학교 입니다. 저희가 지향하려는 교육이념은 기존의 공교육에 대한 비판적 대안이라는 측면과 생태위기 시대에 있어서 지속 가능한 인간상을 배양한다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는 어떤 돈 많은 재산가의 재력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의 출연과 교육을 염려하는 양심적 시민들의 모금으로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돈 많은 재산가의 재력에 의해 설립된 학교가 경영원리로 인해 참교육이념이 손상되는 것을 본 경험 때문입니다. 저희 학교는 전교생 75명의 작은 학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기존학교의 모든 교사가 "촌지를 바라는 비교육적 인사들"이라고 저희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콩나물 시루와 같이 다수의 학생과 소수의 교사로 되어 있는 현재의 교육상황에서는 참다운 인간적 관계도 사랑의 원리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75명의 조그마한 학교 하나 성공적으로 세워보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백배 천배의 결실을 얻어, 거대한 암벽과 같은 우리의 교육제도를 허물고 참교육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소망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뿌리는 자는 인간이지만 생육하게 하시고 백배, 천배의 결실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능력이라면 못 이룰 것이 없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저희는 참된 인간을 만드는 것은 땀 흘려 일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소작교육을 병행하고자 합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반전평화주의로 일관한 무교회주의 창시자인 우찌무라 간조(內川鑑三) 선생은 "읽어야 할 것은 성서, 배워야 할 것은 자연, 행해야 할 것은 노동"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난 8월에 일본의 대안학교 4군데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학교들은 마치 우리가 미리 알고 모방하고 있는 것 같이 모두가 70∼80명의 소규모 학교로서, 교육이념도 우리의 것과 유사하였습니다. 이 학교들은 모두가 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말씀을 교육이념으로 삼아 자연을 배우고 노동을 실천하는 아이들로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만나 본 아이들은 너무나 친절하고 예절바르고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치 어른스러운 성자들 같아 거친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곳 교장선생들은 공통적으로 말하기를 땀흘려 일하면 온화하고 친절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지향하려는 교육 방향이 이미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그것도 기독교인들에 의해 실천되고 있음을 알고, 앞으로 우리의 실천을 위해 배울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자 합니다.

  저희 학교는 먼저 참된 인간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품성이 깃든 아이들로 교육하고자 합니다. 그 위에 한 참다운 인간으로서 자신의 미래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립적 인간을 양육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 교육제도에서 유일한 성패의 기준은 잘 외우고, 가르치는 데로 베껴 쓰고, 좋은 점수를 따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 현실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을 점수 잘 따는 존재로만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공부 잘 하는 달란트를 가진 아이들 말고도 수많은 다른 재능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죄악은 오로지 점수 그것만을 기준으로 하고 하나님이 주신 수많은 귀한 재능들을 억압하고 사장시켜 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의 반역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손실입니다. 우리 교육제도가 잘 외우고, 좋은 점수 따서, 좋은 대학 나온 후, 펜 굴리고 의자에 앉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최상의 성공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러한 화이트칼라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이트칼라는 소수이며 사회 대부분은 땀 흘려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에 의해 사회 중심 축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화이트칼라만 존중되고 땀 흘려 일하는 일은 천시되므로써 결국 이 사회는 거품처럼 실속 없이 되어 오늘날의 IMF 위기가 오게 된 것입니다.


  저희 학교는 점수 잘 맞는 소수의 학생들만 존중되고 대다수의 아이들은 소외되고 외면 받는 현실 속에서, 점수 따는 재능이 없는 대다수의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지향하려 합니다. 그 아이들 속에서 숨겨지고 사장된, 하나님이 주신 귀중한 재능들이 개발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하려 합니다. 그들도 그 재능을 고귀한 것으로 알고 키워 자부심을 가지고 인생의 성공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할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추수할 곡식들은 내일을 위한 양식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내일을 짊어질 알곡들입니다. 알곡들이 사장되어 썩지 않도록 건전하고 건강한 품성을 지닌 알곡들로 키우고 양육할 일꾼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요즈음 저는 개화기에 살았던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의 소중한 전통을 이어받아 한국의 기독교가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일꾼으로 다시 나서서, 지금 이사회에서 지탄받고 있는 위치에서 다시 존경받는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새길교회 자매 형제 여러분,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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